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흐윽…! 흣….”
한솔을 품에 안은 신우의 등이 느리게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그곳을 작고 하얀 손이 오롯이 차지한다. 허리, 척추, 그리고 날렵하게 튀어나온 날개뼈 위까지 더듬어 올라간 손은 필사적으로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 매달렸다. 알파의 너른 등이 갈급한 들숨과 함께 부풀어 올랐다 날숨을 타고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으드득-. 그는 눈앞에서 달큼한 향기를 풍기는 목덜미를 씹는 대신 자신의 입술을 사정없이 짓이겼다. 하얀 목선 위로 붉은 핏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오메가는 열기로 들끓는 몸에 타인의 액체가 닿자 흠칫 몸을 떨었다.
“아, 아…….”
언어가 되지 못한 단어의 파편이 조각조각 바스러져 떨어졌다. 꽁꽁 닫혀 있던 빗장의 틈새 사이로 어느새 우기를 맞은 숲 내음이 조금씩 조금씩 밀려 들어오기 시작한다. 한솔은 울창한 숲 아래 홀로 덩그러니 놓인 기분을 느꼈다. 다리 사이로는 이슬 맺힌 잎사귀가 사락거리는 소리를 내고 머리 위로는 거대한 고목들이 높게 솟아 그늘을 드리우는 아늑한 공간-.
긴 시간 호흡하는 법을 잊었던 사람처럼 갈급하게 신우의 목과 어깨가 이어지는 곳에 코를 박고 숨을 들이켜던 한솔은 창문 너머 쏴아아- 하는 빗소리와 함께 곧 둑을 넘기 직전인 향기의 파도가 결국 경계를 넘는 소리를 들었다. 쏟아지는 숲의 내음과 흩날리는 매화 꽃잎. 축축해진 공기를 타고 두 페로몬이 질척하게 뒤엉키기 시작한다. 완전한 교감은 기억 속의 봄을 불러일으켰다.
-그럼… 오늘 같이 자면 안 돼요?
기대감에 반짝이던 한솔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품 안에서 만발하던 봄의 향기를 잊을 리가 없었다.
생에 처음 욕망에 졌던 시간이고 후회와 동시에 아쉬움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건, 모든 상황이 통제를 벗어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젠장. 러트….”
알파는 그제야 일의 전말을 완전히 끼워 맞출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아주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이였다. 자신의 취향보다도 상대의 취향에 더 익숙하고 상대도 모르는 습관 같은 것들을 훨씬 더 잘 알고 있는 사이. 최대한 자제한다 하더라도 서로의 페로몬에 익숙해져 있을 수밖에 없고 그건 겨우 몇 번 침대를 공유하는 사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심지어 근 몇 달 사이에는 심상치 않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 탓에 페로몬 샤워부터 교감에 이어 침대까지 공유한 전적이 있었다.
그리고 유신우는 이른 첫 러트를 겪고 이번 해에 발현을 할 거라고 기대받던 알파였다.
습관처럼 약을 챙겨 먹느라 눈치채지 못했다. 한솔의 히트가 자신의 러트 사이클에 이끌려 늦춰졌을 거라고는-. 그건 각인의 전초 증상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고작 한 번 침대를 나눴다고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두 사람 모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윽, 하아… 솔아… 잠깐-.”
“으응… 싫어… 싫…, 신우야… 더 해 줘… 응?”
하지만 한솔의 페로몬 수치가 그날을 기점으로 뚝 끊기기까지 했으니 변명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히 자신의 탓이다. 신우는 낮게 탄식했다.
아무리 약으로 조절 가능한 러트라고 해도 그건 아무런 자극 없이 평온한 일상을 보낼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그것도 제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메가가 페로몬을 폴폴 풍겨 대며 안겨 오는데도 멀쩡하다면 그건 알파가 아니었다. 천하의 유신우도 알파는 알파라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서운 기세로 쏟아져 나오는 페로몬에 눈앞이 울렁이는 것을 느꼈다. 이성이 무뎌지는 틈을 타 본능 아래 숨죽이고 있던 짐승이 사냥을 준비하는 시간. 명백히, 러트의 증상이었다.
한솔이 젖은 날숨을 내뱉을 때마다 날카롭게 떨어지는 목선이 뒤틀리며 낮게 신음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몽롱한 머릿속으로도 그게 무척이나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솔은 짧은 송곳니를 가지고 어떻게든 이를 박아 보려 애쓰며 신우의 어깨를 깨물었다. 위 단추 두어 개가 풀어져 있던 셔츠는 엉망으로 잡아당기는 손길에 쥐어뜯겼고 강인하고 창백하게 보이는 어깨선에는 붉은 잇자국만이 남는다. 한솔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자신이 남긴 잇자국을 작은 혀로 할짝였다. 할짝-. 머리 위에서 끓는 듯한 신음 소리가 들렸다.
“……하.”
간지러운 자극이었다. 동시에 더할 나위 없는 도화선이기도 했다. 알파는 낮게 웃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가만히 받아 주던 수동적인 태도를 뒤집고 직접 상대 위를 장악하고자 하는 알파의 정복 본능이 이를 드러냈다. 거진 두 배에 가까운 덩치에 밀린 한솔은 뜀틀 아래에 조금씩 구겨진 채 힘겹게 자신의 위를 정복한 몸을 받아 내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작은 몸은 신우의 등치에 완전히 가려진 채 등을 간절하게 붙잡고 있는 두 손만 빼꼼히 보일 뿐이다. 신우는 내리 굶은 짐승처럼 한솔의 페로몬을 집어삼켰다.
“기분, 기분 좋아… 신우 페로몬… 흐응!”
“좋아?”
“힛… 으,응! 시원해… 맛있어….”
“…너, 진짜-.”
두 사람분의 헐떡이는 숨소리가 좁은 창고를 울렸다. 오랜 시간 휘저어진 달짝지근한 과일퓌레처럼 진하게 농축된 향기가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타고 두 사람의 피부에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신우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한솔을 내려다봤다. 히트에 들어선 한솔은 묘하게 더 솔직하고 순수해 보이는 면모가 있었다.
“좋아… 신우….”
별로 심장 건강에 도움이 되는 존재는 아니었다.
긴 눈 맞춤 끝에 턱 밑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핏방울이 토옥- 한솔의 아랫입술 위로 정착했다. 한솔이 무심코 입술을 날름 핥았다. 붉고 앙증맞은 혀가 유혹하듯 아랫입술을 질척하게 핥아 올리는 모습에 신우의 한쪽 눈썹이 순간 찡그려진다. 동시에 그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준 한솔이 얼굴을 들어 올렸다.
쪽-. 도화지에 물이 들듯 핏방울이 진하게 번진 것 같은 붉은 입술을 작게 벌리고 한솔은 눈앞의 날카로운 턱을 한입 베어 물었다. 턱밑을 간지럽히는 촉촉한 살덩이에 몸을 움찔 떤 신우가 다급하게 한솔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맛있는 사탕을 빨듯 정성스럽게 턱을 빨아 올리는 모습에 알파는 사나운 짐승이 위협하는 것처럼 목을 울렸다. 이를 달래듯 뭉툭한 혀끝으로 단단한 턱뼈를 조심조심 문지르고 날카로운 선을 이루는 얼굴 라인을 살살 간질인다. 입술 아래 그림자가 고인 움푹한 부분까지 올라와 싸악싸악 핥아 올리자 매끈한 하관이 움찔 떨리며 성을 냈다.
어찌 보면 그루밍을 닮았고 또 어찌 보면 마냥 장난 같은 행위.
마지막으로 찢긴 흔적이 남은 도톰하게 부푼 아랫입술을 쵹- 하고 가볍게 머금은 한솔은 열이 올라 어지러운 머리로 생각했다.
‘부드럽고, 폭신하고, 달콤해.’
항상 태산같이 단단해 보이던 유신우의 몸에 있는 것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연약한 부위였다. 한솔은 이곳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더어, 더 할래…!”
“안 돼.”
하지만 한솔이 전부를 맛보기도 전에 신우는 단호하게 한솔을 제지했다.
한솔의 목덜미를 붙잡아 자신에게서 떼어 내고 바둥거리는 몸을 온몸으로 눌러 제압한다. 신우의 왼손 안에 한솔의 양 손목이 전부 붙잡혀 매트 위로 고정됐다. 색색이는 숨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복부가 느리게 맞붙었다. 생각이 길게 이어지지 않는 머리로도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자세와 더불어 자신의 위를 차지한 알파가 좋아서 한솔은 조금 얌전해졌다. 하지만 평소의 한솔과 히트에 들어선 오메가의 차이점이 있다면 좀 더 본능적이고, 즉흥적이며, 무엇보다 참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솔은 신우가 잠깐 안심하고 숨을 고르는 틈을 타 얼굴을 잽싸게 들어 올렸다.
“…! 윽!”
아쉽게도 완전히 깔린 자세에선 한솔의 목 길이로는 신우의 얼굴까진 닿지 못했지만, 대신 매끄러운 목선에 어울리는 툭 튀어나온 목젖 위로 입술이 아슬아슬하게 안착했다. 잠시 맹한 눈으로 물음표를 띄우던 한솔은 적당히 말랑하고 단단한 것이 꿀렁이는 감촉에 헤실거리며 그걸 츕츕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하…. 낮게 탄식한 알파는 제 오메가가 자신의 목을 깨물고 할짝이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부드러운 캐러멜 빛 머리카락이 턱밑을 살랑이고 위아래로 꿀렁이는 목젖을 작은 혓바닥이 싹싹 핥아 올린다. 할딱이는 숨결이 뜨겁게 젖은 곳에 내려앉으면 곧 그곳에 말캉하고 축축한 살덩이가 할짝할짝 비벼졌다. 신우는 한숨처럼 웃었다.
“솔아.”
“으으응….”
“이한솔.”
“흐읏… 아!”
“너 그러다 혼나.”
그의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조금 더 작은 한솔의 목젖을 엄지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문지르던 신우는 한솔이 흠칫 놀라 하며 어깨를 떨자 목젖의 윗부분부터 시작해 턱 아래까지 엄지를 쭈욱 밀어 올렸다. 조금씩 가해지는 압박에 덜컥 호흡을 멈추고 신우의 눈치를 보던 한솔이 송곳니가 간지러운 기분에 신우의 목을 덥석 깨물었다.
“흐윽!”
신우의 두 눈이 짙게 가라앉았다. 알파는 나쁜 버릇이 생긴 제 오메가를 봐주는 대신 그대로 목을 깨문 벌을 내렸다. 기도가 막힌 한솔이 신우의 등을 껴안은 상태로 끙끙거렸다. 열기에 잠식당한 몸을 고려해 아주 잠깐씩만 한솔의 호흡을 막던 신우가 그새 낮게 쉬어 버린 목소리로 말했다.
“큰일이네.”
“힉… 히이….”
“널 어쩌면 좋지.”
알파의 두 눈이 새벽이 오기 전, 짙은 별하늘의 색으로 물들었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거대한 우주를 닮은 공간 속에서 별 하나가 맹렬하게 타오른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결코 꺼지지 않는 별이.
달칵-. 고요한 침묵 속에서 버클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 스윽, 한솔의 다리 사이로 군청색 천이 조용히 미끄러져 내린다.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빛나는 매끈한 다리를 되짚어 올라간 손은 손안에서 크림처럼 부드럽게 감기는 허벅지를 양옆으로 잡아 벌렸다. 열기로 들끓는 몸은 마침 딱 만지기 좋을 정도로 따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한솔이 앓는 소리를 내며 뜀틀에 머리를 기댔다. 좁은 창고 안에는 가쁘게 색색거리는 소리와 그사이에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한 빗소리가 얽혀 들었다. 신우는 손을 뻗어 한솔의 양다리를 자신의 어깨에 걸치게 만들었다. 아슬아슬하게 한솔의 아래를 가리고 있던 셔츠를 들어 올리는 손에는 더 이상 망설임이 없었다.
“으응….”
허리가 붕 뜬 자세를 하게 된 한솔은 불편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대신 신우의 밑에 얌전히 깔려 있는 걸 선택했다. 그만큼 자신을 가둔 신록의 냄새가 나는 품이 좋았다. 신우가 나름의 준비를 마치는 사이 한솔은 자신의 손길에 의해 죄다 뜯겨 나간 셔츠 자락이 코앞에서 유혹적으로 살랑거리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봤다. 셔츠 끝자락만이 바지 안에 고정된 채, 은밀하게 벌어진 틈새 사이로 미려하게 갈라진 복근의 모양이 생생하게 숨을 쉰다. 쭉 뻗은 목선을 타고 미끄러진 땀방울이 움푹 들어간 쇄골 근처에서 찰랑이며 고여 있다가 어느 순간 주륵- 하고 흘러넘쳤다. 탄탄하게 부푼 가슴과 상대적으로 쏙 들어간 복근을 지나쳐 미끄러진 땀방울은 날카롭게 떨어지는 장골에 비해 조금 품이 남는 교복 바지와 맞닿은 부분에서 마침내 허공으로 추락했다.
툭-.
한솔은 자신의 배꼽 위로 떨어진 식은 땀방울에 흠칫 몸을 떨었다. 새끼손톱만 한 구멍에 열기가 자글자글 고여 들었다. 한솔이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휘젓는 것과 동시에 허리가 둥글게 말리며 하체가 쑥 들어 올려진다. 긴 시간 발레로 단련된 몸은 무리 없이 유연하게 휘어졌다. 한쪽 무릎이 얼굴을 스칠 정도로 둥글게 말린 몸에 눈을 끔뻑끔뻑 뜨던 한솔은 자신이 집요하게 씹어 놓은 신우의 목을 보고 침을 꼴깍 삼켰다. 한 번 혼이 난 탓에 다시 얼굴을 들이밀진 못하고 미련만 남아서 끙끙거리는 걸, 신우는 그게 불편한 자세 탓인 줄 알고 한솔을 좀 더 바싹 끌어안아 매트에 눕혔다. 푹신한 침대여도 모자랄 판에 이런 낡은 매트라니. 못마땅함에 혀를 찼지만 예고치 못하게 찾아온 상황에선 이마저도 감지덕지였다.
“후….”
깊게 숨을 내쉰 신우가 한솔의 속옷 밴드를 느리게 잡아당겼다. 한 겹 사이로 매화 향기가 훅 퍼져 나온다. 체액에 페로몬이 가장 농축되어 있는 만큼 한솔이 아래로 물을 흘릴수록 살랑이던 매화 향기는 점차 짙어져 갔다.
“얼르은… 얼른 신우야….”
“뭘 할 줄 알고 이렇게 보채.”
자꾸만 칭얼거리는 한솔에 신우는 다치니 가만히 있으라며 자꾸만 들썩이는 엉덩이를 가볍게 내리쳤다. 짝! 소리만 컸지 힘은 하나도 안 실려 있던 탓에 한솔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양 볼을 붉혔다. 조금… 더 세게 해도 되는데…. 한솔은 입 안으로 웅얼거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 년 치 인내심을 끌어다 쓰고 있던 신우는 한솔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대신, 은근슬쩍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드는 한솔을 눈치채곤 눈을 가늘게 떴다.
“오늘따라.”
짝-!
“한솔이가 혼날 짓을 많이 하네.”
이번에는 진짜 힘이 실려 있는 매질이었던 탓에 한솔은 덜컥 움직임을 멈추고 숨을 집어삼켰다. 녹아내리는 것처럼 뇌가 흐물흐물해진 한솔은 ‘흐응, 응….’ 하고 신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신우는 탄력 있고 말랑말랑한 엉덩이를 너르게 문질러 주며 한솔의 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삽입은 안 돼.’
결론을 내리면서도 내심 불만을 가지고 으르렁거리는 제 속의 짐승을 마주했다. 입술을 질끈 깨문 알파의 목 위로 짙은 핏줄이 곤두선다. 삽입은 안 된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아직은 약발로 버티고 있긴 하지만 자신이 러트 사이클에 들어선 건 분명해 보였다. 이 상태에서 한솔과 관계라도 했다간 빼도 박도 못하게 각인이었다.
으득….
신우는 겨우겨우 피가 멈춘 제 입술을 다시 혹사시켰다. 당연히 각인이 싫은 것도 한솔이 싫은 것도 아니었다. 그의 인생 계획 어딘가에는 분명 한솔과의 각인이 존재했다.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라 딱히 재고의 대상조차 아니었지만-.
언제나처럼 시기상의 문제일 뿐이다.
각인을 낭만과 로맨스로 포장하는 미디어와 달리, 각인은 엄연히 ‘질병’의 산물이었다. 후천적 페로몬 불감증같이 각인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꼽는 부작용은 단순히 타인의 페로몬을 맡지 못하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혈육이 주는 안정감, 가까운 지인에게서 받을 수 있었던 친애의 증표, 낯선 타인을 경계할 수 있는 감각 등- 페로몬을 교감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형질인에게 있어 그 모든 걸 한순간에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각인은 그들에게 있어 로맨스가 아닌 현실이었다. 이정표를 잃은 조각배처럼 외롭게 흐르는 물결 속에 몸을 맡기기에는 두 사람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그의 부모님이 사회적 지위가 어떻고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가와 별개로 유신우는 고작 학생이었다. 그는 아직 사회에서 이룬 게 아무것도 없는 애송이였다. 그가 비슷한 나이의 다른 도련님들과 달리 이른 나이부터 살인적인 스케줄을 받아들인 것은 유 회장의 뜻이 아니라 유신우 자신의 의지였다. 그는 자신의 울타리가 확실한 사람이었고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가져야 했으며 하필이면 가장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사람이었다.
하루빨리 실적을 내야만 했다. 이한솔을 오롯이 가지기 위해서는.
…그래야, 다시는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참지 않을 수 있었다.
‘이기적인 새끼.’
그는 자조하며 따끈하게 달아오른 한솔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비교적 서늘한 신우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열기를 식히고 있던 한솔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찬 감촉을 느끼고 파드득 몸을 떨었다.
이 아이를 여느 아끼는 다른 물건처럼 여럿 복제해서 자신만 아는 곳에 숨겨 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신우는 한솔의 긴장을 푸는 것에 집중하며 아주 어릴 적에나 하던 생각을 떠올렸다. 아쉽게도 이한솔은 흔해 빠진 물건이 아니었고 유신우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를 두고 모험을 할 수가 없었다. 한숨을 삼킨 그는 남은 미련을 털어 냈다. 마음속 짐승이 아쉬움에 주위를 맴돌다 곧 자취를 감췄다.
무분별한 점막 접촉조차 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니 뭐든 조심해야 했다. 히트 사이클에 들어선 오메가가 알파의 성기를 원하게 되는 것은 번식의 욕구와 더불어 아주 많은 알파 페로몬이 필요한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페로몬이 가장 많이 농축되어 있는 곳은 체액, 그중에서도 성 분비물이니 성기를 원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손쉬운 삽입이라는 수단의 사용이 불가능하니 적어도 이곳을 벗어나 안전한 장소로 옮길 때까진 갈급하게 알파 페로몬을 원하는 한솔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유신우는 점차 열이 오르는 한솔의 몸을 느끼며 어떻게 해야 이한솔을 진정시킬 수 있을지 초조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흐윽… 왜, 왜… 안 넣어 줘…?”
끝까지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 알파에게 서러움을 느낀 한솔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든 과잉 상태가 되는 히트 사이클의 부작용이 한솔을 보다 솔직하게 만든 것이다. 평소에는 이미지를 생각해 꾹 참고 살았던 말들을 망설임 없이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때로는, 그런 솔직함이 타성에 젖어 있던 관계를 발전시키고는 했다.
“…….”
한솔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자 신우의 생각이 그대로 정지했다. 서럽게 알파를 올려다보던 오메가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직접 손을 뻗는다. 털이 적어 매끈한 살덩이가 오메가의 손아귀 안에 착- 감겼다. 눈물이 가득 차오른 눈이 알파를 똑바로 올려다보더니-.
“흣, 흐으… 아!”
눈앞에서 스스로 성기를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만, 져 줘… 신우야…! 아! 흑… 세게…! 더 세게…! 아응…!”
“…….”
“더어… 더…! 힛…. 좋아아….”
초점이 흐려진 눈이 눈앞의 알파를 두고 먼 상상 속을 헤맨다. 알파의 눈에 검푸른 불길이 타올랐다. 까득-. 사납게 이를 간 알파가 주먹을 쥐었다 펴길 반복하며 오메가를 내려다봤다. 입술을 짓씹는 행동에서 많은 고뇌가 느껴졌다.
“좋아, 신우야…!”
하지만, 자신을 부르는 소중한 이를 보고선 끝내 힘을 줬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그는 꼼짝없이 달콤한 캐러멜 빛 눈동자에 사로잡힌 채 자신을 두고 자위를 하는 짝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가 안일하게 행동한 대가이자 형벌이었다.
퍽-! 목 아래에서 끓어오르는 신음을 삼킨 소년이 뜀틀을 강하게 내리친다. 착, 착, 착…. 그의 아래에는 스스로 성기를 만지는 한솔이 있었다. 본능에 몸을 맡기긴 했지만, 난생처음 해 보는 자위에 서툰 동작이 한눈에 들어왔다. 표피가 까진 게 보일 정도로 요령 없이 기둥을 만지던 한솔이 결국 엉엉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자신의 자극점이 정확히 어딘지 모르니 아무리 만져도 끝이 보이질 않은 탓이었다. 목 아래까지 찰랑이며 차오른 수위가 넘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한솔은 결국 다시 신우의 이름을 부르며 만져달라, 좆을 넣어 달라 졸랐다. 알파가 사납게 입술을 짓씹었다.
“…오늘은 안 돼.”
잠시간 신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한솔은 그게 자신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란 걸 깨닫고 두 눈을 크게 떴다. 눈가에 빠르게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찰랑이며 시야를 뿌옇게 흐리던 물기가 주륵 흘러내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한솔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신우의 셔츠 자락을 움켜쥐고 간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왜 안 돼….”
“…….”
“흑… 왜… 막, 상 보니까 하기, 싫어…?”
“이한솔.”
“그, 그럼 나 뒤돌아 있을 테니까-.”
“솔아…!”
턱이 덜컥 붙잡혔다. 무서울 기세로 쏟아지는 신우의 페로몬에 헐떡이며 가쁜 호흡을 내뱉던 한솔의 뒤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깊은 바닷속으로 침잠하다가 한순간에 청량한 숲속으로 끌려온 듯한 기분이었다. 쏴아아-. 한 박자 늦게 거센 빗소리가 현실로 침투해 들어온다. 과잉 감정에 사로잡혀 있던 한솔은 뒤늦게 든 현실감에 눈을 끔벅였다.
“앞서가지 마.”
“아으으….”
“이걸 보면 모르겠어? 이게 누구 때문인데-.”
신우와 한솔의 아래가 한 치의 오차 없이 맞붙었다. 얇은 천 사이로 느껴지는 매서운 열기에 넓은 등에 가려진 작은 몸이 흠칫 떨렸다. 금방이라도 천을 뚫고 나올 것처럼 팽팽하게 부푼 것이 뭉근하게 한솔의 아래에 비벼진다. 단단하고 묵직했다. 조금만 잘못 건드렸다간 끓어 넘칠 것 같은 뜨거움에 한솔의 입술이 작게 뻐끔거렸다. 그 무엇보다 명백한 흥분의 증거에 혼란함에 빠져 있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한솔이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왜, 안 해 줘….”
“각인될지도 모르니까.”
쏟아질 듯 넘치는 신우의 페로몬에 비교적 정신이 맑아진 상태였던 한솔이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무래도 내 러트에 네 히트가 끌려온 것 같은데.”
“아….”
“자세한 건 밖에 나가서 검사해 봐야 알겠지만 이대로 관계하면 각인 될 거야. …오해하지 마. 너랑 각인하는 게 싫다는 게 아니라 네 몸에 무리가 갈까 봐-.”
한 박자 늦게 쉼표를 넣은 신우가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참는 거니까.”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거친 금속성이 섞여 마치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들렸다.
한솔은 입 안의 볼살을 꾹 깨물었다. 별이 쏟아지는 것처럼 내리꽂히는 신우의 시선이 그 어느 때 보다 음습해 보여서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었다. 한솔의 손목 위를 지그시 누른 커다란 손이 낡은 매트 위를 까드득 긁었다. 짙은 검은색이던 두 눈은 어둠 속에서 묘하게 석양빛을 섞은 색깔을 띠었다. 한솔은 홀린 듯 신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난…, 하고 싶어.”
“…….”
“너랑 하고 싶어, 신우야.”
그의 숨소리가 점차 짙어져 갔다. 우르릉-. 창문 밖에서 천둥이 치는 소리가 들렸다. 한 번 번뜩이며 어두운 창고 안을 환하게 비추었던 빛은 곧 그림자와 함께 사그라들었다. 으득, 이를 간 신우가 한솔의 손목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나는….”
신우의 목선을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이 툭- 한솔의 눈가를 스쳤다. 깊게 파인 눈꼬리에 물방울이 아슬아슬하게 걸쳐진다. 간지러움에 눈을 깜박이자 마치 눈물처럼, 한 번 물기가 마른 흔적을 타고 짭조름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한솔은 마치 자신이 신우를 대신해 우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네가 상황에 떠밀리지 않고.”
“…….”
“네 스스로의 의지로.”
“…….”
“온전히 내게 왔으면 좋겠어, 한솔아.”
속삭이는 목소리는 다정했고 이어지는 눈 맞춤은 달콤했으나,
한솔을 옴짝달싹 못 하게 가둔 품에는 고집스러운 소유욕이 엿보였다.
애초에 벗어날 생각도 의지도 없었지만, 한솔은 그가 요즘 들어 조금씩 내보이는 조바심이 기꺼웠다.
“우리는 아직 더 자랄 시간이 필요해.”
‘언제 크냐.’ 과거의 목소리가 속삭인다. 어쩌면 그건, 자신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라 그 스스로에게도 거는 주문이 아니었을까.
한솔은 꿈결같이 몽롱한 머리로 신우를 올려다봤다. 빗소리는 그칠 줄 몰랐고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금요일 오후의 창고는 오로지 둘 뿐이었다.
마치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었다.
둘만의 세상. 비가 내리는 창고. 떠다니는 회색 먼지와 칙칙한 색상의 교구들….
세상 그 어느 각본도 이리 초라하고 멋없진 않겠지만-.
“그럼, 약속해 줘.”
“…무얼?”
“두 번의 여름이 더 지난 뒤, 새해는 나랑 단둘이 보내겠다고.”
여름 장마 속에 피어난 매화꽃만큼은 눈부시게 찬란해서 한솔은 아주 먼 훗날이 되어도, 이날의 기억을 잊지 못할 거라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한솔이 떨리는 목소리로 건네는 청을 들은 신우는 짧게 눈을 깜박였다. 언제나 어른처럼 느껴지던 그도 결국은 나와 같은 소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모든 게 낡고 헤진 공간 속에서 유일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두 사람은 긴 시간 눈을 맞췄다. 깜박이는 눈 맞춤과 간질거리는 숨소리. 마치 요정이 속삭이는 것 같은 비밀스러운 암호가 서로를 간지럽혔다.
그리고 마침내, 푸스스 웃은 소년기의 유신우가 입을 열었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