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그랑!
도운이 들고 있던 찻잔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거친 소음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그 여파로 줄곧 잔잔하고 우아했던 파티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뒤집혔다.
쓰러지는 도운을 급히 잡아챈 이강은 빠르게 숨이 꺼져가는 그의 상태를 눈치채고 섬뜩하게 미간을 좁혔다.
“전하, 이게 무슨…!”
난데없이 벌어진 사달에 뒤편으로 물러서 있던 아셀과 필립, 안나가 놀란 눈으로 서둘러 이강의 곁에 다가섰다.
“아셀, 받아라.”
곧이어 아셀은 이강이 건네는 도운을 가볍게 넘겨받았다.
사실 도운은 보통 사람이 안아 들기에는 퍽 난감한 체형이었으나, 다행히 도운과 비슷한 몸태인 아셀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자유로운 야외 파티라지만, 행사 구역은 당연히 정해져 있었다.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은 공간에서 제각기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만은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강은 제게 몰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은스푼 두 개를 주웠다. 도운이 쓰러지면서 떨어뜨린 듯했다.
스푼을 손에 쥔 이강은 시선을 돌렸다. 이곳을 단숨에 볼 수 있는 최적의 자리, 대각선 거리에 피엘이 있었다.
이강은 피엘의 눈을 말없이 응시했다. 평소보다 딱딱한 얼굴의 피엘 또한 제게 날아드는 살벌한 눈빛을 묵묵히 마주했다.
이윽고 굳게 닫혀 있던 이강의 말문이 열렸다.
“세드릭.”
장내가 워낙 고요한 탓에, 이강의 목소리가 전혀 크지 않았음에도 사방에 울려 퍼졌다.
호명된 세드릭이 빠른 걸음으로 이강에게 향했다.
“예, 전하. 소신, 여기 있습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를 말하라.”
서늘한 말투로 명을 내린 이강이 스푼 두 개를 들어 세드릭에게 건네자, 그를 목격한 주변에서 자그마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헉….”
“스푼이 왜 저래?”
“은스푼이잖아! 서, 설마 독이…….”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이들의 시끄러운 웅성거림 속, 세드릭은 이강에게 건네받은 스푼을 유심히 살폈다.
잠시 후, 세드릭이 진중한 눈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반 은스푼에는 반응하지 않았으나 마법이 깃든 스푼에는 반응한 것을 보면 상당히 강력한 독입니다. 하물며 마법 스푼도 겨우 끝자락만 탔으니, 시중에 유통되는 일반적인 독이라고 보긴 어렵겠습니다.”
“평범한 이가 이 독을 접하면 어떻게 되지?”
“최소, 즉사입니다.”
이강의 물음에 족족 이어지는 세드릭의 대답은 하나같이 충격적이었다. 그의 말은 묵직하고도 빠르게 모두의 귓가로 내려앉았다.
조금 전만 해도 정확히 상황을 몰라 멀뚱히 서로를 바라만 보던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순식간에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화, 황녀님을 모셔라! 어서!”
“황녀 전하, 부디 이쪽으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아르테 제국의 대신들이었다. 무장한 호위병들 사이에 다급하게 델시아를 욱여넣은 그들은 뒷정리고 뭐고, 식겁한 눈으로 출구를 향해 바쁜 걸음을 옮겼다.
“잠깐, 이렇게 아르테 측만 빠져나가시면 어떡합니까? 아직 누가 독을 탔는지 확인하지도 못한 것을요!”
“맞습니다. 이중 범인이 있을지 누가 안답니까? 모두의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이곳을 나가선 안 됩니다!”
그를 본 펜디움의 귀족들이 미간을 좁히며 아르테 일행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한 펜디움 측에 가장 먼저 호통을 치듯 반박하고 나선 이는 아르테 호위병들의 선두에 있던 어느 늙은 대신이었다.
“지금 그게 무슨 무례한 말씀이십니까! 원래 저 차는 우리 황녀님께서 드시려던 것입니다! 저 마법사가 대신 마시지 않았다면 쓰러진 것은 황녀님이셨을 거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