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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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린은 무척 어색하게 모리슨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예의는 차렸지만 거리감이 있고, 루이센에게 하는 것처럼 마음을 놓은 것 같진 않았다. 그 점이 뭔가 이상했지만, 모리슨이 원래 알로스 상단 주인과 아는 사이라고 하니 사연이 있겠다고 짐작했다.

하지만 칼튼은 루이센처럼 좋게 생각할 수 없었다.

‘우리가 오기 전까지 뭘 하고 있었던 거지?’

모리슨이 어떻게 했기에 컬린이 나중에 온 루이센을 더 구원자처럼 생각하는 걸까? 단순히 모리슨과 알로스 상단 주인의 관계 때문에 불편해한다기에는, 칼튼의 눈에는 모리슨이 그렇게 알로스 상단 주인과 친해 보이지 않았다. 칼튼이 아는 한 배에서 머무르는 시간 동안 모리슨은 상단 주인을 한 번도 따로 찾아가지 않았다. 물론 알로스 상단 쪽은 병자 때문에 정신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심을 잘라 낸 것은 모리슨 본인이었다. 모리슨은 사람 좋은 얼굴로 칼튼의 팔을 툭, 치려고 했다. 칼튼은 잽싸게 정색을 하며 피했다.

“뭡니까?”

“빤히 쳐다보셔서.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아뇨. 모리슨 씨까지 따라와야 하나 싶어서 말입니다. 작디작아도 한 상단을 이끄시는 분이니 다른 할 일이 많으실 텐데 상단 사람들은 무사한지 살펴본다거나 해야 하지 않습니까?”

“제 동료들은 다 자기 앞가림은 하니 괜찮습니다. 저도 알로스 상단 분들이 걱정되어서요.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그래도 전염병이라는데 무섭지 않으신가 봅니다?”

“사람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모리슨의 모범답안같이 반듯한 대답에 앞서가던 루이센이 모리슨을 돌아보며 감탄했다.

“모리슨 씨는 정말 좋은 분 같아요.”

모리슨은 온화하고 따듯하게 웃었다. 그림으로 그려 선한 인상의 표본으로 남겨도 좋을 만한 미소였으나 칼튼의 마음은 잘못 말린 나무처럼 뒤틀렸다.

***

알로스 상단의 사람들은 전부 상단 주인이 쓰던 방에 모여 있었다. 컬린이 간호를 하기 위해 한 방으로 모두 옮겨 놨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바닥이나 소파에 누워 있었다.

모두 안색이 거뭇하고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나마 상태가 좋은 한 사람만 컬린을 향해 왜 이제 오냐고 욕을 했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제대로 말이 되지 못했지만.

컬린은 욕을 먹으면서도 웃었다. 왜 웃지? 루이센이 이상하게 보자 그는 황급히 해명했다.

“아, 다들 아직 살아 있잖아요. 욕할 정도로 기운도 남아 있으시고. 제가 나간 사이에 죽은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루이센은 다시 훌쩍이는 컬린을 토닥이며 알로스 상단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살펴봐도 될까요?”

“네네. 그럼요.”

루이센은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제일 멀리 있는 상단 주인까지 쭉 살폈다. 모두 열이 높았고 그로 인해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루이센이 주의 깊게 살핀 것은 그들의 목덜미였다. 귀 뒤쪽에서부터 턱으로 이어지는 부근에 어김없이 구울에서 본 것과 같은 녹색 반점이 있었다. 턱의 그림자가 지고 수염이 자라는 부위라 언뜻 봐서는 모르고 넘어갈 만했다.

“쓰러지기 전에 뭐 특이했던 점은 없나요?”

“음, 배에 타기 전부터 몸이 안 좋다고들 그러시긴 했는데 워낙 술을 자주 드셔서 그냥 그 탓인 줄 알았죠. 아, 근데 갑자기 다리가 안 움직인다는 소리를 하더니 픽 쓰러지는 거예요. 그제야 뭐가 잘못된 거 같아서 다가가니까 몸이 불덩이더라고요.”

컬린의 말에 루이센이 멈칫했다. 다리 마비라고?

루이센은 손톱으로 상단 주인의 다리를 꾹꾹 눌렀다. 장갑을 끼고 있어 아프지 않겠지만 그런 것치고도 반응이 거의 없었다. 마비가 온 게 분명했다.

루이센은 상단 주인의 신발과 양말을 벗겼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걸 무시하고 발목을 살피자, 암녹색 점이 삼각형 모양으로 찍혀 있는 것이 보였다. 언뜻 보기에는 문신 같지만 장갑을 벗고 살살 만지자 점이 아니라 상처가 난 피가 뭉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발목도 확인해 보니 같은 자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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