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연결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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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마음이 연결된 지금이라서인지, 키스는 달콤했다.
밀고 들어오는 칼리스토의 혀를 맞으며 알렉스는 도망가지 않고 같이 혀를 엮었다. 그의 혀를 두드리기도 했다가 다시 엮으며 적극적으로 키스에 응했다.
되려 놀란 건 칼리스토였던지, 그는 엮어 오는 혀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몇 번이고 멈췄다.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오로지 한 곳만 보는 눈동자에 알렉스가 담겼다.
“하아, 알렉스 넌 진짜.”
그는 적극적으로 혀를 엮어 오며 키스해 오는 알렉스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죽은 건지, 산 건지, 헷갈렸지만, 지금 이 상황이 만족스러웠다.
“……지금 바로 네 안에 들어가고 싶어. 내가 살아 있다는 확인이 필요해. 그건 네 몸속에 들어가고서만 알 수 있는 것들이니.”
“하지만, 지금은 다쳤습니다. 나으신…….”
“살아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해 줘. 아니면 난, 이게 꿈인 줄 알 거야. 그게 싫으면 나머지 왼쪽 어깨에 화살 하나를 더 박아 주던가. 네가 화살을 박아도 난 즐거울 거 같다.”
“칼! 어, 어찌 또 그런…….”
알렉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픔을 준 것도 모자라, 화살을 다시 박아 주라니. 정말 칼리스토다운 생각이었지만, 전과 다른 느낌이었다.
그가 다친다는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멈췄다. 누군가 움켜잡고 비틀어 터트려 버린 것만 같았다. 알렉스가 저가 더 아픈 표정을 짓자, 칼리스토는 당황했다. 
표정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잘 읽히던 표정이 이제는 너무 드러내 놓고 보이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귀여워’라고 중얼거린 칼리스토가 상체를 일으켜 세워 알렉스를 눕혔다. 그 위를 누르듯 점령한 뒤 사과를 전했다.
“그러니까, 죽음 대신 알려 줘. 내가 살아 있다고. 죽지 않았다고. 살아서 지금 네가 내게 고백하고 웃어주고 있다고.”
“…칼은 정말.”
칼리스토의 입술이 서서히 내려왔다. 그의 입술이 벌어지고 길게 뻗어 나온 혀가 알렉스의 입술을 두드렸다. 열어주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열고 들어올 거 같더니, 되려 부드럽게 입술을 핥아 스스로 열어주길 기다렸다.
기다리던 알렉스는 혀를 내밀어 엮었다. 조금 전보다 더 질척해진 키스가 서로의 타액을 주고받았다. 끈적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나왔다. 하아- 칼리스토는 알렉스의 막힌 숨을 터주며 입술 주변을 지분거렸다.
“이건…….”
그는 뭉근하게 허리를 비볐다. 이미 확실한 존재감을 내세우고 있는 성기를 알렉스의 허벅지에 비볐다. 금방이라도 구멍 안으로 들어가려는 성기로 인해 앞섶이 축축이 젖어 들었다.
“칼, 으응. 윽.”
알렉스의 신음에 칼리스토의 커다란 손이 그의 성기를 움켜쥐었다. 한 손으로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손이 바지 위로 잔뜩 존재감을 내세운 성기를 잡고 흔들었다.
“이것 봐. 이곳은 기쁘게 나를 기다리고 있잖아. 어서 빨리 박아 주라고. 내가 얼마나…….”
얼마나 이렇게 네 몸에 들어가고 싶은 걸 참았는지 아느냐고, 그는 야살스럽게 웃었다. 유혹하는 것 같기도 했다가, 조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손을 올리고 제 성기와 알렉스의 성기를 비볐다. 빚어지는 마찰에 알렉스가 저도 모르게 ‘흐응’하고 신음을 토하고 말았다.
“기다렸어? 알렉스 너는 내가 박아 주는 거 좋아하잖아.”
“……네, 좋습니다.”
“…….”
성기 두 개를 맞대 비비던 칼리스토의 행동이 멈췄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알렉스를 살폈다. 영혼의 바뀐 건 신의 한 수였던가? 그는 중얼거리며 눈을 휘었다.
이렇게 솔직하게 저를 표현하는 알렉스는 처음이었다. 늘 무감한 눈빛과 마지못해 따르던 그가…… 이제는 스스럼없이 저를 표현해 칼리스토를 놀라게 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화살을 맞은 오른쪽 손을 움직였다. 윽, 칼리스토가 잠깐 주춤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알렉스의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려 하던 손이 자유롭지 못하자 짜증이 솟구쳤는지 낮게 빌어먹을- 욕을 뱉어냈다.
그의 아픈 모습에 따라 인상을 구기던 알렉스가 수줍게 고백처럼 말했다.
“제, 제가 다 나으면 마, 많이 해 드리겠습니다. 키스와 그, 그것도 말입니다. 뭐, 뭐든 해 드리겠으니, 먼저 회복부터 하시면…….”
“정말 내가 죽은 건 아닐까?”
칼리스토는 아픔도 잊고 한숨을 몰아쉬었다. 눈을 감았다 뜨고, 시선을 돌려 알렉스를 담았다. 저를 보며 웃는 모습을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현실이 현실 같지 않아. 다시 영혼이 본래대로 돌아오면 난 분명 후회할 거라 생각했어. 차라리 네 몸속에 있는 게 나에겐 행복한 현실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적극적인 너라면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웃었다.
그는 다시 눈을 뜨고 알렉스의 얼굴을 확인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 현실 같지 않은 현실에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네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지금이 더 행복하단 생각이 들어서 다신 바뀌고 싶지 않아. 정말 미친 건지. 알렉, 네 몸 안에 있을 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 생각했는데, 지금이 더 행복하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
“죽는다는 말, 하지 마십시오.”
“그래. 정말 네가 날 생각해 주고 있구나. 죽을 만큼 행복해. 그래서 더 살아야겠지.”
정말 이건 생각지도 못했다고 중얼거린 칼리스토는 그를 다시 끌어당겼다. 정말 바라지도 않았다고, 바라본 적도 없다고 중얼거리며 입술을 붙였다. 다시 이어진 키스는 조금 전보다 더 진득했다. 알렉스는 피하지 않았고, 칼리스토는 집요했다. 사납게 입술을 빨아들이고, 입안을 휘저었다.
똑똑- 똑똑똑- 조금 전부터 문이 부서지게 흔들리고 있었다. 칼리스토는 여전히 신경조차 쓰지 않았지만, 알렉스는 몸을 흠칫 떨며 문을 흘낏거렸다.
“나한테만 집중해. 지금은.”
“…하지만, 칼. 급한 일인 거 같습니다.”
알렉스의 입술을 한 번 더 빨아들인 칼리스토가 낮게 으르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급해야 할 거야. 아니면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날 테니.”
옷을 추스르고 침대를 먼저 벗어난 알렉스는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더 뜸을 들였다가는 칼리스토의 심기를 거슬릴 수 있었으니까.
“데이커 백작.”
그는 조금 전과 달라진 알렉스의 얼굴을 보고 안도했다.
“혹시 폐, 폐하께서 혹시 깨어나셨는지…?”
“네, 깨어나셨습니다. 백작. 들어오십시오.”
들어오라는 말에도 백작은 쉽게 들어오지 못했다. 되려 더 겁먹은 표정으로 눈치를 봤다. 왜 그러는지 궁금한 알렉스가 그를 다시 불렀다.
“폐하는 깨어나셨습니다. 들어와서 고해도 됩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 알렉스 경?”
“네, 왜 그러십니까?”
백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마른침을 과할 정도로 꿀꺽꿀꺽 삼켰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이전의 알렉스 경으로 돌아온 건 괜찮은데…… 황제의 눈빛이 문제였다. 그는 분명 부상으로 아무것도 모를 텐데도 백작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몸을 움츠린 백작을 이끈 알렉스가 칼리스토 앞으로 데려갔다.
“폐하, 데이커 백작이 급한 일인가 봅니다.”
“물론 다급해야겠지. 그렇지 않으면…….”
칼리스토의 시선이 백작의 목을 향했다. 어디서 본 듯한 느낌. 일순 느껴지는 서늘한 감각에 백작의 손이 저도 모르게 목을 감쌌다.
“그래서?”
칼리스토의 물음에 겨우 정신을 차린 백작은 조금 전 제가 무슨 일로 왔는지를 기억해 냈다. 멍한 정신을 깨운 목소리가 주술사와 함께 있을 때의 누군가와 겹쳤지만, 서둘러 털어냈다.
“……폐하, 적군의 지휘관인 황태자가 위험합니다. 목숨을 살려야 하는데, 조금 위급한 상황이라 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주치의뿐 아니라, 다른 의원도 불러라. 전부 불러 끝까지 살려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내야 한다.”
“네, 폐하. 그, 그런데, 몸은 괜찮으십니까?”
“이까짓 거 가지고 내가 죽기라도 할까?”
“네? 아, 아닙니다.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백작은 바닥에 쿵- 무릎을 꿇었다. ‘절대 아닙니다.’라고 애절할 만큼 읊조리더니 머리를 바닥에 바짝 댔다. 
그런 백작을 칼리스토는 무심하게 지나치며 따라오라고 했다. 벌떡 일어난 백작이 먼저 문을 열고 안내했다. 복도에 나와 하인을 불러 지시했다. 성내뿐 아니라 마을에 있는 의원까지 모두 불러오라 지시하고 황제를 안내했다.
별관을 벗어나 깜깜한 지하 감옥에 도착하자 가장 안쪽이 사람들로 분주했다.
“배, 백작님, 목숨이 위험합니다.”
“어서 살려!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라.”
네가 죽고 싶지 않으면. 
백작은 마지막 말을 삼키며 황제의 눈치를 봤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인자하던 황제는 사라진 상태였다. 무감한 눈빛. 아무 감흥 없이 사람의 목숨이 위험한 지휘관을 보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섬뜩하기까지 한 모습에 백작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을 치고 말았다. 변방의 거인이던 제가. 허탈한 웃음뿐이 새어 나왔다.
‘도대체 뭐가 어찌 돌아가는 거야.’
백작은 다시 혼란해지는 마음을 접고 지휘관을 살폈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위독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마지막 숨 한 자락만 남겨져 있을 뿐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 백작은 어찌해야 할지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
“곧 죽겠구나.”
그의 미소가 진해졌다. 한기가 드는 팔을 감싼 백작의 귀에 다시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
“진즉 죽어 버리면 편할 것을.”
짧게 혀를 찬 칼리스토는 그의 상태를 확인하고 조소했다. 이미 지휘관은 한숨뿐이었다.
잠깐 생각하던 그는 손을 뻗었다. 뭔가를 작게 중얼거리며 그의 심장을 눌렀다. 곧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 지휘관이 컥 하고 거친 숨을 토한 후 다시 삼켰다. 백작은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황제의 손끝을 바라봤다.
초대 황제부터 피에 내려오는 마법이 있단 말만 들었던 차였다. 이렇게 직접 보게 될 줄이야. 그는 경이로운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입을 떡 벌렸다.
“폐, 폐하께서…….”
감동에 젖은 백작을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깨웠다.
“잠시 연장한 거뿐이니, 의원들 전부를 붙여 숨통을 열어놔라. 다시 말하지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숨이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
“네, 네! 폐하.”
백작은 하인들을 따라 감옥으로 내려오고 있는 의원들을 급하게 불렀다.
“어서, 어서 이쪽으로.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려내.”
열 명이 넘는 의원들이 전부 들러붙었다. 그들은 황제의 눈치를 보며 살리기 위해 애를 썼다. 이미 피를 많이 쏟은 상태라 피를 보충해야 했다. 피가 맞는 사람부터 찾아야 했다. 다른 이들의 피에 거부 반응을 보이면 안 되니 신중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휘관의 피를 조금 뽑아 맞는 피부터 찾으려 더욱 분주해졌다. 그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다급하게 움직였다.
일련의 과정을 보던 칼리스토는 몸을 돌렸다. 바짝 따라붙은 알렉스를 보더니 비소가 미소로 바뀌었다.
“폐하, 괜찮겠습니까?”
“당장 죽지는 않겠지. 조금 더 연장한 거뿐이니. 평생 침략한 걸 후회하는 것도 재밌을 터.”
평생 죽을 때까지 침략을 후회하게.
이건 알렉스의 방식이었다. 만약, 칼리스토였다면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단칼에 목을 베어 버릴 터였다.
그는 늘 그렇게 했고, 지금까지 망설이거나 주저해 본 적 따위 없었다.
하지만, 알렉스의 요구이기도 했고, 저 또한 이렇게 함으로 사는 동안 고통을 주고 싶기도 했다. 그의 방식이 마음에 들던 참이었다.
“칼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찌하신 겁니까?”
알렉스는 몹시 신기해했다. 그 앞에서 한 적 없으니, 알렉스 또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칼리스토는 말없이 씩 웃었다. 그저 별거 아니었다. 제 몸에 흐르는 마력을 잠깐 흘린 것뿐이니.
“있으나 마나 한 거다. 쓸모도 없는. 이렇게 써먹을지 몰랐지만. 인간이 퇴화하듯 초대 황제에게 있던 힘이 점점 사라져 지금은 자유롭게 쓸 수 없기도 하고, 어찌 쓰는지도 모르기도 하지. 사실 쓸 줄도 모른다. 오늘은 한 번 시험 삼아 해 본 거지만.”
사람 목숨을 가지고 그는 시험을 운운했지만, 알렉스에게는 멋지게만 보였다.
“칼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역시 폐하십니다.”
너무 멋있다며 알렉스는 제가 다 뿌듯해했다. 그 모습에 칼리스토는 알렉스의 마음에 들게 행동한 저를 속으로 칭찬했다. 사실, 그놈이 죽을 수도 있었다. 어릴 때 시험 삼아 써 보다 시종이 죽었으니까.
보통 사람이면 견디지 못하고 바로 죽었겠지만… 하긴 어차피 죽어도 상관없는 놈이었다. 어쩌면 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는지도.
“알렉스, 잠깐 성문으로 가자.”
“……네?”
“에리카 후작을 봐야지. 가는 길 황제로서 배웅은 해야지.”
왠지 모르게 칼리스토의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잠깐 뭔가 생각하던 알렉스가 제가 그만 에리카 후작을 폐하의 명도 없이 처리하고 말았다고 고개를 숙였다. 
큰 걸음으로 걷던 칼리스토는 걸음을 멈추고 상체를 돌렸다.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알렉스를 보고 그를 끌어당겼다.
“알렉, 이 점 한가지는 분명히 하겠다. 네가 아니었대도 내가 죽였을 것이다. 그 시기만을 재보고 있었을 뿐이니까. 너를 봐서 지금껏 살려둔 것뿐. 후작의 목숨은 네 손에 달려 있었어. 지금까지 목숨을 연장한 것 또한 너다. 너만 아니었다면 진즉 죽여 버렸을 것이다. 죽을 짓을 한 건, 분명하니.”
“…칼.”
“난 기뻐. 네가 내 목숨을 위협하는 후작을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게 그리 기쁠 수가 없다. 알렉, 네게 난 이제 첫 번째구나. 그 누구도 대처할 수 없는.”
“……후작은 죽어 마땅했습니다. 저를 죽이려고 한 겁니다.”
“하지만, 그게 나였지. 후작은 늘 널 노렸어. 그래서 매번 죽여 버리고 싶었지. 그나마 목숨을 이어 놓은 건 내가 죽여 버리면 네가 어딘가로 도망갈 것 같아서였다. 난 그게 가장 두려운 일이었으니. 그래서 죽여 버리고 싶은 걸 참은 것뿐이야.”
네게 미움받은 건 죽는 것보다 싫으니까.
칼리스토의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를 용케 알아들은 알렉스는 한 발의 틈을 없앴다.
‘미안합니다.’ 그는 낮게 속삭이며 칼리스토를 끌어안았다.
이제는 다른 이의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럼없이 다가와 주는 알렉스의 낯선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싫지 않고 좋기만 한 건, 이어진 마음 때문이었다. 칼리스토는 허리를 조금 숙여 알렉스의 어깨에 턱을 댔다.
괜찮으십니까? 알렉스의 염려하는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전 같았으면 탁 트인 장소에서 그의 손조차 잡을 수 없었는데, 안겨 있는 지금 알렉스는 되려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정말 내가 살아 있는 거지?”
칼리스토의 목소리가 심각했다.
“네, 물론입니다. 살아 주셔서 감사할 정도입니다. 만약, 칼이…….”
그는 다음 말을 잇지는 않았지만, 이미 들은 것만 같았다. 칼리스토는 이마를 비비다 알렉스의 목에 입술을 댔다. 움찔하긴 했지만, 가만히 있는 모습 또한 당장 미칠 정도로 안고 싶었다.
“지금, 하아… 안고 싶어. 네 안에 넣고 싶다.”
“…….”
알렉스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칼리스토는 한동안 몸을 들썩이더니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의 표정을 살피더니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어 올렸다. ‘네게 보여 주고 싶은 것 먼저’라고 중얼거린 칼리스토는 성문을 향해 다시 걸었다.
어느새 뛰어온 백작이 뒤를 따랐다. 
“기어코 한 줌 숨을 이었나 보군.”
“네? 네네. 폐하. 숨이 넘어가기 전에 살렸습니다.”
“기껏해야 3년이나 살겠지. 아니면 그전에 죽을 수도 있고. 하루하루 저주하면 살게 될 것이다.”
눈치를 보던 백작이 ‘아, 그것까지도 아시다니.’ 하며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폐하는 이제는 제게 신 같은 존재였다. 갈수록 짙어지는 존경의 눈빛을 한 백작 곁으로 알렉스가 다가왔다.
“이안과 제프는 좀 괜찮은지 궁금합니다.”
“네? 아니. 괜찮네. 다만, 마비된 곳 외에 검에 맞은 자상이 좀 많아. 그거야 늘 있는 일이니 금방 나올 수 있습니… 아니, 금방 나을 테지.”
다시 떠진 눈꼬리에서 붉은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져 내렸다.
“이얍.”
칼리스토는 비명 같은 기합을 넣고 조금 전까진 장난이었단 것처럼 쇄도했다. 그는 오로지 하나의 목표인 지휘관의 팔과 다리를 집요하게 노렸다. 다시 맞붙는 검을 보고 있던 알렉스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화살 하나쯤 맞는다고 목숨이 사라진 게 아니니 화살을 쏜 놈들부터 처리해야 했다. 그들을 남겨두면 뒤탈이 있을게 분명 한 일.
그는 조금 전 화살이 날아온 곳으로 뛰어가 놈들을 하나하나 처리했다. 전부 정리하고 나자 가장 마지막에 에리카 후작을 향해 달려가 검을 높이 쳐들었다. 그의 어깨에서 떨어진 핏물이 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폐, 폐하! 제게 왜, 왜 이러십니까?”
“검을 들어라.”
그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에리카의 검을 가리켰다.
“만약, 들지 않으면 그냥 베어 버리겠다.”
낮게 읊조리는 말에 에리카는 창백해진 얼굴로 입 안 여린 살을 잘근잘근 씹더니 검을 들어 올렸다.
알렉스는 잠깐의 시간을 두고 검을 내리그었다. 단, 한 번의 손짓에 에리카의 검이 멀리 날아갔다. 완전히 공포에 젖은 후작은 무릎을 쿵 꿇었다.
“폐, 폐하, 왜, 왜 이러십니까?”
“내가 직접 봤다.”
“……뭐, 뭘 말입니까?”
“네가 이 소란을 틈타, 알렉스를 죽이려 한 걸, 내가 직접 봤다는 것이다.”
그는 더는 듣기 싫다는 듯 에리카를 향해 팔을 뻗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뚝-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에리카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숨이 끊어졌다. 
심장을 관통하는 검에 미처 아픔을 느끼기 전이었다. 그녀의 몸이 끈 떨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뚝 떨어져 내렸다.
하아하아- 알렉스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어깨에 꽂혀 있는 화살을 달고 무리하게 달린 후 또다시 검을 휘둘러 버틸 힘이 없었다.
그는 호흡을 고르며 칼리스토를 향해 겨우 고개를 돌렸다. 이미 처리했는지 평소 갈색이었던 얼굴이 하얘진 채 뛰어오고 있었다. 점점 커지는 그의 모습을 향해 알렉스는 힘겹게 손을 뻗었다. 
뛰어온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덜덜 떨리는 그의 손을 힘없이 마주 잡았다. 두 손이 맞닿은 순간, 알렉스는 그의 눈을 마주 봤다.
공포에 젖은 눈. 제 목숨이 사라져도 눈 한번 깜빡이지 않던 사람이…… 완전히 공포에 잠긴 눈으로 울부짖었다. 그의 짐승 같은 포효소리를 들으며 알렉스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아아악! 알렉! 아악! 안돼! 차라리 내가…….”
“…….”
답이 없는 알렉스를 틈 없이 끌어안은 칼리스토는 울부짖었다. 남들 앞에서 한 번도 울어 본 적 없는 사내가 눈물을 줄줄 쏟아내며 그를 애타게 불렀다. 
“알렉스, 알렉스… 일, 일어나. 제발. 눈을 떠.”
칼리스토는 알렉스를 끌어안고 그의 얼굴을 애타게 쓸어내렸다.
“알렉스 경! 빨리! 성으로!”
안은 채 울고만 있는 칼리스토를 데이커 백작이 흔들었다. 그런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거칠게 몸을 흔들었다. 
당장 폐하를 모시고 성으로 가 상처를 살펴야 하는데도 그는 완전히 이성을 잃고 있었다. 황제의 몸을 떼어 놓으려 했지만, 어찌나 힘이 센지 떨어지지 않았다.
“알렉스 경! 빨리 폐하를 성으로 모셔야 한다. 그래야 살릴 수 있다.”
산다는 말 때문인지, 흔들리던 눈동자에 초점이 조금씩 돌아왔다. 칼리스토는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데이커 백작을 바라봤다. 언제 울부짖고 멍해 있었냐는 듯, 그는 또렷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야인족 마을에 있는 주술사를 데려와라. 함께 성으로 돌아간다.”
“……주술사?”
데이커 백작은 주술사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알지도 못하는 주술사를 어찌 데려갈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런 그에게 다시 명령이 이어졌다.
“데이커 백작은 이곳을 모두 불에 태워 버리고, 살아 있는 이들은 한, 놈도 빠짐없이 성으로 데려가라. 나는 폐하를 모시고, 성으로 돌아가겠다.”
“…….”
‘네’라고 해야 할 분위기라 데이커 백작은 입술이 열지 못했다. 그는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 전에 다시 칼리스토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에리카 후작의 시체는 성으로 끌고 온 후 목을 잘라 성벽에 걸어라.”
말을 멈춘 칼리스토는 알렉스를 안고 병사를 불렀다.
“말을 가져와. 내가 직접 안고 가겠다.”
“……네, 네!”
엉거주춤 말의 고삐를 건네는 병사의 손에서 그는 고삐를 빼앗아 들었다. 한 번에 말 위에 올라타고 멍청하게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데이커 백작을 불렀다.
“이곳에 온 길은?”
“이, 이쪽으로…….”
백작은 말을 잇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팔을 쭉 뻗었다. 아버지를 따라 이곳에 자주 온 적이 있었다. 산을 뛰어다니며, 훈련을 빙자한 강행군을 했던 곳이었다. 마침 깊숙한 곳까지 말이 들어올 수 있어 몇 번 와 봤던 곳이었다.
초대부터 내려져 오던 백작가의 훈련은 모든 산과 지리를 익혀 두는 게 기본이었다. 그건 지금의 두 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전수해 주고 있었다. 이건 변경백을 지키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저, 저기 끝에 있는 벼, 병사 뒤로 가시면 외길이 하나 나오…… 나옵니다. 그 길을 쭉 가시면 됩니다. 외길이라 찾기가 쉬우실 거, 겁니다.”
칼리스토가 길을 살피자 백작은 저도 모르게 그를 살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황제를 안고 이곳을 떠나는 그의 등을.
“도대체 이게….”
늦은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은 황제를 찾아 모든 기사를 움직이던 중이었다. 다른 이보다 우선시 되는 건 제국의 황제였다. 그 어느 것보다 황제의 목숨은 중요했다.
황제를 찾아 전 기사와 병사를 움직이던 중 야인족을 생포했다. 그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곳을 찾는데 좀 더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운이 좋게도 그들은 황제가 간 곳을 자세히 안내해 주기까지 했다.
이곳에 도착해 황제를 발견하고, 그때부터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랬는데…….
입을 떡 벌리고 알렉스 경의 뒷모습을 살피던 데이커 백작은 혼미해지는 정신을 깨웠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려 기사를 불렀다.
“야인족은 마을로 돌려보내고, 그들의 주술사를 찾아 성으로 데려와라. 이곳은 깨끗하게 정리하고 지휘관과 살아남은 병사와 기사는 포박하여 성으로 끌고 온다.”
“네, 백작님.”
백작은 느린 시선으로 주변을 살폈다. 이안과 제프는 기사들의 부축을 받아 먼저 이곳을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들 주변으로 쌓인 시체의 산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황제와 알렉스 경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걸 들었던 바도 있었고, 검을 나눠 본 적도 있었다. 실력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이토록 많은 이들을 상대로 거의 정리하다니. 정말 대단하군, 그는 혼자 말을 몇 번이고 중얼거리며 기사에게 다가갔다.
이곳을 빨리 정리하고 성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는 바쁘게 뛰어다녔다.
“지난번 봐주지 말고, 눈을 파 버렸어야 했어. 망설이면 꼭 뒤탈이 있는 법이지.”
칼리스토의 중얼거림에 제프는 급히 마른침을 삼키고 고개를 숙였다. 기시감이 들었다. 그럴 리는 없지만…… 황제에게서 며칠 전의 알렉스 경이 겹쳤다. 저도 제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기사의 감이 경종을 울려댔다.
“폐하, 어서 가셔야 합니다. 백작이 가신들을 소집해 놨을 겁니다. 늦기 전에 가셔야 합니다.”
재촉하는 알렉스의 목소리에 칼리스토는 중얼거림을 멈췄다. 다시 한번 어서 가셔야 한다는 눈빛을 본 칼리스토는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경고의 말은 잊지 않았다.
“두 눈 다 사라지기 전에 조심해야 할 것이다. 모름지기 눈이란 아무나 보라고 있는 게 아닐 테니 말이다.”
“…….”
묵직한 말은 진심을 듬뿍 담고 있었다. 말의 무게에 눌린 제프는 일어나지 못하고 황제와 함께 사라지는 알렉스의 너른 등을 보다 고개를 숙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방금은 정말 동경이었다. 알렉스 경에 대한 동경. 
‘정말 동경뿐이야?’
……글쎄. 제프는 두 번째 마음을 알아채기도 전에 꺾이고 말았다. 그는 성년이 되고, 사랑이 뭔지 깨닫기 전에 좌절부터 맛보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사랑은 너무 어려운 풀지 못한 매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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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uling update: Apr 07,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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