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오, 오늘도 문이 열려 있네.”
격식을 차린 옷으로 갈아입은 나는 안나의 호위를 받으며 이안의 방 앞에 도착했다.
오가는 사람을 붙잡지 않겠다는 양 어김없이 문이 열려 있는 모습이 이젠 꽤 친숙하게 느껴졌다.
“도운 님, 저는 여기서 대기하겠습니다.”
안나는 방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는 편히 다녀오라며 가볍게 웃어 보였다.
이안의 방 앞에는 시종 몇 명만이 서성이고 있을 뿐, 별다른 호위는 없었다. 아마 저번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들이 근처에 있는 듯했다.
내가 방에 들어서려 하자 시종들이 기다렸다는 듯 냉큼 길을 열어주었다.
음? 왠지 저번과 달리 다들 군기가 좀 들어 있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마법사님! 오셨군요. 좋은 아침입니다.”
그때, 이안의 반가워하는 목소리와 함께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방 한쪽을 차지한 커다란 창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실내는 여전히 상쾌한 개방감이 느껴졌다.
무심코 앞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나도 모르게 걸음이 멈췄다.
“…이게 다?”
당연한 소리지만, 만나면 인사부터 하려고 했다. 그래서 입을 열었으나, 애석하게도 입보다 내 눈이 굴러가는 속도가 더 빨랐다.
방에 들어선 내 눈앞에는 엄청난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건국제의 뷔페 음식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건지 착각할 만큼 압도적인 상차림이었다.
“저하, 저 말고 다른 손님이 또 있나요? 이게 대체….”
인사고 나발이고, 그 진기한 광경에 당황한 내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근데, 잠깐만. 저거 뭐야? …떡국? 떡국 아니야?! 아니, 판타지에 떡국이 웬 말이야!
이런 데서 작가가 한국인인 거 티 내지 말라고!!
“매번 술만 대접해 드린 것 같아서요. 아침이니만큼 간단히 준비해 봤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감사는 제가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자연스럽게 끼어 있는 버그 같은 떡국에 경악하는 나를 음식에 감동하는 것으로 착각했는지, 이안의 표정은 온화하기 짝이 없었다.
테이블 위가 일말의 빈틈도 없이 꽉 찼다.
그래놓고 ‘간단히’라는 말을 하다니, 아무래도 이안이 가진 간단함의 기준은 상식과는 퍽 거리가 있는 듯했다.
“편히 앉으세요.”
“아, 감사….”
떨떠름한 얼굴로 이안의 맞은편에 앉고 나니 어마어마한 음식들에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음식으로 말을 시작하면 당황한 감탄사만 계속 나올 것 같으니 다른 주제로 말을 돌리는 게 좋겠다.
“그런데 저하, 문은 왜 맨날 열어두시는 거예요?”
내 물음에 이안의 낯빛이 일순 환해졌다. 그러더니 그는 뒤쪽에 있는 창문을 흘긋 바라보며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제가 있던 동부에서는 불어오는 바람마다 달콤한 향기가 났습니다. 궁의 앞뒤가 전부 꽃밭이었거든요. 아래로는 대륙의 젖줄인 페로스강이 흘렀죠. 흘러드는 바람과 꽃향기가 좋아서 모든 문을 열어두고 살았습니다.”
들떠 보이는 표정과 달리 다소 차분한 이안의 말소리가 선율처럼 귓가로 날아들었다.
단어 하나하나가 고막에 착착 박히는 것이, 더없이 익숙한 문장들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이건 원작에서 동부를 떠나던 이안이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며 곱씹던 독백이었다.
또한 그는 황성으로 복귀한 뒤에도 종종 하늘을 바라보며 저런 식으로 동부의 풍경을 떠올리곤 했다.
워낙 어릴 때부터 동부에서 자랐으니 그곳을 고향이라 여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만, 겉으로는 꽤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고작해야 내 지나가는 한마디에 저렇게나 순식간에 그리움에 젖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