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몰이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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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너를 찾았다.’
칼리스토는 길게 숨을 들이켰다. 떠도는 공기에 그리운 알렉스의 체향이 느껴졌다.
몇 번 더 숨을 들이켠 후 평화로운 마을을 눈에 담았다. 잠시 후면 깨질 새벽의 평화로운 마을이라니.
“기다려.”
그는 명령을 기다리는 기사들을 향해 짧게 지시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마을은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새벽이라 그런지 조그마한 마을은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무척이나 조용했다.
제국의 황제로 살아온 그를 여기까지 부른 건… 그만의 기사 알렉스 네이트였다. 한 달 전에 도망가 이곳에 숨어 지내는.
알렉스를 생각하자, 칼리스토의 눈동자가 반짝 빛이 들어왔다.
모든 것을 버리고 수도를 떠난 알렉스. 
황제인 칼리스토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첫날밤은 깊은 상처로 남아 버렸다. 그와의 행복한 나날을 꿈꾸며 귀족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그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억지로 밤을 함께 보내서? 아니면 울어 대는 너를 새벽까지 안고 또 안아서? 하지만, 너도 좋아서 매달렸는데. 도대체 왜?’
수천, 수만 번을 복기하고 또 복기하지만, 어떠한 결론도 내릴 수 없었다. 다만, 한가지 위안이라면 알렉스가 그를 버리고 도망갈 리는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칼리스토를 버리지 않을 거라는… 아니, 이유 따위 필요 없었다. 그렇게 믿기로 했으니까. 세상의 모든 것을 없애 버려 사실로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폐하, 알렉스 경이 마지막으로 만난 이는 에리카 후작님이십니다. 두 분이 세 시간 동안 대화하셨다고 합니다.’
도망가기 전, 알렉스의 사촌이기도 한, 에리카 후작과의 긴 대화, 그 후 한 시간 만에 알렉스는 황궁을 떠나 흔적을 지우며 사라졌다. 그의 사촌인 에리카를 만난 직후, 일어난 일이었다.
칼리스토는 오히려 기뻐했다. 둘의 첫날밤이 원인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기뻐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에서 검을 꺼내 회의 탁자에 꽂아 넣었다. 기쁨의 칼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검 손잡이가 흔들렸다.
‘그래, 그러니 다시 잡아 와 두 번째 첫날밤을 보내면 된다. 매일이 첫날밤이 되도록.’
그는 느리게 주변을 살피다 시선을 내려 다시 마을을 담았다. 잠시 후, 서늘하게 굳은 입술을 움직였다.
“마을 주변을 전부 에워싸라. 단,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서서히 안쪽으로 몰아.”
“네, 폐하.”
기사들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풀벌레조차 울지 않는 것이 제 목숨 아까운 줄 아는 모양이었다.
그는 고개를 조금 들어 올려 하늘 끝이 점점 새벽빛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러던 중에도 날카롭게 벼려진 눈은 깜빡임 조차 잊었다.
‘보고 싶구나, 알렉스.’
그의 푸른 눈이 어둠에 깊게 잠겼다가 번쩍 뜨였다. 제국 서쪽 평화로운 작은 마을을 다시 한번 확인한 그는 느리게 말을 움직였다.
“마을 광장으로 모두 끌고 나와. 전부. 한 놈도 빼놓지 마라.”
“네, 폐하.”
백여 명의 기사들이 마을 외곽에서부터 서서히 좁혀 들었다. 마치 사냥터에서 사냥감을 몰 듯 긴장감이 바닥에 깔렸다. 위험을 감지한 것처럼 짐승의 울음소리조차 잦아들었다.
그들은 가장 바깥에 있는 집부터 한 집씩 거칠게 문을 열었다. 멋모르고 자는 이들을 질질 끌고 광장을 향했다. 평화로운 마을은 어느새 공포에 젖은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
한 여자가 갓난아이를 안은 채 맨발로 도망치다가 기사에게 목덜미가 잡혔다. 그들은 거친 손길로 반항하는 이들을 제압해 마을 중앙을 향했다. 
그 뒤를 황제 칼리스토의 말이 유유히 따랐다.
흑마를 탄 황제가 다가오자, 기사들이 사람들을 치워 길을 만들었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길 위로 도도하게 고개를 바짝 쳐든 말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걸었다. 
“워워, 멈춰라.”
칼리스토는 중앙 위에 말을 세우고 사람들을 아래로 내려다봤다.
잠시 후, 그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아무리 살펴도 알렉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쓸모없는 30명가량의 마을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짜증 나는 손짓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이제 막, 떠오른 해가 제국 황가의 상징인 황금빛 머리카락을 반짝 물들였다.
“폐… 폐하! 저희는 모릅니다.”
“무엄하구나!”
가장 연로해 보이는 노인이 입을 열자 기사가 걷어찼다. 누구를 찾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마을엔 없다며 이마를 바닥에 쿵 박기까지 했다.
아주 가관이었다. 쿵쿵쿵쿵- 노인은 더 크게 머리를 박았다. 마치 이리하면 성군이라 추앙받는 황제의 관용이 이어진다고 여긴 탓이었다.
“시끄럽군. 너무 시끄러워. 내가 듣고자 하는 목소리는 이게 아닌데 말이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말에서 내린 칼리스토의 검이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방금까지 관용을 바라던 노인의 머리가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분수처럼 쏟아지는 피에도 멈추지 않은 검은 옆으로 옮겨갔다. 한 명 한 명 차례로 베어내는 검이 거침없었다.
“아악! 윽! 사, 살려….”
“악! 제발 살려… 악!”
성스러운 신처럼 숭배하던 눈동자에 빠르게 공포가 스며들었다. 격한 공포감에 줄줄 눈물을 흘리면서도 벌벌 떠는 입술은 비명조차 삼켰다. 순식간에 사위가 조용해졌다.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 핏줄기가 칼리스토의 얼굴과 정갈한 푸른색 망토를 물들였다. 그는 한 명씩 베어가며 다시 느리게 옆으로 이동했다. 솟구치는 피 분수에도 그의 무료한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다시 핏빛을 가득 머금은 그의 칼이 높이 치켜드는 순간, 나무 뒤에서 누군가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안녕, 알렉스.”
황제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그가 저지른 끔찍한 상황을 잊을 정도로 상큼했다. 사뭇 소름이 끼쳤다. 공포에 질려, 우는 아이의 입을 아이 엄마의 떨리는 손이 억지로 막았다.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면 다음은 제 차례가 될 것이다.
“폐하….”
알렉스의 커다란 몸이 두 모자의 앞을 가로막고 멈췄다. 공포만이 깔린 광장에는, 이제 숨소리마저 잦아들었다.
칼춤을 췄던 황제의 칼이 알렉스의 검은 머리카락을 가르고 목에 생채기를 남긴 채 멈췄다. 가차 없던 칼을 멈추게 한 검은 머리카락의 커다란 남자에게 일제히 시선이 집중되었다.
방긋 웃은 칼리스토는 검을 집어넣었다.
“안녕, 알렉스. 오랜만이야. 한 달만인가? 아니, 아니야. 내일이 한 달이니까.”
“폐하! 차라리 저를 죽여 주십시오.”
“그래야지. 내게서 도망갈 때는 그 정도 각오는 했을 테니까. 아니, 넌 항상 그랬어. 제 목숨보다 남의 목숨을 더 챙겼지. 짐을 두고서도 말이다.”
황제의 미소가 짙어지자 조금 전 얼굴에 튄 핏방울이 꿈틀거렸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일그러졌다.
고개를 숙인 채 움직임이 없는 알렉스에게 그는 손을 내밀었다.
“잡아. 알렉스 네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무려 한 달 동안 널 찾아 제국 곳곳을 뒤졌지. 너를 찾으려고.”
“여기서…….”
“그만! 짐은 네게 말하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니 앞으로 네 입에서 나올 말은 전부 내게 애원하는 말만 나오는 게 좋을 거다.”
황제의 단호한 목소리에 더 소름이 끼쳤는지,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의 입이 다시 틀어 막혔다. 아이 엄마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감히 황제를 향했다.
공포와 숭배가 뒤섞인 눈동자가 반짝이는 황금빛 머리를 스쳤다. 멀리서도 훤히 보이는 미인형의 아름다운 얼굴은 무섭도록 창백하고 핏기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빛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은 신의 모습이었다.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당장 죽을 수도 있는 걸 알면서도 시선이 붙잡혀 움직이지 못했다. 감히 고개를 들어 마주 볼 수 없을 정도의 신비스러운 외형에 공포로 가득한 사람들의 눈동자가 위를 향했다.
“악!”
칼리스토는 알렉스가 잡지 않은 손을 거둬들여, 순식간에 검을 뽑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또다시 숨이 사그라드는 비명에 알렉스는 벌떡 일어섰다. 그는 서둘러 황제의 손을 꽉 잡아 매달렸다.
“네가 손을 잡지 않아서, 내 손이 비었구나.”
“……죄, 죄송합니다, 폐하.”
칼리스토는 검집에 검을 집어넣고 먼저 말에 올라탔다. 나긋한 표정으로 다시 손을 뻗었다. 희고 가는 긴 손가락. 그 손끝에 알렉스의 굳은살이 잔뜩 베인, 상처 가득한 손이 얹어졌다. 
잡힌 손에 힘이 가해지자, 커다란 알렉스의 몸이 한 번에 말 위로 올라갔다. 그제야 칼리스토의 입술이 만족감에 잔뜩 휘어졌다.
근육질로 가득 찬 알렉스의 등을 한 손으로 야릇하게 쓸던 칼리스토는 다시 소리 내 웃었다. 한쪽 팔로 알렉스를 감싼 그는 느리게 말을 움직였다. 
‘이제 다시 손에 넣었다. 다신 놓지 않을 것이다.’ 
낮게 중얼거린 칼리스토는 알렉스의 몸이 휘청이자 손에 힘을 주고 속삭였다.
“내게 기대야지. 더 뒤로 와.”
상황에 어울리지 않은 다정한 목소리. 거부할 수 없는 명령에 알렉스의 몸이 뒤로 기대졌다. 가는 몸에 기대는 기사의 커다란 덩치에 황제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이곳을 정리해라. 전부 죽….”
“폐하!”
알렉스의 상체가 급하게 뒤로 돌려졌다. 그는 잔인한 명령을 내리기 직전인 칼리스토의 손을 맞잡고 끌어내렸다. 그것도 부족했던지, 감히 황제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볍게 맞댔다.
갈라진 입술에서 뻗어 나온 두툼한 혀가 입술 주변에 있는 핏자국 위를 달래듯 움직였다.
꿀꺽- 알렉스의 목울대가 일렁이자 칼리스토는 설핏 웃었다. 입술이 닿는 순간부터 진득하게 들러붙던 눈이 아래로 휘었다. 그의 핏기 없는 뺨이 붉은 기를 머금더니 한숨 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좋아. 네가 어찌 나오나 보려고 한 것뿐이니. 이렇게 귀여움을 떠니, 용서해 줘야겠구나.”
칼리스토는 알렉스의 반응에 만족하고 고개를 돌렸다.
“시체는 묻어 주고 마을은 그대로 둬라. 바로 수도로 돌아간다.”
“네, 폐하!”
흑마는 빠른 속도로 달렸다. 혼돈의 도가니가 된 마을을 벗어나더니 숲길을 질주했다. 서쪽 마을에서 수도에 있는 황궁까지 빠르게 달린다 해도 네 시간은 넘게 걸리는 먼 거리였다. 
말은 거침없이 내달렸다. 당장에라도 황궁으로 가고 싶은 주인의 급한 마음을 읽고, 달리고 또 달렸다.
“폐하, 피라도 좀 닦아드리겠습니다.”
칼리스토의 가슴에 처박힌 알렉스의 소곤거림에 빠르게 내달리던 말이 우뚝 멈췄다. 말은 거칠게 앞발을 들어 올려 푸드덕거렸다. 제 성질을 참지 못하고 거친 앞발을 몇 번 굴려댔다.
“워워. 진정해.”
칼리스토는 말을 진정시키고 손을 들었다.
“잠깐 쉬고 갈 것이니 근처에 있는 가장 가까운 숙박 시설을 빠르게 찾아라.”
어느새 뒤를 따르던 기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알렉스의 말 한마디에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황제의 눈동자가 아래를 향했다. 얼굴 위를 부드럽게 움직이는 알렉스의 손짓 때문이었다.
황궁에 들어올 때와 다르게 기사의 정복이 아닌 평민들이 입는 허름한 옷소매로 감히 제 얼굴을 톡톡 두드리다니. 알렉스의 귀여운 모습에 그의 입매가 부들거렸다.
어쩌면 이런 모습을 보기 위해 한 달을 미친 듯이 찾은 건 아닐까.
“일부러 귀엽게 구는 건가? 내가 화내지 못하도록 말이다.”
“…아닙니다. 폐하의 아름다운 얼굴에 있어서는 안 될 얼룩이라 그럽니다. 이런 건 제게 어울리는 것들입니다.”
“하아- 알렉스.”
동굴을 긁어 나오는 으르렁거리는 부름. 알렉스의 커다란 근육질의 덩치가 흠칫 떨렸다. 그의 낮은 부름보다도, 엉덩이골 사이를 파고들려는 성기 때문이었다. 점점 크기를 부풀려 금방이라도 옷을 찢고 안으로 파고들 것만 같았다.
“당장에라도 네 귀여운 짓에 보답하기 위해 여기서 눕히고 싶구나. 그래야 분노가 사그라들 듯도 한데, 말이지.”
알렉스를 안은 칼리스토의 손에 점점 힘이 가해졌다. 빠져나갈 틈조차 없을 만큼 조여오는 감각에 그는 숨을 멈췄다. 황제의 푸른 바다빛 눈동자 색이 점점 짙어졌다. 그러더니 심해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았다. 알렉스를 볼 때마다 보이던 알 수 없었던 눈빛이었다.
황제의 몸이 점점 앞으로 숙어지다 멈췄다. 다각 거리며 다가오는 말발굽 소리 때문이었다.
“어디냐?”
“네, 이쪽입니다. 폐하.”
기사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허름한 건물 앞에 섰다. 그는 다급하게 걸어 금방이라도 낡아 쓰러질 거 같은 건물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미리 주인을 처리해 둔 곳은 건물 전체가 텅텅 비어 있었다.
“모두 나가라. 명이 있기 전에는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라.”
내부에 있던 기사들 전부가 밖으로 나가고 칼리스토와 알렉스 둘만 남았다. 
미리 기사들이 준비해둔 방 안으로 알렉스를 끌고 가더니, 욕실을 향했다. 
“제, 제가 씻겨 드리겠습니다.”
“단둘이 있을 땐 뭐라고 부르라고 했지?”
“…칼, 옷을 벗겨 드리겠습니다.”
“그래, 네가 원한다면야.”
칼리스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그가 원하면 뭐든 들어줘야 했다.
알렉스의 손길에 옷가지들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칼리스토의 집요한 시선이 들러붙었다.
“얼굴이 탔구나. 고생을 좀 한 건가?”
“마을에서 일을 좀 했습니다. 집 짓는 걸 돕고, 짐도 날랐습니다. 사람들을 돕는 건, 나름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칼리스토의 눈길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물론 칼과 함께 있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우린 어릴 때부터 항상 함께였으니까요. 산에 올라가면 황궁이 있는 동쪽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칼, 이제 다 됐으니 들어가십시오.”
알렉스로서는 최선의 표현이었다. 
“그게 보고 싶었다는 거야, 알렉스. 너도 나처럼 날 보고 싶어 한 거라고.”
“…….”
알렉스는 무릎을 꿇고 욕조 물을 확인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조악한 욕조에 칼리스토의 긴 몸이 잠기자 물이 참방거리며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나신의 몸을 길게 늘어트린 칼리스토는 알렉스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이제부터 벌을 내릴 거야. 넌 내 명 없이 내 옆에서 떨어졌으니까. 옷을 천천히 벗고 저기 조그마한 창문 옆에 서.”
“……칼.”
“당장 해. 내 화가 풀리기를 바란다면.”
알렉스는 그의 명을 따랐다. 느린 손짓으로 구멍 가득한 옷을 벗었다. 잠깐 애원하는 눈으로 칼리스토를 확인하다 단호한 눈빛에 다시 행동을 이어갔다.
“알렉, 천천히 해. 내가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네, 칼.”
알렉스의 팔에 걸린 옷이 느리게 바닥으로 툭- 떨어져 내렸다. 마지막으로 바지가 몸에서 떨어졌다.
“좋아. 그대로 걸어 벽까지. 크게 걷지 말고, 짧게.”
알렉스는 다시 말없이 걸었다. 그의 명대로 발끝이 닿을 정도의 보폭으로 걸은 후 벽을 보고 섰다.
“엉덩이에 힘 빼. 난, 네 엉덩이를 가장 좋아하니까. 그 모양 그대로 되게 해. 힘을 주면 동그란 모양이 흩어지잖아.”
“…….”
알렉스는 심호흡과 함께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서려 노력했다. 그의 명령이니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돌아. 천천히.”
칼리스토의 목소리가 격양되었다. 말끝에 흥분의 불꽃이 묻어나 활활 타오르기 직전이었다.
“아! 잠깐. 다시 돌아, 알렉스. 네 구멍을 확인해야겠구나. 누군가 사용한 흔적이 있는지 말이다.”
“저, 절대 그런 일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 믿을 수 없어. 그러니 다시 돌아서 구멍을 벌려.”
알렉스는 다시 몸을 돌렸다. 느리게 하는 명령에 최대한 속도를 늦추고 몸을 돌려 양손으로 엉덩이를 감쌌다.
“벽에서 조금 떨어져 허리를 숙여서 벌려. 그래야 더 자세히 볼 수 있으니까.”
뒤로 몸을 물린 알렉스는 허리를 숙이고 양손 가득 힘을 줬다. 잔뜩 벌어진 엉덩이 사이 구멍이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만 같았다.
“하아, 하아.”
칼리스토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는 구멍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제 성기를 길게 쓸어 올렸다. 이미 잔뜩 위로 솟구쳐 있던 팔뚝만 한 성기가 그의 손짓 한 번에 다시 크기를 부풀렸다.
그는 허리를 들썩이며 알렉스를 불렀다.
“이제 네 성기를 만지면서 이리 와. 너무 강하게 만지지 말고, 천천히 만지면서.”
“칼….”
“이제 직접 넣어 봐야 더 확실히 알 수 있으니까. 알렉, 천천히 성기를 흔들면서 이리 와.”
알렉스는 몸을 돌려 욕조로 다가갔다. 그날 밤, 반복된 학습 탓인지, 제 성기 또한 성성하게 서 있었다.
“좋아, 이제 전부 다 네 손으로 닦아 줘. 내 입술은 조금 전처럼 네 입술로 닦아 줘야겠지. 팔은 쓰지 말고.”
모든 것을 알렉스에게 내맡긴 칼리스토는 눈을 감았다. 시야가 차단되자 조금 전, 나체인 알렉스의 몸이 선명해졌다. 그러자 그의 손길이 더 또렷해졌다. 투박한 손길로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입술에 성기 끝에서 탁한 액이 흘러 버리고 말았다.
젠장- 그는 미칠듯한 만족감에 그르렁거렸다.
얼굴을 핥던 알렉스의 입술이 멈추자,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불렀다.
“입술, 내 입술도 닦아 줘야지. 멈추지 마.”
칼리스토의 얼굴 위가 어두워졌다. 가까이 다가온 알렉스의 뜨거운 입술이 입술 위를 핥았다. 이미 자국조차 없는 핏자국을 찾아 입술 위를 샅샅이 유영했다.
참지 못한 칼리스토의 손이 움직였다. 그의 손이 알렉스의 머리 뒤를 눌러 틈 없이 붙이고 순식간에 가늘고 뾰족한 혀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거침없이 움직인 혀는 집요하게 입안을 휘젓고 목구멍 끝까지 침범해 숨통까지 틀어막았다. 숨이 찬 알렉스가 컥컥거리자, 쉽게 그를 들어 올려 제 허벅지 위에 올렸다.
황가에만 내려오는 고귀한 피 때문인지 여리여리한 체형에 어울리지 않은 힘과 마법을 쓰는 황제는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 그 자체였다.
“……폐하… 아니, 칼.”
“이게 느껴져? 황궁까지 이대로 갈까? 내 화가 풀리길 바라는 건가? 그런데 어쩌지. 네 몸속에 들어가려 애쓰는 내 것이 내가 몹시 화가 났다는 증거인데 말이다. 내 몸처럼 화난 내 것, 그걸 느꼈으면 좋겠구나.”
“…네.”
칼리스토는 허리를 뭉근하게 돌리며 속삭였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말속에 담긴 경고는 그만큼 강력했다.
칼리스토의 손이 알렉스의 젖은 몸 위를 쓸어내렸다. 물을 잔뜩 먹은 촉촉한 몸이 부드럽게 쓸렸다.
젠장- 칼리스토는 다시 한번 사정감을 눌러 내렸다.
“이대로 갈까? 내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알렉 네가 원하면 어쩔 수 없지. 알잖아. 난, 네 말이라면 다 듣는 거.”
“…아, 아닙니다.”
“아니라고? 하지 말라고? 그럼 화난 채로 나가서 전부 죽….”
“그, 그 말이 아닙니다. 좋다는 말입니다.”
“그래야지. 잘했어, 알렉.” 
칼리스토는 알렉스의 등을 손톱 끝으로 긁어내렸다. 사랑스러운 아이 다루듯 이뤄지는 아픔이 느껴지는 손길에 알렉스는 몸을 움츠리며 그의 단단한 가슴에 기대 몸을 떨었다. 칼리스토는 고개를 숙이고 숨과 함께 말을 밀어 넣었다.
“알렉스, 이것만 말해 봐. 왜 도망갔어?”
“…….”
평이한 말이었다. 언제나처럼 듣는 부드러운 목소리. 그 안에 칼을 품고 있더라도 미성의 목소리는 언제나 알렉스의 심장을 아프게 했다. 
그는 제 주군에 대한 선택지가 없었다. 만약, 알렉스가 계속 황궁에 머문다면 황제의 비가 될 사촌을 배신하게 되는 일이었으니까.
‘알렉스, 잠깐이면 돼. 폐하가 네게 보이는 관심은 금방 사라질 거야. 일시적인 게 다 그렇잖아. 제국의 황제인 폐하께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일이 후사잖아. 넌, 후사를 낳을 수 있어?’
‘…아니요.’
‘네가 계속 이곳에 있으면, 폐하뿐 아니라, 제국 전체를 흔드는 반역자가 되는 거야. 넌 제국을 지키는 기사잖아. 설마, 반역자의 길을 걷고 싶은 건 아니지? 그러니 제국과 폐하를 지켜. 너만이 할 수 있어.’
‘…네.’
‘너와 폐하의 관계를 알면, 제국의 모든 귀족이 일어날 거야. 그럼 과연 폐하께서 황좌를 계속 지킬 수 있을까?’
‘그, 그건 안 돼요. 절대로. 폐하께 제가 누를 끼칠 수는 없어요.’
‘나도 네 맘 알아. 그러니 조금만 떠나 있어. 내가 폐하의 후사를 가지면, 그때 부를게. 약속해.’
그는 결국 사라지는 걸 택했다. 그가 사라짐으로 인해, 제국과 어릴 때부터 그의 전부인 황제를 지킬 수 있다면 그는 백번이고 떠나야 맞았다.
하지만, 칼리스토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는 기사였다. 기사는 검으로 지키는 자이지, 머리를 굴려 간언하는 자는 아니었다. 
‘이걸 도대체 어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알렉스는 쉬이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런 그를 기민하게 살피던 칼리스토는 다리 사이를 지분거렸다.
“내 알렉스가 왜 그랬을까. 왜 나한테서 도망갔을까? 다른 사람은 그래도 되는데 넌, 아니잖아. 우린 15년 전부터 약속했고, 넌 그러지 말아야 했어.”
칼리스토는 환하게 웃었다.
“아마, 네 사촌 에리카 때문이었겠지. 좋아. 변명 따위 필요 없어. 두 번이나 날 버린 널 어찌 혼내야 할까?”
“그, 그땐 버린 것이 아닙니다. 아카데미에 다녀야 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절대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어쩔 수 없는 건 없어. 결론은 네가 날 버렸다는 거야. 물론 지금은 알몸으로 내 앞에 있지만. 그래, 이게 현실이야. 꿈에서 보던 알렉스가 아니니까. 꿈이 아닌 거야. 현실의 널 만질 수 있는 건 오로지 나뿐이야. 네가 날 물에서 구했을 때부터 내겐 오로지 너뿐이었어. 넌, 이런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날 구하지 말아야 했어.”
“……칼.”
멈췄던 칼리스토의 손이 움직였다. 근육질로 가득한 알렉스의 엉덩이를 쓸어내리던 손가락 하나가 구멍 안으로 파고들었다. 좁아진 구멍이 손가락 하나도 버거워 자꾸 밀어내고, 토해냈다.
“하나도 버거워하는 걸 보면 정말로 누구에게 벌려준 건 아닌 모양이군.”
“……절대,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 으윽.”
고통인지 쾌락인지 알렉스의 엉덩이가 단단해졌다. 구멍을 들락거리는 손가락에 숨을 참고 눈을 질끈 감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칼리스토는 웃음을 터트렸다.
“꼭 네가 도망가기 전 우리 둘만의 첫날밤 같구나. 한 달 전, 그날도 꼭 이랬는데 말이다. 넌 그날도 초야를 처음 치르는 영애처럼 잔뜩 긴장한 채 엉덩이조차 벌리지 못했지. 들어 올리면 내리고, 또 내리고. 손바닥이 스칠 때마다 파들거리더니. 그래, 알렉. 난 그날을 하루라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 단, 하루도.”
수백, 수천 번 그날을 곱씹으며 네가 없는 날을 이렇게 버텼노라고, 그는 끊임없이 속삭였다.
그게 아니면 아마 난 또다시 미쳐버렸을 거야. 내가 미칠 수 있는 그 끝이 어딘지 나도 모르겠으니, 나도 보고 싶구나. 어디까지인지.
칼리스토의 혼잣말이 쏟아져 내렸다. 목덜미가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습한 숨이 섞인 말에 금방이라도 화상을 입을 것만 같았다. 뜨거웠다 일순 차가워지는 말일뿐인데, 마치 울고 있는 것처럼 입술이 멈추지 않았다.
“난 또 생각해. 내가 뭘 잘못했을까? 네 의사를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널 취해서?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생각하다 하나의 결론을 내렸지. 널 너무 귀히 여겨 네 의사를 들어준 내 잘못이라고. 이제 널 다시 만나면 다시는 밖에 나가지 못하게 황궁 안에만 가둬 둘 거라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노라고.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꽁꽁 싸매는 수밖에 없노라고. 그래, 무슨 짓을 해서라도.”
“칼…, 그러면 안 됩니다.”
“명심해. 앞으로 나 이외에 널 볼 수 있는 이는 없어. 넌 침대를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네 의사 따위 필요 없어. 네게 잘 보이기 위해 했던, 내 지난날을 이제는 지울 거니까.”
“칼, 제발.”
알렉스의 붉은 눈동자가 색이 진해졌다. 두려움이 깃든 눈빛을 본 칼리스토는 말없이 손가락 하나를 쭉 뻗어, 욕조 반대편을 가리켰다.
“알렉스, 이제 욕조 끝에 가서 엉덩이 벌려. 그날 그때처럼.”
그는 쉽게 움직이지 못하다가 체념하듯 칼리스토의 몸에서 떨어졌다. 반대편 욕조 난간을 잡고 망설임에 단단해진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그런 모습을 나긋하게 구경하던 칼리스토의 몸이 움직였다. 순식간에 물살을 가르고 엉덩이 뒤에 바짝 붙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과 다르게 엉덩이를 쓸어내리는 손길은 어딘가 서늘하면서도 뜨거웠다.
“나 이외에 누구한테 이렇게 벌려 준 적이 없단 거지?”
이제 쑤셔 박으면 알게 되겠지. 엉덩이를 쓸어내리는 데일 듯 뜨거운 손길과 반대되는 차가운 목소리였다.
“절대로 없습니다! 그날이 처음이었고 마지막이었습니다. 칼… 저는.”
“쉿, 그럼 말하지 마. 이제 확인하면 되니까. 다시는 멍청한 짓으로 널 놓치지 않을 거야. 난, 그렇게 결심했어. 널 가둬서라도 곁에 둘 것이라고.”
그는 스스로에게 맹세하듯 몇 번이고 중얼거리더니, 엉덩이를 만지작거렸다. 끈적한 손이 움직여 구멍 근처를 손톱 끝으로 긁어내리다 짝- 때리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그의 손가락 하나가 구멍 안으로 들어가 다시 안을 휘저었다.
“으윽! 윽, 칼.”
알렉스는 몸을 비비 꼬며 신음을 내뱉었다. 칼리스토는 그의 등 뒤로 몸을 겹쳤다.
“이제 황궁으로 가면 알렉스, 네가 할 일은 밤마다 나를 위해 다리를 벌리는 일이야. 명심해.”
칼리스토의 손가락 두 개가 구멍을 휘젓자 알렉스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채 신음만 토해냈다.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마치 긍정처럼 ‘으응’만을 중얼거렸다. 그저 양손으로 욕조 난간을 잡고 버티며, 들쑤시는 손가락에 하얘지는 머리를 끄덕였다.
“아파? 벌리지 않은 건 맞나 보군. 손가락 두 개에도 버거워하는 걸 보면. 알렉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널 옆에 붙잡아 둘 거야. 다시는 널 놓치지 않으려면 나도 어쩔 수 없어.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야.”
“그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칼, 에리카가.”
“에리카 후작이 뭐라고 했는데?”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 행동은 모두 칼의 안전을 위해서였습니다.”
“알렉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같아 분명히 말하지. 내게는 너 없는 어떤 곳도 필요 없어. 삶의 의미도 없단 말이지. 내 안전은 다른 이가 아닌 네게서 나오니까.”
네가 떠나면 널 죽여 버리고, 나도 죽어 버릴 거야.
들리지 않을 듯 중얼거린 칼리스토의 손가락이 세 개로 늘어났다. 조금 더 강하게 구멍을 들쑤시자 알렉스의 호흡이 끊어질 듯 다시 이어졌다.
“참아, 내 것이 들어가려면 이걸로도 한참 부족하니까. 한 번 받아봐서 알잖아. 지금 바로 박을까? 네가 고통에 허덕이면 내 화가 풀릴까? 응?”
“으윽. 윽.”
칼리스토의 들쑤시는 손가락과 함께 그의 성기가 구멍 주변을 찔렀다. 금방이라도 구멍 안으로 들어올 것처럼 귀두가 미끄러졌다 다시 구멍을 옆을 쑤셔대자, 손가락의 속도가 빨라졌다.
“윽. 제발… 처, 천천히 좀. 하윽.”
알렉스의 목소리에 고통과 쾌락이 섞였다. 구멍 안은 여전히 빡빡해 황제의 성기를 받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착실하게 쾌락을 느낀 귀두 끝에서 탁한 정액이 흐르고 말았다.
칼리스토의 미소가 짙어졌다.
“내 손가락 맛을 느껴서 다행이긴 한데. 내 허락 없이 가는 건 안 돼. 그건 용납할 수 없어.”
“죄송, 죄송합니다. 호, 혼자 만진, 만진 적이 없어서.”
숨을 헐떡인 알렉스의 말에 구멍 안을 쑤시던 칼리스토는 손가락 속도가 느려졌다. 
“넌 정말. 미워할 수가 없어.”
혼자 만지지 말라 명한 건, 그날… 흘러가듯 한 말이었다. 그걸 기억하고 있다니.
칼리스토는 기쁨의 탄성을 지르며 몸을 겹쳤다.
물기 머금은 몸이 부드럽게 뒤로 빠졌다가 찰싹거리며 다시 이어졌다.
금방이라도 엉덩이 사이를 가를 것처럼 단단해진 성기가 한층 더 부풀어 올랐다. 뜨거운 숨이 등에 내려앉음과 동시에 그의 손이 가랑이 사이로 파고들었다. 정액을 줄줄 흘려대는 알렉스의 성기를 움켜쥐고 길게 쓸어 올려 끝을 붙잡았다.
“구멍을 쑤셔 준 것만으로도 이렇게 되다니. 역시 넌 타고난 몸이야.”
“윽. 칼. 으윽. 제, 제발. 바, 방금 갔습니다.”
“이제부터 내 허락 없이는 싸지 마. 명심해. 나 이외에 누구도 너를 싸게 할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것을.”
“……네. 칼. 그러니.”
칼리스토의 손톱이 알렉스의 흥건한 귀두 끝을 갉작거렸다. 안으로 들어가려는 손톱이 귀두 끝을 긁어대고 잡아당겼다. 한참을 주무르던 손이 사라진 순간, 구멍 주변을 찔러대던 성기가 순식간에 안까지 한 번에 치달았다.
“악. 으윽. 윽.”
“쉬이, 내 알렉스. 금방 기분이 좋아질 거야. 자, 천천히 호흡해. 하아. 힘, 힘 빼라고.”
칼리스토는 알렉스의 구멍 안을 가득 채운 성기를 뒤로 느리게 빼더니, 다시 뿌리 끝까지 깊게 박아 넣었다. 감질났는지, 조금 숙어진 몸을 일으켜 세워 알렉스의 골반을 잡더니 빠르게 허리를 움직였다.
질꺽질꺽- 알렉스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그는 쉴 새 없이 허리를 움직였다. 열기가 진해질수록 푸르던 눈동자가 점점 탁한 심연의 색으로 변했다.
물에 젖은 살갗이 부딪히는 소리가 건물 밖으로 새어 나갔다. 그런데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되려 손끝으로 알렉스의 기둥을 말아쥐고 정액을 분출하지 못하도록 막아 신음을 키웠다.
“제발…, 허락을… 으윽, 제발.”
“안돼. 하아…. 무조건 같이. 윽.”
칼리스토는 같이 가는 게 아니면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손을 풀지 않았다. 빠른 허리짓에 알렉스의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거친 추삽질로 허름한 나무 욕조가 삐걱거렸다.
“아아, 내 사랑 알렉스.”
“칼. 제, 제발. 읍.”
알렉스는 거침없이 흔들리는 몸을 따라 정신까지 하얘졌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솟아오른 성감, 분출하지 못한 정액으로 고통과 쾌락을 동시에 느꼈다. 그는 결국, 음탕하고 야한 소리를 내며 다리를 꺾었다. 
욕조 바닥으로 넘어가는 알렉스를 붙잡은 칼리스토는 성기를 밀어 넣는 걸, 멈추지 않았다.
되려 등 뒤로 몸을 겹치고, 목덜미를 깨물어댔다. 완전히 바닥으로 쓰러지려는 알렉스를 끌어당겨 뒤집어 마주 봤다. 고개를 숙여 어깨를 빨고, 유두를 꼬집으며 뭉근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아윽, 헉, 저, 정말 한계입니다. 허락, 허락을.”
알렉스의 신음이 되려 칼리스토의 자극제가 되고 말았다. 고통과 쾌락에 일그러진 알렉스의 얼굴에 그는 미친 듯이 허리를 움직였다.
질꺽이는 소리가 욕실을 울리자, 짐승처럼 신음하며 가슴을 물어뜯었다. 이를 박아 넣고 뜨거운 혀로 유두를 굴렸다. 
살갗을 유영하는 입술에도 그의 허리의 속도는 전혀 줄지 않았다. 알렉스는 강렬한 쾌감에 그를 밀어내려 바르작거리다가 손을 들어 올리지 못하고 미끄러트렸다.
“허, 허락을 제발… 칼…, 악!”
“하아.”
빠르게 움직이던 칼리스토의 허리가 멈췄다. 사정감을 참으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사정하고 말았다. 알렉스의 귀두 끝을 놓은 그는 후희를 즐기듯 가슴 주변을 세게 빨아들였다.
“으읍. 끄읍. 칼.”
“하아, 하아. 알렉스, 내 사랑.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네가 알아줬으면 해.”
칼리스토의 뜨거운 입술이 알렉스의 가슴 주변에 울혈을 남기더니 다시 이를 세워 물어뜯었다. 엉망인 잇자국들이 하나씩 새겨졌다. 
잔 열기에 떨던 알렉스는 겨우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했다. 하나하나 만족스럽게 울혈을 새기던 칼리스토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는 느리게 고개를 숙이다 멈칫했다.
조금 전, 한 번의 사정으로도 꼿꼿하게 서 있는, 굵은 성기에서 시선을 떼어 내지 못했다.
“……카, 칼, 이, 이제 조금 쉬시는 게 어떨, 어떨… 하윽.”
“이걸 보고도? 방금 너도 이걸 봤잖아.”
알렉스의 시선을 느낀 그는 제 성기를 손으로 쭉 훑었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정액이 얼마 남지 않는 물 위로 후드득 떨어졌다. 몇 번 더 쓸어올리자 그의 성기에 힘줄이 꿈틀거렸다.
칼리스토는 입꼬리를 당겨 웃더니, 순식간에 다시 구멍 안으로 성기를 밀어 넣었다. 빠른 움직임에 다시 알렉스의 몸이 들썩였다.
“난, 지금 해야겠어. 정액을 잔뜩 싸질러 네 온몸을 내 정액으로 덕지덕지 발라줄 거야. 이게 꿈이 아니란 걸 알아야 하니까.”
“…….”
칼리스토는 바로 움직이지 않고 허리를 뭉근하게 돌렸다. 집착이 묻어나는 허리짓에 알렉스의 엉덩이가 파르르 떨렸다. 첫날밤 찾아낸 알렉스가 좋아하는 곳을 찾아 허리를 돌리고, 찔렀다.
“한 번으론 내 화가 풀리지 않아. 계속 널 가져야 내가 숨을 쉴 수 있어.”
“…하, 하지만, 여긴.”
“알렉, 이 소리 들려? 처음에는 빡빡하더니 지금은 훨씬 부드러워졌어. 부드러운 소리가 나. 이 소리. 나를 미치게 하는 소리야.”
“네…. 잘 들립니다.”
조금 전보다 훨씬 끈적한 소리가 났다. 그걸 음미하듯 칼리스토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사납게만 움직이던 것에 비하면 여유로운 몸짓이었다. 허리를 뭉근하게 돌렸다가 느리게 뒤로 빼 앞으로 처박기를 반복했다.
알렉스의 몸이 속절없이 흔들렸다. 그의 성기에 따라 앞으로 밀쳐지고 뒤로 빠지기를 반복했다. 그에 맞춰 칼리스토의 골반이 마치 악기를 연주하듯 농밀해졌다.
“쿳, 허억.”
알렉스의 신음이 갈수록 깊어졌다. 조금 전 사정으로 예민한 구멍이 짜릿한 자극에 또다시 진한 액을 쏟고 말았다.
“힘 빼, 알렉스. 조금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고 해도 너무 조여. 금방이라도 끊어 먹을 거 같아. 설마 그러고 싶은 건가?”
“아닙니다! 절대 그럴 리가… 윽.”
“이 구멍에 잔뜩 정액을 싸지르면 애가 생길까? 그럼 다시는 도망가지 못하겠지. 하아, 그것도 나쁘지 않아. 검을 들지도 못하게 하는 건 어떨까?”
알렉스의 눈이 공포에 젖었다. 검은 그의 생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뭔가 말을 하려던 그는 지금은 입을 닥쳐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칼리스토의 눈빛이 비정상적으로 번들거렸으니까. 잠깐 멈춘 허리 짓을 이어가면서도 집요하게 구멍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
“역시 넌 타고났어.”
움직일 때마다 오므라졌다 벌어지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빼지 말라고 유혹하는 것 같다가도 오물거리며 밀어내기도 했다. 칼리스토는 알렉스의 다리를 좀 더 벌려 자세히 살피고 그대로 안고 욕조 바닥에 주저앉았다.
“악! 으윽. 칼.”
힘껏 주저앉자 금방이라도 배를 뚫고 나갈 것처럼 성기가 깊게 박혔다. 알렉스의 떨리는 몸을 끌어안은 칼리스토는 귀를 잘근잘근 씹었다. 살이 씹히는 야한 소리가 좁은 욕실을 울렸다.
그는 알렉스의 수그러든 성기를 주물럭거리며 한시도 쉬지 않은 입술로 목을 씹었다. 온몸에 제 흔적을 남기려는 몸부림처럼 곳곳에 자국과 흔적을 새겼다.
“악!”
목에 이를 박아 넣자 알렉스의 몸이 위로 솟구쳤다.
“쉬이, 물어뜯기 전에 가만히 있어. 물고만 있을 테니까. 네가 튀어 오르면 살점이 뜯어질 수도 있어. 그럼, 내가 마음이 아플 거야.”
그는 정말 마음이 아프다는 것처럼 알렉스의 성기를 부드럽게 쓸었다.
칼리스토의 몸이 다시 움직이자, 알렉스의 몸이 금방이라도 욕조 밖으로 튀어 나갈 듯이 앞으로 숙어졌다가 몇 번이고 뒤로 당겨졌다. 그는 다시 알렉스의 허리를 감싸고 뭉근하게 허리를 돌렸다.
“어디가 좋아? 여기? 아니면 여기?”
“으윽, 다, 다 좋습니다.”
“네가 이럴 때만 귀엽다는 건 나한테는 기분 좋은 일이긴 해. 그러니 절대 남들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면 안 돼.”
“전 칼뿐입니다. 믿어 주세요.”
칼리스토는 손을 미끄러트려 이번에는 알렉스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단단하게 발기된 좆처럼 딱딱해진 유두가 마음에 들었다. 물고 빨고 핥고, 그는 그간의 보상을 받으려는 것처럼, 집요하게 가슴을 괴롭히다 또다시 사정하고 말았다.
“하아, 너무 좋아. 내가 네 가슴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지? 이 딱딱한 감촉. 손에 착 감기는 쫀듯함까지.”
“네, 칼. 으윽.”
칼리스토의 손이 알렉스의 유두를 감고 빙글빙글 돌렸다. 이제야 살아 있는 실감이 났다. 
이 감촉을 한시도 잊지 않으려 억지로 잠을 쫓아내며 복기했었다. 그가 없는 허공을 움켜쥐고 감촉을 떠올려 긴긴밤을 잡히지 않는 허상을.
똑똑- 황제의 명이 없이 제멋대로 노크할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사람뿐이었다. 누군지 금방 느낀 알렉스의 몸이 급격하게 딱딱해졌다. 조금 발기하기 시작한 성기가 맥없이 축 처지더니, 구멍 또한 오므라들었다.
짝- 황제의 손이 그런 알렉스의 단단한 가슴을 때렸다. 찰진 소리와 함께 그의 긴장된 몸이 조금 이완되었다.
“긴장하지 마. 내 좆을 끊어 먹고 싶은 게 아니라면. 넌 이곳에만 집중해. 그 누구도 신경 쓸 필요도, 걱정할 필요도 없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밖에 누군가….”
“뻔하지. 네 몸이 굳을 정도라면. 쯧, 기어코 뒤를 따라오다니. 하여튼 정도를 몰라. 목숨이 몇 개는 되는 모양이야. 이제 그 모습 또한 얼마나 볼지 모르지만.”
낮게 혀를 찬 칼리스토는 멈춘 허리를 다시 움직였다.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는 알렉스를 위해 다시 유두를 세게 비틀었다.
질척거리는 소리에도 노크 소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노크 소리 또한 정도를 몰랐다. 발을 굴렀다가 다시 노크했다가 급기야는 문을 발로 차 대기 시작했다.
쿵쿵 소리에도 칼리스토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아. 하아, 알렉.”
“네, 칼, 으으.”
물 같은 정액을 한 번 더 쏟아낸 그는 알렉스의 등에 몸을 붙였다. 숨을 헐떡이는 와중에도 알렉스의 가슴을 만지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다른 데 보지 말고 날 봐. 그대로 몸을 돌려. 빨 수 있도록. 내가 이 맛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를 거야. 알렉, 몸을 돌려. 아니, 아니, 빼지 말고, 몸만.”
알렉스는 조심스럽게 몸을 돌렸다. 혹시라도 안에 들어간 성기가 빠질까 싶어, 느리게 몸을 돌리자 곧바로 황제의 입술이 벌어졌다. 게걸스럽게 근육으로 가득 찬 가슴 주변을 물어뜯더니 유두를 빨았다.
입 안에 넣고 굴렸다가 헐떡이며 다시 빨아들였다. 붉어진 얼굴을 알렉스의 가슴에 처박고 오로지 빠는 데 집중했다.
“윽, 칼, 차, 차라리 헉. 차라리 키, 키스를….”
알렉스는 이러다 뜯어질 거 같은 가슴의 통증에 저도 모르게 키스해 달라 애원했다.
그러자 눈을 감은 채 유두를 씹어대던 칼리스토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는 가볍게 알렉스의 몸을 끌어내리고 입술을 물었다.
“그래, 알렉스. 어디를 더 씹어 줄까?”
칼리스토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입술을 자근자근 씹었다가 빨아들이길 반복했다. 차라리 키스해 달라는 알렉스라니.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상황에 이성이 날아가 버린 그는 입술을 물어뜯고 다급하게 맞물렸다가 혀를 밀어 넣고 돌렸다.
꽝- 나무 욕조에 구멍이 뚫렸다. 조금 남아 있던 물이 바닥으로 스며들어 사라지자 칼리스토의 움직임이 더욱 집요해졌다.
물아래 잠겨있다 드러난 알렉스의 허벅지와 종아리를 애처롭게 쓰다듬었다.
“아아, 알렉, 알렉. 날 봐. 응.”
칼리스토의 격양된 목소리에 알렉스의 눈이 떠졌다. 그의 핏기 없이 하얗기만 한, 아름다운 뺨이 붉어져 있었다. 물기 때문인지 애절해 보이는 눈빛에 알렉스의 시선이 붙들려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손을 들어 눈물이 흐르지 않는 눈가를 매만져 그를 달랬다. 칼리스토의 눈이 커다래지더니 다시 입술이 맞물렸다. 타액과 타액이 섞이는 질척이는 소리에도 문밖의 소음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
“날 봐. 알렉스. 앞으로 후작이 무슨 말을 하든지 듣지 마. 한 번만 더 도망가면 그땐 네가 아닌 날 죽여 버리겠어.”
“칼! 무슨 말을….”
저 자신을 죽여 버리겠다니. 이건 황제를 지키는 알렉스에겐 치명적인 말이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이니 그냥 한 말은 아니었다.
“내 심장에 내 스스로 검을 꽂아 넣을 것이다.”
칼리스토의 아름다운 눈꼬리가 아래로 휘어졌다. 알렉스는 입술만 벌벌 떨 뿐 어떠한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의 말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것 때문인지, 심장이 빠르게 내달려 아픈 것도 같았다. 알렉스는 저도 모르게 손을 올려 그의 얼굴을 가리는 금빛 머리를 귀 뒤로 부드럽게 넘겼다.
“안 됩니다. 제발.”
“넌 항상 내 얼굴을 마음에 들어 했지. 이게 내 가장 큰 무기였던 거야.”
“…네, 좋습니다. 십오 년 전부터. 저의 주군은 오로지 칼뿐입니다. 그러니 제발 그런 말은…….”
“그럼 사랑해 주면 안 될까? 날 좀 봐주면 안 돼? 도망가지 말고. 알렉… 날 봐줘. 제발! 내 얼굴을 벗겨 가죽이라도 줄까? 내 옆에 널 있게 할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벗겨 줄게. 네가 좋아하는 이걸….”
칼리스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금방이라도 검을 찾아 얼굴을 그어 버릴 듯한 행동에 알렉스는 다급해졌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의 주군을 온전히 지켜야 했다.
“칼. 제발….”
알렉스가 애원하며 그의 몸을 끌어안아 행동을 멈추게 했다. 그 순간, 꽝- 결국 견디지 못한 문이 박살 나며 열렸다. 다가오는 쿵쾅거리는 소리에도 칼리스토는 여전히 알렉스 위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주변의 모든 소음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처럼 그는 오로지 알렉스만을 바라봤다.
“폐하! 저를 두고 이럴 수는 없으십니다.”
귀를 때리는 날카로운 소음에 칼리스토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건방지구나. 에리카. 네가 감히. 지금 어디라고 이곳에 들어와. 진정 네가 죽고 싶은 것이냐.”
칼리스토의 냉기가 뚝뚝 흐르는 말과 다르게 알렉스를 보는 눈동자는 뜨거웠다. 다른 곳을 향하지 않은 눈동자는 여전히 알렉스만을 뜨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알렉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넌 은인인 나와의 약속을 저버렸어. 널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가문에서 추방하고….”
꽝- 칼리스토의 주먹이 그나마 남아 있는 나무 욕조를 내려쳤다. 견디지 못한 욕조 전체가 바스라 지고서야 그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는 중에도 그의 시선은 단 한 곳만을 향했다.
서서히 일어난 칼리스토는 바닥에 있는 알렉스를 일으켜 제 몸 뒤에 숨겼다. 그런다고 가려질 덩치가 아니었음에도 그를 더욱더 꼭꼭 숨기더니 팔로 가리기까지 했다.
“지금 바로, 황궁으로 돌아가겠다. 후작, 한 번만 더 그 입을 열면 베어 버릴 테다. 그동안 알렉스 때문에 널 봐줬지만, 더는 그럴 필요가 없어. 더는 참아주지 않을 것이다. 네 분수에 맞게 선을 넘지 마라. 에리카 후작. 이건 마지막 경고다.”
칼리스토의 몸에서 쏘아져 나온 냉기가 방을 얼어붙게 했다. 입을 움직일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을 만큼의 냉기였다. 에리카의 입이 저절로 닫혔다.
“…….”
진심이 잔뜩 들어간 서늘한 말. 그 한마디에 에리카의 몸이 꽁꽁 얼어붙었다. 이런 모습의 칼리스토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알렉스를 위해, 내면의 잔악한 성정을 숨기고 살았던 그였으니까.
‘일단 다음을 도모해야 한다.’
에리카는 시선을 내리깔고, 그의 눈을 피해 고개를 깊이 숙였다. 감히 여기서 입을 열었다가는 정말로 목이 떨어질 것이다. 
이 제국, 황제의 권력은 절대적이었다. 특히, 황가에만 흐르는 특별한 피를 가장 진하게 물려받은 황제 칼리스토는 역대 최고였고, 그만큼 황권 또한 강했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까지 알렉스를 위해 에리카를 묵과해 준 것뿐이었다. 아니, 다른 귀족들까지 관대한 척 봐준 것뿐이었다.
“알렉스, 이제 황궁으로 가자.”
황제는 알렉스를 뒤로 가리고 움직였다. 찰박거리는 발소리가 침대를 향했다. 다 낡아빠진 침대에 있는 시트를 벗겨 뒤에 숨겨온 알렉스의 몸을 꽁꽁 감싸고 겨우 눈만 남겼다.
“옷을 가져와라.”
누구에게 한 명령인지 모를 명령이 떨어지고 곧바로 밖에서 기사의 발소리가 들렸다.
“에리카 후작, 감히 건방지게 짐이 옷 갈아입는 모습까지 보려 하는 건가?”
“…나가서 밖을 지키겠습니다, 폐하.”
그녀가 나가자 기사가 들어왔다. 낡은 테이블 위에 옷을 내려놓은 기사를 향해 칼리스토는 손을 휘저었다. 다시 단둘만 남자 칼리스토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알렉, 전에 해 준 것처럼 입혀 줘.”
“네, 칼. 그렇게 하겠습니다.”
알렉스는 꼼지락거리며 움직였다. 그가 꽁꽁 묶어놓은 시트에서 손을 꺼내 옷 입는 걸 거들었다.
“이건… 제 것입니까? 옷까지 준비해 주실 줄 몰랐습니다.”
“이번에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네가 이곳에 있을 거라는 확신이. 아마 그 확신이 없었다면 난 버티지 못했을 거야. 마지막이라….”
미쳐버렸을지도 몰라. 들리지 않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를 용케 알아들은 알렉스는 그의 손을 잡아 뺨에 댔다.
“…죄송합니다, 칼.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 상관없어. 네가 날 어찌 생각하던 그건 중요치 않으니까. 난, 앞으로 널 붙잡아 두기 위해 제국 전체를 불사르는 한이 있더라도 무슨 짓이든 할 테니까. 이제 네게 더는 성군의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그건 당연히 너야. 알렉스.”
말없이 옷을 입는 알렉스 곁으로 다가간 칼리스토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조금 기울였다.
“역시 잘 어울리네. 칭찬의 뜻으로 네가 항상 해 줬던 걸 해 줘야지.”
“네, 폐하.”
알렉스는 뒤꿈치를 슬쩍 들고 창백해진 그의 뺨에 입술을 붙였다. 어린 칼에게 매번 해 줬던 칭찬의 방법이었다.
칼리스토의 얼굴이 불만으로 가득 차자 조금 튀어나온 광대뼈가 씰룩거렸다. 고개를 들던 알렉스는 느리게 고개를 비틀어 이번에는 입술에 쪽 소리를 남겼다. 몇 번 더 연해진 입술 색이 진해지길 바라며 쪽쪽 입을 맞췄다.
“잘했어, 알렉스. 이제 나도 다 컸다니까. 어디에 해야 할지 정확히 보라고. 그때는 네가 고개를 숙였지만, 이제는 네가 고개를 드는군.”
알렉스의 자잘한 키스만으로도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생기가 도는 모습에 알렉스는 뿌듯하게 웃었다. 그가 매번 돌봐 줬던 칼리스토의 모습이었다.
칼리스토는 알렉스의 손을 맞잡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황궁으로 가는 거야.”
칼리스토는 맞잡은 손에 힘을 주며 밖으로 나왔다. 
“잠깐.”
말을 타려다 멈춘 그는 순식간에 검을 꺼내 에리카 후작 뒤에 선 기사의 목을 베어 버렸다. 알렉스의 사촌인 에리카 후작을 베어 버리고 싶었지만, 알렉스의 앞이라 곤란했다.
“짐이 분명 아무도 들이지 말라 했건만. 쯧.”
에리카 샤벨리 후작.
이미 어린 나이에 가문의 작위를 이어받아 후작의 작위까지 가진 똑똑하고 야망 덩어리인 여자.
그걸 모르고, 이용당하는 건 순진한 알렉스뿐이었다. 사람을 한 번에 파악하고 그 사람을 적절하게 이용해 먹는 것까지 타고난 수완 좋은 능력자이긴 했다.
‘그래서 쉽게 말로 꼬셔 알렉스를 황궁에서 도망가게 했겠지.’
어린 알렉스가 이틀간 사라졌던 때가 있었다. 혹시 마물에게 물려가 죽은 거 아니냐는 말이 돌 정도로 그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다른 가문의 기사까지 전부 동원해 알렉스를 찾아다녔다고 했다. 그때 같이 수색하던 에리카 후작이 먼저 알렉스를 발견했고.
나무 위에 숨어 있던 알렉스를 죽이기 위해 튀어 오르는 마물을 목숨을 걸고 구해준 게 후작이었다. 그때 후작 또한 크게 다쳤고, 지금도 목에 마물의 발톱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걸 계기로 알렉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자. 
그랬기에 그를 조종해 황제를 떠나게 할 수 있었겠지.
믿는 자의 말은 믿지 않는 자의 말보다 더욱 신뢰가 가는 법이니까.
칼리스토의 말이 아닌 에리카 따위의 말을. 그의 모든 신뢰는 칼리스토의 것이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끼어 있는 건 에리카였다.
칼리스토는 눈을 감았다 떴다. 끓어오르는 화를 삭이고 지금은 평온을 가장해야 했다.
“알렉스 경은 짐과 함께 말을 타고 갈 것이니, 지금부터는 쉬지 않고 황궁을 향해 달린다. 한 번만 더 짐의 말을 어기고 저따위를 들여보내면 모두 목을 베어 버릴 것이다.”
“네, 폐하.”
뒤에 서 있는 기사의 피를 뒤집어쓴 에리카를 지나쳐 말에 올랐다. 알렉스에게 손을 뻗었지만, 그는 주저했다. 후작이 보는 앞에서 손을 덥석 잡고 말에 타자니 죄인 같은 기분일 테지.
“손, 알렉스. 기다리게 하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
알렉스가 도망갈 때는 안이하게 대처했지만, 이제부터는 아니었다. 귀족 전체를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알렉스 하나만을 지켜야 하니까.
몇 번을 멈추며 내민 손을 칼리스토는 한 번에 끌어 올렸다. 그의 커다란 덩치가 앞에 앉자 흑마가 작게 푸르릉거렸다. 칼리스토는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발을 굴렀다.
거칠게 튀어 나가는 흑마 뒤로 후작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움직이지 못했다.
“편하게 있어야 할 거야. 가는 길이 험해.”
“…네, 칼.”
칼리스토의 발짓에 흑마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역시 제국에 하나뿐인 명마였다. 황제의 흑마가 치고 나가자 기사들이 일제히 뒤를 따랐다. 
그들이 출발하고 생긴 흙먼지가 에리카의 얼굴을 덮었다. 흙바람이 돌풍처럼 몰아치는 중심에서도 그녀는 흔들리지 않은 눈빛으로 사라지는 말을 뒤를 살폈다. 
집요하게 한 곳만 바라보는 시선은 황제 칼리스토의 휘날리는 황금빛 금발이었다. 금방이라도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한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햇빛에 녹아 사라졌다.
‘저건 내 것이었다. 저 아름다운 황제도 황후의 자리도.’
에리카는 턱을 들어 올려 그들이 떠난 자리를 날카롭게 응시했다. 어릴 때부터 오로지 위로 오르기 위해서만 살아왔다. 결국, 형제들을 전부 죽이고 작위를 이어받는 일도 전부 해낸 것도 그녀였다.
“그랬는데, 앞으로 못할 것도 없지. 맞아. 난, 에리카 샤벨리 후작이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반드시 손에 넣고 마는. 내가 원해서 내 것이 되지 않은 건 없으니까.”
에리카의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그러자 숲속에 대기하고 있던 기사 한 명이 튀어나와 바닥에 부복했다.
“넌, 가서 다음을 준비하라고 전해.”
“네, 주인님.”
말에 오른 에리카는 곧바로 속도를 높여 황제의 뒤를 쫓았다. 멀리 가지 않았으니 금방 그들을 잡을 수 있었다. 전에도 그랬었다. 너무 높아 잡을 수 없는 게 있다면 남을 딛고서라도 높이를 맞춰 잡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밟고 올라서면 되는 것이다. 그게 에리카의 삶이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조심은 해야겠어. 오늘 황제의 태도가 그전과 묘하게 달라졌단 말이지. 아니, 완전히 달라졌어.’
황제 칼리스토 프레드릭.
그는 지금까지 성군이었다. 아니, 속과 다른 겉으로만 성군인 척했을 뿐이었다. 황가의 가장 강한 피, 그로 인해 누구도 거스르지 않은 탓에 그의 성정이 나올 틈이 없었던 거뿐이었다.
하지만, 오늘 묘하게 다른 황제를 보니 손끝에서 시작한 소름이 머리 위로 전율처럼 솟구쳤다. 마치 이제까지는 장난이었으니 지금부터 진짜 보여 주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분명 달라졌어. 느낌이 좋지 않아.”
평소 알렉스 옆에 있는 에리카를 무시하며 시선 한 자락 주지 않더니. 오늘은 시선을 주는 대신 경고의 눈빛이었다.
한순간에 스쳐 지나간 서늘한 눈빛. 다시 보기 위해 고개를 더 들었을 때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그건 분명 강력한 경고였다.
“방법을 바꿔야 할 거 같아.”
알렉스를 없애는 거로는 부족했다. 그간은 바보 같은 알렉스로 인해 눈앞에서 치워버리면 되었지만, 앞으로는 황제를 직접 상대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녀의 영민한 머리가 긴밀하게 움직여 앞으로의 계획을 그려나갔다.
“워워.”
앞에 치고 나간 황제를 발견한 에리카의 말이 급하게 멈췄다. 무슨 일인지, 한참 앞서간 줄 알았던 황제 일행이 멈춰 있었다.
말에서 뛰어내린 에리카의 모습을 본 황제는 곧바로 그녀를 향해 손을 들어 멈추게 했다.
철저하게 배제하려는 단호한 손짓. 적으로 간주한 것처럼 알렉스 근처조차 오지 못하게 차단했다.
칼리스토의 몸이 조금 움직였다. 또다시 알렉스를 그녀의 시선에서 가렸다.
“물을 가져와라. 당장!”
칼리스토는 직접 손을 뻗었다. 낚아채듯 기사의 손에 쥐어진 물통의 뚜껑을 열어 직접 알렉스의 입술에 가까이 댔다. 허겁지겁 물을 마시던 그는 숨을 골랐다. 말을 달리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평소 진한 갈색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알렉스, 물을 좀 더 마셔라.”
“죄송합니다, 폐하. 갑자기 어지러워서. 이제 괜찮으니 바로 출발하셔도 됩니다.”
“도대체 넌, 뭐가 그렇게 다 괜찮은 거냐.”
칼리스토는 또 한 번 소리치려다 입술 끝을 깨물었다. 들썩이는 입을 막고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알렉스의 몰골을 보니, 제 몸을 돌보지 않고 제대로 먹지도 않은 채 그동안 마을 일만 도왔을 게 뻔히 그려졌다.
알렉스 네이트는 그런 사람이었다. 저보다 남을 위하는 그런 사람.
“젠장!”
가볍게 욕을 짓씹자 그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분노를 삭이려는 칼리스토는 검을 꺼내 순식간에 나무 두 그루를 단칼에 베어 버리고 눈을 감았다.
입술 끝을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피 맛이 느껴졌다. 그제야 조금 진정된 칼리스토는 나무를 잘라 만든 의자 위로 알렉스를 앉혔다. 
“폐하! 이건 제가 앉을 자리가….”
알렉스는 안절부절 엉덩이를 들썩였다. 주변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 칼리스토의 성질을 더 돋았다.
그는 벌떡 일어서 검 손잡이를 잡았다. 여기 있는 모두를 다 베어 버리면 알렉스는 편히 쉴 수 있다. 그 생각만이 그를 지배했다.
“폐, 폐하. 가, 같이 앉아 주십시오.” 
알렉스의 뜨거운 손이 차가운 칼리스토의 손을 감쌌다. 정확히 검을 꺼내려는 순간에.
그는 피가 섞인 타액을 삼키며 화를 눌러 내렸다.
“알렉, 잘 들어. 여기 사람은 너와 나뿐이야. 내게 살아 있는 사람은 오로지 알렉스 너뿐이지, 다른 것들은 중요하지 않아. 그러니까 물이나 마셔. 아니면 전부 목을 잘라 버리던지, 눈알을 파버릴 테니까.”
그는 진심이었다.
“…네, 폐하.”
알렉스는 물통에 입술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하지만 일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물론 일도 했지만, 조금 전 그, 그곳에서 칼과 한… 그, 그것 때문에 더 힘들어서 그럽니다. 하, 한 번만이 아니어서… 말 위에서 몸이 너무 흔들려서 그랬습니다.”
알렉스의 수줍은 고백 같은 말에 전부 다 베어버릴까 고민하던 칼리스토의 생각이 딱 멈췄다. 다시 솟구치려는 화가 일시에 사라져 버렸다. 생각지도 않은 말이었다.
‘아, 이런.’
느닷없이 치고 나오는 알렉스의 말. 전에도 늘 이런 말 때문에 화낼 타이밍을 늘 놓쳤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고. 
알렉스는 때때로 이런 귀여운 재주가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모든 귀족을 너그럽게 대했었다. 칼리스토는 김빠진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출발을 준비하라.”
알렉스와 함께 말에 올라탄 칼리스토는 곧바로 출발했다. 미친 듯이 내달리던 조금 전과 다르게 말의 속도가 묘하게 느려졌다. 거침없이 날뛰지 못한 흑마가 푸드덕 콧바람을 거칠게 뿜어냈다.
그 순간, 바람을 타고 알렉스의 속삭임이 들렸다.
“더 달리셔도 됩니다. 조금 전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얼굴이 별로야. 하긴, 넌 힘들어도 힘들다고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얼굴빛이 안 좋아.”
“힘든 건 이제 없습니다. 제 체력을 아시잖습니까?”
가슴에 매달려 귀엽게 눈을 깜빡이며 체력 운운이라니.
“잘 아껴둬. 네 체력은 밤에 받아 가도록 할 테니.”
“…네.”
알렉스는 상체를 뒤로해 칼리스토의 몸에 기댔다. 그렇지 않으면 말에서 떨어질 것만 같았다. 몹시도 어지러웠다.
“…지금 이곳에서 유혹하는 그런 태도는 좋지 않아. 다시 말을 멈추고 쉬어갈 공간을 찾아야 하니까.”
“…유혹하는 게 아닙니다. 떨어질 거 같아서.”
“밤까지 참을 테니까. 더 기대도록 해.”
칼리스토는 앞만 바라봤다. 혹시라도 시선이 내려가면 여기서 멈추고 싶어질 것만 같았다. 그는 말을 달리며 이렇게 함께 달렸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22Tempat cerita menjadi hidup. Temukan sekar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