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두개의 별들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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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이 되자마자 생각나는 건 남자친구와 헤어진 것이다. 8개월 반 동안 사귀었다. 서로 좋아했고 설렐 만큼 설렌 사이였지만 그 애는 나의 인생의 일부가 되고 싶어 했고 나는 그 애에게 나라는 어둡고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세상을 열어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있는 낭떠러지 끝으로 와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가치 있는 아이였다. 그래서 헤어졌다. 아팠지만 금방 괜찮아졌다. 좋아하긴 했지만 같이 있는 순간에도 찰나의 행복 따위 느끼지 못했기에 헤어질 때도 별 감정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혼자 인대로 그저 그렇게 남들과 똑같지만 조금씩은 다른 18살의 삶을 살아갔다. 남들이 말한 행복하고 풋풋하기보다는 힘들고 고단한 고2의 삶이었다.

여름 방학이었다. 더운 날씨를 참지 못하고 우리는 아이스 링크장을 가기로 했고 나는 귀찮았지만 안 가면 박은지가 또 *랄을 할 것을 알기에 억지로 몸을 끌고 갔다. 오랜만에 타는 아이스 스케이트라 많이 서툰 나와 달리 은지와 유정이는 아주 신나게 링크장을 휘젓고 다녔다. 벽을 잡고 간신히 한 발짝 한 발짝 움직이고 있는 내가 어지간히도 답답했는지 유정이는 내 한 손을 잡고 벽 반대 방향으로 앞질러 가기 시작했다.

"어 야! 야야야ㅑ 그만그만그만"

소용없었다.

한 바퀴. 두 바퀴. 유정이는 내 손을 꼭 잡고 링크장을 엄청난 스피드로 돌았고 나는 중심을 잡으면서 사람들을 피하기 바빴다.

"자 이제 너 혼자 해봐!"

"야 미친 - "

빡!

순식간의 일이었다.

신유정은 돌대가리였다. 지가 그렇게 나를 끌고 돌아다니면 도움이 될 줄 알아서 손을 놔버렸다는 게 사람 뇌에서 나올 수 있는 논리일까.

눈을 떠서 보이는 건 부러져있는 내 안경과 어떤 사람이었다.

"죄송합니다. 야! 신유정 이 미친놈아!"

"미안해 시은아. 죄송합니다."

유정이는 어쩔 줄 모르며 계속 나와 그 사람에게 번갈아가며 미안하다고 빌고 있었다.

끝이 부러진 안경을 겨우 어찌어찌 쓰고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마른 체형의 남자가 서있었다.

팔꿈치에서는 조금이지만 빨간 피가 흐르고 있었다.

"피나는데.. 아 신유정 니 땜에 피까지 나시잖아"

괜히 신유정한테 화를 냈다.

"아씨 그게 왜 내 탓이야! 니가 피했어야지!"

이게 뭔 개소리야.

"아.."

남자분이 피 흘리는 팔로 차가운 얼음 바닥을 잡고 일어나셨다.

"죄송합니다!"

"아.. 뭐.."

"저 혹시 나중에라도 뼈가 부러졌다거나 인대가 끊어졌다거나 하시면 병원비 제가 지불할 수 있게 연락처라도 알려드릴게요."

그 와중에 번호를 따려는 건지 진짜 미안해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됐어요."

"아.. 그래도 - "

유정이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그 남자는 우리를 지나쳐 갔다.

"야 니는 그 와중에 번호 교환이 뭐냐?"

"뭐래. 진짜 다쳤으면 어쩌나 해서 한 말이었거든?"

거짓말을 할 거면 제대로 하던가.

"니 볼따구는 병원비가 걱정돼서 빨간 거냐?"

"아 쫌!! 잘생겼었다고!"

그럼 그렇지.

"뭘 잘생겨 모자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도 않더만."

정말이었다. 내 기억 속에 남겨진 그 아이의 첫 모습에 그 아이의 얼굴은 없었다. 오로지 지저분한 머리카락을 가리려고 한 듯 푹 눌러 쓴 모자와 노란색 글씨로 "Nirvana"라고 적혀있는 티셔츠, 그 아이가 입기에는 조금 큰 듯한 청바지. 그게 다였다. 아, 그리고 코 끝을 찌르는듯한 레몬 향. 그게 정말 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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