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피엘의 큰 패였던 켄을 우리 편으로 회유했다지만, 만사에 욕심이 많고 열등감에 빠져 있는 그가 이런 일로 순순히 황좌를 포기할 것 같진 않았다. 그럴 만한 성정도 아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백이강의 약점을 캐내, 끝내는 끌어내리려 하겠지.
다행히 아직 피엘은 백이강이 흑마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평소 백이강이 시도 때도 없이 흑마법을 남발하는 성격은 아니라는 게 그나마 안심되는 요소였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법. 저번 인명부에서처럼 공개된 장소에서 힘을 쓰는 건 확실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피엘은 마수를 다룰 줄 알기 때문에 사소한 낌새라도 보이면 금세 백이강의 힘을 눈치챌 터였다.
애당초 원작에서도 그런 식으로 들켰었으니까.
비록 원작 전의 시간대에서 일어난 일이라 자세히 쓰여 있진 않았으나, 스치듯이 한 줄짜리로나마 백이강의 흑마법이 쉽게 발각되었다는 서술이 있었다.
그런 걸 보면 분명 별 경계 없이 쉽게 쓰다가 쉽게 들통난 거겠지.
그렇다면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단 하나의 문제는…… 바로 백이강이 흑마법을 사용하는 데 별달리 경각심이 없다는 거다.
이건 내가 곁에서 최대한 주입식 교육을 하는 수밖에 없겠네.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켄, 다음에 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켄을 배웅한 나는 흘긋 백이강을 돌아보았다.
무언가 생각에 빠진 듯한 그는 켄이 나가는 데도 달리 신경 쓰지 않은 채 뜻 모를 상념에 잠겨 있었다.
이거 봐. 하여간, 애초에 켄을 죽일 생각도 없었으면서 죽이네 마네, 말만 나쁘게 한다니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생각에 잠긴 그의 보랏빛 눈동자가 꼭 심연처럼 묘하게 일렁였다. 그 앞으로 손을 휘젓자 그제야 백이강이 고개를 들었다.
“그 마수라는 거, 죽일 수는 있나?”
물음을 던지는 그의 피곤한 동공 너머로 미묘한 이채가 돌았다.
“……음, 완전히 죽일 순 없어. 그것들은 이곳에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소환에 의해 존재할 뿐이니까.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야 해.”
“원래 있던 곳이라면…… 마계를 말하는군.”
“맞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던 그 순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안나입니다.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바깥에서 날아든 목소리에 필립이 문을 열자 커다란 트레이를 이끌고 들어온 안나가 탁자 위로 온갖 음식을 천천히 내려놓기 시작했다.
“갑자기 웬 거지?”
난데없이 찾아온 밥시간에 백이강의 눈이 의아함을 품고 크게 뜨였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백이강에게 여기서 밥 먹기로 했다는 말을 안 했던가?
“너 어차피 밥 안 먹었을 것 같아서…… 여기서 같이 먹겠다고 했어.”
중간에 끼어든 켄 때문에 말하는 것을 깜빡 잊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나는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으음, 한 소리 들으려나? 매사 계획적인 백이강의 성격상, 업무 시간에 뜬금없이 밥상을 차렸다고 뭐라 할 것 같긴 한데…….
“잘했어.”
“……어?”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돌아왔다. 잘했다니, 뭐가? 밥상을 차린 게?
“나와 단둘이 밥을 먹고 싶다면 이렇게 불쑥 들이대지 않아도 돼. 그러니 앞으로는 사전에 말하도록.”
어쩐지 굉장히 자애롭고 너그러운 톤의 목소리였다. 게다가 표정 또한 조금 전보다 한층 더 온화해진 것 같았다.
“……아?”
아. 그러니까, 또 그런 쪽으로 오해를……?
이미 제멋대로 결론을 마친 모양인데,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해봤자 내 입만 아프겠지……. 그냥 그러려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