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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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대치 상황을 정리한 건 칼튼의 부하였다.

“대장! 대장님!”

칼튼의 부하는 칼튼을 오매불망 기다렸다는 듯이 다급히 달려왔다. 승리의 기쁨을 누리던 타이밍에 방해꾼이 나타나자 칼튼은 짜증을 냈다.

“뭐야?”

칼튼의 부하는 그런 태도에 익숙해, 겁먹지 않고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그의 한마디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충분했다.

“비너드가에서 항복 사절이 왔습니다.”

총관과 집사, 루이센까지 칼튼의 부하를 주목했다.

비너드가라면 2왕자를 지지하던 남부의 영주들 중, 유일하게 칼튼에게 항복을 하지 않은 가문이었다. 칼튼은 그들을 벌하기 위해 출정했으나, 루이센의 낙오와 이어진 배급으로 일정을 미루고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칼튼은 비너드가의 성문을 박살 내고 영주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을 것이었다.

“이제 와서 항복 사절이 왔다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칼튼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늦어도 심각하게 늦은 감이 있었다. 메뚜기가 공작령을 지나간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철저한 대비 덕분에 메뚜기와의 전쟁은 인간의 승리였다. 거대한 메뚜기 떼는 여러 무리로 갈라져서, 이제 그렇게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라고 들었다.

“항복을 할 거면 진작에 하지, 왜 이제 와서 사절을 보낸 거지?”

루이센은 총관을 바라보았으나, 총관도 상황을 모르는 눈치였다. 칼튼의 부하는 계속 말을 했다.

“그런데 비너드가의 사절이란 사람들, 상태가 이상합니다.”

“어떻게 이상한데?”

“저희들이 자기들을 속이고 있답니다. 막 횡설수설을 하면서 난동을 피우고요. 막 우리는 못 믿겠다고 아니에스 공작님 모셔 오라고 난리입니다.”

“나?”

루이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공작님이요. 공작님이 오실 때까지 한마디도 안 할 거라면서요.”

그 옆에서 칼튼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자기들이 지금 강짜 놓을 때야? 못 믿겠다면 못 믿으라고 해. 알 게 뭐야. 언제는 우리가 말로 해결했어?”

“하핫, 맞는 말씀입니다, 대장.”

칼튼의 막돼먹은 발언에 부하는 좋다고 낄낄댔다. 언제 봐도 칼튼과 그의 부하들은 죽이 잘 맞았다.

이럴 땐 말리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쩔 수 없이 루이센이 끼어들었다.

“칼튼 경은 좀 진정하고. 나도 무슨 상황인지 궁금한데 같이 가는 게 어떤가?”

“글쎄요.”

칼튼은 내키지 않는 눈치였지만 강하게 반대도 안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완강한 반대가 튀어나왔다.

“안 됩니다.”

총관이었다.

“같은 영주라고는 하나 비너드는 자작가. 자작 본인이 와서 영주님을 만나 뵙게 해 달라고 청해도 만나 줄까 말까인데, 사절 주제에 공작님을 오라 가라 하다니요.”

“상황이 상황이지 않나. 비너드가의 사절들이 왜 그러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칼튼의 목적은 남부 영주들을 1왕자의 이름 아래 복속시키는 것.

이번 비너드가의 항복이 확실해지면, 그 임무가 끝났으니 더 남부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칼튼이 떠난다는 것은 공작성이 자유를 되찾는다는 의미였다. 공작가의 가신들과 루이센을 얽매고 있는 족쇄가 사라지고 모든 권한이 루이센에게 돌아오게 될 터였다.

아니에스 공작가의 모든 이들이 숨죽이며 간절히 기다려 오던 순간이었다. 그렇기에 비너드가의 항복 사절은 루이센에게도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안전이라면 걱정할 거 없어. 여기 칼튼 경이 같이 가는걸.”

“그것도 문제입니다.”

“만약 정말 항복 사절이 공작성으로 오는 사이에 위험에 빠졌던 거라면,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지 않나.”

13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