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에 도착한 나는 잴 것 없이 바로 백이강을 눕혔… 아니, 눕히려고 했다.
“청도운… 지금 뭐 하는 거지?”
“그, 원래 이쯤 되면 알아서 넘어가야 하거든…?”
백이강을 침대로 밀어서 멋지게 넘어뜨리고, 더없이 인자한 얼굴로 그 옆에 여유롭게 앉아서 내 엄청난 힘을 보여주기!
…까지가 내 야심 찬 계획이었는데, 초장부터 처참히 망했다. 잠깐 잊고 있었다. 백이강이 나보다 힘이 더 세다는걸.
저를 낑낑대며 밀고 있는 나를 따분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백이강은 짧은 숨을 내쉬더니 순순히 침대 끝에 걸터앉았… 아니지, 앉아주었다. 망할 백이강.
“네 불면증 고쳐줄게.”
“이안의 도움이 필요하다더니, 목적을 다 이룬 모양이군.”
“뭐, 그렇지. 이제 눈 감아.”
그동안 이안과 있었던 일들을 말한다면 끝도 없을 테지만 결국은 목적을 이뤘다는 게 중요했다.
대충 고개를 주억인 나는 눈을 감은 백이강의 이마 위로 익숙하게 손을 올렸다.
곧 새하얀 빛이 반짝반짝 주변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다량의 성력이 이동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도 이번에는 밀려들어 오는 성력이 느껴지는지 살며시 눈썹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얼마 안 남았어.’
성력이 꽤 남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극소량만 남기고 싹 흡수되어버렸다. 그만큼 병이 깊었다는 뜻일 테다.
만약 이안이 중간에 마음을 바꿔 성력을 꾹꾹 담아주지 않았다면 앞으로 그와 못해도 다섯 번은 더 만나야 했을 거다.
남은 성력으로 이것저것 실험해 보면서 숙련도 좀 올릴까 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됐다. 아쉽지만 영영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니까 어쩔 수 없지.
이윽고 천천히 손을 떼자 백이강도 눈을 떴다. 생기 없는 보랏빛 동공이 의아함을 품고 있었다.
이리저리 제 몸을 살피던 그는 이상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딱히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그거야, 아직 잠들지 않았으니까. 이리 누워봐. 곧 알게 될걸.”
흐트러진 베개를 곧게 펴준 나는 어서 누우라며 침대 위를 팡팡 쳤다.
“이제 밤마다 내가 재워주지 않아도 혼자 잠들 수 있을 거야. 다른 사람처럼 낮잠도 잘 수 있고, 몸이 피곤하면 네 의사와 상관없이 눈이 감길 수도 있지. 그럴 때면 아까 황의가 준 약이 필요해질 거야.”
허브 식초인지 뭔지, 말만 들어도 목이 찌릿하면서 눈이 번쩍 뜨이는데 마시면 오죽할까.
그 엄청난 맛을 모르는 지금이 좋다는 걸 백이강도 이제 알게 될 거다.
“그게 정상인가?”
미묘한 표정을 한 백이강이 의미심장한 어투로 물음을 던졌다. 지금까지는 잠이 많은 걸로 불편을 겪은 적이 없으니 당장은 내 말을 이해하기 어려운 듯했다.
“그래, 이게 정상이야. 그리고 아침에는 이미 뜬 해를 보면서 일어나는 거지. 남들처럼, 모두와 똑같이.”
드디어 백이강의 소원 두 개 중 하나가 이루어졌다.
불치병을 고쳐달라던 그의 말이 처음에는 어찌나 황당했던지, 그때의 기막힘이 여전히 선명하게 뇌리에 박혀 있었다.
“‘남들과 똑같이’라….”
찬찬히 내 말을 곱씹은 백이강은 오묘한 눈빛으로 긴 숨을 골랐다.
자, 이제 어쩌려나. 고맙다고 할까? 사실 지금이 딱 고맙다고 말할 타이밍이긴 한데.
그때 굳게 다물려 있던 백이강의 입술이 서서히 틈을 보였다.
역시… 아무리 백이강이라도 오랜 시간 고통받았던 불치병을 고쳐준 건 고마울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내심 황위에 오르는 것까지는 보고 싶었는데, 못 보고 돌아가게 된 건 확실히 아쉽네.
하지만 이젠 내가 없더라도 백이강에겐 아르테의 황녀가 있다. 그녀와 혼인한다면 황위는 굳이 힘을 쓰지 않아도 따놓은 당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