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 온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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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집 밖을 나가니 항상 있던 단비 대신 결이가 있었다.

"단비는?"

결 - "몰라 오늘 일찍 가봐야 된다고 하던데?"

"아 그래? 그래서 여기까지 왔어?"

결 - "너 혼자 걷는 거 싫어하잖아."

"저 앞까지만인데,,"

결 - "그럼 나 너 여기 놔두고 다시 갈까?"

"어? 아니."

결 - "ㅋㅋㅋㅋ장난이야. 얼른 가자."

하여튼. 나 놀리려고 사는 놈이다.

어젯밤 일 때문이었는지 수다 담당 단비가 없어서였는지 평소보다 더 어색한 기운이 맴돌았다.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걷고 있었는데 손에 따뜻한 무언가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결이가 내 손을 잡고 있었다. 그런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결이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결 - "왜? 설레냐?"

결이 특유의 장난기 섞인 말투였다. 원래 참 조용하고 순수했던 아이인데. 동현우한테 옮을 수도 있다는 유정이의 말이 사실이 됐나 보다.

나의 어이없음과 똥 씹은 얼굴을 보고 결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더워."

내가 손을 빼려고 했지만 결이는 내 손을 더 세게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결 - "이제 가을인데 뭐가 더워. 감기 안 걸리려면 그냥 이러고 있어."

"뭔 논리야."

결 - "내 논리야."

"니 논리를 왜 내가 따라야 하지?"

맨날 같이 토를 다는 내가 짜증 난다는 듯이 나를 째려보는 결이었다.

결 - "왜냐하면 내가 니 손을 잡고 싶으니까. 됐어?"

결이는 자기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는 성격이었다는 걸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 됐어."

그렇게 우리는 그날 아침 학교를 가는 시간 동안 계속 손을 잡고 있었다.

덕분에 학교 앞에서 유정이와 현우를 보자마자 한바탕 난리가 났다. 겨우 진정하고 교실에 들어서도 유정이와 단비는 계속 나에게 질문을 끊임없이 했다.

그렇게 결이와 함께하는 행복한 나날들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 어떤 연인들과 같이 데이트도 하고 학교 쉬는 시간 틈틈이 만나서 남들이 말하는 "꼴 보기 싫은 연에 짓"을 했다. 덕분에 우리의 상처들은 늘어나지 않았고 아물어지고 있었다.

그날도 우리는 학교가 끝나고 단비와 결이와 나, 이렇게 세명 같이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날따라 단비와 결이가 출출했는지 우리는 근처 편의점에 가서 뭐라도 먹자 하고 들어갔다. 그러자 옆 동네 학교 교복을 입은 애들 3명 중 한 명이 결이를 보고 아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옆 학교 애 - "어? 야 너 한결 아니냐?"

결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마치 만나면 안 되는 사람을 만난 듯이.

옆 학교 애 친구 - "결이가 누군데?"

옆 학교 애 - "아 있어. 나 중딩때 같은 학교 다니던 애."

옆 학교 애 친구 - "친구?"

옆 학교 애 - "아니ㅋㅋㅋㅋㅋ 미쳤냐."

들리지 않게 일부러 작게 말했지만 다 들렸다. 괜히 내 기분이 나빠졌다.

결이가 대답이 없자 그 애가 일어나 우리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보니 명찰에 '최준우'라고 적혀있었다

최준우 - "너 결이 맞지?"

결 - "최준우."

최준우 - "내 이름 기억하네? 야 진짜 오랜만이다."

결 - "그러게."

최준우 - "잘 지냈냐?"

결 - "응."

최준우 - "옆에는 누구야? 여친? 아아.. 두 명이네."

최준우라는 애가 기분 나쁘게 나와 단비를 훑어보고 다시 시선을 결이에게로 돌렸다.\

최준우 - "그대로네 ㅋㅋㅋ"

결이의 표정이 안 좋은 만큼 나와 단비의 기분도 슬슬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최준우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단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단비 - "야 한결. 나 배고파 뒤지겠다고. 빨리 사자고."

결 - "ㅇ.. 어 미안"

최준우가 단비를 비웃는 듯 쳐다보았다.

최준우 - "그럼 다음에 보자 한결."

그렇게 최준우는 자기 친구들이 있는 데로 돌아가 앉았다.

"쟤 누구냐?"

결 - "중학생 때 알던 애."

단비 - "친구는 아니었길 바란다. 존나 기분 더러워."\

결이는 아무 소리 없이 컵라면 하나와 삼각김밥 두 개를 들고 계산대로 갔다.

단비가 마지막으로 결제를 하고 앉으려던 순간 단비가 말했다.

단비 - "아 야 우리 밖에 앉자."

"싫어 추워."

결 - "얼어 뒤질 일 있냐."

단비 - "아 나 저 최준영인가 뭔가 하는 애 가까이 앉기 싫다고, 저거 뭔가 기분 찝찝하고 재수 없다고."

일부러 들으라고 크게 말한 건지 모르겠지만 옆에 있던 최준우가 듣고 친구들과 일어났다.

최준우 - "우리 이제 갈 거야. 편하게 먹어라. 결이는 다음에 꼭 보자."\

그렇게 나갔다.

단비 - "아 뭔가 존나 더럽단 말이야."

나도 기분이 안 좋았다.

"너 쟤 다음에 보지 마."

결 - "남자한테까지 질투하는 거야?"

"아 쫌."

결 - "ㅋㅋㅋㅋㅋ 알았어. 안 볼게."

그렇게 결이와 단비는 각자의 라면과 김밥을 먹고 나는 항상 먹는 초코우유 하나를 원 샷 했다.

단비 - "야 시은, 너 그거로 되겠냐?"

"뭐가?"

단비 - "너 요즘 또 안 먹는다? 맨날 그런 초코우유만 마시지 말고 밥을 먹으라고. 너 그러다 진짜 큰일 나."

"뭐래 ㅋㅋㅋㅋ 괜찮아. 나 오늘 점심시간 때 뭐 많이 먹어서 그래."

결이가 의아해했다.

결 - "너 오늘 점심시간 때도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단비가 걱정하는 눈빛으로 나를 봤다.

단비 - "시은아. 너 진짜 그러다가 저번처럼-"

"괜찮다고."

단비는 걱정돼서 그랬겠지만 과거 일 들추는 것을 싫어하는 나였기에 어쩔 수 없이 단비의 말을 잘라버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결이 앞에서는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결이는 궁금해하는 눈치였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렇게 다 먹고 집을 갔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결이에게 전화가 왔다.

"걔는 진짜 누구야?"

결 - "누구?"

"최준우라는 애."

결 - "말했잖아. 그냥 중학교같이 지낸 애라고.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래.."

내키지는 않았지만 결이도 나처럼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기에 그걸 존중해 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항상 하던 것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통화로 하고 끊었다. 그렇게 잘 준비를 하고 누워서 눈을 감는 순간 휴대폰 알림 소리가 들렸다. 또 결이겠지 하고 휴대폰을 봤다. 화면에는 결이의 카톡 대신 모르는 사람에게서 인스타 디엠이 와있었다. 디엠을 보낸 아이디는 j.wchoi02.

"ㅎㅇ" 라고 왔다. 뭐지? 하는 순간 또 디엠이 왔다.

"너가 결이 여친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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