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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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로그 (코드 : 203004283)

오늘 점심을 먹고 나서 오렌지 주스를 쪽쪽 빨아들이며 모임이 자리잡고 있던 자리에 갔다. 거기에 그레이스와 유진을 포함한 애들이 앉아있었다. 그레이스 오른쪽에는 영국 남자애가 앉아있었다. 나는 빈 자리에 찾아 앉았다. 내 맞은편에 유진이가 있었다.

"오늘 새벽에 빅토리아랑 나랑 벽들 사이로 들어갔어." 유진이가 먼저 말하기 시작했다. "근데 거기에서 새로운 걸 발견했어."

"뭔데?" 제이슨이 물었다.

"괴물."

유진이가 말하자 앉아있던 몇며 애들이 웅성웅성거렸다.

그때 나는 새벽에 유진이가 괴물에 대해서는 점심 때 말해주겠다고 했던게 생각났다. 나는 왼손을 들어보았다.

"그 괴물은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데?" 내가 물었다.

유진이는 날 보고 미소를 지었다.

"바닥 밑이나 벽에서 튀어나와."

"어떻게?" 영국 남자가 물었다.

"바닥 문이나 벽문이 열려서 그 곳에서 뛰쳐나와."

주위에서 웅성웅성거렸다. 내 입이 쩍 벌어졌다.

"함정투성이군..." 내가 중얼거렸다.

"그럼 이틀 후에 또 나가서 알아봐야겠네." 한 아이가 말했다.

유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 생활로그 (코드 : 203004284)

복도를 거닐다가 우연히 그 영국 남자애와 마주쳤다.

애들이 바쁘게 지나가는 복도길에 걔와 내가 처음으로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 갈색 눈동자가 너무 멋져보였다.

"안녕." 내가 어색하게 오른손을 들어보이면서 웃으며 말했다.

"안녕." 걔도 웃어보였다.

"이름이...?"

"제이크."

제이크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지만 곧 다시 다가가 오른손을 들고 악수를 했다. 제이크를 바라보자 내 얼굴에 미소가 떴다. 제이크도 날 보며 웃고 있었다. 단정된 갈색머리에 잘생긴 얼굴. 뽀얀 뺨과 따뜻한 손. 정말 멋있었다.

"그래서," 제이크가 먼저 손을 내리며 말했다. "너도 스프린터구나?"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긴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더니 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너... 혹시 너 주위에 수상한 것들 발견했니?"

응?

순간 나는 내 생활로그에 기록되어있던 이상한 글귀가 생각났지만 얘기해주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없어."

"확실해?"

나는 단호하게 다시 말했다.

"응. 없어."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에게 손으로 인사를 했다.

"알았어. 잘 가."

그러고는 지나가는 학생들 속으로 사라졌다.

-- 생활로그 (코드 : 203004285)

저녁때 우리는 한 자리에 다시 모였다.

유진이는 내 옆에 앉더니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속삭였다.

"너 확실히 이상한 거 발견하지 않았니?"

"어..."

유진의 갈색 눈동자가 내 눈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웬지 그 눈에서 강한 레이저가 뿜어져 나와 내 속마음을 태우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해 정해진 답을 내 놓았다.

"사실... 있어. 내가 생활로그를 작성하는데 거기에서 이상한 글귀랑 번호가 적혀있었어."

유진이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뭐라고 적혀있었는데?"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에러코드 번호가 적혀있었어. 026, 031, 이런 거. 그리고 막... 글에서는... 읽고 있는 사람보고 끄라고 난리를 치더라."

유진이와 앉아있던 학생들 모두 아무 말 없이 고개만 갸웃거렸다. 순간이었지만 식당에 정적이 감돌았다.

"날짜랑 관련되어있는 건가?" 유진이가 물었다.

"뭐가?"

"에러코드."

나는 순간 머리를 굴려 에러코드에 적힌 숫자들과 날짜를 연관지어보려 애를 썼다. 26... 31... 2월 6일? 3월 1일?

"혹시 026, 031이 2월 6일하고 3월 1일이 아닐까?" 내가 물었다.

이 말을 들은 몇몇 친구들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 날짜들이 왜 너의 로그에 적혀있었을까?" 유진이가 물었다. "무슨 관련이 있는거지?"

그 때, 유진이의 그 말이 내 궁금증을 푸는데 힌트가 되어준 것 같았다.

"... 벽들이 나타났던 날짜를 모두 말해줘봐." 내가 말했다.

유진이는 기억해 내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주위에 있던 애들은 유진이의 반응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달 24일, 26일, 오늘..." 유진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탁자를 오른손으로 '탁' 하고 치더니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나도 미소를 지으며 덩달아 일어났다. 내 머릿속에는 아주 명확한 해답이 꽂혀있었다. 주위 애들의 눈에는 나와 유진이를 미친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이 있었다.

"그 에러코드가 벽이 나타날 날짜를 알려주는거겠네?" 내가 소리쳤다.

"그렇지!" 유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럼 다음으로 벽이 나타날 날짜는 31일?"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전혀 엉뚱한 대답과 전혀 엉뚱한 목소리가 급식소에 메아리쳤다. 모든 학생들이 목소리가 울려퍼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리를 쩍 벌리고 뒷짐을 지는 교관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파란 눈동자에서 레이저가 쏘아 나오고 있었다. 빈 식당에 뚜벅뚜벅, 강한 발자국 소리가 울려퍼졌다. 교관이 우리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너희 지금 뭐하는거냐." 굵직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교관님," 유진이가 당당하게 걸어나가며 말하였다. "저희는 그냥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교관의 파란 눈에서 매서운 눈빛이 번쩍거렸다. 그는 뚫어지게 유진을 바라보았다. 유진도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감시 카메라로 확인할 것이야. 단순한 수다가 아니라면 너희의 뇌 안에 무언가가 지나갈테니 각오해!"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내 뒤쪽에 있는 애들도 놀란 것 같았다. 교관은 마지막으로 유진을 포함한 우리들을 쏘아보더니 두꺼운 부츠를 뚜벅거리며 식당을 빠져나갔다.

우리는 당분간 말이 없었다.

"오늘 무기창고에 가서 각자 자신있는 무기를 훔치자." 유진이가 갑자기 말했다.

순간 애들이 웅성웅성거렸다. 그렇게 도둑질하다가 잡히면 어쩌고? 유진이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다시 말했다.

"기억나? 교관들은 새벽에 순찰을 돌지 않는거?"

그와 동시에 애들이 잠시 조용하더니 맞아. 괜찮을거야. 오늘 밤 훔치자. 걱정할 것 없어. 라고 웅성웅성거렸다. 유진이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띠어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나를 보고 같이 할거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교관이 우리를 쏴 죽이겠다는데... 우리도 맞서야지.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생활로그 (코드 : 203004286)

유진이는 오늘 모두 다 같이 일어나서 무기를 훔치고 벽 속으로도 들어가보자고 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나온 모든 아이들을 공식적인 탈출 그룹으로 선정하고 스프린터들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유진이와 제이크, 그레이스 (유진이가 나한테 그레이스를 너무 얕보지 말라고 했다. 잘 뛰지는 못해도 생각보다 감각이 뛰어나다고.), 아합이라고 하는 남자아이, 뉴크라고 하는 영국 애, 그리고 나. 이렇게 6명이 선정되었다.

제이슨 흑인 친구는 탈출 그룹을 A와 B로 나누고 각각 3명의 스프린터와 함께 뛰자고 제안하자 유진이를 비롯한 모든 스프린터들, 애들이 모두 동의했다.

-- 생활로그 (코드 : 203004287)

망했다.

망했다...!!!

유진이와 제이크가 죽었다!!!!!!

교관들이 감시카메라를 보고 유진이와 제이크가 수상하고 또 모임을 주관하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유진이와 제이크를 몰래 끌고 가 죽였다는 것이다. 교관들이 이 소식을 나에게 전해주면서 경고했다. 전부 다 해산시키고 앞으로 모임같은 거 하지 말라고. 그렇지 않으면 너도 쟤들처럼 될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절대로 이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오늘 당장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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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d: Sep 12,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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