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그러고 보니 딱 이즈음이던가…….”
아마 이맘때였을 거다. 현 데르지오 황권에 반대하는 반황제파 세력이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게.
내 기억대로라면, 건국제가 시작되기 직전에 한 차례 큰 사건이 있었다.
다만 원작에서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간 일이었다. 그를 보여주듯 이에 관한 서술도 한두 줄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후, 반황제파 세력의 집결 신호탄으로 쓰이는 중요한 시발점이 된다.
대략 사흘 뒤, 무려 수도의 광장 한복판에 세워진 황제 동상의 머리통이 날아간다. 현 황실을 상대로 앙심을 품은 모반 세력이 벌이는 꽤 살벌한 일이었다.
“물론 원작에서는 황실이 재빨리 사고를 수습해서 큰 소란은 없었지.”
그렇다고 원작대로 가만히 흘러가게 두는 건 퍽 손해였다.
그도 그럴 게…….
“백이강이 이걸 막아내면 이래저래 좋지 않나?”
모반 세력은 초장부터 계획을 망쳤으니 기가 꺾일 테고, 황제는 제 머리통을 무사히 지켜낸 백이강을 더욱 예뻐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 자연히 백이강의 입지도 올라갈 테고, 폭군의 근거로 언급되는 살인귀 이미지도 미약하게나마 사그라들 거다.
“완벽하네.”
이보다 적절한 갱생의 기회가 있을까! 이제 이걸 백이강에게 알리고 사건을 막기만 하면 된다.
생각을 마친 나는 그길로 백이강의 집무실로 향했다.
“이강아!”
다소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업무에 집중하는 백이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거, 사람이 왔으면 아는 체라도 좀 해달라고요.
“하아. 저런 목석이 뭐가 예쁘다고 내가…….”
은근슬쩍 한숨을 쉰 나는 표정을 다잡고 빠르게 그의 가까이 다가섰다.
……근데 서류가 왜 이렇게 많이 쌓여 있냐.
말을 꺼내야 하는데,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어쩐지 다른 날보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철이 다섯 배는 더 많아 보였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필립을 돌아보자 그가 나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 백이강에게 말을 거는 것은 좋지 않다는 의미였다.
“할 말이 있는데…… 나중에 다시 올게.”
빽빽한 서류 위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백이강의 왼팔까지 확인하고 나니 아무래도 조금 이따가 오는 게 나을 듯했다.
얼마나 바쁘면 내가 온 줄도 모르는 것 같은데, 그냥 나중에 오자.
“청도운.”
조심히 돌아서는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온 것은 알고 있던 모양이다.
“해, 지금. 안 바빠.”
나른하고 간결한 말소리가 부드럽게 귓가로 내려앉았다. 게다가 신기하게도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는 눈이었다.
그러고 보니 요새는 내가 재워줘서 밤에 잠을 잘 잤던가?
사실 임시적으로 마법을 이용한 만큼 엄밀히 따지자면 통상적으로 말하는 ‘잠을 잤다’라고 하긴 어렵지만, 확실히 백이강의 컨디션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대충 봐도 엄청 바빠 보이는데……?”
내 말을 가볍게 무시한 백이강은 어서 말하라는 듯 나와 시선을 맞췄다.
결국 다시 그에게로 몸을 돌린 나는 서론 없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머지않아 광장에 세워진 황제 동상이 폭파될 거야.”
“……폭파?”
그래, 폭파. 고개를 끄덕이자 백이강은 필립에게 누군가를 불러오도록 지시했다. 그러고는 중앙에 마련된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혹시라도 헛소리 말라며 별것 아닌 일로 여길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백이강은 내 말을 순순히 믿는 눈치였다.
“자세히 말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