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족 다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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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이 큰 소리로 다과회의 시작을 알리자 풍채가 좋은 노인이 걸어 들어왔다.

국왕은 나이가 어느 정도 있음에도 당당한 남자였다.

그가 나타나자 응접실에 있는 모든 왕족들이 예를 표했다.

"그럼 이제 다과회를 시작하도록 하지."

국왕은 굳은 얼굴로 피곤한 듯 얼굴을 쓸어 내리며 말했다.

모두가 준비된 좌석에 착석했다.

상석에 국왕과 함께 앉은 왕비는 화려한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리나는 시선을 벽에 두며 무표정을 유지했다.

"페하, 이리나 왕녀의 혼기가 찼으니 하루빨리 왕녀를 혼인 시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정적을 가르고 들어온 날카로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역시나 왕비였다.

왕비가 다과회의 본론을 먼저 꺼내자 국왕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거참, 처음부터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야겠소?"

"어머,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모인 건데 아이들의 시간을 빼앗으면 곤란하잖아요"

왕비의 말에 국왕은 한숨을 내쉬며 이리나를 돌아보았다.

"그럼 결정된 사항을 알려주마"

"......!"

'결정된 사항?'

그녀는 입술을 미묘하게 깨물었다.

"왕비의 말대로 네 혼기가 다 찼으니 그 이상을 기다려 주기는 힘들다.

어차피 결혼은 해야 하니 내가 왕비와 함께 적당한 혼처를 골라 두었다."

국왕의 말에 왕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리나 왕녀가 당장 결혼 하기에는 건강이 염려 됩니다."

모두가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붉은 머리의 왕태자가 당당한 표정으로 국왕을 응시하고 있었다.

"......"

이리나는 손을 가볍게 쥐며 속으로 혀를 찼다.

'아무리 왕태자여도 그렇지 국왕의 말에 반대하다니 이건 틀렸군...'

"그렇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

의외로 국왕은 대수롭지 않게 왕태자의 발언을 넘겼다.

'생각보다 국왕은 아들의 의견을 중요시하는 것 같군.'

"왕녀가 휴식 기간을 갖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일전에 약혼 소식을 왕녀가 전해 듣고 나서 ...있었던 일도 있으니."

왕태자는 미묘한 표정으로 이리나 왕녀의 자살 시도 사건을 대충 넘겼다.

국왕은 이해 한다는 듯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왕태자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의 말에 왕비는 자못 표독스럽게 왕태자를 노려보았다.

그때, 리자벳 왕녀가 또박또박 당당하게 외쳤다.

"아니요, 이리나 왕녀는 왕녀로써의 의무를 실천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얼핏 보면 왕녀의 의무를 언급하며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눈빛은 이리나를 차갑게 노려보고 있었다.

"왕녀의 의무라면... 전략결혼을 말하는 겁니까?"

지금까지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이리나가 처음으로 말을 했다.

결혼을 해야 하는 당사자가 말을 꺼내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

"그야 당연하죠!"

11번째 삶에 왕녀가 되었다.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