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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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튼은 괜시리 루이센의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아까운데요.”

“머리카락은 또 자라는걸?”

“그거야 그렇지만…….”

머리카락을 자르는 거야 별일 아니지만 돈 때문에 자른다는 사실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가난한 집안의 부인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쓰는 게 머리카락을 잘라 파는 건데.

“당장 돈을 마련하기엔 이거만 한 게 없잖아.”

루이센의 말은 타당했다. 당장 수중에 동전 하나 없어서, 순례자의 통행증을 고치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칼튼은 루이센을 나무 위에 올려 숨겨 두고, 혼자 성안에 가서 도둑질이라도 해야하나 고민하던 찰나였다. 도둑질보다야 머리카락을 파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럼에도 칼튼은 머뭇거렸다.

루이센은 뚱하게 칼튼을 보다가 알아서 하기로 했다.

“이리 줘.”

루이센은 칼튼의 손에서 단검을 빼앗았다. 그리고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머리카락을 쥐고 그대로 슥삭슥삭 잘라 냈다. 아침에 돌에 갈아 둔 덕에 단검은 아주 예리했고 칼튼이 말릴 틈도 없이 루이센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버렸다.

“자, 됐지?”

루이센은 머리카락 뭉텅이를 칼튼에게 건넸다. 칼튼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얇은 실타래를 모아놓은 것처럼 아름다웠지만 칼튼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머리카락에서 눈을 떼고 루이센을 바라보았다. 귀밑으로 댕겅 잘라 버린 탓에 루이센의 머리는 사방으로 뻗치기 시작하면서, 쥐가 파먹은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몰골이었다. 칼튼은 전혀 웃을 수 없었다. 밖으로 드러낸 목덜미가 어찌나 휑해 보이는지 칼튼의 마음까지 다 시려 왔다.

예전에 칼튼의 부하 중 한 명이 자기가 용병이 된 계기가 마누라가 머리카락 잘라 팔았던 것 때문이라고 술김에 말한 적이 있었다. 마누라가 머리카락을 잘라 팔 정도로 무능한 자신이 싫어서 이 험한 일을 선택했다고. 그걸 들을 때만 해도 칼튼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작 머리카락이다. 시간이 지나면 또 자라는데 그거 좀 자른 게 뭐 대수라고.

그런데 지금은 그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 용병은 머리카락을 자른 게 문제가 아니라 돈 때문에 머리카락을 잘라 팔 지경으로 몰렸다는 사실이 슬픈 것이었겠구나.

루이센은 칼튼의 마누라가 아니었지만, 그 용병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살면서 이렇게 무능력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자신의 능력에 자부심이 넘치던 칼튼이었던 만큼 자괴감이 들었다.

“……이번만입니다. 앞으로 이러실 일 없을 거예요. 돈은 제가 뭘 하든 부족함 없이 벌어 오겠습니다.”

사냥을 하든 힘쓰는 일을 하든, 꼭 그렇게 하겠다고 칼튼은 마음속 깊이 다짐했다.

“뭐…… 그러던가?”

내 신세를 지는 게 그렇게 싫은가? 칼튼도 이상한데 집착하는 게 있다고 생각하며 루이센은 후드를 잘 뒤집어썼다.

***

두 사람은 다시 성안으로 들어왔다. 여행객이 많이 오가는 도시답게 콘포세는 뒷골목도 상당히 번성했다. 남들 모르게 물건을 처리하고, 출처를 세탁하기에는 제격이었다.

머리카락을 파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헐값에 판매되곤 하지만, 루이센의 머리카락은 길이가 길면서도 영양 상태가 좋아 무척 매끄럽고 탄탄했고 색도 보기 드문 진짜 금발이라서 시세보다 값을 더 쳐주었다. 칼튼은 적당한 흥정과 협박으로 그보다 동전 몇 개를 더 받아 내었다.

그걸 보면서 루이센은 속이 쓰렸다.

‘와, 내가 처음에 머리카락 팔 때 이거 반도 못 받고 팔았는데.’

아무리 칼튼이 흥정을 잘했다지만 이건 가격 차이가 나도 너무 심했다. 그때 머리카락을 너무 헐값에 넘겼던 것이다. 당시에만 해도 루이센은 사람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든다는 건 알았지만 자신의 머리카락을 돈 받고 판다는 개념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이 걸리적거리는 걸 팔아서 돈을 벌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서 냉큼 팔아치웠었다.

머리카락 가격을 몰라서 그랬다기에는 칼튼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칼튼은 상대의 반응을 보고 흥정할 줄을 알았다.

13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