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ish Seol-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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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설날 연휴구나..."

영국이 혼잘말을 함으로써 나는 드디어 음력 12월 31일이 다가왔음을 알았다.

아직은 정체기에 머물러 있는 나, 하지만  조만간 다시 일해야 하는 몸이었다. 어차피 그러라고 젊음은 존재했으니까. 도박이나 마약, 사치에 돈을 펑펑 쓰는 미천한 것들보다 내가 훨씬 더 나을 것이다.

....라는 말을 할 처지가 아니란 걸 나는 잘 안다.

항정신성 약물(의학적 마약)을 늘 달고 사는 나에게 '방향', 즉 삶의 목적은 늘 중요한 소재였으니까.

그러면서 나는 내 가방에 책 2권과 고속 충전기, 전자패드, 생리용 파우치 등을 넣고, 두번째 가방에는 갈아입을 옷과 칫솔을 넣었다.

이번 설에도 역시나 엄마는 못간다며 나와 오빠만 가야 한다는 말을 하셨다.

가기는 싫지만, 이떄를 노려 오빠의 진심이 어떤 건지를 알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렇게 오빠의 차에 짐을 싣고 차에 올라탄 나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보았다.

그리고 고속도로에 오르고 한참이 지나서 나는 오빠에게 말을 걸었다.

요즘 잘 지내냐- 아니, 요즘 일은 잘되가냐는 나의 물음에 오빠는 '늘 그렇다.'라며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떄 엄마에게 오빠에 대한 얘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법적 시급보다 훨씬 더 낮은 돈을 받고 일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것도 서러운데 야근까지 시키는 회사에 오빠는 불만이 많았다.

반면에 나는... 다들 알잖은가. 법적에 맞는 시급을 받고 전문직으로 일하며 이로가 운동, 취미와 휴식의 벨런스를 잘 맞춰갔던 몸이니....

그런 나에 비해 오빠는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이었다.

사실, 오빠는 게임러가 장래직업이었다. 프로게이머가 될 수 없을 지언정 게임만 주구장창 하고 싶었다는 말에  왜 학창 시절에 그 꿈을 말하지 못했는지가 대략 이해가 갔다. "꿈이 있는 정신질환자 여동생"에 "꿈이 없는 일반인 오빠"이라니.... 그래서 오빠는 단 한번이라도 '인생 가이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무도 오빠를 지원하지 않는 이상, 오빠는 우주의 공허 속을 떠도는 외로운 행성 같았다.

아빠가 죽지만 않았더라면.... 오빠도 이런 인생을 살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빠는 운전하면서 갑작스레 끼어드는 차량에 한신 욕을 내뱉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내심 두려워 그땐 정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돼려 그 불똥이 내게 튀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작은 숙부네 가족이 있는 아파트에 도착하여 집을 꺼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열린 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가 왼쪽에 있는 초인종을 누르니 조금 있다가 막둥이(우리 친척 중에서 나이가 제일 어린 남동생)가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모두 인사를 하고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주방으로 향했다. 요리를 못할 지언정 그래도 숙모꼐 몇 가지를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숙모는 되려 괜찮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어쩔 수 없이 폰을 가지고 막둥이의 방에 들어갔다. 막둥이는 휴대폰으로 그의 친구와 전화하며 게임을 하고 있었다. '로블록스' 매니아답게 키보드를 타타타타타타타타- 누르는 예비 중학생의 모습에 '아, 아직 저 모습은 어디 안갔구나' 싶었다.

- 다음 방 - 

현이(숙부네 가족의 둘째)는 노트북으로 자기 친구들과 채팅 중이었다. 아~, 이제 정시 다 봤다고 저러는 거 봐라... 나는 얼른 조용히 방을 빠져 나갔다.



와아... 이제 내가 할 게 정말 없네....






- 오후 11시 30분 -

나는 막둥이의 방에서 나와 가방에서 칫솔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솔 부분에 치약을 바르고 이를 닦기 시작했다.

"...."

'허무....하다...'

이상하리만큼 마음 한 켠이 시려왔다.

여튼 뒷정리까지 다 하고 화장실에 나와 휴대폰을 옆에 두고 미리 깔아 놓은 이불자리 위에 누웠다.

"...."

예상치도 못하게 딱딱한 바닥과 낮은 배게에 나는 한 동안 뒤척였다. 그리고 두세시간이 흐르고, 결국 안돼겠다 싶어 소파 위에 올라갔다. 그러나... 그때부터 잠이 아닌 두통이 와 내 머리를 강하게 강타했다.

"하아...."

'시바, 엿됐다...'

그렇게 나는 옅은 잠- 아니, 그 자세로 하룻밤을 다 새버렸다.

"...."

'하아... 머리야....'

여튼 '씨게' 온 두통을 이끌고 나는 서둘러 일어났다.

"벌써 일어나나?"

내 뒤에서 할머니가 허허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어어... 아, 네에..."

"가서 세수해라. 세수하고 머리 새로 묶어라."

"네."

나는 서둘러 화잘실로 들어가 세수를 하고 머리를 새롭게 단장하듯이 묶었다. 캬아... 그래, 이게 나지...

두통은 좀 성가시긴 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하랴. 나는 서둘러 주방으로 갔다. 그리고 무진장 많은 일을 도와드렸다. 제사에 쓸 음식을 제사용 그릇에 담고, 그 그릇을 다시 제사상 위에 나르고를 반복하니 어느새 제사 준비는 얼추 끝냈다.

그렇게 '세 남자'는 한껏 정장을 차려 입고 세 번 절을 하기 시작했다. 근처에 서서 제사상을 보니 웬지 저 음식을 드시고 있을 나의 아버지가 생각났다.

"...."

'많이 드세요.'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제사가 끝나고 하루 첫 끼니까지 해결하고 나서 숙모께서 우리 가족이 먹을 음식을 나눠주셨다. (그 중 대부분이 과일이었다.) 음식들이 담긴 박스를 들고 우리는 할머니를 큰 고모가 계시는 곳으로 바래다 드린 후 부산광역시의 '영도' 섬으로 향했다. 그곳에 할아버지꼐서 계시기 때문이었다. 별로 내키진 않지만 그곳에 있는 동안 정말 단 한 번도 입을 뻥긋하지 않았다. 그냥 나는 그곳에서 떡국 한 그릇만 먹는 게 다였다.

"...."

정녕 이게 설날의 풍경이란 말인가. 이런 설날은 정말...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끔찍하고도 메마른 날이었다.

'정말 이런 날은... 질색이야....'

그렇게 '우리'는 다시 밀양에 계시는 외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그렇게 외할머니의 댁까지 모두 방문한 우리 가족은 다시 우리 집으로 향했다.

Dream Catcher: The Growing Positive Theory of Mental Illness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