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테오도르와 바이올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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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의 야생화를 마지막으로 우린 노래방을 나와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단비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슈퍼에 들른다 하여 그날은 나와 결이, 단둘이서만 걸었다. 한 3분 정도의 침묵이 지났을 때 내가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영화 재밌었다. 그치?"

결 - "그러게. 책이 더 재밌지만."

"책도 있어?"

들어본 거 같았다. 소설에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해리포터처럼.

결 - "응 작년에 읽었거든."

의외였다. 항상 폰만 보고 있어서 책을 읽을 줄은 몰랐는데.

"근데 끝이 너무 슬픈 거 같아. 테오도르는 왜 굳이 바이올렛을 떠났을까. 사랑하는 사이면 같이 있는 걸로 행복해야 되는 게 아닐까?"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내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왔다는 게.

결 - "사랑이 모든 걸 고치지는 않아."

그 짧고 무심하게 툭 뱉어진 말이 왠지 모르게 내 가슴을 아리게 했다.

몇 초간에 어색한 정적을 깨트리고자 나는 나도 모르게 결이에게 물었다.

"저기.. 책도 영화만큼 재밌어?"

결 - "그저 그래. 딱히 재미로 봤다기보다는 주인공들이 나를 닮은 거 같아서 읽었던 거 같아."

신기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이어서.

"신기하다. 나도 그 생각 했는데."

결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그 시선이 또 한 번 부담스럽게 느껴진 것인지 나는 당황하며 아무 소리 나 하기 시작했다.

"저.. 그러니까.. 어! 너 그 모자랑 손목 아대는 왜 맨날 하는 거야?"

아 왜 하필..

결 - "모자는 그냥 내가 좋아서.. 손목 아대는.."

결이가 망설여 했다.

"나 사실 봤어. 그때 운동장에서.. 너 팔"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결 - "미안.. 징그럽지."

마치 내가 자기 몸에 있는 상처를 본 게 자기 탓이라도 된 마냥 미안하다고 하는 결이에게 나는 무슨 말도 해줄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도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알았기에. 동족이라는 느낌을 받아서였을까 괜히 사과하는 결이에게 오히려 미안해서였을까. 나는 아무 소리 없이 옷소매를 거둬 왼쪽 팔을 치켜 결이에게 보여줬고 결이는 자기 팔에 있는 상처가 내 팔에도 있다는 게 신기한지 놀란 얼굴로 쳐다봤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신호등에 도착했고 (여기서부터는 원래 나랑 단비, 결이 이렇게 갈라서 간다.) 결이는 주춤하며 새로 산 아대 한쪽을 나에게 건넸다.

"뭐야?"

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결 - "이거 너 해. 이거라도 하고 있으면 안 보이잖아."

"고마워"

그 큰 손으로 조그마한 종이가방에서 아대를 꺼내며 수줍게 주는 결이의 모습이 귀여웠던 건지 결이가 준 흰색 아대가 생각보다 마음에 들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결 - "아! 그리고 이거."

줄게 또 더 있는 듯 결이는 종이 가방에서 뭘 꺼내었다.

결이 손에 있는 거는 아까 소품샵에서 본 바이올렛 키링이었다.

"어 이거.."

결 - "왠지 좋아할 거 같아서. 싫으면 안 받아도 되고"

안 받으면 서운해할 거 같아서 받았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자 우리는 내일 보자며 인사를 하고 나는 신호등을 건너기 시작했다.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결이는 왜 바이올렛 키링만 샀을까? 옆에 테오도르는? 아무리 테오도르가 떠나갔다 해도 그렇게 키링까지 바이올렛으로만 사면 너무 잔혹한 거 아닌가?

"시은아!"

테오도르 키링이 없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펼쳐놓을 찰나, 뒤에서 결이가 나를 불렀다.

뒤를 돌아 봤을 때 보였던 건 한 손에 테오도르 키링을 치켜들고 환하게 웃는 결이의 모습이었다.

테오도르 키링을 샀다는 안정감도 들었지만 그때 내가 내 심장소리를 들은 건 아마도 웃는 결이의 모습이 너무나도 예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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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서 늘 하던 거처럼 방에 들어가 방문을 꼭 닫고 침대에 털썩 누웠다.

결이의 웃는 모습이 아직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상했다. 결이의 목소리가 마치 나비처럼 내 주위를 맴도는 거 같았다.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이상하게 끌렸다.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었다. 나와 같다는 생각 때문이어서였는지 그 아이의 노랫소리 때문이었는지, 환하게 웃는 모습 때문이었는지.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몰랐지만 그 무엇이 내 안에 알 수 없는 감정을 자극했다는 건 알았다. 이렇게 내 마음이 꽉 찬 느낌은 처음이었다. 항상 비어있는 내 속에 갑자기 온 세상이 들어온듯했다.

그렇게 그날은 결이 생각만 하다가 잠이 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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