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 2황자와 청도운 님이 한곳에 있는 건 위험합니다.”
안나가 나가자 필립이 이강 앞으로 다가왔다. 걱정스러운 어투로 말문을 연 필립은 가라앉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킬라 때문이라면 괜찮다. 아셀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아킬라는 아직 쓸 만한 독초가 못 돼.”
사실 아킬라는 피엘의 손을 거치지 않아도 그 자체로 굉장한 독성을 가진 풀이었다. 하지만 도운은 평범한 인간에 속하지 않으니 해독약만 잘 먹인다면 큰 탈이 없을 터였다.
하지만 필립은 비단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듯이 애매한 신음을 흘렸다.
“그것도 그거지만… 2황자가 청도운 님의 힘에 대해 눈치채는 것이 걱정입니다. 미래를 보시기도 하고, 아무래도 일반 마법사에 비해 그 수준이 월등하시니까요.”
애초에 이강이 도운의 존재를 최대한 숨기려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도운의 능력이 워낙 눈에 띄다 보니 밖에 내놓았다가는 무슨 사달을 벌일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지금이야, 언제까지고 가둬놓을 수만은 없으니 감시 아래 조금씩 풀어두고는 있지만… 하도 순간 이동을 밥 먹듯이 쓰다 보니 시원찮은 것도 사실이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군.”
“송구합니다. 하지만 까마귀 형태의 마수가 지속적으로 도운 님의 근처를 맴돌고 있는 만큼,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필립은 암만 송구해도 제 할 말은 다 하는 놈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이강의 난폭한 성격을 전부 받아내며 오랜 시간 곁에 붙어 있었던 것도 그런 뚝심 덕분이었다.
그를 모르지 않는 이강은 쯧, 짧게 혀를 차고는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셀.”
“예, 전하.”
“마법부로 가서 최근 황궁 주변에서 감지된 이상 반응 기록서를 가져와라.”
이강은 명령과 함께 무언가를 아셀에게 휙 던졌다. 황태자의 명임을 인증하는 자그마한 명패(名牌)였다.
이상 반응 기록서. 거기에는 마수로 추정되는 불특정 생물체의 출현 빈도와 목격 및 감지 위치가 기록되어 있었다. 황실의 안보와 관련된 내용이니만큼 당연히 기밀 자료였다.
“존명.”
극비 자료를 열람하고 자료의 위치를 이동하는 데는 그에 걸맞은 권력이 필요했다. 패를 가볍게 받아 든 아셀은 하던 서류 정리를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까마귀 형태의 마수라….”
이강이 나직한 혼잣말을 입에 담았다.
그 사특한 것이 피엘이 부리는 수족임은 분명하다. 다만 증거가 없다. 또한 본 적도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을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니 생포가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소속 불문, 마법사라면 누구나 종종 목격하는 듯하지만 이상하게도 이강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마법사가 아닌 그림자들마저도 까만 새 같은 것을 봤다고 하는 판국에 말이다.
그렇다는 건 그 마수가 특정 인물만은 피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그 특정인은 분명 이강일 테다.
“정말 그런지는 기록을 보면 알겠지.”
명을 받든 아셀은 금세 기록서를 들고 돌아왔다.
기밀문서이니만큼 붉은 인장이 찍혀 있는 서류 봉투를 무심히 개봉한 이강은 기록된 내용을 읽으며 서서히 미간을 좁혔다.
역시나 새가 나타나는 곳이 도운의 동선과 상당수 겹쳤다. 그리고 도운이 황태자궁으로 돌아오는 순간 말끔하게 사라진다.
황태자궁 쪽으로 접근하는 것은 최대한 피하고 있다는 것이 명확히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결계가 있다는 걸 안 건가?
물론 마수니까 모를 수는 없겠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이쪽으로는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는다는 건 특이했다.
그럼 확실히 이쪽에 마수가 기피하는 게 있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그건 아마….
“…나군.”
마수가 황태자궁을 피하는 이유가 결계라고 생각하기에는 이미 황궁 자체에 온갖 결계가 쳐져 있었다. 마법부에도 당연히 결계가 있으며, 그뿐 아니라 황궁 이곳저곳에 중요한 자료나 재물이 있는 곳이라면 결계가 이중, 삼중으로 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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