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서로에게 너무 좋은 친구지만 독일 귀족인 콘라드는 한스로 하여금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만드는 불편한 존재이기도 하다. 콘라드의 의도와 상관없이 한스는 그에게 모욕감 느낀다.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던 부모마저 콘라드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데, 부모를 부끄러워하는 자기 모습 역시 한스에게는 모욕적인 상황이다. 콘라드와 한스의 우정은 서서히 파괴되어 간다.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피해 한스가 미국으로 건너가며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길 30년, 한스는 우연한 기회에 콘라드에 대한 비극적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 소식은 이 소설의 끝이다. 그것은 두 사람의 우정에 대한 완전한 종말인 동시에 둘의 처음과 중간을 파노라마처럼 재생시키는 장면이기도 하다. 마지막 문장을 읽은 뒤 첫 페이지로 돌아가면 기다리고 있는 문장. "내 가장 큰 행복과 가장 큰 절망의 원천이 될 소년에게 처음 눈길이 멈췄던 것이 어느 날 어느 때였는지를 나는 지금도 기억할 수 있다. 그것은 내 열여섯 번째 생일이 지나고 나서 이틀 뒤, 하늘이 잿빛으로 흐리고 어두컴컴했던 독일의 겨울날 오후 3시였다."가장 큰 행복과 가장 큰 절망이 한 사람에게서 발생할 때, 우리는 세상 힘을 직감한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고 조금은 겁쟁이가 된다. 아마도 그건 '성장'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친구가 생겨서 행복했지만 그 친구 때문에 불행했던 두 소년의 우정이 그들과 무관해 보이던 독일 역사에 관통당해 쓰러질 때, 콘라드는 한스가 느끼는 모욕감을 위로해 줄 수 없었고 한스는 콘라드의 비극적인 운명을 인지조차 못했다. 서로를 좋아하는 두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슬픈 성장소설인 동시에 역사와 개인 사이에 발생하는 비극적인 시대소설. 두 개의 감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소설은 끝난다. 이만큼 완벽한 엔딩을 또 만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에 쏘인 것처럼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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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의 한낮의 독서 (1) ^^~
Nonfiksi첫 문장, 첫 단락, 첫 페이지. 유명한 소설의 첫 문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콘텐츠다. 『설국』의 첫 문장은 한 번 읽으면 좀처럼 잊을 수 없다.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니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책을 펼쳐 드는 순간 하얀 바닥과 캄캄한 밤이 공존하는 흑백의 세계로 미끄러지게 만드는 저항할 수 없는 문장이다. 『이방인』의 시작도 충격적이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관습화된 감정에 대한 거부를 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