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죽음을 넘어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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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스토는 생각을 멈추고, 알렉스를 바라봤다.
“그럼 우린 출발하도록 하지.”
“네, 폐하.”
어느새 다가온 흑마가 칼리스토에게 반갑게 볼을 비볐다. 귀염받으려는 듯 머리로 툭툭 밀고 아는 체를 했다. 돌아보지 않는 그가 야속한지 코를 푸르릉거리며 씩씩거렸다. 그 모습이 신기한지 데이커 백작이 한마디 했다.
“허허, 누가 보면 마치 주인이 알렉스 경이라 착각할 정도입니다. 정말 잘 따르는군요. 지난번 봤을 때보다 더 잘 따르는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 정도로 잘 따르긴 하지. 그가 돌봐줬으니까.”
“지난번 볼 때는 이렇게까지 따르진 않았는데 말입니다. 황궁에 있는 동안 알렉스 경이 잘 돌봐줬나 봅니다. 흑마는 주인으로 인정한 주인만 잘 따르는 줄 알았습니다.”
“…그라면 당연한 소릴. 자, 출발한다.”
알렉스의 신호에 칼리스토와 두 형제 또한 말에 올라탔다. 백작의 큰아들인 이안이 먼저 선두에 섰다. 이곳 지리를 가장 잘 아는 이는 그였으니까.
“폐하,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자랐으며 모든 길은 눈을 감고도 다닐 수 있는 곳이었다. 안전을 위해서는 그가 앞장서는 게 맞았다. 이안이 앞장서자, 알렉스 옆으로 제프가 다가왔다. 그는 말을 바짝 붙이고, 자랑스럽게 허리를 곧게 편 채 무엄하게도 곁눈질로 황제를 살폈다. 
“제프, 당장 뒤쪽으로 가!”
알렉스의 오른쪽에서 못마땅하게 보고 있던 칼리스토가 말머리를 돌려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점점 틈을 벌렸다. 그 사이를 차지하고도 잔뜩 미간을 구겼다.
“알렉스 경, 다칩니다. 아, 자, 잠깐만요. 알렉스 경!”
“내가 하나 가르쳐 주지. 폐하의 오른쪽과 왼쪽 자리 모두는 다 내 것이야. 나만 옆에 있을 수 있어.”
“……그, 그건. 하, 하지만, 저, 저도.”
갑자기 알렉스가 탄 흑마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투덕거리고 있던 둘은 서둘러 뒤를 따르려 말의 속도를 높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서로 알렉스의 옆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말의 고개를 들이밀고 달렸다. 
말이 머리를 흔들면 부딪칠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위험한 상황이 되자, 알렉스가 손을 저어 그들의 행동을 멈춰 세웠다.
“둘 다 그만! 여기까지만 한다.”
나직하게 목을 긁어 나온 경고의 말에 둘의 싸움이 멈췄다. 눈치를 보던 제프가 슬쩍 뒤로 빠지자, 칼리스토는 의기양양하게 알렉스의 말과 머리를 나란히 하고 달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리를 차지하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묻은 행동이었다.
한 시간 정도를 달리자 이안이 말고삐를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워워! 멈춰.”
그는 잠깐 주변을 둘러보고 알렉스 쪽으로 말을 붙였다.
“폐하. 여기부터는 말로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을 살펴야 합니다. 지난번 쳐들어왔던 곳도 이곳입니다. 근처에 보시면 저기 보이는 곳입니다.”
이안은 팔을 들어 야인족이 침입했던 자리를 손가락 끝으로 가리켰다. 한군데는 거대한 바위 뒤에 있었고, 다른 곳은 보이지 않는 평야의 끝이었다. 상당한 거리가 있는 곳이라 그들을 통솔한 이도 두 명 이상이라는 점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정도 거리를…… 알 수 없는 뭔가가 알렉스의 신경 끝을 갈리작거렸다. 이건 어디 역사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야인들의 행동이었다. 새로운 습관이 생기지 않고는 할 수 없는 행동.
그는 어느새 곁에 붙은 칼리스토를 바라봤다. 지금 가장 궁금한 건 그의 생각이었으니까.
“네가 보기엔 어때?”
“거리를 보면, 각각의 지휘관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공격입니다. 그들을 이렇게나 통솔할 수 있는 이가 존재하다니. 지금까지 본 그들은 이런 전략을 가질 정도로 머리를 굴릴 줄 모릅니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죠.”
“누군가 도와주지 않고, 강제로 시켰던가.”
“네. 여러 가지 추정할 수 있지만, 가장 타당한 건, 바로 옆…….”
“아펠바움 제국.”
“네, 맞습니다. 거기에 뭐 다른 요소가 좀 섞였을지도 모르죠. 누군가의 계략이 섞였거나, 불순물이 섞이지 않고서는 또 불가능하기도 하죠. 새로운 역사를 만들려면 새로운 사람이 흘러들어 와야 맞으니까요.”
알렉스와 칼리스토의 시선이 옆 제국을 스쳤다. 똑같이 움직이는 시선이 하나도 흐트러짐 없이 움직임을 같이했다. 제프는 그들의 시선 끝을 보는 게 아니라 같이 움직이는 시선을 따라가다 혼자 감탄을 토했다.
“와, 너무너무 머, 멋지…….”
그는 끝내 말을 다 맺지 못하고 말았다. 황제인 알렉스의 시선이 저를 향하자 저절로 입이 닫혔다. 오로지 저로 가득한 눈동자를 본 제프는 눈꼬리를 휘어 미소를 지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는 눈웃음에 자신 있었다. 신년 행사 때마다 자신의 눈웃음에 영애들이 자지러졌던 것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다.
“악! 깜짝이야.”
갑자기 말에서 떨어질 뻔한 제프는 겨우 중심을 잡았다. 얼마나 크게 휘청였는지 중심을 잡는 것만도 한참이 걸렸다. 갑자기 나타난 칼리스토의 얼굴이 가까이 밀착하는 바람에 비명을 지르고 물러나고 만 탓이었다. 그는 몇 번 이쪽저쪽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해 애를 썼다.
“아, 알렉스 경. 너무 가깝습니다. 부, 부담스럽습니다. 어, 얼굴 좀 치워 주십시오.”
“다른 사람 말고 나한테 웃어 봐. 어디 눈꼬리 좀 더 휘어 보든가. 양쪽 눈을 보니, 하나 정도는 없어도 보는 데 문제는 없어 보여서 말이다. 한 눈으로 보다가 나머지도 필요 없으면… 뭐, 그때 파 버리던지.”
“네?……네에? 파, 파요? 어, 어디를.”
“그만하고 출발해.”
그들을 보고 있던 알렉스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그는 정말로 검을 꺼냈을 것이다.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니까. 지금도 언제 꺼낼지 재보고 있는 집게손가락이 검의 손잡이를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들썩거리며 불안하게 흔들리는 검의 날카로운 은빛 날이 금방이라도 모습을 드러낼 것만 같았다.
알렉스의 몸 안에 갇혀 있어도 그는 제 성질을 노출하는데 전혀 참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참을 생각 자체가 없는지도. 알렉스 같지 않은 모습에 주변 기사들의 의아한 시선으로 수군거려도 그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되려 그들이 그의 서늘한 눈빛 때문에 뒤로 물러나 버리곤 했다.
그러나, 대부분 칼리스토 곁에 있거나, 그가 연관 지어질 때만 이상해지니 조금 이상하다 하는 정도로 가볍게 넘겼다.
지금 제프에게 했던 것처럼 직접 당해 봐야 알 수 있기도 하고.
“폐하, 같이 가요.”
알렉스가 달리자, 제프도 뒤를 쫓았다. 그는 환영을 쫓듯 알렉스 너머 칼리스토의 휘날리는 긴 머리카락만 바라봤다. 
‘맙소사, 너무 아름다워.’
그의 금빛 머리가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부서져 반짝였다. 주변에 금가루가 휘날리는 착각을 만들게 하는 긴 금빛의 머리카락이 하나로 묶여 있었다. 이리저리 흐트러지지 않게 한 게 오히려 더 시선을 한곳에 집중시킨다.
굵은 머리가 하나로 튀어 올랐다가 떨어지는 모습이 예술이었다. 바람을 타고 휘날리는 긴 망토로 인해 존재감이 더 또렷해졌다.
“아름답다. 너무 아름다워.”
“눈 내려. 진짜로 파 버리기 전에. 아니, 당장 파 버리는 게 좋겠어.”
칼리스토는 급작스럽게 말의 머리를 돌려 제프를 쫓았다. 갑자기 달려드는 그를 피한 제프는 소리를 지르며 말을 달렸다. 쫓아오는 칼리스토를 피한 그는 알렉스의 말 뒤로 숨었다. 살벌한 상황에서도 그의 입꼬리가 즐거움에 들썩였다.
매일 선망해 마지않는 폐하 옆이었다.
이상하게 폐하를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들썩거렸다. 뭔가가 심장을 찌르기도 했다가, 후벼 파는 것도 같았다. 제프는 뭔지 모르는 이런 기분이 좋았다. 그는 고개를 슬쩍 들어 자신만의 해를 쫓았다. 마치 자신이 해바라기가 된 것만 같았다.
‘지난번 봤을 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여깁니다, 폐하.”
침입한 흔적이 보이는 곳에서 멈춘 이안이 알렉스를 불렀다.
“이곳입니다. 숫자는 열 명 정도였지만, 무력은 상당했습니다. 그들로 인해 저희 쪽 피해도 상당했으니까요. 지금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곳은… 원래 공격 자리가 아니군.”
“네, 맞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들은 지난번 갔던 곳 한곳으로만 늘 쳐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먹을 것과 도움만 주면 군소리 없이 조용히 돌아갔습니다. 단지, 숫자의 변동만 있었을 뿐입니다. 이번이 가장 특이한 경우라고 보여 집니다.”
“간헐적 공격이라.”
“네, 맞습니다. 일정한 시간을 두고 되풀이하는 공격을 했습니다. 폐하께서도 아시겠지만, 그들 머리로는 나올 수 없는 공격입니다.”
“그들이 진짜 야인족이 아니라는…….”
칼리스토는 이안을 돌아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야인족이 아니라는 결론뿐이었다. 누군가가 야인족 인척 침략했을 수도 있다는 답뿐이 나오지 않았다.
“저희도 그게 궁금했습니다. 그들의 무력이 너무 강해 잠깐 후퇴했다가 다시 기사와 병사들을 데리고 이곳에 왔을 때는 모든 흔적이 전부 지워진 후였습니다. 시체 또한 마찬가지로 치워져 있었습니다.”
“치고 빠진 데다가 훈련받은 이처럼 흔적까지 모두 지웠다? 어이가 없군.”
알렉스와 이안이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 뒤로 칼리스토는 주변을 꼼꼼히 살폈다. 날카로운 눈빛이 주변을 전부 훑어 내렸다. 그의 진중한 표정은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아니, 영혼이 바뀐 뒤 처음인가?
그는 꼼꼼하게 주변을 살피고, 이곳저곳 옮겨 다니더니 알렉스에게 돌아왔다.
“시간 간격까지 두고 공격할 정도면…… 정말 대단한 발전입니다. 그들의 병력과 전술에서 볼 수 없던 거라, 상당한 발전을 했던지, 아니면 누군가 지휘관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시. 그럼 내일 밤은 이곳에서 좀 더 지켜보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침투해 보면 좋을 거 같아. 알렉스, 네 생각은?”
“좋습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위험하면…….”
“위험한 건 그놈들이지. 내 실력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폐하.”
둘의 대화에 제프가 끼어들었다. 그는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허락을 바라고 있었다. 알렉스는 잠시 칼리스토와 제프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일 저녁에 다시 이곳에 오도록 하지. 밤새 내내 주변을 살피도록 할 테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다.”
알렉스는 먼저 말에 올라타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칼리스토 또한 주변을 한 번 살피더니, 말 머리를 돌려 그의 옆에 바짝 붙었다.
“폐하, 저 둘은 떼어놓고, 저와 둘만 오는 건 어떻습니까? 별로 도움 될 거 같지도 않고요. 검 실력이라면 폐하와 저, 둘만 있어도 적들 수십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옷깃조차 건들지 못할 텐데요.”
“이곳 지리를 잘 아는 이들이니, 그들이 필요해. 깊이 들어가면 위험할 수도 있고.”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저는 폐하와 단둘만 있고 싶은데요.”
그는 마땅찮게 혀를 짧게 끊어 차더니 서늘한 눈동자로 제프를 바라봤다. 이안을 바라볼 때는 무표정했다가 제프를 볼 때는 마치 적을 보는 것처럼 눈빛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그는 깊게 팬 미간을 하더니 갑자기 제프 곁으로 바짝 붙었다.
“제프!”
“네네, 알렉스 경.”
“내가 경고하는데, 감정 따위 흘리지 마. 물론 흘려 봤자, 받아줄 사람도 없지만 말이야. 그래도 기분 나쁘니까, 조심해. 내 경고 잊지 말고. 마지막 경고일 수도 있어. 오늘 참아 준 만큼, 눈 다음엔 목숨이 될 테니까.”
“겨, 경고요? 누, 눈이요? 목…….”
칼리스토는 답변 대신 오른쪽 눈 위를 검지로 쿡쿡 찔렀다. 제프는 저도 모르게 양쪽 손으로 눈을 가렸다. 뭔가 서늘한 얘기가 스친 눈이 파내진 것만 같았다. 그의 떨리는 눈동자가 칼리스토의 손길을 따라 움직였다.
그는 눈 아래를 손톱으로 긁어 목으로 내려가기 전에 옆으로 긋더니 다시 올라가 귀 옆을 지났다. 지나가는 자리마다 날카로운 칼끝으로 피부를 가르는 것만 같았다. 피가 철철 흘러넘치다 못해 피로 목욕한 기분이 들었다.
제프는 말을 만들지 못하고 숨을 안쪽으로 급하게 삼켰다.
“알아들었으면 대답!”
“네! 네! 알렉스 경. 며, 명심하겠습니다. 모, 목숨은 소중한 거라고 배웠습니다.”
칼리스토는 커다란 손으로 제 머리를 자랑스럽게 쓸어 올리더니, 입술을 길게 찢어 웃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몇 번 끄덕이며 만족하게 웃었다.
뭔가가 정리된 개운한 표정으로 서둘러 알렉스 옆으로 돌아가 버렸다. 마치, 그 자리는 누구의 것도 아닌 제 것인 것처럼 당당하게 차지했다.
두 사람 뒤를 따르던 제프는 고개를 푹 숙였다. 조화로운 뒷모습을 보니, 더욱더 제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여 서러워졌다. 시작도 하기 전에 뭔가 꺾인 기분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의 눈이 맑은 물로 가득 찼다,
“제프.”
“……응, 형. 훌쩍.”
갈 때는 뒤를 따르던 이안이 다가와 제프와 말머리를 나란히 했다. 그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말기를 반복했다. 몇 번이고 달싹거리는 입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고민이 깊어지는 검은 눈빛이 점점 색이 진해졌다.
“너…… 진심인 거냐?”
“형,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여기가 아파.”
“심장?”
“으, 응. 그런 거 같아.”
제프는 훌쩍거리며 고개를 땅에 처박았다. 이러다가 말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이안은 망설이더니 다시 한참 후에야 입을 달싹였다.
“제프…… 형은 말이야. 폐하를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불경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사람이 아니라 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야. 그럼 저절로 그런 마음도 경건해지거든.”
신이 선택하는 거지, 인간이 감히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이안은 먼저 치고 달리는 황제를 살폈다. 아직 피어 보기도 전인 제프의 첫사랑인 폐하는 주변에 금가루를 뿌리며 알렉스 경과 다정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감히 범접하기 힘든 둘의 다정한 모습이 빛과 함께 산화했다. 한참 후에 제프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응, 이해했어. 형. 고마워.”
성에 도착할 때까지, 제프는 훌쩍이며 가끔 소매 끝으로 눈을 벅벅 닦아 댔다. 그의 소매 끝이 물기로 축축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제프의 검은 눈동자가 붉어져 있었다. 그건 눈 주변도 마찬가지로 불긋불긋해졌다. 코와 입술 주변까지도 죄다 붉게 물들었다.
가끔 “폐하는…….”이라고 중얼거렸다.
마중 나와 있던 백작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제프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의 상태를 확인한 백작의 한쪽 눈썹이 급격하게 위로 솟구쳤다. 미친놈처럼 중얼거린 것도 부족해 얼굴도 이상해져 있었다.
“이안! 무슨 일이냐? 제프 얼굴이 왜 그런 거냐?”
“아, 아버지! 그건 제가 잠시 뒤에 말씀드릴게요. 이, 일단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폐하를 먼저 모셔야 하잖아요.”
백작은 잠깐 주저했다. 제 잘생긴 아들이 누구에게 맞은 것처럼 얼굴이 온통 붉은 데다가 훌쩍거리기까지 하다니. 평소 검에 어디 하나 부러질 때까지 두들겨 맞아도 웃던 아들이.
그는 잠깐 망설이다가 황제를 먼저 챙기려 움직였다.
“……폐하, 이쪽입니다.”
백작이 황제를 모시는 동안, 이안은 제프를 슬쩍 가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알렉스 경을 피해 어둠을 찾아 움직였다. 조금 전, 마주친 경의 눈빛에 몸에 모든 털이 쭈뼛 올라선 탓이었다.
그는 소름이 오소소 돋은 팔을 빠르게 쓸어내렸다. 알렉스 경의 삐딱하게 내리 깐 눈동자가 가늘어지더니 금방이라도 검을 뽑을 것처럼 손잡이가 들썩거리기도 했다.
잔뜩 긴장한 이안은 아버지인 데이커 백작 뒤로 바짝 붙어 제프를 데리고 안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멈춰 선 채 노려보고 있는 칼리스토 곁에 알렉스가 섰다.
“왜 그러는 거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형제가 동시에 피곤했나 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폐하. 내일…….”
“이곳 지리는 저들이 잘 아니, 같이 가도록 해.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야지. 항상 네가 걱정했던 거잖아.”
“…그건 맞습니다. 맞는 말씀이지만 제가 그 역할을 전부 다…….”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알렉스는 먼저 움직였다.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그의 뒤를 칼리스토가 터덜터덜 쫓아갔다. 계속되는 그의 웅얼거림에도 원하는 답을 들려오지 않았다.
끝내 그는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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