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잠을 설친 탓에 아침 해가 채 뜨기도 전에 절로 눈이 떠졌다. 결국 잠들긴 했지만, 하도 뒤척거려서 전혀 개운하지 않았다.
어제 백이강의 감사 확률을 확인한 것이 화근이었다. 정말이지, 아직도 그 좀생이 같은 수치를 믿을 수가 없다….
덕분에 백이강의 불면증이 나에게 넘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거의 뜬눈으로 새벽을 보냈다.
“하아…….”
꾸물꾸물 몸을 일으켜 침대 헤드에 비스듬히 등을 기댄 나는 착잡한 숨을 내쉬었다.
바로 옆에서는 백이강이 세상 편안한 낯으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
망할 백이강. 행복하냐…? 물론 행복하겠지. 그토록 고통받던 병에서 벗어났으니까…….
이대로면 앞으로도 꼼짝없이 백이강의 노예 꼴일 거다. 그렇지만 내가 무슨 백이강 전담 소원 요정도 아니고, 영영 그럴 수는 없단 말이지.
게다가 원작도 다 비틀려 가는 와중에 일이 계속 내 뜻대로 흘러가리란 보장도 없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운이 웬만큼 따라주고 있는 것 같지만, 영원하진 않겠지.
언젠가 백이강이 황제가 되면 나는 당연히 집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젯밤, 처음으로 이 견고한 믿음에 금이 갔다.
답답한 안개가 낀 것처럼 머릿속이 혼란했다. 그저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백이강이 조금씩 뒤척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곧게 닫혀 있던 그의 눈이 천천히 틈을 보였다.
다소 퀭한 낯을 한 나와 달리 백이강은 얼굴이 반질반질한 게, 피로에 절어 있던 평소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느긋하게 몸을 일으킨 백이강은 나를 흘긋 바라보더니 의아하다는 눈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못 잤나?”
두서없이 던져진 말이 딱 백이강다웠다. 보통은 뒤에 ‘안색이 안 좋은데’라든가, 앞에 ‘일찍 일어났네’ 따위의 적당한 겉치레가 있지 않냐고.
“잘 잤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뱉은 나는 백이강에게 향했던 눈을 다른 곳으로 홱 돌렸다. 나와 상반되는 그 번지르르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빈말로라도 아침 인사가 나오질 않았다.
쓸데없이 예쁘장한 저 얼굴을 보고 있으면 화가 풀릴 것 같으니까… 최대한 눈 마주치지 말아야지. 흥.
“그렇군.”
그러자 백이강은 별말 없이 내 대답에 수긍했다.
아니, 그렇긴 뭐가 그렇다는 거야…! 네 눈에는 내가 진짜 잘 잔 얼굴로 보이냐? 시력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일전의 축제에서 나더러 결혼하자며 청혼하던 때만 해도 꽤나 다정하다 했건만, 그거 다 신기루였어? 내가 본 건 환상이었냐고!
저 무뚝뚝하다 못해 싸늘하기 그지없는 흑막 놈이 다정하다니, 말 같지도 않은 기막힌 소리였다.
“백이강.”
넌지시 그를 부르자 서서히 밝아오는 창밖을 바라보던 보랏빛 동공이 느지막이 나를 향했다.
“지금부터 내 말 따라 해.”
“내가 왜.”
“하라면 해, 좀.”
짜증스레 입을 비쭉인 내가 으르렁대자 그제야 백이강의 불친절한 눈이 순하게 풀어졌다.
“고.”
“고.”
순순히 내 말을 따라 하는 백이강의 모습에 흡족해진 나는 재빨리 다음 단어를 뱉었다.
“마.”
“마.”
자, 이제 마지막이다.
“워.”
“워.”
싫은 티를 팍팍 내면서도 용케 여기까지 따라 한 백이강이 기특할 따름이었다.
더없이 인자한 미소를 지은 나는 날 선 눈매를 사르르 녹이며 다정하게 웃어 보였다.
“자, 이강아. 방금 한 말들 한 번에 말해봐.”
그러자 백이강의 입이 서서히 열렸다. 마치 무언가를 말할 것만 같이 입이 느릿하게 틈을 보이며 뜸을 들였다.
그리고 마침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