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가.”
한탄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멸 마법을 써도 그것들이 사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딴 거에 방어 마법은 왜 걸어둔 건데?!”
블루와 레지가 고강도의 마력으로 그것들 전부에 방어 마법을 걸어놨는데, 어찌나 여러 겹을 덧댔는지 덕분에 내 마력이 도통 먹히질 않았다.
물론 어느 정도의 시간을 들인다면 방어 마법을 뚫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마는, 지금 당장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곧 있으면 백이강이 온다고!
“하다 하다 침대 밑도 막혀 있네……! 이걸 다 어디다가 두냐!”
한참을 절망스럽게 방을 배회하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침대 위의 폭신하고 두툼한 솜이불이었다.
흠, 어차피 백이강은 본인 방에서 잘 테니까 내 침대에는 별 볼 일 없겠지?
“……좋아, 바로 여기야.”
은닉 장소는 이불로 낙찰! 일단은 임시방편으로 여기다가 넣어두고, 백이강이 가고 나면 그때 시종을 불러서 싹 갖다 버리라고 하면 되겠지.
때마침 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그것’까지 이불 속으로 팽개치듯 던져 넣은 나는 재빨리 이불을 평평히 두드린 후 문을 열었다.
“그래그래, 그 넓은 네 집무실을 두고 왜 굳이 내 방에서 보자고 한 건지 이유나 듣-”
“……청도-”
풀썩.
순간 내게로 묵직한 체온이 기울더니 두서없이 안겨들었다.
“……뭐, 뭐야?”
뭔데, 이 상황은? 지금 쓰러진 거야? ……백이강이?
“잠깐, 잠깐만…… 이강아, 정신 좀 차려봐.”
내 품으로 쓰러지듯 안긴 백이강의 어깨를 살며시 잡아봤지만, 그에게선 짤막한 숨소리만이 불규칙적으로 들려올 뿐이었다.
어떡하지? 섣불리 황의를 부를 순 없어. 그랬다간 백이강이 흑마법 체질이란 걸 들킬 수도 있으니까.
애당초 황의가 필요했다면 내게 오지도 않았겠지.
그렇다고 블루와 레지, 그 괴짜들을 찾아가기에는 아직 못미덥고……. 미치겠네, 뭐 때문에 쓰러진 건지 알아야 나도 조치를 취할 텐데!
일단은 침대로 옮기자.
“……아.”
힘없이 쓰러진 백이강을 들어 안은 나는 그를 침대로 옮기려다가 문득, 조금 전 내가 한 짓을 깨닫고 그대로 멈춰 섰다.
맞다, 나 이불 속에 그거 잔뜩 넣어놨지……?
그, 그래도 일단은 급하잖아! 어쨌거나 환자가 먼저라고.
어차피 백이강은 정신도 못 차릴 정도로 아픈 상태니까 이불 속에 뭐가 있든 눈치 못 챌 거야.
백이강이 누울 수 있을 만큼만 슬쩍 그것들을 옆으로 걷어낸 나는 느린 속도로 그를 침대에 눕혔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곤히 눈을 감고 있는 백이강의 목 아래까지 단단히 이불을 덮어준 뒤, 그를 착잡하게 바라보았다. 이건 자는 것도 아니고, 진짜로 ‘쓰러진’ 거다.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아픈 몸으로 내 방까지 올 줄이야. 안 와도 곧 있으면 어련히 내가 알아서 찾아갔을 텐데.
하여간 고집만 세가지고.
“그런데 숨 쉬고 있는 거 맞지?”
안 그래도 차가웠던 백이강의 몸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더욱 얼음장만 같은 낮은 온도가 되어 한기를 연신 뿜어냈다.
내 손길이 닿는 팔과 다리가 모조리 차디차서, 꽁꽁 얼어버린 빙하에 닿는 듯한 기분이었다.
백이강이 쓰러진 것도 쓰러진 것이지만, 무엇보다 갑작스럽다. 내가 마법부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한 것 같더니, 뭐 때문이지?
우선 흑마법과 관련된 건지 알아보려면 부득이하게 마력의 흐름을 살펴봐야만 하는데…….
“백이강, 나 지금 순수하게 의사 모드니까 나중에 오해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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