원망과 원한, 그리고 사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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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6월 15일, 유엔 본부의 텅 빈 총회실으로 유엔이 경민을 초대했다.

근 19년만이었지만 반가움 전에 긴장감이 돌았다.

정녕 자신을 버렸던 사람이 왜 나를 이곳으로 불렀을까?

알 길은 없었지만 일단 가보기로 했다.

한국의 도움으로 순간이동장치를 통해 유엔 본부에 도착한 경민은 요원에게 신분증을 보여주고는 그의 안내를 받아 총회장으로 걸어갔다.

"...어서 오거라, 루티아- 아니, 경민."

"...."

유엔의 인사에 경민의 얼굴은 굳었다. 그리고 속으로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요원이 나가고 둘이 남은 총회장엔 적막함으로 가득 찼다.

"날... 날 이곳으로 불러낸 이유가 뭐죠?"

"...."

그녀의 물음에 유엔은 무대 위 발표할 때 쓰는 나무로 된 테이블을 손으로 만지며 눈을 감고는 다시 떴다.

"널 이곳으로 불러낸 이유는....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란다."

"...."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경민은 여전히 긴장감을 놓치 않았다. 17년 전처럼 자신을 버렸던 기억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던 그녀였기에. 그래서 그녀는 그를 멀리하고 또 멀리했다. 그러면서 마음 한 켠으로는 자신을 괴롭힌 이들을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각오를 하며 커터를 가지고 다녔던 시절도 있었을 정도였다. 물론, 지금은 다시 인간에 대한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언젠가는 모를 일이었다. 다시.... 다시 12년 전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없잖아 있다는 걸. 그래서 그녀는 유엔과 있었던 일을 묻어두었다.

쨌든 경민의 비장한 표정을 본 유엔의 마음 속엔 죄책감이 차올랐다. 그러나 이미 경민의 마음 속엔 그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찼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그 전에 너에게 사과부터 해야겠구나."

"...."

그의 말에 루티아는 화가 나 이를 드러냈다. 이제 와서? 대체 무슨 속셈이야? 루티아의 머릿속엔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그때였다. 유엔은 무대 아래로 내려와 루티아의 앞에서 두 발을 모으고 두 무릎을 꿇었다.

"...?!"

그 순간 경민은 당황했다. 유엔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경민아...."

"...."

"너를... 내가 모른 채 한 걸.... 진심으로 사죄하마..."

그의 사과 한마디에 루티아는 화가 났다. 대체 무슨 의미야? 무슨 이유야? 루티아의 마음 속에서 분노가 일어나 거대한 파도처럼 몰려왔다. 결국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왼쪽 의자 옆에 있는 나무 의자가 보였다. 경민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그걸를 들고 와서 한손으로 의자를 휘둘러 그를 강타했다.

"퍽!!"

"유엔님!"

의자가 부서지는 소리에 요원들이 문을 박차고 나와 총을 들어 경민을 겨눴다. 그러나 유엔은 손을 들어 총을 거두라는 신호를 보냈다. 부서진 의자를 쥔 경민의 손이 그녀의 분노에 의해 부들부들 떨렸다. 

"네놈이... 날 그렇게 갖고 놀고도 무사할 줄 알았어? 네놈이 그렇게 사과하고도 내가 널 용서했겠냐고, 이 씨발놈아!!!!!"

분노가 담긴 경민의 목소리가 총회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경민은 손에서 의자를 놓았다.

"....솔직히 초등학교 들어간 이후로는 내 인생 완전 그지 쓰레기였거든? 그래서 너를 만나고 한 동안은 나아질 중 알았다? 그런데.... 왜 내 연락 안받았어? 그것도... 내 아빠 돌아가신 날에."

"...."

"내가 학교에서 제일 문제아 취급 받으면서 집단 따돌림 받고,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내가 유일하게 매달릴 수 있는 사람이 너였는데.... 너는 오히려.... 오히려 내 유일한 희망의 끈을..."

마음 속에 속상함이 붇받쳐 오른 경민은 결국 무릎을 꿇어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다.

"....."

유엔은 천천히 경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다시 무릎을 꿇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경민아..."

유엔의 말에 루티아는 목 놓아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

그 일이 생긴 이후, 둘은 유엔의 집에 도착한 이후에도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이리 오렴, 저녁 식사가 준비 되었단다."

"...."

유엔이 말하고 내려간 이휴에도 경민은 몸을 웅크려 앉아 있었다. 지난 악몽이 떠올라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차라리 이 모든 과거가 사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랬으면 그녀의 삶도 조금이나마 바뀌지 않았을까?

"...."

쨌든 경민은 1층으로 내려가 다이닝 룸으로 갔다. 그녀가 간 다이닝 룸의 식탁에는 까르보나라 치즈 스파게티가 있었다.

"네가 좋아하는 까르보나라 치츠 스파게티란다. 그래서 양을 1.5인분으로 했는데, 좋아했으면 좋겠구나."

"...."

그의 말이 끝나고 경민은 그 스파게티를 보았다. 그리고 의자에 앉았다.

***

식사 후, 경민의 분노는 조금 사그라들었다. 서양 면요리를 좋아했던 그녀였기에 유엔은 경민의 것을 조금 많이 주고 자신은 그것보다 적은 양을 먹었다. 그러면서도 그것으로 경민의 분노가 풀리기를 바랬고, 그 결과는 예상했던 것보다 나았다.

"나랑 같이 영화... 보겠니? 네가 좋아할 만한 걸로 골랐는데."

"..."

루티아는 유엔을 보고는 잠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유엔은 경민을 데리고 거실로 갔다. 그리고 경민을 소파에 앉히고 자신은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인터넷 클라우드 메모리에 연결하여 3시간짜리 동영상 파일을 재생했다.

경민은 그 영화가 곧 '엔칸토'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줄거리가 어떻게 되는 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영화를 좋아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영화의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즈음 경민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나왔다. 학창 시절 동안 늘 쓰레기 취급 받아온 그녀의 감정이 붇받쳤기 때문이었다. 그때, 경민이 입을 열었다.

"나는... 정말로 나는 남을 돕는 걸 좋아했는데... 어느새 세상은 날 멸시하며 내 꿈을 짓밟는 느낌이었어요. 모든 게 꿈이라고 믿고 싶었는데... 순간 세상이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민의 말이 끝나고 유엔은 테이블 위 티슈를 몇 장 뽑아 경민의 눈물을 말 없이 닦아 주었다. 자신의 한 순간의 잘못으로 소녀의 어린 시절이 이렇게 망가졌다는 사실에 그는 속으로 자신을 책망했다. 영화가 끝나고 유엔은 자신의 두 팔로 조용히 경민을 안아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I'm so sorry and forgive me for being so blind. Give me the chance to protect you again. I... I'll do my best."

"....."

유엔의 말에 경민은 그저 조용히 훌쩍거리기만 했다.



다음 날, 유엔은 경민을 안전하게 브라이트가 있는 곳으로 바래다 주었다.

"...잘 된 일이네. 그걸로나마 아이의 원한이 사그라 든다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지. 그나저나... 괜찮은가. 아까 경민한테 의자로 얻어 맞았다는 얘기를 들었네만."

"저는 괜찮습니다. 이걸로 경민의 분노가 풀린다면야 저도 바랄 게 없지요."

"WHO한테 치료 충분히 받게나."

"네, 감사합니다."

유엔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순간이동장치의 포탈을 통과했다. 그걸 본 브라이트는 다시 경민을 보았다.

"네가 그렇게나 화가 쌓여 있는 줄은 생각도 못했구나. 겉으로 보기엔 그저 얌전할 줄로만 알았는데...."

"...."

"앞으로는 폭력 사용 금지다."

"...."

"남한테 욕도 쓰지 마."

"...."

"아무리 네 감정이 소중하다지만 다른 사람의 생명도 소중한 거다. 그걸 알아 둬라, 경민아. 자, 따라오거라."

Dream Catcher: The Growing Positive Theory of Mental IllnessDonde viven las historias. Descúbrelo aho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