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드레스를 입으러 온 건 맞다. 보기만 해선 가늠이 안 될 테니 시착은 해봐야지.
그리고 사이즈가 작거나 뭔가 뒤틀린 게 있다면 그걸 이유로 꼬집어서 내일 드레스를 못 입을 것 같다며 훼방을 놓으려 했다.
근데 레지가 사이즈에 손을 대는 바람에……. 내 사악한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 하여간 도움 안 되는 인간 같으니.
“안 입어도 될 것 같아요.”
어차피 마법으로 사이즈가 조정되는 거라면 굳이 입지 않아도 내 몸에 착 달라붙을 터였다. 그렇다면 굳이 입어서 확인할 이유는 없겠지.
“정말이십니까? 그래도 한 번은 입어보시는 게 좋을 텐데요.”
“내일 온종일 입고 있을 텐데 벌써 입을 필요는 없죠. 사이즈도 맞을 테고.”
드레스를 확인했으니 이만 돌아가려고 일어서는데, 라타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뭐지? 저 웃음, 왠지 불길한데.
“그럼 수정할 시간이 넉넉해졌으니… 리본을 좀 더 달아도 되겠군요.”
“입을게요.”
“예? 하지만 방금 안 입으신다고-”
“입을 거라고요. 지금 당장.”
저 미친 디자이너가 열정이 과하다는 걸 깜빡했다.
안 그래도 드레스에 뭐가 주렁주렁 달려 있어서 정신 사나워 죽겠는데, 저기다가 뭘 또 단다는 거야!
라타는 못내 아쉬운지, 어느새 챙겼는지 모를 은색 리본을 손에 쥔 채 드레스를 흘끔거렸다. 근데 저 영감이 진짜!
“리본 붙일 생각 하지 마요.”
“하나만….”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내 단호함에 라타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리본을 놓았다.
당분간 지켜봐야겠어. 나 몰래 리본을 붙이고도 남을 인간이니까.
“피팅 도와드리겠습니다.”
라타의 말에 아셀도 자연히 내 옆에 섰다.
커튼 안쪽 공간은 꽤 넓은 데다, 옷매무새를 한눈에 볼 수 있게끔 커다란 전신 거울이 놓여 있었다.
곧이어 남자 둘이 내게 들러붙어서는 꾸역꾸역 옷에 나를 밀어 넣는 진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둘이서 연신 숙덕대며 뭔가 묶고, 올리고, 하더니 겨우 끝이 났는지 라타가 마지막으로 내 머리 위에 무언가를 씌워주었다.
“이건 뭐죠?”
“베일입니다. 식장에서 신부의 신비로움을 더 높여주는 최고의 아이템이죠.”
그 신비로움 같은 거 필요 없는데….
“결혼식도 아닌데 뭘 이렇게까지 해요?”
“제대로 준비하라는 전하의 명이십니다.”
하여간 망할 백이강. 또 너냐.
“그럼 마법사님. 저희는 나가 있을 테니 준비해 주세요.”
별안간 라타가 아셀을 끌고 커튼 밖으로 나섰다. 입어봤으니 이제 벗어야 할 텐데 어딜 가는 거야?
“뭘요?”
“모습을 보이셔야죠! 뒤에 놓인 부케를 들고 서주세요.”
라타가 뻗은 손을 따라 뒤편을 돌아보자 하얀 테이블 위에 보라색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세상에. 그 와중에 부케까지 갖다 놨네? 준비성 하나는 진짜 철두철미하다, 철두철미해.
그리고 다시 앞을 보니, 라타와 아셀은 사라지고 없었다. 눈앞에는 그저 높고 커다란 커튼만이 있을 뿐이었다.
“…음.”
일단 들라니까 들었는데…. 모습을 보인다는 게 뭔 소리야? 이미 다 봤으면서.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이던 그때였다.
“자, 신부님의 모습을 공개합니다!”
라타의 유쾌한 목소리가 귓가를 거세게 울렸다.
당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퍼뜩 고개를 드는데, 그와 동시에 커튼이 촤륵! 하며 빠르게 걷혔다.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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