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누우라는 내 말이 두어 번 더 침실을 울리고 나서야 백이강은 천천히 내 옆에 몸을 눕혔다.
곧이어 그에게서 살아 있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싸늘한 냉기가 선연히 느껴졌다.
그간 그와 신체적 접촉을 여러 번 해서 체온에 대해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이 정도 상태는 처음이었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특히 더 심각한 것 같은데……. 티를 전혀 내지 않아서 몰랐네.
일단은 재우자. 운 좋게도 내 체온은 평균에 비해 높은 편이니까 이 온기를 좀 나눠 주면 지금보단 나아지겠지.
“잘 자, 이강아.”
“……그런 인사, 처음 듣는군.”
낯선 밤 인사를 듣고 희미한 웃음을 터뜨린 백이강은 ‘너도’라는 뒷말을 나직하게 흘렸다.
‘너도’라니, 남의 인권은 없는 양 행동하던 왕재수 백이강이 저런 말도 할 줄 아네.
나는 얌전히 눈감은 백이강의 이마 위로 준비해 둔 수면 마법을 걸었다.
솔직히 이런 마법은 끝도 없는 야매이기 때문에 그가 얼마나 잘 수 있을지, 보통의 인간처럼 자고 난 후 묵은 피로가 풀릴지는 미지수였다.
그래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하는 것보단 이게 낫지. 저번처럼 자는 시늉을 하는 것도 꽤 슬픈 일일 테니까.
잠시 후, 규칙적인 숨소리가 나직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생각한 대로 마법이 잘 먹힌 듯했다.
“이강아, 잠들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넌지시 물음을 던졌음에도 그에게선 곧은 숨소리만 가지런히 들려올 뿐이었다.
만에 하나 마법이 안 걸릴 경우를 대비해 충격요법으로 기절이라도 시키려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겠네.
낮고 잔잔한 숨소리가 계속해서 일정하게 이어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그제야 얼음덩어리 같은 백이강의 몸을 느슨히 끌어안았다.
머지않아 백이강이 공식 석상에서 모든 제국민 앞에 황태자로서의 위엄과 명성을 보여야 하는 대규모 건국제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바쁜데 2황자의 일까지 겹치니, 분명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터였다.
그의 답답한 성격상 이러한 점을 티 내진 않았지만, 온종일 백이강의 곁에 있었던 나로서는 그가 끼니를 챙길 여유조차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오전에 안나에게 백이강의 집무실로 식사를 갖다 달라고 부탁한 것도 그런 점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애초에 잘 생각도 안 한 거겠지. 나라면 당장 병을 고쳐달라며 징징대고도 남았을 텐데.”
이해는 가지만, 이해만 가는 문제였다.
별수 있나, 앞으로도 이렇게 강제로 침대에 눕혀서 재우는 수밖에 없지.
내가 잠시간 안고 있었던 덕인지, 백이강의 체온은 조금 높아져 있었다.
* * *
“아, 허리야…….”
찌뿌드드하고 뻐근한 허리 탓에 절로 눈이 뜨였다.
새벽 내내 얼음장 같은 누군가를 꼭 껴안고 잔 덕에 척추가 콕콕 쑤셨다.
찌뿌둥한 허리를 부여잡고 눈을 뜨자 엉킨 실타래 같은 흰색 털 뭉치가 시야에 한가득 들어찼다.
“……진짜 솜사탕 같네.”
전부터 느낀 거지만 이건 솜사탕이 맞다. 아닐 수가 없다.
하얗고 몽글몽글한 정수리를 손끝으로 꾸욱 누르니, 폭신하게 감겨드는 머리카락이 복슬복슬한 촉감을 냈다.
간밤에 걸었던 수면 마법이 제대로 먹힌 건지, 백이강은 해가 중천에 뜬 지금까지도 고른 숨소리를 내며 깊게 잠들어 있었다.
“진작 좀 이렇게 잤으면 좋았을걸.”
그런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백이강의 잠든 얼굴을 본 게 처음이던가?
새삼…… 되게 예쁘게 생겼네.
머리도 하얗고 피부도 하얀데 얌전히 자고 있기까지 하니까 진짜 천사 같기도……. 그 더러운 성질머리만 아니었어도 진짜 성군이 될 상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