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야……겠지?”
황태자궁이 가까워질수록 방금 들은 것을 백이강에게 말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또한 함께 깊어졌다.
생각지도 못하게 불쑥 나타난 문제인 건 맞지만 이게 오히려 기회일 수도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름길이랄까.
아르테 제국의 황녀와 혼인한다면 백이강은 흑마법사임이 들통나는 이변이 없다는 전제하에,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황제가 될 거다.
피엘이 암만 수를 써도 국혼에 대항할 수는 없을 거다. 타국과의 정치적 결합이란 그런 의미니까.
하지만 혼인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황제가 된다’라는 말은 할 수 없겠지. 그저 최선을 다할 뿐.
근데 그건 그거고…… 별개로 느낌이 영 이상하긴 하다.
백이강이 결혼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사실 이건 원작에서도 나온 적 없는 내용이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상상도 안 되고, 생각하는 것부터 이상했다.
슬슬 황태자궁이 보이기 시작함과 동시에 익숙한 인영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 나를 보며 다가오는 사람치고는 표정이 영 살갑지 못했다.
“으음, 아셀이네.”
몰래 튀었다가 아무 일도 없다는 양 느긋하게 돌아오고 있으니 곱게 봐주긴 힘들겠지…….
아무래도 그림자가 나를 진즉 찾아냈던 모양이다. 그러니 아셀이 미리 나와서 대기하고 있지.
화났겠지? 오늘은 뭐라고 달래줘야 하나.
“청도운 님.”
어느새 가깝게 다가온 아셀이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아, 미안미안. 잠깐 일이 있어서…….”
“지금 당장 가보셔야겠습니다. 급한 일이니 서둘러 주십시오.”
늘 그렇듯 번지르르한 말로 얼렁뚱땅 넘어갈 준비를 하는데, 아셀이 조금 다급한 얼굴로 나를 저지했다.
그러고는 뭔가를 경계하듯이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나를 제 앞으로 조심히 이끌었다.
뭐…… 뭐야, 갑자기? 그 잠깐 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아셀이 너무 조급해 보였다.
영문 모를 일에 묵묵히 그를 따라 걷기도 잠시, 도착한 곳은 백이강의 집무실이었다.
“잠시만 여기 계셔 주십시오.”
아셀의 말에 그저 끄덕끄덕, 고개를 주억이자 그는 지체 없이 바로 집무실을 나갔다.
“응? 아무도 없네?”
당연히 백이강이 있는 곳에 날 데려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집무실은 텅 비어서 적막만 흐르고 있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누군가 집무실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백이강과 필립, 아셀이 질린 표정으로 서 있었다.
“백이강?”
“때맞춰 잘 왔군.”
나를 보더니 화내기는커녕, 오히려 잘됐다며 지친 소리를 뱉은 백이강은 천천히 중앙으로 걸어와 소파에 털썩 앉았다.
“……어라, 그런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지 않아?”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는데, 문득 바깥에서 이상한 소리가 은근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가만 들어보니 여자 비명 소리……? 같기도 하고, 남자의 고함 소리 같기도 하고. 이게 무슨 소란이람?
“전하, 당분간 이곳에 계시는 게 좋겠습니다. 외부 일정은 전부 끝났으니 괜찮을 겁니다.”
“그러지.”
필립의 말에 백이강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상황이야?”
“청도운, 혹시 소음을 차단하는 마법도 있나?”
“어, 있긴 한데.”
“그것 좀 써. 저 소리 안 들리게.”
끼야아악!
백이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떤 여자의 비명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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