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국은, 저만치 앞서 걸어가는 태형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바람은 찼고 거리는 한산했다. 왜 화장실에 가겠다고 당당하게 말을 던져놓았던 자신이 여기까지 왔는지, 정국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머리가 아파서라기엔 상태가 너무나 멀쩡했고, 바람이 쐬고 싶어서라기엔 조금도 취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정국은 이것을 저 앞의 태형의 상태가 상당히 심각해보여서, 라는 핑계로 정리하기로 했다. 그 핑계엔 태형이 저렇게까지 취한 이유가 난감하게도 자신 때문이라는 것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걱정스럽다는 낯간지러운 단어는 결코 떠올리고 싶지 않았지만, 객관적으로도 태형의 상태는 정말로 위태로워 보였다. 비틀비틀. 몇번이고 힘이 풀리는 다리를 바로잡으며 길 한복판을 걸어가는 태형의 뒷모습은 바로 넘어지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봉식이 니...니 와 이제 들어오노?"
"..."
"...아...와이러십니까..엄마도..참..."
...뭐라는거야. 조용한 골목에서 들려오는 태형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한때는 홀로 역할극을 하며 캠퍼스를 활보하고 다녔다던 태형의 과거를 문득 상기하며, 정국은 중얼거리고 있는 태형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선선한 바람에 날리는 흑갈색 머리가 힘없이 움직이는 다리만큼이나 가냘펐다.
"...봉식이가...뭘 잘못했눈...에에?"
그 순간, 태형의 다리가 옆으로 심하게 꺾임과 동시에 그의 몸이 흔들렸다. 어어. 본인도 모르는 사이 당황의 목소리를 흘려내보내며 정국은 흠칫했다. 휘청, 휘청, 풀썩. 결국 균형을 잡지 못한 태형은 길가 옆 벽면 위로 맥없이 쓰러졌다.
"...흐에..봉식이...음..."
아프지도 않은지, 그저 벽 위에 축 늘어진 상체를 기댄 채 태형은 헤헤 웃고만 있었다. 하나뿐인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 아래, 주홍빛으로 물든 태형의 얼굴 위로는 비스듬히 그림자가 져 있었다. 당황한 정국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까 전만해도 한두명씩은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이젠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 미치겠네."
얘는 왜 취해서 이런델 오고 난리야. 이 험한 세상에서 장기라도 털리면 어쩌려고, 술먹고 이런 인적 드문데서 픽픽 쓰러지고 앉아있냐고. 속으로 짜증스레 중얼거리며 정국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핏줄이 선 손은 몇번이고 분주하게 펼쳐졌다 접혀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잠시 후, 다물려 있던 정국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작게 태형을 부르는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야."
"...으음."
"...아, 씨."
정국은 미간을 좁힌 채 여전히 헤벌레 중인 태형을 바라보았다. 저 멍해진 얼굴 상태를 보건대 금방 훌훌 털고 혼자서 멀쩡히 일어날 가능성은 없어보였다. 또다시 태형의 얼굴을 바라보기도 하고, 입술을 깨물어보기도 하고, 주위를 몇번이고 살펴보기도 하던 정국은, 결국엔 한숨을 내쉰 뒤 앞쪽을 향해 한발짝 걸음을 뗐다.
"...야, 김태형."
"..."
"...안들리냐?"
정국의 발이 태형의 운동화 끝을 툭툭 건드렸다. 태형은 입만 쩝쩝 다실 뿐 답이 없었다. 하아아. 정국은 허공을 향해 긴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결국 그 앞에 무릎을 쭈그리고 앉았다. 난 지금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한 시민을 구하는 것 뿐이다...세뇌라도 하듯 스스로에게 속으로 중얼거린 정국은, 흠칫거리며 뻗은 손으로 태형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김태형, 일어나."
"..."
"일어나보라고."
철옹성처럼 굳게 닫혀있던 태형의 눈꺼풀이 몇번 움찔거리더니, 그제서야 천천히 위를 향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정국은, 반만 뜬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태형의 상태를 조용히 살폈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는 것이 확실히 제정신은 아닌 듯해 보였다.
"일어나. 민폐 끼치지 말고."
"...웅..햄버거...콜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태형이 정국의 손을 덥석 잡았다. 살짝 놀란 정국의 어깨가 흠칫하며 잠시 움찔거렸다. 태형이 말을 이었다.
"...먹어줘야...술이...깨는데..."
"...그거 입에 처 넣어주면 일어날래?"
"...아안돼...참을꺼야...꾹이가 싫댔어..."
YOU ARE READING
사차원 김태형과 CC가 된다는 것 -;뷔국
Fanfiction"이름이 뭐예요." "...예..예?" "이름, 이름이 뭐냐구요." "...전..정국인데요..." "헐 정국이요? 이름도...이름도 잘생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