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최후를 위하여 -->
사무실에 때아닌 찬바람이 불었다.
청년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상대의 기색이 심상치 않다. 언제나 밝게 웃는 얼굴과 가을 하늘처럼 고즈넉한 말씨로 유명한 윤서희가 화를 내고 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한 청년은 생각할 틈도 없이 일단 대답부터 했다.
"아, 예, 예! 알겠습니다. 바로 통신 수정으로 연락하겠습니다."
윤서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현재 인사 본부장이 근신 중이라 임시로 수행 인원을 한 명 뽑았는데. 설마 이 낙원에서 통신 수정으로 연락하는 것과 전령을 보내는 일의 차이도 모를 줄이야.
아니면 신영의 위치가 여전히 예전과 같다고 착각하는 걸까?
"아니요? 통신 수정으로, 연락하라는 게 아니라, 정중히 공문을 작성해서, 정식으로 전령을 보내달라고요."
차가운 눈으로 한 어절 한 어절 또박또박 끊어서 말하자 청년은 한층 당황해 머리를 숙였다.
"예, 예. 전령이요. 알겠습니다."
"정 본부장님은요?"
"지구로 돌아가 자택에 머무르는 중입니다. 사람을 붙여 감시하는 중이고요."
"윤서라 팀장은요?"
"윤서라 님은......."
청년이 말을 흐렸다. 윤서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더 시간 낭비하기 싫다는 양 손사래를 쳤다. 청년은 도망치듯 사무실에서 나갔다.
탁. 조용히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윤서희는 돌연히 땅이 꺼지라 한숨을 쉬었다.
'나 왜 이래?'
순간적으로 감정 조절을 못 해 화내 버렸다.
예전에는 아무리 속이 터지더라도 결코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었는데. 그 정도로 흔들리는 중이라는 방증일 터.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던 윤서희는 아래를 힐끔 내려다봤다. 천천히 팔을 뻗어 1년에 네 번도 채 열지 않는 아래 서랍을 열었다.
구석에 넣어둔 담뱃갑을 꺼내 얇은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가라앉은 눈동자로 허공을 뚫어지라 바라보며,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래."
핏기가 사라진 옅은 빛 입술에서,
"못 굽혀줄 것도 없지. 당장은."
가늘고 긴 연기가 아닌, 굵고 짧은 연기가 푹 퍼졌다.
같은 시각.
패러사이트 대전은 살 떨리는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섯 군단장이 부복해 머리를 숙이고 있다. 그들의 경외가 향하는 오염된 옥좌에는 언제나처럼 패러사이트 여왕이 고고하게 앉아 있다. 오늘따라 전신에서 매우 강렬한 기세를 뿜으며.
- ......무어라? 그 설지후라는 놈이 뭐라 했다고?
거친 음성이 공기를 흔들었다.
- 패러사이트 제4군단장, 발광하는 절제를 추모하기 위하여......?
패러사이트 여왕이 귀를 의심하는 어조로 되묻자 군단장들이 송구스럽다는 듯 더욱 머리를 조아렸다. 일그러진 친절은 핏발 선 눈으로 땅을 노려보며 손이 바스러지라 주먹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