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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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 앞의 복도는, 수업이 끝난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핫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태형 때문이었다. 당시 강의실에 있었던 모든 학생들은 태형이 등장했던 순간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에 대해 남녀를 불문하고 떠들어대고 있는 중이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거룩한 찬송가가 들렸다, 조명이 켜져 있었음에도 태형이 있는 쪽만 빛이 나고 있었다, 아우라 때문에 눈이 멀 뻔 했다, 첨단 기술로 만든 CG가 움직이는 줄 알았다 등등. 빽빽하게 모인 채 각종 평들을 쏟아내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정국은 힘겹게 뚫고 나온 뒤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정국은 흘러내린 크로스백을 추슬러 올렸다. 흥분한 채 떠들어대고 있는 학생들의 열기는 거의 월드컵 응원단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호석 씨'와 팀플을 마저 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급히 사라져버린 남준은, 이미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매정한 놈. 정국은 중얼거리면서도 황급히 걸음을 떼었다. 언제 또 태형이 따라올지 모르는 판국이었기에, 이 혼란을 틈타 서둘러 건물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촤르르-

잔돈을 뱉어내는 자판기의 소리가 명쾌했다. 꺼내든 캔의 뚜껑을 딴 뒤 정국은 음료수로 목을 축였다. 그리고 집어든 동전들을 대충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우는 이모티콘을 주렁주렁 단 채 어디 갔냐며 외치고 있는, 태형으로부터의 메시지가 수북이 와 있었다. 정국은 입술을 텁텁 다신 뒤 스크롤을 내렸다. 윤기와의 약속 시간까지는 한 시간. 피씨방에나 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 찰나, 갑작스레 자신의 허리를 감는 팔의 힘을 느끼며 정국은 휘청했다.

"-찾았다, 에비."

아. 이제는 놀라는 것조차 익숙해진 정국은, 그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한숨만 짧게 내뱉은 뒤 잠시 삐끗했던 다리를 바로잡았다. 슬쩍 고개를 들려보니, 아직까지도 적응이 안된 흑갈색 머리칼을 찰랑이며 자신의 허리춤에 머리를 부비고 있는 태형이 보였다. 지금 태태 메시지 씹는 거 현장에서 들켰어 꾹아. 꿍얼거리는 태형의 팔을 늘 그랬듯 힘으로 끌어내리며, 정국은 들고 있던 핸드폰을 집어 넣었다.

"어떻게 그렇게 쌩 가버릴 수 있어? 태태는 수업 끝나는거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안 놓냐?"

"또또 민망해한다 우리 꾹이."

이번엔 팔짱을 끼며 그렇게 말하는 태형의 팔을, 정국은 다시 한번 떼어냈다. 태형은 입술을 죽 내밀었다. 그리고 정국을 안느라 거의 바닥에 떨어지다시피했던 가방을 끌어올려 안았다.

"스킨십에 너무 민감하게 구는 거 아냐? 타액도 공유한 사이면서."

"...그게 대체 왜..!"

"그것뿐만 아니라 꾹이가 태태 생식...읍!!!"

자신의 입 안에 먹다 만 딸기사탕을 밀어 넣었던 것을 저렇게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으로 말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적나라한 단어와 함께 '버거킹 사건'까지 언급하려는 태형의 입을, 정국은 필사적으로 황급히 틀어막았다. 행여나 누가 듣기라도 했을 까 주위를 휘휘 살피는 눈동자가 동그래져 있었다. 헤헹. 그런 정국이 재밌기라도 하다는 듯 특유의 웃음소리로 웃으며, 태형은 자신의 입을 막은 정국의 손가락을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아 더럽게 뭐하는거야!! 버럭 소리를 지르는 정국은 언제나 그랬듯 개의치 않은 채, 그저 붙잡은 정국의 옷자락만 손끝으로 꼬물거리는 태형이었다.

"오늘 놀랐지 꾹아?"

"..."

"솔직히 감동 받았지? 응?"

정국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이 던졌던 그 말 한마디 때문에 태형이 이렇게까지 과감한 시도를 할 줄은 당연히 몰랐기에, 이래나 저래나 놀랐던 것 자체는 어쨌든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정국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하고 있었다. 서슴없이 행동하는 태형이 대단하기도 했고, 이상하기도 했고, 바보같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왜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하나 신기하기도 했다. 생각이 많을 때면, 정국은 늘 얼어붙는 버릇이 있었고 그런 자신을 불편해했다. 사실 그랬기 때문에 태형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그래서 태형을 더더욱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기도 했다.

"꾹이가 튀는 머리 싫대서, 태태 머리색 얌전하게 바꿨잖아."

"..."

"찢어진 옷 싫대서, 이렇게 차분한 옷도 입었고."

사차원 김태형과 CC가 된다는 것 -;뷔국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