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전하께서 이 시간에 여기까지 직접 걸음 하시다니…… 무슨 일이십니까?”
각진 안경을 쓴 어느 여자 앞에 도착한 백이강은 나를 그녀의 앞으로 들이밀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바로 인증 명부를 관리하는 담당자인 듯했다.
“이자를 황실 마법사로 등록할 거다.”
“……예? 아, 네. 저기,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청도운입니다.”
조금 전, 내가 파랗게 빛나는 구슬이라 칭한 것은 이 세계에서 컴퓨터와 비슷한 쓰임새의 마법 기구인 듯했다.
푸른 마법구를 한참 두드리던 담당자는 무언가 문제가 있는지 눈을 가늘게 뜨며 연거푸 고개를 갸웃했다.
“음…… 오류가 있나? 청도운 님께선 등록되지 않은 제국민이라고 뜨네요. 혹시 출생지가 북부셨나요? 그쪽은 워낙 기후가 살벌해서 간혹 마법구끼리 연결이 끊기거든요.”
“마법구는 정상이다. 청도운은 펜디움의 제국민이 아냐.”
그녀의 물음에 내가 당황하자 백이강은 무던한 얼굴로 내 신상을 곧장 실토했다.
아니나 다를까, 담당자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빛이 적나라하게 새겨졌다.
“네? 펜디움의 제국민이 아닌 사람은 제국법상 황실에 속할 수가 없습니다만…….”
담당자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백이강의 눈치를 보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단순히 대답하는 일조차도 이리 어려워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백이강의 위세를 정말 나만 몰랐던 모양이었다.
사실 원작에서도 백이강의 성정은 별로 좋은 편이 못 됐다.
그는 흑막의 씨앗답게 누구든 거슬리면 죽였고, 방해되면 제거하는 게 일상이었다.
무엇보다 황태자이다 보니 아무리 제멋대로 굴어도 뭐라 할 사람이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의 폭주에 더욱 속도를 붙였다.
전쟁 영웅으로서 제국 안팎으로 적이 많았던 백이강은 제국 내의 귀족들뿐만 아니라 외국의 견제와 위협까지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덕분에 컴컴한 의도를 품고 그의 주변을 얼쩡대던 이들 중 목숨을 건진 이는 극히 적었다.
어쩌면 그가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잔혹한 환경이었다.
“백, 아니, 전하. 난 괜찮으니까 그냥 가자. 오늘 당장 인증받을 필요는 없잖아? 그냥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청도운, 계약서를 잊었나 보군. 난 네 신변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네가 맡은 책사는 한낱 임시직임을 기억하도록.”
절차 밖의 요구에 곤란해하는 담당자가 안쓰러워 한발 물러설 것을 권했지만, 백이강은 오히려 서늘한 눈으로 나를 흘기고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담당자에게 내밀었다.
대충 보아하니 날조와 왜곡이 가득 묻은 내 신원 보증서인 듯했다.
아무리 황태자라지만 저렇게 대놓고 서류를 조작해도 괜찮은 거냐고…….
“청도운의 신원은 내가 보증하지.”
“저, 전하…… 정말 죄송하지만 아무리 전하시더라도 제국법을 거스를 수는…….”
역시나 괜찮지 않은 모양이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담당자가 우는 낯으로 꾸역꾸역 거절의 말을 뱉던 그때였다.
일순간 살벌하고 꺼림칙한 기운이 스멀스멀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커다랗게 일렁이는 까만 어둠을 목격한 나는 당혹감에 주변을 살폈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이들의 눈에는 저 흉흉한 검은 기운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도 모자라 등허리를 타고 올라오는 불온하고 낯선 기분과 함께 싸늘한 한기가 살갗을 스쳤다.
누군가의 습격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백이강, 방금 무슨…….”
놀란 마음에 다급히 백이강의 어깨를 붙잡으려던 순간, 줄곧 느껴지던 수상한 기운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
검은 기운이 솟구치던 자리에는 희미하게 미소 지은 백이강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전하. 금방 처리해 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