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자는 이런 엔딩이 싫습니다! 7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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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백이강의 집무실에서 서류 노예로 일하는 날이다. 처음에야, 나 같은 귀한 인재를 어떻게 이런 데다 썩힐 수 있냐며 불만을 뱉었지만….

그동안 하도 많이 당하며 익숙해진 탓일까, 이젠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빠삭하게 아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장 내일 아르테 제국의 황녀가 방문하기로 한 탓에 황궁이 전체적으로 시끄러웠지만 황태자궁만은 예외였다.

애당초 궁주인 황태자부터 그 일에 관심이 없다 보니 조용할 수밖에…….

“필립, 이 서류들에 인장이 누락된 것 같은데요.”

“아, 그건… 전하께서…….”

달리 모난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일상이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 건 오전 11시 59분, 이제 막 오후로 넘어가는 더없이 나른한 순간이었다.

마땅히 인장이 찍혀 있어야 할 서류 몇몇이 깨끗한 것을 본 내가 필립에게 그것을 가져가자, 그의 까만 시선이 조심스레 백이강을 향했다.

“백이강이 왜요?”

필립의 기묘한 눈을 따라 고개를 돌려 보니, 그곳에는 처음과 같은 자세를 유지한 채 숨을 쉬지 않아 얼굴이 창백해진 백이강이 있었….

…응?

“잠깐, 쟤 왜 저래요?! 백이강! 숨 쉬어!!”

“하…. 아까부터 저러십니다….”

당황한 내가 급히 소리치자 필립이 손으로 얼굴을 과격하게 쓸어내리며 한탄했다.

백이강은 소란을 피우는 나를 건조하게 훑더니, 이내 별일 아니라는 덤덤한 낯으로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 지독한 모습을 본 나도 덩달아 탄식을 뱉었다.

“아까부터? 그게 언젠데요?”

“출근하시고 한 시간 후부터 넋을 놓고 계십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의 얼굴이라고 하는 게 맞겠습니다.”

착잡해 보이는 필립의 말에 나는 다시금 백이강을 돌아보았다.

가만 보니까 정말 컨디션이 많이 안 좋은 것 같긴 한데… 표정도 평소보다 좀 더 어둑어둑한 것이…….

“그런데 저 정도면 그냥 쉬는 게 낫지 않아요? 이상하네. 간밤에 잠도 잘 자서 피곤한 건 아닐 텐데.”

“안 그래도 휴식을 권해드렸습니다만, 전하께서 워낙 강경하셔서 말입니다. 우선 급한 대로 전하의 전담 황의를 부른 참입니다.”

슬슬 올 때가 된 것 같다며 필립의 눈이 문 쪽을 서성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잠잠한 문은 열릴 기미가 없어 보였다.

그를 지켜보던 필립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전하, 오늘은 좀 일찍 들어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안색이 너무 안 좋으십니다.”

다시 한번 백이강에게 다가간 필립은 상태가 나쁜 백이강보다 한층 더 해쓱한 낯으로 휴식을 권했다.

저러다가 백이강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전부 보좌관인 필립의 책임이 될 테니 필사적인 듯했다.

정확히는 백이강이 완전히 쓰러지고 난 후에 쏟아질 업무가 두려운 것 같지만… 아무튼.

“됐으니 시킨 일이나 똑바로 해라.”

백이강은 쓸데없는 말을 한다는 듯, 날카로운 눈으로 필립을 흘겨보고는 다시 서류 위의 손을 움직였다.

똑똑.

나라도 말려야 하나 싶어 필립의 곁으로 가려던 순간,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찰나, 화색이 돈 필립이 빠른 속도로 문에 다가가 활짝 열어젖혔다. 그러자 중후한 인상의 노인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방 안에 들어섰다.

“누구…?”

“황궁에서 가장 연차가 많은 황의십니다. 아무리 전하시라도 저분께는 함부로 대하지 못하시지요. 무려 선선대까지 저분의 손에 보살핌을 받으셨거든요.”

기다렸다는 듯 이어지는 필립의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원작에서 ‘경험이 많은 황의’라며 간단히 소개되던 자가 저 사람인 모양이었다.

재지 않은 걸음으로 느긋하게 백이강 앞까지 다가선 그는 달리 묻는 것도, 설명하는 것도 없이 곧장 백이강의 팔을 붙잡았다.

অধিকাৰীয়ে এনেধৰণৰ অন্ত ঘৃণা কৰে!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