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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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분명 평범한 날이었다. 정국의 하루는 늘 그랬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를 왔고, 열심히 강의실을 옮겨다니며 수업을 들었으며, 단짝인 윤기와 학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마지막 시간이던 전공 수업이 평소와 달리 조금 일찍 끝났다는 것이, 그나마 오늘 하루의 조금 특별한 점이라면 특별한 점이었다.

"야, 너 레포트 작성 시작 했냐? 내일 모레 제출인거."

집으로 가는 길. 잊고 있었던 과제를 상기시키는 윤기의 말에,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던 정국은 아, 하는 탄식 소리와 함께 머리를 벅벅 긁었다. 무슨 놈의 과제는 해도해도 자꾸만 나오는지. 누군가 석유 유전처럼, 캠퍼스 어딘가에다 과제가 펑펑 쏟아져 나오는 과제밭이라도 만들어놓은 것이 분명했다. 정국은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하품을 길게 내뱉으며 메모장을 켰다.

"제출이 몇시까지야?"

"아마 정각일걸."

"내일 모레...정각...와 씨 깜짝이야."

갑작스레 자신의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고개를 들어올렸던 정국의 입에서, 순간적으로 다소 과격한 언어가 흘러나왔다. 아, 심장 떨어질 뻔 했네. 너무 놀라 그대로 박살낼 뻔한 핸드폰을 다시금 주머니에 우겨넣으며, 정국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 눈앞에 바싹 다가와있던 정체모를 누군가를 짜증스레 쳐다보았다. 새빨갛게 염색한 머리. 찢어지고 헤어진 특이한 옷차림. 입술 사이로 곱게 물려 있는 막대사탕.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커다란 두 개의 눈동자까지. 상당히 독특한 인상이긴 했지만, 정국으로서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누구세요?"

미동조차 없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낯선 빨간 머리 남자에게, 정국은 아직까지도 놀란 가슴을 추스리지 못한 채 그렇게 물었다. 옆에 있던 윤기도 적잖이 당황한 듯 연신 눈을 끔뻑거리고 있었다. 눈앞에 서서 무릎만 조금 굽힌 채로 정국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는, 입안에 넣고 있던 막대사탕을 뽁 소리가 내게 빼더니 그제서야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와, 진짜."

"..."

"..진짜..멀리서 보고 긴가민가 해서 달려왔는데..."

"..?"

정국의 눈썹이 조금 찌푸려졌다. 뭐지. 내가 아는 사람인데 기억을 못하는건가. 정국은, 이제는 입까지 조금 벌린 채 다소 멍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꼼꼼히 훑어보았다. 눈에 확 띌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라 한번이라도 봤으면 기억을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일면식이 있는 얼굴은 절대로 아니었다.

"..진짜..진짜 완전..."

"..저..혹시 우리가 만난 적이..."

"진짜 완전 미친 존잘!!!"
"...예?"
"완전 대박 내 이상형이예요!!!!!"

순간 정류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림과 동시에, 현실 당황한 정국의 얼굴이 그 상태 그대로 얼어붙었다. 남자는, 벙글벙글 웃으며 다짜고짜 정국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격렬한 내부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 정국의 두 눈동자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다시금 빠르게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뭐예요."

"..예..예?"

"이름, 이름이 뭐냐구요."

"...전...정국인데요..."

"헐 정국이요? 이름도...이름도 잘생겼어..."

너무나 당황한 탓에 자각도 없이 이름까지 술술 흘려보내버린 정국을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직까지도 정국의 손을 꼭 잡은 남자는 연신 싱글벙글에 대쪽같은 마이웨이였다. 10년만에 금의환향한 아들을 만난 어머니나 지을 수 있을 법한 미소를 얼굴 가득 띄우고 있는 정체모를 남자를 보며, 윤기 역시도 황당한 표정이 되어있었다.

"앞으로 꾹이라고 부를게요!!"

"..아니, 우리가 무슨 사이라고 앞으로 부르긴 무슨..."

"그거야 태태가 꾹이랑 사귈 거니깐."

"..예? 그게 대체 뭔-"

으읍. 그제서야 조금 정신을 추스르고 저항하려던 정국의 입술은, 갑작스레 입안으로 불쑥 들어오는 무언가에 의해 그대로 닫혀버리고 말았다. 쉿. 남자는 긴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 위에 갖다댄 채 해사하게 웃고 있었다. 정국은, 잠시 멍한 얼굴이 되어 눈을 느리게 깜빡거렸다. 혀끝으로 전해져오는 부드럽고 달달한 맛은, 방금 전 입안으로 들어온 그것이 딸기 사탕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가만...사탕..? 막대사탕..? 아까 이 남자가 먹고 있었던...그 사탕?!

사차원 김태형과 CC가 된다는 것 -;뷔국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