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주의
*노잼주의
*호러룬 샴x랄세이-Chapter 2.미안해요. 제 잘못이에요.-
한 땀 한 땀. 실을 꿴 바늘이 초록색 바다 같은 천을 가로지를때마다, 검푸른 선을 그리며 나아갔다. 그 검푸른 선은 반으로 갈라진 바다를 하나로 이어주었고 말이다. 바다의 찢어진 가슴을 연결해 주는 것은 이 검푸른 색깔의 선 뿐이었다. 그렇게 바늘은 바다를 계속해서 가로질러갔다.
그렇게 찢어진 옷을 꿰매면서, 심은 랄세이의 찢어진 상처가 옷처럼 다시 꿰매어지길 바랬다. 그런 마음으로 그는 이 왕자의 튜닉을 수선했는데, 다른 한 편으로는 많이 안쓰럽기도 했다. 붕대 아래의 상처, 그 상처 아래의 깊은 마음의 흉터가 낫기 위해서는 '새로운 치료법'이 필요했는데, 그가 '새로운 치료법'으로 랄세이를 치료하기엔 아직 역부족이기 때문이었다.
심은 이 초록색 바다의 가슴을 꿰매주면서, 자신의 옆에 책상다리를 하고 그 위에 담요를 걸친 채, 소파 등받이에 몸을 살짝 기대어 앉아 있는 랄세이 쪽을 이따금씩 힐끗 쳐다보기도 했다. 여전히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는 그는, 죽은 듯이 퀭해진, 고장난 전구 같은 초록빛 눈으로 자신이 걸친 담요의 기워진 부분만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의 목을 계속해서 조르는 죄책감으로부터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 했다. 거울을 보는 듯한, 자신의 상처를 또 아프게 했다는 그 죄책감으로부터.
"......"
심은 그런 랄세이가 안타까웠다. 비록 그가 자신을 괴물 보듯이 무서워했더라도, 그 무서움이 괴물로 돌변하여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다 하더라도, 그는 그런 랄세이를 원망하지 않았다. 이 서쪽 왕국의 왕자 역시 자신처럼 상처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그는 이 왕자의 상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왕자의 상처를 볼 때마다 자기 자신을 거울로 보는 듯 했다. 심은 그런 랄세이의 상처를 감싸 그를 따뜻하게 해 주고 싶었지만... 거울은 한낱 '거울'일 뿐, 거울 속 상처입은 자신의 '상'에게 다가가 안아줄 수 없다는 것이 그로서는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그 자신과 거울 속 '또 다른 자신' 사이에 놓인 장벽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랄세이는 여전히 붉게 물든 붕대가 감긴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여전히 바늘로 쿡쿡 찌르는 것처럼 따끔거리는 잔통이 느껴지는 듯. 또 여전히 울음을 그치지 못했는지, 작게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한 15분 전이었나. 랄세이는 그 때 심한 부상을 입었는데도, 가슴 깊은 곳에 생긴 상처로 인해 심을 경계하다가, 벼랑 끝 같은 소파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몸이 마룻바닥에 부딪치자마자, 가슴에서부터 시작한, 온 몸을 으스러뜨리는 듯한 욱신거림이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강철처럼 무거운 통증에 짓뭉개져 몸과 마음이 곤죽이 되어가는 듯한 고통을 감당하지 못했던 그는, 결국 무릎 까진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옆으로 웅크리고 누운 채, 두 손을 얼굴에 파묻고 흐느껴 울어버린 그의 모습은, 심에게도 죄책감이라는 엄청난 마음의 고통을 주었고 말이다.
그 때만 해도 창으로 가슴을 찢는 듯한 고통이 바늘로 찌르는 정도로 줄어들어서 다행이긴 했지만, 그가 여전히, 검붉은 샘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가슴이 불규칙적으로 욱신욱신 쑤시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심으로서는 너무나 미안할 뿐이었다. 분명 랄세이가 더 이상 아프지 않길 바라며 그를 간호했는데, 상처를 낫게 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아프게 했다니...
상처를 치료하고, 혼자 축축히 비를 맞고 있던 랄세이에게 우산을 건네기로 마음먹은 심은, 그런 랄세이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차츰 마음을 열기 위해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방 안을 가득 드리운 적막의 휘장을 살짝 들어올리고.
"아직도 많이 아프니?"
잡동사니가 가득한 이 작은 방을 이불처럼 덮고 있던 침묵을 깨고 그가 말을 걸어오자, 랄세이는 또 다시 흠칫 놀라, 몸을 살짝 움츠리며 심 쪽을 올려다보았다. 침묵이라는 두꺼운 유리창이 갑작스럽게 깨지자 소스라치게 놀란 듯이. 하지만 이내 이 고양이 인형의 뜯어먹힌 머리와 뽑힌 자신의 눈 같은 너덜너덜한 단추를 보자 또 죄책감이 몰려온 듯, 다시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자신과 같은 상처를 입은 이에게, 단지 '무섭다는 이유로' 더 큰 상처를 줬다는 그 죄책감이. 그리고는 대답하길,
"아.. 아뇨... 괜찮아요. 지금은."
그는 말만 '괜찮다'고 했지, 여전히 가슴에 감긴 붕대를 그러쥐고 있었다. 심은 날카로운 칼날이 자신의 가슴을 꿰뚫는 고통을 느낀 적은 없었으나, 그런 상처를 그러쥔 랄세이를 보자 본인 역시 가슴이 쿡쿡 쑤셔오는 고통이 느껴지는 듯 했다. 심장이 여러 번 갈기갈기 찢겨지는 고통을 랄세이는 상처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 시달려야 한다니. 그런데도 자신이 아프다는 걸 숨기려고 하는 그가 너무 안타깝기도 하고,자신도 가슴이 욱신거리는 고통이 더 심해짐을 느낀 심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아픈 건 아프다고 솔직하게 얘기해줬으면 좋겠구나. 자네는 편히 쉬어야 할 필요가 있네. 그렇게 다쳤는데도 아픈 걸 숨기려고 하면 나도 걱정되니까."
"...아니에요. 저 진짜로 괜찮아요. 그 쪽이야말로 저 너무 걱정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랄세이가, 여전히 칼날이 가슴 깊은 곳에 박혀 검붉은 샘물이 쏟아지는 고통을 태연하게 참아낼 정도로 '괜찮지는' 않았다. 그는 여전히 상처에 아파하던 심에게 또 다시 상처를 주었다는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그는 상처받은 '피해자'인 심이 이기적인 '가해자'인 자신을 더 걱정할수록, 죄악감이 그의 목을 더 세게 졸라 더 괴로웠던 것이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해야 할 판에,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를 걱정하며 받들고 있는 꼴이라니. 두툼하게 감싼 붕대 속 '진짜' 그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계속해서 피가 나도록 목을 옥죄는, 죄악감과 자기혐오의 올가미 때문에 오히려 더 아플 뿐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자신의 고통을 더 깊은 곳에 숨겨야만 했다. 스스로를 채찍질함으로써, 죄로 더러워진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씻어내기 위해서는.
"아.. 알겠네. 하지만 그렇다고 아픈 걸 숨겨서 자네 스스로를 그렇게 해하는 건 좋지 않으니, 혹시 아프거나 불편한 점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주게나. 난 그런 것 따위에 불편해하지 않으니까."
"...네.."
심에게 너무 미안한 나머지 붕대 속, 찔린 가슴과 파인 눈에서 욱신욱신 느껴지는 고통을 그냥 숨기기로 한 랄세이. 그는 한 편으로는 이 인형에게 최대한 '괜찮은' 모습을 보이려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런 자기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듯 했다. 사실 여전히 아픈데, 그냥 아프다고 솔직하게 얘기할걸. 사실상 그에게 있어서 상처가 아픈 것보다 더 '아픈'게 있었다. 그 상처를 혼자 떠안은 채, 매정한 세상으로부터 버려지는 것. 차가운 거리에 버려진 망가진 인형이 되어, 그 고독 속에서 어둠과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그에게 있어서 가장 아프고 가장 무서웠다. 그런 고통과 공포를 덜기 위해서는 그와 함께 있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자신의 아픔을 이해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마침 그런 그에게 자신과 같은 상처를 지닌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주고 있는데... 손을 잡아야 할까?
그러던 랄세이는, 자신이 마음을 열기 전에 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더 먼저 상처를 준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다신 안 그러겠다고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것이었다. 한 숟가락 뜬 버터처럼 깊게 파여 곪아버린 상처에 붕대를 감기 전에, 먼저 약을 바르거나 꿰매야 할 필요가 있듯이 말이다. 그는 사과해야 했다.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해야 흉터를 남기지 않고 상처를 낫게 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사과하려고 마음을 열려고 하니, 왠지 모를 두려움이 또 다시 그를 덮쳤다. 이제 와서 뒤늦게 사과하는 게, 이미 흉터라는 엎질러진 물이 되어 사과하는 게 무의미해지지 않을까,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쓰레기 같은 존재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문득 랄세이는 2주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의 침대 위에 걸어놓은 벽시계를 다른 곳에 걸어놓은 기억. 그 때 그는 시계가 걸려 있던, 벽에 박아놓은 못을 힘겹게 빼냈었다. 그렇게 벽에 날카로운 칼날을 꽂았던 못은 빠졌지만, 벽엔 그 못이 박혔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못이 가지고 있던 날카로운 칼날에 의한 깊은 흉터의 흔적이. 이 흔적이 신경쓰였던 랄세이는 진하게 페인트칠을 하는 등 어떻게든 이를 제거하려 했으나, 그 흉터는 사라질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방금 전에도 그는 이 고양이 인형의 가슴에 깊게 대못을 박아놓았다. 머리 반쪽이 물어뜯긴 인형의 상처에도 그 누구보다도 아픈 사연이 있었는데, 자신이 단지 그 상처가 '무섭다고', '자신을 해칠 거라고' 여기고 원래도 아팠던 상처를 더 아프게 했다. 그 뿐만 아니라, 극도에 다다른 공포 때문에 이성을 잃고 만 그는 심을 밀어내려다가 그를 공격하고 말았다. 폭신폭신한 손 사이로 숨겨둔 날카로운 손톱으로, 그의 손등을 깊게 할퀴고 말았다. 그런 왕자의 이성의 틀을 찢고 폭주한 감정의 괴물 때문에. 그런 자신이 박은 못은, 원래도 아프던 심의 상처를 더 아프게 했다. 그에게 지워지지 않을 흉터를 가슴에 깊게 남겼다. 마치 그의 벽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던, 못 박은 흔적처럼 말이다. 이 흉터는 어떻게든 메우려 해도, 절대 메워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쌓여가는 죄악을 그냥 덮어놓는 것도, 랄세이 자신에게는 큰 아픔이 되었다. 자신이 저지른 죄악은 계속해서 그의 양심을 더 괴롭게 할 텐데. 아무리 엎질러진 물이라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물을 주워 담는 편이 심리적으로 더 편안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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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델타룬 소설/Undertale&Deltarune Novels
Fiksi Penggemar어느 평범한 언델타룬 덕후의 소설입니다. 는 제가 개인적으로 델타룬을 더 좋아하는지라(랄세이 처돌이거든요) 델타룬 소설이 더 많다는 점 양해 부탁드려요. 주로 단편, 어쩌다가 한번 장편이 올라오기도 해요. 많이 부족하고 재미도 없지만, 양해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