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자는 이런 엔딩이 싫습니다!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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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빨리 레지를 떨쳐낸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백이강의 시선을 슬금슬금 피했다.

물론 내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지만, 그와 별개로 저 험악한 시선을 담담히 마주 볼 용기가 없었다.

“그런 걸 즐기라고 보내준 게 아닌데.”

무섭게 내려앉은 말소리가 싸늘하게 이어졌다. 블루와 레지도 백이강의 얼굴을 흘긋 보더니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즐기긴 누가 즐겼다고 그래? ……라며 반문하고 싶지만 참자. 백이강이 저 표정을 하고 있을 때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니까.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그에게서부터 매섭게 몰아치는 칼바람이 차디찬 나머지, 살이 에일 것만 같은 냉기가 주변에 잔뜩 서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하!”

이토록 날 선 분위기를 뚫고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다름 아닌 레지였다. 그는 여전히 내 옆에 철썩 들러붙어 있었다.

……그냥 여기서 죽일까? 마법사는 둘이니까 한 명 정도 죽여 버려도 앞으로 스토리 진행하는 데는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은데.

“레지, 네놈의 입이 뚫려 있다는 걸 깜빡했군.”

다행히 나쁜 마음을 품은 나보다 백이강의 입이 더 빨랐다.

특유의 나긋한 목소리,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사나운 말뜻에 그제야 레지의 입이 고요를 머금었다.

저 레지를 한 방에 조용히 시키다니…… 흑막은 기세부터 다르네.

주변이 조용해지자 백이강은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진짜 억울하네?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쫄아야 해?!

“이강…… 아니, 전하. 여긴 무슨 일이야? 회의 간다고 했잖아.”

내 말을 들은 건지 만 건지, 코앞까지 다가온 백이강은 내 턱 끝을 잡더니 이리저리 살피듯 양옆으로 돌려보기 시작했다.

“끝났다. 몸은 괜찮나?”

“응? 몸?”

“저것들이 또 어딜 더듬었지?”

어느샌가 구석으로 밀려난 블루와 레지를 향해 휘어진 백이강의 눈은 지극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언하, 변태라니요…….”

구석 저편에서 들려오는 울먹임을 가볍게 무시한 백이강은 내 눈을 보며 진실을 말할 것을 요구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이거 하난 확실히 알겠다. 여기서 내가 말실수했다간 저 두 마법사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말해, 저것들의 손발을 잘라 버릴 테니.”

“아니, 딱히 그러지는…….”

아무리 그래도 손발을 자르는 건 너무하지 않냐고요…….

“그럼 됐다. 갈 데가 있으니 따라와.”

내 싱거운 대답을 들은 백이강은 별다른 반응 없이 금세 등을 돌렸다. 뭔가 다른 용건이 있는 듯 보였다.

* * *

“거기 둘, 너희도 오도록.”

“예, 전하.”

“네엡.”

이강의 따라오라는 말에 곧잘 대답한 블루와 레지는 미적대며 벽에 붙어 있던 몸을 떼어냈다.

“흐응…… 생각보다 더 친해 보이네.”

옥신각신하는 것이 은근히 아슬아슬하나, 끝내는 다정해 보이는 이상한 관계였다.

의미심장한 레지의 말에 살며시 고개를 끄덕인 블루는 도운을 데리고 사라지는 고고한 황태자의 뒷모습을 찬찬히 눈에 담았다.

이제까지 봐왔던 황태자는 남을 저렇게까지 오래도록 눈에 담아두는 성격이 전혀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이 퍽 진귀한 광경임은 틀림없었다.

“그러게. 등장부터 요란했던 신원불명의 마법사가 경계심 많은 황태자의 남다른 총애를 받는다라…….”

블루의 쇄골까지 뻗친 새파란 머리카락이 아래로 느릿하게 흘러내렸다. 블루는 능숙한 손길로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며 걸음을 옮겼다.

“이거, 아무래도 ‘그’가 꽤 안달 나 있겠는걸.”

“생각보다 더 재밌어지는데? 좀 더 지켜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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