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이와 나의 사이가 특별해지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닮은 모습에 끌렸고 주변에서도 그걸 빨리 눈치챘다. 하지만 누군가 물어보면 우리는 항상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했다. 사실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한 번도 고백을 하지도 않았고 그것에 대해 서로 불만도 없었다. 서로 여친, 남친 이라 부르지도 않았으며 그것에 대해 서운해하지도 않았다. 그런 말 따위, 애칭 따위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알았으니깐. 우리 사이는 단순히 연인 사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항상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줬고 피난처가 되어줬다. 내가 외로울 때면 결이가 항상 내 곁에 있었고 결이가 힘들 때면 내가 항상 결이 옆에 있었다. 마치 흑백으로 가득 찬 세상에 우리만의 무지개 세상이 조그만하게 있는 것 같이. 그 무지개 세상은 오로지 결이와 나뿐이었고, 그 무지개 세상 안에서만이 우리는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리고 난 우리만의 세상을 만들어준 결이가 고마웠다.
결이는 특별했다. 대한민국에 사는 18세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아이같이 순수하면서 어른스러웠다. 또 결이는 매우 즉흥적인 아이였다. 자연을 좋아했으며 항상 새로운 것을 찾는 것에 집착했다. 새로운 일, 새로운 생각, 새로운 길. 이 모든 게 나에게 새롭게 느껴졌지만 나는 그 낯섦이 싫지만은 않았고 그런 나에게 결이는 항상 새로운 모험을 제공했다.
결이 같은 존재가 나와 함께한다는 게 처음에는 좋았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러므로 내가 필요할 때에 결이는 내 곁에 있었고 또 내가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때에 결이는 그걸 알았다. 전에 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충족감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결이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서로의 과거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서로의 과거가 무엇이 됐든, 또 무엇이 우리의 상처들을 만들어 냈든 우리는 똑같이 아팠고, 아프고 또 아플 것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같이 있으매 그 아픔이 조금은 덜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랬다. 하지만 나의 상처가 아무는 사이에 결이의 상처는 심해져만 갔고 나는 어느새인가부터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자각하기 시작했다.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수 있었던 꿈에서 깨어난 것이다.
어느 날은 결이가 학교를 가던 길에 갑자기 멈춰 서서는 앞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있었다. 멍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는 결이가 이해가 안 되는지 단비가 뭘 하냐고 물었다.
결 - "그냥, 계속 앞으로만 가면 끝에는 뭐가 있을까 싶어서."
단비 - "바보냐 계속 앞으로만 가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겠지. 지구는 둥글잖아. 아닌가. 계속 앞으로만 가면 언젠가는 바다에 이르러서 빠져 죽으려나? 모르겠다."
항상 그렇듯 생각 없이 말하는 단비였다.
하지만 그런 단비의 말을 듣고도 결이의 시선은 앞을 응시했고 표정도 똑같이 멍했다. 마치 머리에 뭐가 하나 빠진 마냥.
결 - "그러니까. 계속 앞으로 가봤자 끝은 다시 제자리인데."
단비 - "아 뭐래. 학교 늦겠다 빨리 가자 쫌."
그날 하루 종일 결이는 정신이 반쯤 나간 듯했다. 그리고 아침에 결이가 한 말이 이상하게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날 밤은 잠을 자다 비가 오는 소리에 깨어났다. 휴대폰을 봤을 때는 새벽 2시였고 한 시간 전에 결이에게 온 문자가 있었다.
"나 너희 집 앞 놀이터에 있는데 나와줄 수 있어?"
한 시간 전에 보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얼른 옷을 갈아입을 정신도 없이 대충 겉옷만 걸치고 우산을 쥐고 밖을 나가 결이를 찾기 시작했다.
결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비가 쏟아지는데도 불구하고 놀이터 한가운데에 있는 미끄럼틀 끝에 앉아있었다. 비를 맞아 젖어있는 채로. 내가 앞으로 다가갔다.
비가 오는데도 한 시간 동안 그러고 있는 결이를 보고 걱정이 됐는지 답답했는지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야 너 지금 비 오는 거 안 보여? 왜 이러고 있어? 문자를 안 읽으면 돌아가던가 전화를 하던가.
너 오늘 진짜 왜 이래?"
고개를 들은 결이는 울고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랐다. 무슨 이유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우산을 접어 바닥에 던져놓고 결이를 안았다. 내가 껴안자 결이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미안해. 고함질러서 미안해."
그렇게 우리는 한참 놀이터 한가운데에서 비를 맞으며 한마디도 없이 있었다.
몸을 떼고 나서야 보였다. 결이의 손끝에서 떨어지는 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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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lemma
Romance낭떠러지 끝에 있는 서로를 구할 수 없다면 우리 같이 뛰어내릴까? 서로의 비슷한 모습에 끌려 서로에게 빛이 되어주는 시은과 결. 하지만 그 빛도 꿈에서만 존재할 뿐, 둘은 곧 꿈에서 깨어나 마주칠 운명을 알지 못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