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보면 어쩌려고…!”
“보라고 한 건데.”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벼운 답이 곧장 돌아왔다.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자 신기하게도 다들 이곳을 보고 있지 않았다.
혹여나 누군가 보고 있었다고 한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를 듯했다.
그도 그럴 게 하필이면 각도가 기묘한지라 다른 이들은 백이강과 나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보기 어려웠다.
결국 그의 의도대로 단 한 명의 관객만이 우리 사이의 일을 목격했을 뿐이었다.
‘저, 정신 차리자, 정신….’
고작해야 이마 키스였다. 입에 한 것도 아닌데 호들갑을 떨 것은 없었다.
근데 관객이 있다면 말이 달라지지! 심지어 그 관객이 백이강의 약혼녀라면 더더욱!!
비록 당한 입장이긴 하나, 차마 델시아의 얼굴을 백이강처럼 떳떳하게 마주할 용기는 없었다.
최대한 그녀 쪽으로 눈을 두지 않은 나는 깨작깨작 음식을 먹으며 반쯤 날아간 정신을 겨우 붙들어놓았다.
다행히 델시아의 시선이 계속해서 느껴지지는 않았다.
더불어 종종 내게 흥미를 느끼고 말을 걸어오던 사람들도 백이강의 형형한 눈빛을 보곤 빠르게 나를 포기했다.
“내 마법사에게 관심 꺼라.”
“옙….”
단지 나를 보기만 했을 뿐인 사람에게도 예민하게 굴어대니, 사람들은 더 이상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무슨 밥그릇 지키는 개도 아니고, 툭하면 으르렁대니 다들 무서워할 수밖에….
이후 만찬이고 뭐고,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통 기억나질 않았다. 흐릿한 안개처럼 흐르는 시간을 그저 묵묵히 견딜 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만찬이 끝나자 펜디움의 귀족들과 아르테의 대신들, 황제는 응접실에서 환담을 이어가자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도운, 우리도 이만 가지.”
“하일, 이리 오거라. 이 좋은 날에 벌써 가려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어수선한 틈을 타 나를 데리고 자리를 피하려던 백이강은 황제의 지시로 황녀와 단둘이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어릴 적에 인연이 있었으니 서로 얼굴은 알 테고, 이제는 함께 미래를 그릴 사이니 이참에 친해지거라.”
“예, 폐하. 안 그래도 전하와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백이강은 늘 그렇듯 황제의 말을 무시하고 나가려 했지만, 델시아가 냉큼 그러겠다고 답하는 바람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청도운, 먼저 가.”
“음. 그러는 게 좋을 것 같네.”
졸지에 밤까지 황녀와 단둘이 있게 된 백이강은 나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황제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을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안나, 청도운을 데리고 가라.”
“예, 전하.”
굳은 얼굴로 싫은 티를 내비친 백이강은 짤막한 숨을 내쉬며 안나에게 나를 호위할 것을 명했다.
이윽고 연회장에서 나온 나는 곧장 내 방으로 걸음을 돌렸다.
“도운 님, 전하의 침실로 가지 않으시나요?”
내가 백이강의 침실을 지나치자 뒤를 따르던 안나가 의아한 얼굴로 물음을 던졌다.
“아, 그건…. 이제 약혼녀도 있는데 내가 굳이 거기서 잘 이유는 없는 것 같아서.”
“흠? 황녀의 존재와 도운 님이 전하의 침실에 들지 않으시는 건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요.”
이유를 말하기 무섭게 냉정한 안나의 대답이 돌아왔다. 더없이 맞는 말이라서 뼈가 아팠다.
“알아. 그냥 내가 불편해서 그래.”
허를 찔린 나는 결국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유가 나에게 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건 내 기분과 별개로 이상한 일이긴 했다.
그동안 구태여 말을 꺼내지 않았을 뿐, 내가 아무리 능력 있는 마법사라지만 황태자의 침실에서 자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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