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니, 아가?
사랑스러운 우리 아기-.
***
“임신입니다.”
“…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온 병원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축하한다며 허허 웃으시더니 이제 5주차라고 말씀하셨다. 한솔은 얼떨떨함에 입술을 달싹였다. 옆에 같이 있던 신우도 말을 잇지 못하는 게 보였다.
“아기집은 하나만 보이는데, 다음 주에 다시 오시면 심장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처음에는 얼떨떨했고 그다음엔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얼이 빠진 상태로 진단서를 끊고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한솔은 신우를 홱 돌아보며 안기려 했다. 신우가 드물게 쩔쩔매며 말했다.
“솔아, 조심. 조심해야지-.”
한솔의 몸을 깨지기 쉬운 유리 장식품처럼 소중하게 보듬은 신우가 어쩔 줄 몰라 하며 그의 배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신우의 손 위로 양손을 겹쳐 올린 한솔이 행복하게 웃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기다리고 계실 시부모님께도 전화를 드리자 어머니께서 밝은 목소리로 축하한다며 속은 괜찮으냐고 걱정을 하셨다. 한솔은 괜찮다고 말하고선 전화를 바꿔 달라는 신우의 말에 핸드폰을 넘겼다.
“네, 피곤할 테니까 재우고 다음에 또 들를게요.”
[그래, 무리하지 말렴. 새아가가 많이 힘들 테니까 네가 많이 도와줘야 한다. 임신은 혼자 한 게 아니잖니. 글쎄, 너희 아빠는 너 임신했을 때 일에 미쳐 가지고 아주….]
[크흠…!]
[내가 얼마나 속상했는지 알아요, 당신?]
언제나처럼 평범하게 티격태격하시는 시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웃었다. 통화를 끊은 신우가 장인어른께 연락을 드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솔이 춘곤증이라도 온 것처럼 나른한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메가가 졸려 한다는 걸 눈치챈 알파는 소파에 기대앉아 있는 한솔의 몸에 얇은 담요를 덮어 주었다.
[그래, 한솔이냐.]
신우가 장인어른께 전화를 건 뒤, 한솔의 귀에 핸드폰을 대어 주자 잠이 좀 깨는지 그가 해맑게 웃으며 ‘나 임신했어.’라고 폭탄을 던졌다. 난데없는 막내의 선언에 전화 너머로 침묵이 내려앉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곧 쏟아지는 걱정거리를 들으며 한솔이 신우의 팔에 얼굴을 툭 기댔다. 그 얼굴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솔의 임신 소식이 소문이 났는지 이세린부터 시작해 다양한 지인들에게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정말 중요한 몇 사람에게만 먼저 답장을 보낸 뒤, 신우는 핸드폰을 껐다. 어느새 자신의 팔에 얼굴을 기댄 채 잠이 든 한솔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그는 두 사람의 침실로 향했다. 쫄래쫄래 신우의 뒤를 쫓아간 솜이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달칵- 문이 닫혔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결혼식이 끝난 뒤, 두 사람이 지중해의 어느 섬으로 신혼여행을 간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노을 예쁘다!”
별장 테라스에 나와 있던 한솔은 지평선 너머로 석양이 지는 모습을 보고 신이 나서 소리쳤다. 한 발자국 늦게 한솔에게 다가온 신우가 그의 어깨에 숄을 걸쳐 준다. 한솔이 신우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었다.
“바비큐 구워 먹을까?”
“잠은 더 안 자도 되겠어?”
“응! 푹 잤더니 개운해.”
개인 별장이긴 하지만 시설을 전반적으로 관리해 주는 매니저가 존재했다. 거주는 하지 않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생활하며 요청하면 들어주는 식이다. 두 사람은 바다가 잘 보이는 테라스에 사용인들이 준비해 준 바비큐 그릴에 고기와 각종 채소를 올려놓고 짠! 와인 잔을 부딪쳤다. 붉은 포도주를 꼴깍꼴깍 삼킨 한솔이 매끈한 다리를 무릎 위에 척 꼬아 얹고는 말했다.
“좋다아….”
신우는 눈매가 나른하게 풀린 오메가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삼켰다. 이제 정말 새 가정을 이루는 어른이 되어서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의 눈에 씐 두꺼운 콩깍지 탓인지 그 얼굴이 무척 요염해 보였다. 그는 한솔이 착용한 검은색 초커를 지그시 바라보며-잘 보면 Yu Sinu란 이름이 새겨져 있다.- 손을 뻗었다. 멀리서부터 불어오는 잔잔한 바닷바람에 살랑이는 한솔의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겨 주자 한솔이 신우를 돌아보더니 예쁘게 웃었다.
“내 남편 잘생겼네!”
히히 웃은 한솔이 신우의 입술에 쪽- 기습 뽀뽀를 날렸다. 알파는 맛만 보여 주고 도망을 가는 오메가를 붙잡아 진하게 입을 맞췄다. 흐응, 흐…. 한솔은 여우비처럼 쏟아지는 신우의 페로몬을 맞으며 자신의 입 안을 유린해 줄 혀를 기쁘게 받아 들였다. 이제는 어딜 만져 주면 곧바로 반응이 오는지 자신의 몸보다 상대의 몸을 더 잘 알았다. 신우가 혀로 한솔의 입천장을 쓸어 주는 동안 한솔은 신우의 귀를 만지작거렸다. 의외로 이 커다란 알파는 귀가 약했다.
츕-. 두 사람 사이로 반투명한 은색 실이 살짝 늘어진 상태로 반짝였다. 한솔은 그걸 혀를 내밀어 삭 핥아 올린 뒤 신우를 바라보며 샐쭉 웃었다. 알파는 유혹하는 오메가를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더니 순식간에 그를 덮쳤다.
“읏….”
쇄골 근처가 콱, 깨물리는 느낌에 한솔이 몸을 떨었다. 신우의 검은 머리카락이 턱 밑을 간지럽히는 느낌에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한솔은 신우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다시 목과 귀를 만지작거리며 알파를 괴롭혔다. 그리고 얼굴을 숙여 귓바퀴를 잘근잘근 깨물자 신우의 넓은 어깨가 움찔-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귀여워….’
작게 키득거리며 웃은 한솔이 귀에 후- 바람을 불었다. 확실히 알아볼 정도로 귓바퀴와 눈가가 붉어진 알파가 홱, 몸을 떼어 내더니 팔등으로 입가를 가렸다. 와, 진짜…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멋있고 귀엽고 다 할 수가 있지?
혼인 신고서에 내 거라고 도장 쾅쾅 찍어 놔서 다행이다. 아니었으면 자신이 감금당하기도 전에 신우를 감금할 뻔했다. 한솔이 헤실헤실 웃으며 신우에게 안겨 들자 신우는 평소보다 한 뼘 더 따끈하게 느껴지는 몸을 알아차리고 한솔의 이마에 슥- 손을 올렸다.
“열나네.”
“어? 진짜?”
“응. 들어가야겠다.”
신우는 저번 주부터 러트 약을 끊었다. 한솔과 사이클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한솔의 히트 사이클 일정에 맞춰 결혼식과 신혼여행 일정을 잡은 만큼 알파가 약을 끊자 각인된 오메가의 몸은 금방 반응을 보였다. 한솔이 나 페로몬 냄새 많이 나냐며 자신의 손목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자 신우는 ‘엄청’이라고 대답하며 웃었다. 알파가 오메가의 몸을 안은 상태로 몸을 일으켰다.
“앗, 내 버섯 꼬치-.”
“내일 또 먹으면 되지.”
한솔이 아깝다며 입술을 툭 내민 얼굴로 구시렁거리자 신우가 아기 달래듯 한솔의 엉덩이를 툭툭 두들겨 준다. 아까부터 묘하게 솔직하고 애교가 많아졌다 싶더니, 역시 호르몬의 효과는 정확했다. 신우의 어깨에 얼굴을 비비던 한솔이 페로몬을 더 달라고 몸을 흔들었다. 신우가 그런 오메가를 달래며 침실까지 걸음을 옮겼다.
달칵-.
“…흣?!”
문이 닫히자마자 달콤쌉싸름한 숲 향기가 온 방 안을 메웠다. 한솔이 품 안에서 바르작거리며 끙끙거리는 것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신우가 한솔의 귓가에 쪽- 입을 맞췄다. 히익… 한솔이 작게 비명을 지른다. 신우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히트에 들어서는 오메가는 느끼지 못할 테지만 지금 방 안은 두 페로몬이 질척하게 뒤섞인 상태였다. 신우는 한솔의 목 근처에 코를 박고는 품 안의 몸에서 나폴나폴 날아오는 매화 향기를 한껏 들이켰다. 머릿속의 짐승이 사슬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으르렁거렸다. 눈을 뜬 알파의 눈동자에 기이한 빛이 돌았다.
다시 입술이 겹치고 한솔의 몸이 새하얀 시트 위에 풀썩- 눕혀진다. 숨을 헐떡이던 한솔이 가만히 신우를 올려다보다가 손을 뻗어 신우의 셔츠 단추를 풀었다. 처음에는 잘되지 않는지 낑낑거리더니 하나를 겨우 풀곤 뿌듯한 얼굴로 알파를 올려다봤다. 마치, 던져 주지도 않은 공을 물고 와서는 ‘나 잘했지?’ 하고 바라보는 솜이 같았다.
“아! 흐읏….”
알파는 오메가가 제 단추를 풀게 내버려 두고 자신은 한솔의 상의를 훌러덩 벗겨 버렸다. 그리고 하얀 살결 위에 톡 도드라진 분홍색 과실을 한입에 삼킨다. 한솔의 몸이 파드득! 떨렸다. 점차 입 안에서 형태를 잡아 가는 그것을 혀끝으로 굴리다가 잘근잘근 씹었다. 과도한 자극에 오메가의 얼굴이 점차 물기에 젖어 들어갔다.
“으응… 흐으… 신우야아… 여기, 여기도 해 줘….”
한솔이 다른 쪽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신우가 피식 웃었다.
“유독 가슴이 예민한 것 같네.”
“오메가는, 읏… 원래 여기 예민해….”
“응. 그런데 한솔인 더 예민한 것 같아.”
그리고 신우는 고개 숙여 한솔의 귓가에 음담패설을 속삭였다.
“이래서 아기한테 젖은 어떻게 물리려고?”
한솔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그리고 점차 목부터 붉은 석류 빛으로 물들더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신우의 가슴을 찰싹! 때렸다. 물론, 속으로는 좋아서 방방 뛰는 중이다. 한솔이 부끄러운 것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자 신우가 미안하다며 그를 살살 달랬다. 그 좋은 목소리로 얼굴 좀 보여 달라고 속삭이자 얼굴을 가린 손 아래로 한솔의 입꼬리가 슬금슬금 춤을 췄다.
“그냥… 그냥 나는 원래 이런 건데….”
한솔은 신우가 보는 줄 알면서도 힐긋힐긋 눈치를 보며 손을 내리더니 자신의 젖꼭지를 만지작거렸다. 알파의 눈매가 가느스름해졌다.
“신우, 야…! 흡… 아응…!”
“왜 이렇게, 야해.”
그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쉬고는 잔뜩 내밀어진 가슴을 쯉- 빨았다. 그리고 짐승 같은 잇자국을 실컷 내다가 살갗에 배어 있는 꽃향기를 따라 자리를 옮겼다. 배꼽, 배꼽에서 다시 아랫배, 그리고-.
“흐윽…!”
성기가 그대로 삼켜졌다. 한솔의 몸이 유연하게 휘었다.
“달아.”
사이클에 접어든 몸은 페로몬 덩어리 그 자체였다. 신우는 한솔의 요도 구멍을 쪽쪽 빨며 ‘응?’ 하고 되묻는다. 한솔이 하얀 시트를 구깃구깃 움켜쥔 채 도리질을 쳤다.
“거기다 입 대고 말하지, 힛… 말라니까아….”
오메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따끈하고 말랑한 살덩이를 원하는 만큼 주무르던 알파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한솔의 성기를 입에 넣고 쭉쭉 빨기 시작한다. 한솔은 기둥에 닿는 촉촉한 점막과 자극, 그리고 이따금 살짝살짝 스치는 날카로운 송곳니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틀림없었다. 한솔은 달콤한 공포에 빠져 허덕였다. 꼭 짐승의 아가리에 급소를 밀어 넣은 기분이었다.
“이제, 내 거잖아.”
“…!”
내 건데 내 마음대로도 못 해?
그 말에 발끝부터 쫘악- 소름이 돋았다. 굉장한 고양감이었다.
“흑, 아아…!”
결국, 이번에도 신우의 입 안에 사정을 하고 만 한솔이 파르르- 몸을 떨었다. 사정의 여운에 몽롱하게 녹아든 상태로 숨을 헐떡이고 있자 오메가의 성기에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빨아 마신 알파가 그의 바지를 벗겼다. 스르르- 부드러운 천이 다리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하체가 완전히 발가벗겨진 한솔이 본능적으로 허벅지를 모으려 하자 알파는 그걸 부드럽게 제지했다.
“으응!”
푹-!
한솔의 둔부를 잡아 벌린 신우가 질척하게 젖어 있던 입구를 뭉근하게 덧그렸다. 쩍, 쩍- 살갗에 점성 있는 액체가 달라붙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이 정도는 적응할 만도 한데 한솔은 매번 옅은 수치심을 느꼈다. 평소라면 이때다! 싶어 신우에게 부끄럽다며 웅얼웅얼거렸겠지만, 지금의 한솔은 과거의 한솔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히트에 들어선 오메가는 세상 누구보다도 솔직했다.
“흐으응… 신우야… 안에… 흣… 더 안에….”
“더 안? 여기?”
“흐익…! 으응! 더어…! 더 주세요….”
완전히 흐물흐물하게 무장해제 되어 버린 한솔이 몽롱한 눈으로 신우를 올려다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눈가에 열이 올라 발갛게 물든 눈매가 무척이나 요염해 보였다. 알파는 그런 오메가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갑자기 한솔의 안을 휘젓던 손가락을 쿨쩍… 하고 빼내 버린다. 눈물이 일렁여 보석처럼 빛나는 한솔의 캐러멜 빛 눈동자가 왜 빼 버리냐는 듯이 자신의 반쪽을 바라봤다.
“으흣…?!”
그대로 두꺼운 귀두가 푸욱-! 박혀 들었다. 말랑하게 풀려 있던 구멍은 힘겹게 기둥을 삼키면서도 빠듯하게 벌어진 입구 사이로 물을 흘려 댔다. 한솔은 눈을 크게 뜨고 신우를 올려다봤다. 알파가 퍽! 허리 짓을 하자 자지러지듯 비명을 질렀다.
“흐앙! 앙! 아, 안-, 신우야, 안 돼애…! 너무… 흐윽!”
“뭐가 안 돼.”
으르렁거리듯 말한 알파가 기이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오메가를 씹어먹을 것처럼 내려다보더니 그대로 허리를 사납게 박아 넣었다. 한솔이 비명을 질렀다.
“너무- 좋, 아…! 읏! 흐이잇…!”
“…젠장, 이한솔.”
알파는 나직이 욕설을 내뱉고는 한솔의 어깨를 끌어안듯이 당기며 쉴 틈 없이 추삽질을 했다. 퍼억! 찔걱… 푹…! 콘돔을 씌우지 않은 맨 기둥이 구멍 안을 거칠게 헤집는 느낌에 한솔은 온몸에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다. 서로의 가장 은밀한 곳이 밀착되었을 때 느껴지는 뜨거움과 약간의 마찰, 그리고 충만한 만족감이었다. 자신을 질식사시킬 것처럼 쏟아지는 페로몬과 완전히 이성을 잃은 듯한 신우의 얼굴이 보였다. 한솔은 생각했다.
저 얼굴이 보고 싶었노라고-.
자신을 가지지 못해 안달이 난 알파의 얼굴. 진정 한솔이 신우에게서 보고 싶었던 모습이었다. 오메가의 허리를 붙잡고 거칠게 허리 짓을 하던 알파가 들이마실 숨을 찾아 한솔의 입술을 훔친다.
허공에서 두 혀가 정신없이 엉켰다. 말 그대로, 광란의 시간이었다.
“흣, 아! 으응, 싫어… 빼지마… 빼면…!”
어느 순간부터 마찬가지로 이성이 뚝 끊긴 한솔은 신우를 마구 졸라 댔다. 더 넣어 달라며 다리로 신우의 허리를 감고 몸을 앞뒤로 흔들어 대며 알파를 재촉한다. 알파가 본능적으로 한솔의 은밀한 곳을 뚫기 위해 뒤로 허리를 물릴 때마다, 오메가는 촉촉한 눈망울을 하고선 싫다고, 빼지 말아 달라며 그를 유혹했다. 신우는 목을 울리며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퍼억…! 푹-! 푸욱…!
“…!!”
그리고 어느 순간,
좆 기둥이 사납게 들이박힌 자리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히트 사이클을 맞아 개화할 준비를 마친 한솔의 입구가 빠금- 벌어졌다. 한솔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완전히 얼어 버린 채, 조각난 신음만 흘리는 오메가와 달리 본능적으로 이곳이 자신이 파고들어야 할 공간임을 알아차린 알파는 눈을 어둡게 빛내며 성기를 쑤셔 넣었다.
쯔즈즛…. 내벽과 성기가 마찰하는 소리. 그리고 아주 좁은 틈새 사이로 두꺼운 귀두가 파고들었다. 한솔은 몸 안의 장기가 전부 턱 밑까지 밀리는 느낌에 숨이 턱 막혔다.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자신의 아랫배를 만지자 뭔가 단단한 것이 만져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기까지 정복당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머릿속에서 화려한 폭죽이 터지며 아드레날린이 폭발했다. 아…! 손발이 바들바들 떨렸다.
“흐, 아앙…!”
붉은 속살을 거침없이 헤집으며 좆 기둥이 박혀 든다. 아래에서 애액이 왈칵왈칵 터져 나왔다. 따로 윤활제가 없어도 이때의 오메가는 알파의 좆을 받기 위해 평소보다 훨씬 더 젖어 들곤 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하, 이한솔.”
“으응….”
“큭….”
알파는 완전히 낮게 잠겨 버린 목소리로 한솔을 찾았다. 설령 이성을 잃어도, 구멍만 보면 좆을 박아 넣으려고 안달이 나는 짐승이 되더라도- 그가 한솔을 잊는 순간은 없을 것이다.
한계치를 넘어서는 자극에 오메가가 진저리를 치며 도망을 가려 하자 알파는 그런 오메가를 단단히 끌어안고 통통한 엉덩이에 벌을 주었다. 짜악-! 손바닥과 살이 마찰을 일으키는 소리. 흡, 하고 숨을 삼킨 한솔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대로 연달아 세 대가 더 떨어졌다. 짝! 짜악-! 한솔은 둔부에서부터 퍼지는 열감과 만족감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본능적으로 신우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마치 더해 달라는 것처럼 엉덩이를 흔들며 알파를 졸랐다.
으득- 이를 간 신우가 그런 한솔의 몸을 붙잡고 허리를 뭉근하게 돌렸다. 쯔즛- 애액과 쿠퍼액에 젖어 있던 내벽에서 마찰이 생기는 소리가 들린다. 한솔은 기둥에 착, 달라붙어 있던 내벽이 통째로 딸려 나가는 듯한 느낌에 침대 시트를 박박 긁었다. 꼭 자신의 영혼까지 뜯겨 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
그다음엔, 당연히 전진이었다. 귀두만 걸칠 정도로 구멍에서 좆을 빼낸 신우는 폭주 기관차처럼 사납게 성기를 박아 넣었다. 퍽-! 한솔은 그대로 숨 쉬는 것을 잊었다. 눈앞이 온통 알록달록하게 물들더니 곧 새하얀 도화지처럼 하얗게 물들었다.
이 감각을 알고 있다. 허공에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 동시에 나 자신을 완전히 강탈당하는 것 같은 약간의 상실과 허무, 그리고 그 대신 차오르는 완벽한 해방감.
상대에게 온전히 속해졌음을 느끼는 기쁨의 이름-.
절정이었다.
“…….”
몸이 환희에 부들부들 떨렸다. 오메가의 가장 안쪽 구멍에 성기를 박아 넣는 데 성공한 알파는 그런 한솔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허리를 단단하게 붙잡고는 완전히 넋이 나간 오메가의 안에 씨를 뿌렸다. 혹처럼 부풀기 시작한 기둥이 틈 하나 없이 입구를 틀어막고 귀두에서 하얀 점액질이 끊임없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꿀렁꿀렁- 구멍이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나는 느낌. 평소라면 기겁을 하고 발버둥을 쳤을 그 느낌이 무척 좋았다. 한솔은 자신의 몸이 완전히 열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멍하니 눈을 깜박이던 오메가가 알파와 눈을 마주치고는 배싯, 웃었다.
“좋아… 응…! 배불러….”
“…….”
숨을 할딱이며 붉은 입술을 오물거리는 한솔을 조용히 내려다보던 신우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그리고 노팅으로 인해 단단하게 연결된 몸을 퍽-! 하고 쳐올린다. …!! 한솔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그렇지 않아도 두꺼운 성기에 울퉁불퉁하게 혹이 생겼는데, 완전히 꽉 맞물려 있던 것이 움직이자 뇌가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살과 살이 비벼지며 일어나는 마찰, 약간의 쓰라림, 그리고 쏟아지는 쾌감 같은 것…. 몸이 둥글게 말린 한솔은 위에서 신우가 찍어 내리듯 움직이는 것에 입술을 작게 벌렸다.
“흐윽…! 아, 아파… 신우야….”
“…읏, 하아….”
“으응…! 이거, 너무우…! 아! 너무 커어…!”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라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엉엉 울면서 신우에게 매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반쯤 이성을 잃은 알파는 한솔의 양 손목을 한 손으로 붙잡고 머리 위에 단단히 고정했다. 그리고 퍼억-! 혹으로 부풀어 오른 성기를 거칠게 박아 넣었다.
“솔아.”
“…흐으읏! 흐앙…!”
“이한솔-.”
그리고 그대로 짐승처럼 교미했다. 비싼 프리미엄 침대가 푹 꺼질 정도로 두 사람은 정신없이 흘레붙었다. 너무 과한 자극에 몸을 떨던 한솔이 까무룩 정신을 잃은 뒤에도 신우는 오메가의 안에 거칠게 허리 짓을 했다. 한솔은 자신의 내벽이 진탕 휘저어지는 느낌에 반짝- 눈을 떴다가 곧장 퍼부어지는 알파의 페로몬에 정신없이 신음하는 일이 반복됐다. 얼마나 정액을 퍼부어 댄 건지 이제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배 안에 액체가 출렁이는 느낌이 들 정도다. 종종 추삽질을 하던 신우가 허리 짓을 멈추고 한솔의 엉덩이를 강하게 내리칠 때마다 등허리를 타고 찌릿한 쾌감이 관통했다. 흐으… 더, 더 때려 줬으면 좋겠다…. 분명 머릿속으로만 생각한 것 같은데 그 뒤로 연속적인 매질이 떨어졌다. 한솔은 아! 하고 비명을 지르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너무 좋아….
그리고 또 정신없이 흔들리다가 밤낮이 두 번 바뀌고도 여전히 쌩쌩한 신우의 아래에서 멍하니 눈을 깜박이며 다 쉬어 버린 목소리로 한 번씩 이렇게 말했다.
“으응… 더어, 더 해 줘….”
사이클이 끝나기까진 한참은 남은 시간이었다.
***
“새아가, 괜찮니?”
신혼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시부모님과 함께하는 첫 식사였다. 한솔은 어쩐지 멍한 기분에 국만 떠먹다가 어머님의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 네! 죄송해요… 잠깐, 딴생각을 하느라….”
“많이 피곤하지? 내 배로 낳은 애지만 정말 융통성이 없다니까.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왔으면 여독이라도 풀게 해 줘야지. 안 그래도 몸 약한 애를….”
한솔은 어색하게 웃었다. 물론, 어릴 적에 한솔이 많이 병약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잘 먹고 잘 뛰어다녀서 그런지 다 크고 나선 흔한 감기조차 걸려 본 적이 없었다. 일부러 걸리라고 고사를 지낸 적은 있어도….
하지만, 어릴 때부터 한솔을 봐 왔던 문 대표의 눈에는 여전히 작은 어린아이인가 보다. 그 걱정과 애정이 감사해서 한솔은 헤헤- 무해하게 웃었다. 자신들의 어린 시절이 기록된 앨범이 보고 싶어 인사도 드리고 앨범도 챙길 겸 가장 먼저 신우네 본가에 들린 것이었는데, 애꿎게 융통성 없는 남편이 되어 버린 신우는 끝없이 이어지는 어머니의 잔소리에도 특별히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갈치의 가시를 발라내는 데 집중했다.
“나는 가끔 얘가 한솔이한테 하는 거 보면 우리 애가 맞나 싶어요, 여보.”
그리고 뽀얗게 발라낸 살을 자신이 먹는 게 아니라 전부 한솔의 밥그릇에 얹어 주는 걸 보고는 문 대표는 어이없음 반, 흐뭇함 반으로 웃었다. 한솔은 민망함에 고개를 푹 숙였다가, 밥을 한 숟가락 크게 떠서 입 안에 넣었다. 오물오물- 갈치의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무척, 맛있었다.
“이때가 언젤까?”
두 사람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신우의 방으로 올라왔다. 앨범을 한가득 가져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탁자 대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앨범을 펼쳐 놓고 한 장 한 장 사진을 구경하다가 한솔은 얼굴에 흙을 잔뜩 묻히고 분홍색 유과를 우물거리고 있는 자신과 그런 한솔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신우의 사진을 보고 물었다.
“3살.”
“진짜? 3살 때는 신우도 엄청 작았구나… 근데 어떻게 알았어?”
신우는 한솔을 돌아보며 말했다.
“기억나니까.”
“정말?”
“응. 너 그때 미끄럼틀 내려오기 무섭다고 울었었어. 유모님이 그거 달래 준다고 유과 주신 거고.”
그러고 나서 모래놀이를 하느라 그날 새로 꺼냈던 옷을 잔뜩 더럽히고 말았다.
한솔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
알파는 정말 신기해하는 오메가를 돌아보더니 피식, 웃는다. 그리고 한솔의 볼을 톡 쳤다.
“네가 있었잖아.”
“…….”
“그러니까 기억해.”
너와 함께했던 순간은, 수많은 빛바랜 기억 속에서도 유독 선명하게 남아 있노라고-.
그렇게 조용히 속삭이는 목소리를 듣는 한솔의 눈동자가 옅게 일렁였다.
[좀 어때.]
“…몰라, 속 메스꺼워. 흐어….”
[급체 아냐? 병원 가 봐. 남편 놈은 뭐래.]
“오늘 엄청 바쁘다 해서 전화 안 해 봤지….”
[으이구, 이 화상아! 평소에는 잘만 어리광 부리면서 꼭 이럴 때 속 터지게 한다니까! 됐고, 빨리 전화해. 나 아프쇼- 하고 드러누우라고!]
“그치마안….”
[야, 이한솔!]
한솔은 입술을 비죽이다가 핸드폰 너머로 폭탄처럼 쏟아지는 은혜의 잔소리에 찔끔했다. 소파에 반쯤 눕듯이 앉아 있던 솜이가 한솔의 배에 코를 가져다 대고 킁킁거리다가 덩달아 깜짝 놀란다.
“어, 어차피 오늘 어머님 만나 뵙기로 했어! 좀 이따 나가야 돼. 끊는다!”
한솔은 벌떡 일어나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제야 집 안에 평화가 찾아왔다.
귀청 떨어질 뻔했네….
그리고 그대로 털썩- 자리에 앉았다. 유달리 몸이 축축 처지고 힘이 없었다. 진짜 몸살인가? 의심을 하면서 앓는 소리를 내는데, 한솔에게 솜이가 다가왔다. 킁킁- 솜이는 자꾸만 한솔의 냄새를 맡으면서 찰싹 달라붙어 있으려 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유달리 나한테 많이 안기려 하네. 한솔은 솜이의 턱 밑을 살살 긁어 주었다. 맨날 신우한테 안기려 했으면서-. 한솔이 안으면 불편한지 뭔지, 곁에는 있어도 안기는 건 신우한테만 허락하던 솜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솜이는 자진해서 한솔의 품을 파고들곤 했다. 그는 신기한 마음 반, 즐거운 마음 반으로 솜이와 손장난을 하고 놀다가 체력이 조금 회복되는 게 느껴지자 몸을 일으켰다. 이제 정말 준비해야 할 시간이었다.
“어머님!”
“아가, 벌써 와 있었니?”
“아녜요. 도착한 지 별로 안 됐어요.”
스물일곱 먹은 청년을 ‘아가’라고 칭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한솔은 문 대표를 반갑게 맞이하며 웃었다. 두 사람은 오늘 천성 백화점으로 쇼핑을 하러 나온 참이다. 신혼부부가 생활할 새집에 들여놓을 인테리어 소품들을 볼 예정이었는데, 집 내부를 한 번 훑어보러 왔던 문 대표가 신혼집이 이게 뭐냐며 경악을 한 탓에 오늘의 일정이 잡히게 되었다.
보통의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라면 이런 일정이 불편하고 어려울 수 있지만, 적어도 한솔에게 해당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툭하면 신우 집에 가서 뒹굴었던 데다가 명절이면 명절이라고 꼬까옷 입고 가서 넙죽 절하고 용돈도 받았다. 한마디로, 제2의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인 분들이었다.
“이 정도면 기본은 된 것 같은데… 나머지는 너희 취향대로 살면서 맞춰 가는 게 좋겠구나.”
“네, 감사합니다. 어머님.”
“응, 그래. 그럼… 아차, 오늘 그날이구나? 총회 있는 날. 그럼 그이랑 신우도 같이 나올 텐데, 집에 들러서 저녁이라도 먹고 가겠니? 신우는 그이랑 같이 오라고 하면 되고.”
눈을 깜박이던 한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쉬는 기간이라 따로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혼자 뒹굴거리는 것보단 신우네 본가에 가서 신우 방을 구경을 하는 게 더 재밌으니까. 한솔은 오늘은 또 뭘 뒤져 볼까 하고 속으로 히히 웃었다. 자신은 신우에게 영구 허가권을 받았으니 무죄라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신우네 본가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오후였다. 한솔은 어머님과 티타임을 가진 뒤 신우의 방에 가서 침대 위에 털썩 누웠다. 알파가 오랜 시간 머무른 공간이어서 그런 걸까? 이상하게 안심이 되는 기분이다. 뭔가 포근하고 안정적인 느낌이랄까. 괜히 신우가 사용하던 이불과 베개에 얼굴을 비비던 한솔은 뭔가 2% 부족한 느낌에 얼굴을 번쩍 들었다. 뭐지? 뭐가 부족한 거지?
“으음….”
주변을 둘러보던 한솔은 홱- 몸을 일으키고선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달칵- 옷장 문을 열자 주인이 떠난 방임에도 여전히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는 옷들이 보인다. 한솔은 그중에서도 유독 신우의 체취가 진하게 배어 있는 옷들을 가져와 와르르 침대 위에 쏟았다. 셔츠, 코트, 카디건, 담요 가리지 않고 월동 준비를 하는 다람쥐처럼 차곡차곡 신우의 물품을 침대 위에 쌓은 다음, 둥그렇게 둥지를 만든 뒤 뿌듯하게 웃었다. 한솔은 마지막으로 신우의 베개와 이불을 꼬옥 안고 침대 위로 다이빙을 했다. 곧, 색색- 조용한 숨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한솔이는요?”
“오늘따라 애가 많이 피곤해 보여서 쉬라고 올려 보냈어. 티를 안 내려 하던데… 어릴 때부터 영 내색을 잘 안 하던 아이라 걱정이야. 네가 가서 잘 챙겨 주렴.”
“…알겠어요.”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야 본가로 퇴근을 한 신우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그는 한솔이 아파 보인다는 말을 듣고 얼굴을 굳히고는 서둘러 2층의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비록, 자신의 방이지만 노크를 한 그는 대답이 없자 문손잡이를 잡았다.
“솔아, 들어갈게.”
달칵- 방문이 열렸다.
아늑한 어둠뿐인 공간에 빛이 새어 들어온다. 그는 뒤에서 쏟아지는 빛을 뒤로하고 다시 달칵, 문을 닫았다. 탁- 방안의 불을 켜자 앞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는 자신의 침대에 볼록 솟아 있는 이불 더미를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허물어트리고 웃고 말았다.
“솔아.”
알파는 자신의 침대로 향했다. 이불을 부드럽게 내리고 오메가의 이름을 부르자 부스스한 연갈색 머리카락 사이로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신우는 조용히 눈을 뜨는 오메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곁에 앉았다.
“내 옷은 왜 이렇게 쌓아 놨어.”
“으응… 신우야, 안아 줘….”
한솔은 잠이 덜 깬 얼굴로 알파를 보자마자 어리광을 피웠다. 열일곱이나, 스물일곱이나 그 모습은 다르지 않았다. 작게 웃음을 삼킨 알파는 오메가를 안아 올리며 자신의 품에 가뒀다. 한솔은 신우의 물건에 남아 있던 것보다 훨씬 진하게 숲 냄새가 나는 신우의 어깨에 얼굴을 비볐다. 꼭 캣닢에 취한 고양이 같았다.
“잘 잤어?”
“응….”
“그럼 내려가서 밥 먹자.”
안 먹고 싶은데….
한솔은 속으로 웅얼거리다가 신우의 새까만 눈동자와 마주치고는 발칙한 생각을 했다.
‘안 먹고 싶다고 하면 혼내 주나?’
물론, 생각만 했다. 생각만.
그렇게 혼나는 건 내키지 않는 데다가 벌을 자신이 참아 낼 수 있는 한계까지 꾹 참아 냈을 때 느낄 수 있는 보람도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신혼인걸-. 좀 더 달콤한 감각을 즐기고 싶은 한솔이었다. 그는 신우의 품에 안긴 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 먹겠습니다.”
“그래, 많이들 먹으렴.”
약 한 달 전, 저녁 식사를 했을 때 한솔이 갈치를 잘 먹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던 문 대표가 한솔 쪽으로 갈치를 밀어 줬다. 당연하다 해야 할지, 그 갈치는 신우의 손으로 들어가 연약한 가시를 전부 털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솔은 여느 때처럼 자신의 밥그릇 위에 도톰하게 올려진 흰 생선 살을 깜박깜박 내려다본다. 신우가 의아한 얼굴로 한솔을 돌아봤다.
“왜 그래. 입맛 없어?”
“아, 아냐… 먹을게. 먹을 수 있어.”
한솔은 꼴깍 침을 삼켰다.
왜일까… 당연히 신우네 밥상에 오르는 생선인 만큼,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정도는 못 해도 최상품만 손질해서 가져온 걸 텐데-.
이상하게도 매스꺼울 정도로 생선 비린내가 폴폴 풍겼다. 한솔은 입술을 꾹 깨물고 조심스럽게 생선 살 한 조각을 집어 올렸다.
“…….”
아무리 편해도 시부모님 댁인데 반찬 투정을 하는 못난 모습을 보여 줄 순 없었다. 한솔은 눈을 질끈 감고 그것을 입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
웁-.
달그락…! 자신도 모르게 젓가락을 놓친 한솔이 손바닥으로 입을 막은 채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과묵하게 식사를 하던 유 회장부터 문 대표, 신우까지 전부 한솔을 돌아본다. 한솔은 그들의 시선을 신경 쓸 새도 없이 화장실로 달려갔다. 식탁 위로 잠깐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솔아!”
그리고 마찬가지로 젓가락을 내팽개치고 벌떡 몸을 일으킨 신우가 한솔이 달려간 화장실로 사라졌다.
부부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집사.”
그리고 탁- 숟가락을 내려놓은 유 회장이 입을 열었다.
“당장 주치의 불러오게!”
한밤중의 소동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치의인 강 원장은 오지 못했다. 그가 산부인과 소속이 아니었던 탓이다.
대신, 진료를 봐줄 의사를 구해 준 덕에 두 사람은 이런 야밤에도 곧장 병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한솔이 임신을 했다. 그리고 이 사실에 가장 신이 난 사람은 한솔도 신우도 아닌, 바로 유 회장이었다.
한솔은 자신의 앞으로 보내진 선물 폭탄에 할 말을 잃었다. 산모를 위한 각종 건강식품부터 시작해 아직 콩알도 안 된 애를 위한 배냇저고리, 유모차, 아기 침대- 그리고 무려 부동산이었다.
한솔은 단번에 강남 노른자 땅 위에 있는 고층 건물의 주인이 되었다.
“이…런 거 받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증여세는….”
“그건 아버지가 처리하실 거니까 신경 안 써도 돼. 그리고 왜 받으면 안 돼? 본인께서 주고 싶으셔서 주시는 용돈이니까 잘 받아 놔.”
한솔도 나름 부족함 없이 자라온 귀한 도련님이건만, 재벌 회장님의 금전 감각은 상상을 초월했다. 한솔은 다시 한번 할 말을 잃었다.
“자, 이제 눕자.”
“나 아직 30분도 안 서 있었는데….”
한솔이 꿍얼거렸지만 예비 아빠가 될 사람 앞에서는 효력을 잃었다. 한솔은 결국 신우의 품에 얌전히 안긴 채로 침대에 꾸물꾸물 들어갔다. 신우 냄새 좋아…. 잠시 반항을 하긴 했지만, 결국 임신한 오메가에게 최고의 특효약은 상대 알파의 페로몬이었다. 한솔은 흐물흐물 녹아내린 것처럼 신우에게 찰싹 달라붙어 낮잠을 청했다. 그런 두 사람의 주변에는 마치 장벽처럼 신우의 물건이 쌓여 있었다. 전부 한솔이 하나씩 주어다가 가져다 둔 물건이었다.
색색-. 곧 품 안에서 곤한 숨소리가 들렸다. 알파는 잠든 오메가를 내려다보며 잔잔히 웃었다. 쪽, 한솔의 이마에 입을 맞춘 알파가 말했다.
“고마워, 한솔아.”
***
“이한솔 님.”
간호사가 한솔의 이름을 불렀다. 한솔과 신우는 담당의가 있는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초음파 기기를 대고 모니터를 보는데-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한솔이 불안감을 느낀 것은. 언제나 세세하게 그들에게 배 속의 상태를 알려 주던 담당의가 묵묵히 모니터를 살폈다.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정확히는 ‘의사’의 표정이.
환자에게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야 하는 의사의 얼굴이었다.
“이한솔 님, 그리고 보호자님.”
의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 보이시나요?”
두 사람은 의사가 마우스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태낭이 두 개라는 것은….”
“…….”
“다태아라는 의미입니다.”
한솔의 눈이 크게 뜨였다.
“축하드립니다. 이란성 쌍둥이입니다.”
의사는 축하를 입에 담으면서도 표정이 묵묵했다. 여기서 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진료실 안이 무거운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한솔아.”
신우는, 자신의 물건으로 만들어진 둥지에 틀어박힌 한솔을 조용히 불렀다. 어두컴컴한 방, 동그란 이불 더미가 움찔 떨렸다.
“…포기하자.”
그리고 신우는 아주 무겁게,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말을 입에 담았다.
“…!”
한솔은 그 말을 듣자마자 뒤집어쓰고 있던 이불을 홱- 치우곤 신우를 돌아봤다. 그 얼굴이 마치 세상에서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중절 수술 알아볼 테니까-.”
“싫어!”
한솔이 소리쳤다.
“싫, 어….”
목소리가 옅게 떨렸다.
“싫어, 나 안 할래….”
“솔아.”
“오지 마! 나 안 할 거야. 나, 안 해….”
한솔이 처음으로 신우를 거부했다. 알파의 눈동자가 강하게 흔들렸다.
“안 할 거니까… 나, 안 할 거니까-.”
“한솔아….”
“오지 마! 싫어… 저리 가!”
한솔이 주변에 있던 물건을 마구잡이로 던지기 시작했다. 눈물이 펑펑 났다.
“이한솔!”
결국, 과호흡 증상이 온 한솔을 강하게 붙잡은 신우가 입술을 짓씹었다. 비릿한 피 맛이 났다. 알파의 눈동자에도 처절한 고통이, 뼈를 깎는 것 같은 아픔이 새겨졌다.
“그거 안 하면….”
“…….”
“네가 죽어, 솔아….”
신우의 목소리가 옅게 흔들렸다. 방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런데, 내가….”
“…흑….”
“내가 어떻게 그 아일 낳자고 해….”
알파의 고개가 숙어진다. 툭- 그가 한솔의 어깨에 얼굴을 힘없이 기댔다. 뜨거운 눈물방울이 어깨를 적셨다. 결국, 한솔도 목놓아 울고 말았다.
그날의 밤은 유독 그렇게 어두웠다. 별빛이 자취를 감추고 인공위성의 은은한 빛조차 보이지 않는 하늘. 달조차 몸을 숨긴 시간. 칠흑의 밤-.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아픈 눈물을 나눴다.
“한솔이는 어떻습니까?”
신우가 정장 재킷을 벗으며 묻자 유모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알파는 한숨을 삼켰다.
“감사합니다, 유모님.”
“아니에요- 그, 신우 도련님.”
“예.”
유모는 말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재경 도련님께서….”
“…….”
“막내 도련님을 만나 보고 싶어 하세요.”
신우의 미간이 설핏 찌푸려졌다.
“한솔이도 알고 있습니까?”
“아뇨, 도련님은 모르세요.”
“…알겠습니다. 생각해 보고 연락드리죠.”
신우가 출근해 있는 사이 한솔의 곁을 지켜 줬던 유모가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알파는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꺾어 천장을 바라본 채,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알파는 침실로 향했다.
끼이익-.
어두운 방 안에 빛이 새어 든다. 일찍이 밤이 내려앉은 방 안에서 침대 위에 엎드려 있던 솜이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귀를 쫑긋거렸다.
“쉬-.”
두 번째 보호자가 나타나자 꼬리를 살랑이며 작게 왕! 하려던 솜이는 신우가 조용히 제지하는 소리를 듣고 입을 다물었다. 신우는 벗은 재킷을 의자 등받이에 걸치고 침대로 향했다. 먼저 솜이의 등을 가볍게 쓸어 주고 나서 이불을 조심스럽게 매만진다. 알파가 말했다.
“솔아.”
“…….”
“한솔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얘기 좀 해, 응?”
그러자 이불 더미가 움찔- 떨렸다. 스르르… 조금씩 몸을 일으킨 한솔이 신우를 돌아본다. 대체 얼마나 운 건지 눈매가 벌겋게 짓물러 있었다. 신우는 심장이 저릿한 기분을 느꼈다.
“…왔어?”
한솔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결국 한솔의 몸을 단단히 끌어안고 말았다.
“미안해.”
“…….”
“미안해…….”
사과할 주체도, 사과를 받아야 할 대상도 없는 말이었다. 한솔은 신우의 품 안에서 몸을 떨었다.
“미안해, 솔아.”
그 목소리가 너무 아파서… 너무 무거워서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
“안녕하세요, 고객님. 예약하셨을까요.”
“네, 아마 이재경으로 예약되어 있을 거예요.”
“네, 고객님. 이재경 고객님 테이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한솔은 직원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신우에게서 재경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은 바로 어젯밤의 일이었다.
-내가… 만나 보길 바라?
본가에선 단순히 형제 사이가 안 좋은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신우는 아니었다. 그는 과거에 직접 재경과 부딪쳤던 인물이었고 그만큼 재경에 대한 감정이 좋지 못했다. 그래서 한솔은 신우가 재경과의 만남을 허락해 준 게 의외라고 생각했다.
-응.
-왜…?
-…….
비록, 그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오늘 재경을 만나 보면 알게 되겠지. 한솔은 모든 의지를 잃은 것 같은 무료한 얼굴로 직원이 안내해 주는 프라이빗 테이블로 향했다. 넓은 공간을 앞에 두고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형.”
널찍한 공간에서 굳이 햇볕이 잘 드는 자리를 피해 구석에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한솔은 천천히 이재경에게 다가갔다. 이한솔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도 뚱한 표정으로 쳐다도 보지 않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조금은, 성숙해진 것 같은 얼굴.
“난 네가 싫어.”
그리고 여전히 애새끼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나도 별로 형을 좋아한 적은 없는데.”
“뭐?”
“그래서 왜 부른 거야. 용건이나 말해.”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 한솔이 이미지 관리도 내팽개치고 툭- 말을 내뱉자 재경의 얼굴이 황당하게 변했다. 서른이나 먹은 어른이면서 동생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본 탓이었다. 그는 얼굴을 구깃구깃 구겼다가, 입술을 잘근- 못살게 굴고는 개미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싫었어.”
“…?”
“엄마가 너 혼자 것도 아닌데, 네가 뺏어 간 것 같아서-.”
“…….”
“싫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니까.”
“…….”
“너는 같은 길 밟지 마.”
“…!”
어쩐지 씁쓸한 얼굴을 한 재경이 햇볕이 드는 창가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그거 너무, 남은 사람들한테 못 할 짓이지 않냐.”
“…….”
한솔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설마, 재경한테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남성 오메가의 자궁은 일반 여성의 자궁보다 훨씬 약해서 다태아를 무사히 키워 낼 수 없다.
그래서 남성 오메가의 다태아 임신은 대부분이 산모의 사망으로 이어질 정도로 치명률이 높았다. 교과서에서도 실릴 정도로 널리 알려진 상식이었는데 그 탓인지 드물게도 법에서는 이 경우라면 12주 이상의 태아 중절도 허용하고 있을 정도였다.
“…….”
한솔은 말하고 싶었다. 형이 뭘 아냐고. 뭘 알아서 그런 말을 하냐고. 그렇게 패악을 부리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재경의 씁쓸한 얼굴과, 어깨를 적시던 신우의 눈물이- 어머니의 묘비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묵묵한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 모든 게 한솔의 아픔이 되었다.
“야.”
“…왜.”
“이게, 안 본 사이에 왜 이렇게 싹퉁바가지가 됐어?”
한솔은 흥- 코웃음을 쳤다.
“난 원래 이랬거든.”
“허….”
헛웃음을 짓던 재경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야, 나도.”
“…?”
“나도 안다고, 이제.”
그거, …네 잘못 아닌 거.
그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너처럼.”
“…….”
“엄마의 선택이었던 거겠지.”
미안-.
끝까지 한솔은 보지도 않고 속삭이듯 한마디를 던진 재경이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몹시 부산스러운 걸음으로 출구로 향했다. 한솔은 텅 빈 앞자리를 바라보다가 재경이 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에 입을 열었다.
“이번 생일에 올 거지?”
“…뭐?”
이재경이 이한솔을 돌아봤다. 한솔은 돌아보지 않았다.
“형, 생일 때마다 오는 거 관심받고 싶어서잖아.”
“…! 야! 너 무슨…!”
“미안. 엄마 뺏어가서.”
“…….”
“그러니까 나는 안 져. 엄마처럼, 그렇게 쉽게 지지 않을 거야.”
한솔이 자리에서 일어나 재경을 돌아봤다.
“그러니까 조카 받을 생각이나 해, 형.”
“이재경이 너 욕하더라.”
재경과 만났던 장소에 그대로 멍하니 앉아 있던 한솔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눈을 크게 뜬 한솔이 뒤를 돌아본다. 우월한 기럭지의 여인이 서 있었다. 이 씨 가의 첫째, 이세린이었다.
“나?”
“응. 말 지지리도 안 듣는다고.”
세린이 픽, 웃으며 한솔의 곁으로 다가왔다.
“우리 막내 얼굴 좀 볼까? 흐음, 늑대 놈이 잘 안 먹이나? 왜 이렇게 피골이 상접했지?”
“…그 정도는 아냐.”
한솔은 민망함에 볼을 쓸어내렸다. 확실히 전보다 홀쭉해진 얼굴이 만져졌다.
“한솔이가 벌써 스물일곱이라- 세월 참 빠르네.”
세린은 테이블 위에 클러치 백을 대충 던져 놓고는 털썩-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다리를 꼰 상태로 발목을 까닥까닥하더니 검지와 중지로 무릎 위를 툭툭 쳤다. 담배가 말릴 때마다 하는 그녀의 습관이었다.
“확실히 그 나이 정도 되면-.”
“…….”
“이제 자기 인생을 책임질 나이지.”
세린이 한쪽 눈을 찡긋- 하고선 말했다.
“괜히 미운 스물일곱 살이라 하겠어? 어른들 충고는 귓등으로도 안 듣고.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미운 일곱 살이거든?”
“그랬나?”
세린이 흐응- 하고 웃었다.
“뭐, 네가 하고 싶은 거면 해야지.”
“…….”
“하지만, 한솔아.”
세린의 목소리가 훅- 낮아졌다.
“아버지가 이해 못 해 주시는 건-.”
“…….”
“그건 네가 이해해라.”
한솔은 고개를 푹 수그렸다. 세린의 말이 무겁게 와닿는 순간이었다.
***
본가에 찾아갔다. 처음으로 아버지께 ‘만나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들었다.
***
끼이익-.
어렴풋이 방 밖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선잠을 자고 있던 한솔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이불을 걷어 내고 몸을 일으켜 세우자 까맣게 내려앉은 밤이 보인다. 오전쯤에 잠이 든 것 같은데, 요즘 들어 기면증이라도 생긴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졸렸다. 한솔은 어둠에 적응한 시야가 트이자 맨발바닥을 바닥에 내렸다. 사박사박- 러그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달칵.
문을 열고 나오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불야성에 잠긴 도시의 모습이었다. 한솔은 그가 칩거를 시작한 뒤부터 항상 굳게 닫혀 있던 커튼이 양옆으로 활짝 열려 있는 모습에 홀린 듯 그곳에 다가갔다. 한발 먼저 화려한 도시 앞에 서 있던 선객이 있었다. 선객은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한솔은 음영이 진 신우의 옆모습을 올려다봤다.
“있잖아-.”
언젠가, 숲을 닮은 향기를 가진 남자가 숲을 선물했던 날의 기억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사실, 난 거기 가기 싫어….
-엄마는 왜 나를 낳은 걸까.
한솔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평생토록 고민하고 고민하도록 만들었던 존재.
-…나라면 안 그랬을 텐데. 얼굴을 본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그러지…?
그 해답이 지금, 여기 있었다.
“얼굴을 본 것도.”
“…….”
“목소리를 들은 것도 아닌데-.”
그런데, 신우야.
“자꾸 생각이 나.”
“…….”
“너랑 함께했던 기억들이… 자꾸 생각이 나….”
신우가 한솔을 돌아봤다. 한솔은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기댄 채 발밑의 도시를 내려다보다가 알파를 돌아보며 눈꼬리를 휘어 웃었다. 오래간만에 보는 한솔의 미소에 신우의 눈이 조금 커졌다. 한솔이 말했다.
“내 아이도, 네 아이도 아니고.”
“…….”
“우리 아이라고 생각하니까-.”
“…이한솔.”
“포기가 안 되는데….”
어떡하지, 신우야….
“정말 어떡하지-.”
도시의 불빛 위로 수많은 기억의 잔상들이 흐릿하게 번졌다. 그건 우리가 함께 걸어온 시간이었다. 한솔이 물기에 젖어 무거운 눈꺼풀을 내리감는다. 따뜻한 온기가 그를 감쌌다. 결국, 신우의 품에 안긴 채 조금씩 울음을 삼켰다.
“그거, 알아.”
“…….”
“나는, 한 번도 널 이겨 본 적이 없어.”
멈칫-한 한솔이 조심스럽게 신우를 올려다보자 알파는 오메가의 눈가에 맺힌 투명한 이슬을 훔쳐 가고는 말했다.
“단 한 번도.”
투둑-.
신우의 눈가에서 떨어진 눈물이 한솔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 너는 정말이지-.
다정한 사람이다.
한솔은 밤의 어둠을 틈타 신우의 목을 끌어안았다. 입술을 겹쳤다. 뜨거운 눈물방울이 서로의 뺨을 적시고, 흘러내린 다정이 아픔을 씻어 내렸다.
두 사람은 이대로 영영 헤어질 것처럼 서로의 몸을 간절하게 붙잡았다.
새벽이 다가와 장막의 어둠이 흩어질 때까지-.
그렇게 간절하게 서로를 붙잡았다.
의사는 배가 무거워지기 시작하는 5개월부터 7개월 사이가 고비라고 말했다.
그 이후로는, 오히려 여러 의학적 이유로 산모의 몸이 적응하여 안정된다고 하는데 솔직히 잘 들리지 않았다.
한솔이 정말 미친 듯이 입덧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과일이 아닌 음식은 거의 못 먹는다고 봐야 했고, 과일도 그날그날 먹을 수 있는 게 달랐다. 후각은 또 얼마나 예민해졌는지 병원 특유의 그 알싸한 알코올 냄새만 맡아도 한솔은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속이 울렁거렸다. 오직 안정할 수 있는 건 신우의 페로몬뿐이었다.
새벽 네 시. 꼭 이 시간만 되면 과일을 찾는 한솔에게 원하는 과일을 깎아 먹이고 알파의 페로몬이 아니면 거의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인 한솔을 돌보느라 결국 신우는 재택근무를 선택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기분이 이리 뒤집혔다 저리 뒤집혔다 하는데, 결국 어느 날은 그런 자신이 너무 낯설고 우울해서 한솔이 ‘나 이상하지…?’ 하고 신우에게 물었다. 오메가에게 사과를 깎아 주던 알파는 멈칫, 하고 한솔을 돌아본다.
“이상하다고?”
“응….”
그는 사과를 8등분하고 다시 반으로 잘라 포크로 찍은 것을 한솔에게 건넸다. 아삭- 한솔은 신우가 잘라 준 사과를 베어 물었다.
“너무 신우를 힘들게 하잖아….”
한솔이 사과를 우물거리며 우울한 목소리로 말하자 신우는 도구를 정리하다 말고 혼자 땅을 파고 있는 한솔을 돌려 앉혔다. 한솔이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이한솔.”
“응…?”
“네 구멍에 좆 박아 넣은 거 누구야.”
“?!”
한솔이 입술을 헤- 벌렸다. 포크가 툭, 떨어졌다.
“시, 신우…?”
그가 알파의 박력에 밀려 소심하게 답하자 잘생긴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알파가 다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지금 네 몸이 이렇게 된 건 누구 책임이지?”
“…어….”
“공동 책임이지.”
한솔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선 내가 대신 아파 주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
“이거라도 해야지.”
그러면서 신우는 이번엔 오렌지를 껍질을 벗긴 뒤 하얗게 일어난 알베도를 전부 제거했다. 그 하얀 부분을 먹으면 유독 쓴맛이 난다는 한솔의 말 때문이었다.
결국, 오물오물- 신우가 까 준 오렌지까지 야무지게 먹고 나서야 배가 불렀다. 한솔은 한창 무대에 오를 때는 꿈에도 꾸지 못했던 빈둥빈둥 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티가 나게 배가 부풀기 시작한 5개월 차-.
한솔은 새벽 2시에 응급실로 이송됐다. 원인 모를 하혈 때문이었다.
“신우야….”
한솔이 눈을 떴다. 어슴푸레한 불빛이 눈앞에서 어지럽게 뒤섞이는 것이 보였다. 눈앞에서 작은 아메바 같은 것들이 끝도 없이 기어 다니는 모습에 한솔은 질끈 눈을 감았다 뜬다. 그러자 겨우 정상화된 시야에 한숨을 삼켰다. 복잡한 선이 여럿 연결된 한솔의 손을 간절하게 붙잡은 상태로 손등에 얼굴을 묻고 있던 알파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솔아.”
그는 다급히 호출 버튼을 눌렀다. 상시 대기하고 있던 VIP동 의료진이 나타나 한솔의 상태를 살폈다.
“어떻습니까, 선생님.”
“다행히 산모분도 아기도 무사합니다. 의사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천운이었습니다. 자택에 응급 처치를 해 줄 의료인이 없었거나 하다못해 이송이 조금만 늦었어도 위험할 뻔했습니다.”
“…….”
주치의는 한솔과 아기의 상태를 설명해 주고 자리를 떠났다. 신우는 한솔의 곁으로 돌아와 자리에 털썩- 앉았다.
“…….”
“…….”
두 사람은 그렇게 한동안 침묵을 공유했다. 각오한 상황이긴 했지만, 그걸 몸으로 직접 겪는 것은 전혀 달랐다. 더 절망적이었고, 심장이 찢겨 나갈 것처럼 고통스럽다. 신우는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이제라도 포기하면 안 되겠냐는 말을 겨우 삼켰다. 할 수가 없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신우야, 이것 봐.
이제야 조금씩 사람의 형태를 잡아 가는 아이들의 초음파 사진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이 말하던 한솔의 얼굴-.
-얘는 신우 닮은 것 같아. 앗, 얘는 나 닮은 것 같지 않아?
그 즐거워하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신우는 한솔과 약속했다. 만약, 정말 만약에 아주 위험한 상황이 온다면- 그때가 되어 한솔과 아이,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면….
망설이지 않고 너를 선택하겠노라고 그렇게 말했다.
한솔은 대답을 하진 않았지만, 눈시울을 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두 아이는 아직도 태명이 없었다. 언제 헤어지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자.”
신우는 이불을 정리해 주며 말했다. 한솔은 며칠 사이에 몰라보게 살이 빠진 알파의 얼굴을 애타게 바라보다가 점차 참을 수 없이 무거워지는 눈꺼풀에 굴복하여 눈을 감았다. 깜박-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새벽달이 뜬 시간이었다.
“…….”
살갗을 타고 용암이 흘러내렸다. 한솔은 손등을 적시는 뜨거운 물기에 숨을 삼켰다.
어슴푸레 내려앉은 달빛 아래에서, 소리도 내지 못하고 조용히 눈물만 흘리는 알파를 위해 한솔이 할 수 있는 일은 보지 못한 척 조용히 눈을 감는 일뿐이었다.
한솔은, 그 사실이 제일 아팠다.
***
그 뒤로 한솔은 총 3번의 응급실행을 겪었다.
그중에서도 한 번은 중환자실까지 올라가야 할 정도였는데, 고위험 산모 중환자실은 면회가 금지되기 때문에 신우는 정처 없이 병원 안을 떠돌아야 했다.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전에 한솔에게 말했던 것처럼 자신이 대신 아파 줄 수 있더라면-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갑갑한 마음에 밤이 깊어 가는 시각, 병원을 나와 텅 빈 담벼락에 몸을 기댔다. 어! 때마침,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보호자님, 안녕하세요.”
VIP 병동 주치의였다. 차라리 한솔이 입원을 할 수 있는 상태라면 좀 더 좋았겠지만, 임신을 한 뒤부터 후각이 굉장히 예민해진 한솔은 병원을 못 버텨 했다. 병원뿐만 아니라, 집이 아닌 대부분의 장소가 그랬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원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한솔의 상태를 봐준 이였다.
외출 중인 듯 사복 차림이던 의사는 담배를 한 대 꺼내더니 ‘아, 실례합니다. 한 대 피우시겠어요?’ 한다. 신우는 뒤늦게 이곳이 흡연 구역인 걸 깨달았다. 신우가 정중히 사양하자 ‘그럼-’ 하고 목례를 한 의사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둠 속에서 붉은 불씨가 휘날렸다.
“좀 그렇죠. 의사가 담배 피는 건.”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만.”
“하하. 그렇긴 한데- 세간의 인식은 그렇더라고요.”
그리고 의사는 고개를 돌려, 후- 하고 하얀 연기를 내뱉은 뒤 다시 말했다.
“그런데 가끔은 정말 못 버틸 때가 있어서 피워요.”
“…….”
“병원이라는 곳이 그렇잖아요.”
그는 공감했다. 유신우는 비흡연자였지만, 지금만큼은 저 독한 연기를 들이켜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간절했다.
간절할 정도로 절망적이었다.
“저번에 제가 드렸던 말씀 기억하세요?”
“…말씀, 말입니까?”
“천운-이라고 했던 말이요.”
신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정정해야 될 것 같아요. 천운이라기보다는-.”
“…….”
“산모님의 의지인 것 같습니다. 한 번씩 그런 일이 일어나거든요. 의학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일. 모두가 버티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던 수술을 겪고도 끝내 완치 판정을 받고 걸어 나가는 환자분의 이야기 같은 거요.”
“…….”
“누군가는 기적이라 하겠지만, 저희는 그걸 인간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주제넘었나요?
의사는 볼을 긁적이더니 마지막 말을 붙였다.
“그래도 왠지, 그분께서는 무사히 출산하실 것 같아서요. 주제넘었다면 죄송합니다.”
의사는 담배를 준비되어 있는 재떨이에 비벼끄고 꾸벅 묵례를 하고 사라졌다. 사라지는 의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신우는 별 하나가 떠 있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서울의 매캐한 하늘에선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어쩐지 희미한 그 별빛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신우는 입김을 내뱉었다.
저 별을 닮은 눈동자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아빠가 보고 싶어.”
겨우 중환자실에서 회복해 일반 병실로 내려온 한솔이 말했다.
“아버님을?”
“응….”
한솔은 꿈에서 자꾸 엄마가 나오는 것 같다고, 꼭 아빠한테 말해 주고 싶은데 만날 방법이 없다고 시무룩해했다.
한솔이 앞서 몇 번 입원했을 때, 세린은 찾아왔지만, 이 의원은 오지 않았다. 그 이재경도 딱 한 번이지만 병문안을 왔는데도 말이다.
“…….”
신우는 대답을 하는 대신 이제 묽은 죽도 잘 넘기지 못하는 한솔을 어르고 달래 반 그릇을 겨우 먹였다. 그리고 따뜻한 수건으로 몸을 닦아 준 뒤, 잠을 재우고 나서 병실을 나왔다.
그는 정 비서에게 연락해 이 의원의 스케줄을 물었다.
[몇 달 전부터 칩거 들어가셨잖아. 몰랐어?]
신우는 멈칫했다. 세상과 떨어져 한솔을 돌보는 데만 전력을 다하다 보니 놓치는 것들이 많았다. 그는 곧장 이 의원의 자택으로 향했다.
“죄송합니다, 본부장님. 안 만나시겠다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용인에게 그는 다시 한번 부탁했다.
“다시 여쭤봐 주십시오. …한솔이 일입니다.”
사용인이 돌아갔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저택의 문이 열렸다.
끼이익….
그는 무겁게 걸음을 뗐다.
종종 들르곤 했던 저택은 여전히 고풍스럽고 깔끔했지만, 묘하게 어두운색을 띠는 것처럼 보였다.
사용인의 안내에 따라 이 의원의 방으로 향한다.
달칵- 문이 열렸다.
“장인어른.”
이 의원은 등을 돌린 채 쓸쓸한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의 거절이었다.
“한솔이가 장인어른을 뵙고 싶어 합니다.”
“…….”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신우는 막막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면 설령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돌아선 마음을 돈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을 때, 이 의원이 입을 열었다.
“왜 그랬나.”
“…….”
“자네를 믿었어. 그 아이가 무모한 일을 한다면, 분명 말려 줄 것이라 믿었단 말일세!”
목소리에 감정이 더해졌다. 아버지의 분노였다.
신우는 잠시 침묵하다가 내리뜬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장인어른께서.”
“…….”
“스물일곱 해 전에, 하셨던 그 생각으로-.”
“…!!”
“말리지 못했습니다.”
이 의원이 부릅뜬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이제 완전히 성장한 남자가 그곳에 있었다.
“그 아이가 슬퍼 눈물짓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신우는 심호흡을 하고 깊게 허리를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한솔이를 보러 와 주십시오. 그 아이에겐 지금 장인어른이 필요합니다.”
알파가 돌아갔다. 우두커니 제자리에 서 있던 반백의 남자는 비틀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한참을 충혈된 눈으로 바닥을 노려보더니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남자는 수행원도 없이 홀로 병원을 찾았다.
신우가 잠시 자리를 비운 시간이었다. 대신 한솔의 곁을 지키고 있던 정 비서가 초췌해진 모습의 이 의원을 알아보고 놀라더니 깍듯이 인사한다.
“혼자 있게 해 주겠나. …아니, 아이와 둘이 있고 싶군.”
신우에게 전달받았던 게 있던 정 비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곤 병실 밖으로 사라졌다.
“…….”
색색-.
고운 숨소리가 들렸다. 그와 반대로 얼마나 고생이 심했는지 본래보다 훨씬 가느스름해진 얼굴이 보였다. 이 의원은 숨을 삼켰다. 한솔의 눈이 깜박깜박 뜨이는 것이 보였다.
“어, 아빠다.”
그리고 아이는 마냥 어릴 때처럼 배시시- 웃었다.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네가 뭐가 부족해서 지금 그렇게 누워 있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당장에라도 의사 앞으로 끌고 가 그 혹 덩어리들을 떼어 내라고 하고 싶었다.
-장인어른께서 스물일곱 해 전에 하셨던 그 생각으로- 말리지 못했습니다.
업보인가. 내가 그렇게 당신을 잃었기 때문에, 내게 벌을 주는 것이오?
남자는 생각했다. 세상에 종말이라도 찾아온 것 같았다. 가진 모든 걸 잃은 것 같은 허무와 상실감이 느껴진다. 그는 그 공허 속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아빠. 태어나게 해 줘서 감사해요.”
그를 나락에서 건져 올리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자꾸 나를 불러.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부르는 것처럼.”
“…….”
“그거 되게 기분 좋은 거 알아요? 왜 지금까지 잊고 있었을까 싶을 정도예요. 나는 엄마랑 추억이 하나도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으음…, 우리 애들도 이름 불러 주면 좋을 텐데-.”
아쉽다면서 웅얼거리던 한솔은 다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세 아이의 아버지는 아주 오랜 시간 우두커니 선 상태로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안정기입니다.”
임신 30주 차. 드디어 주치의에게서 오케이 사인이 나왔다.
한솔은 그 말을 듣자마자 주책맞게도 엉엉 울어 버렸다. 신우가 한솔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오자 한솔은 등을 돌려 그런 신우를 마주 안았다. 두 사람은 말을 잇지 못했다. 차마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확실히 안정기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당분간은 외출을 삼가시길 바랍니다.”
“어, 언제까지요?”
“어디 나가고 싶어도 후각이 안정되어야 하니 너무 괴롭지 않고 나갈 만하다 싶으실 때 나가세요. 물론, 격한 운동은 금지입니다.”
의사는 그런 산모와 보호자를 보고 씩 웃고는 병실을 나갔다.
28주 차 때부터 몸이 확실히 좋아지긴 했지만 좀 더 지켜보고 퇴원을 하자는 말에 미루고 미룬 순간이었다. 한솔은 얼떨떨함에 눈만 깜박이다가 그대로 신우에게 입술을 뺏겼다. 두 사람은 여기가 병원이라는 것도 잊고 열정적으로 키스했다.
“집에 갈까?”
“응!”
그렇게 두 사람은, 아니, 배 속의 아이까지 포함해서 넷이 된 둘은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장기간 집을 비워야 하는 시간이 많았다 보니 집 안은 싸늘했다. 한솔은 맨발로 집 안을 휘젓고 다니다가 곧 방문 앞에 쭈그려 앉아 엉엉 울었다. 그냥 이유 없이 눈물이 나왔다. 그런 한솔을 신우가 힘주어 안았다.
“떡볶이 먹을래.”
“그래.”
“치킨도.”
“응.”
“피자도 시켜도 돼?”
한솔이 또롱또롱한 눈으로 바라보자 신우가 한솔의 이마를 가볍게 톡- 쳤다.
“아야.”
“엄살은. 그걸 누가 다 먹으라고.”
“그래도오….”
퇴원 기념이라며 ‘응? 나 진짜 진짜 먹고 싶은데….’하고 이한솔 표 전매특허 눈빛 공격을 발사하자 신우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맘대로 해.”
그의 말대로, 한솔에게는 제대로 한 번 이겨 본 적이 없는 알파였다.
한솔은 신이 나서 음식을 시키고는 부푼 배를 두 손으로 끌어안고 뒤뚱뒤뚱 걸어가 소파에 앉았다. 그 모습이 무척 귀엽고 대견해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솔에게 다가가 어느새 입술을 훔치고 있는 지경이 되었다.
“응…!”
남성 오메가라 막 엄청나게 배가 커진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쌍둥이라고 꽤 티가 났다. 한솔은 임신 전보다 훨씬 딸리는 폐활량에 숨을 헐떡이면서 신우의 쏟아지는 페로몬을 받아 마셨다. 오메가의 몸은 알파의 페로몬을 느끼고 환희에 떨었다.
“아, 더어- 더, 신우야…!”
자꾸만 조르는 한솔을 부드럽게 만져 주며 신우는 박살이 나기 직전인 제 인내심을 키워 내느라 꽤 애를 먹어야 했다. 하… 진짜, 이한솔- 조금만 더 만져도 되지 않을까 생각할 때마다 의사의 ‘격한 운동은 하지 마세요.’ 하는 목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는 결국 심장을 쥐어 짜내는 심정으로 손을 물려야 했다. 오메가가 속으로 ‘또 참았어! 또…!’ 하고 분통을 터뜨리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솔아, 배달 왔어.”
결국, 완전히 삐져 버린 한솔이 신우의 물건으로 둥지를 틀고 누워 있다가 매콤한 떡볶이 냄새를 맡고 홀린 듯 거실로 나왔다. 과연, 한국인이 사랑하는 음식다웠다. 한솔은 매운 걸 많이 먹으면 탈이 난다는 이유로 떡 개수를 제한당했고 겉으로는 시무룩해하면서도 속으로는 방방 뛰었다. 그간 너무 자유인으로 살아서 그런지 이런 작은 통제에도 무척 행복했다. 한솔은 행복한 얼굴로 냠- 하고 떡볶이를 입 안에 넣었다. 그간 고생을 하느라 홀쭉해진 볼 주머니가 빵빵해지는 모습을 보고 신우가 웃음을 삼켰다.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하고 싶은 거?”
“당분간은 무리여도 좀 안정되면 가까운 데라도 갔다 오면 좋으니까.”
막달이면 몸이 무거워져서 나가지도 못할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알파가 한솔이 집 밖을 나가는 것을 허락해 주지 않겠지만.
“음….”
한솔은 고민했다. 사실, 고민할 것도 없이 가고 싶은 곳이야 엄청 많았다. 그동안 병원 신세를 지느라 깡그리 놓쳐 버린 발레 공연도 보고 싶고, 소소하게 신우와 영화관 데이트도 하고 싶었다. 아니면, 바다-라든가…. 한솔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파란 하늘 위를 둥둥 흘러가는 구름들을 보며 동해 바다를 떠올렸다. 이상하지. 색깔로만 치면, 지중해 섬이 제일 이쁘고 다음은 하와이였는데 한솔은 이상하게 자꾸 스무 살 기념으로 신우와 놀러 갔던 그 바다가 생각났다.
“…아냐, 그냥 집에서 쉴래.”
“피곤해?”
“으응….”
하지만 한솔은 그런 속마음을 꾹 참고 고개를 저었다. 신우가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그간 얼마나 고통을 받고 힘들어했는지 알기 때문이다. 물론, 두 사람이 함께 상의해서 결정한 일이긴 하지만, 한솔이 아픈 만큼 신우도 아팠다. 얼굴만 봐도 반년 전이랑 비교해 보면 과장 좀 보태서 반쪽이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저렇게 초췌해졌는데도 오히려 퇴폐미가 있는 건 좀 문제 아냐? 유부남인데…? 내 건데…?!
한솔은 잠시 딴 길로 새는 생각을 바로잡으며 고개를 휙휙 젓는다. 안 그래도 이주 전부터 한솔이 회복세에 들자, 신우는 그간 미뤄 왔던 일의 업보를 받았다.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무지하게 바쁘다는 소리다. 바다야… 나중에 출산하고 가면 되니까, 응. 한솔은 아쉬운 마음을 꾹 참고 자신도 이제 좀 어른이 된 것 같다며 셀프 칭찬을 했다.
‘나중에 가자고 해야지.’
그리고 한솔이 자신의 인내심이 생각보다 굉장히 짧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건, 불과 이주도 채 안 돼서였다.
“바다 가고 싶다….”
왕?
“너도 그렇지, 솜아? 바다 가고 싶지?”
…….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낀 솜이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한솔은 솜이를 품에 안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바다!”
왕! 왕왕!
그 몸으로 어딜 가겠다는 거야!
누구보다 가장 먼저 쌍둥이의 존재를 알아차렸던 솜이가 짧은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한솔을 말려 보지만 이미 사고 치는 회로가 Max 상태로 풀가동 되어 버린 한솔을 말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한솔은 지금 흔히 말해 꽂힌 상태였다.
당장 바다에 가야만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 짭조름한 냄새를 맡아야 하고, 조개도 주워야 하며, 신우랑 같이 봤던 불꽃놀이도 구경해야만 한다. 하긴, 근 몇 달 동안 집과 병원만 왔다 갔다 했으니 그 활발한 성격에 오죽했을까. 한솔은 신이 나서 소지품을 챙겼다.
“아, 신우한테-.”
신우한테… 으음….
“바쁠 텐데…. 그냥 말하지 말까?”
머릿속이 꽃밭이 되어 버린 한솔은 신우한테 전화를 걸려던 손을 내리고 단출한 가방 하나를 등에 멨다. 나름 배려랍시고 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신우 퇴근하기 전까지 오면 되겠지! 하고 알파가 알았으면 뒷목을 잡고 넘어갈 생각을 했다. 우리 애기들, 태명도 못 지어 줬는데 태교는 해 줘야지. 응응. 너희도 바다 좋지?
한솔은 신우가 종종 자신의 부푼 배에 대고 말을 걸던 모습을 배워 자기도 모르게 배를 문지르며 혼잣말을 했다. 생각해 보라. 그 커다란 알파가 아기들한테 말을 건답시고 어색한 얼굴로 제 배에 속닥속닥 말을 거는데…! 솔직히 너무 귀여워서 우주를 부실 뻔했다. 정을 주지 않으려는 듯 한솔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실수로라도 말 한 번 걸어 주지도 않고, 태명조차 지어 주지 않았던 남자가 그렇게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며 한솔은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
정말로, 우리가 가족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아빠는 바쁘다니까 우리끼리 놀고 오자, 얘들아-.”
한솔은 단출한 소지품 몇 개와 솜이가 삐죽 얼굴을 내민 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집을 나섰다.
현관을 촬영하고 있던 붉은 CCTV 불빛이 반짝 빛났다.
***
“정 비서님.”
유 본부장이 비서실장을 불렀다.
“예- 본부장님.”
“퇴근 안 하십니까.”
서늘하게 잘생긴 얼굴로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을 한 남자가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처리하며 입을 열었다. 정 비서는 차마 자기가 퇴근하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남자를 보며 웃음을 삼켰다. 큼, 그는 헛기침을 하고선 비서의 정적인 얼굴로 돌아가 말했다.
“일이 너-무 쌓여서요.”
“…….”
“앞으로 한 달은 야근할 예정입니다.”
뚝-.
남자가 손안에 쥐고 있던 만년필 촉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그는 심기 불편한 상사를 보며 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한 달…, 이나 말입니까.”
“막달이면 또 재택근무하실 거 아닙니까. 그전에 부지런히 처리해 놓아야지요. 또, 그다음엔 배우자 출산 휴가 쓰실 테니까-. 음, 솔직히 그동안 밀린 것까지 하면 한 달로도 부족할 것 같지만 나머지는 제가 힘내 보겠습니다.”
신우는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야, 다 제가 쌓은 업보이니… 물론, 도우미들을 들일 테지만 둘이나 되는 아기들을 오메가에게 독박 육아시키는 미친놈이 되지 않기 위해선 부지런히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곧 있으면 먹일 입이 하나에서 셋으로 늘어나지 않는가. 그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집 안에 혼자 있을 배우자가 걱정이 돼서 머리 위에 온통 먹구름이 낀 유 본부장이 또 한참을 서류에 파묻혀 있을 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먼저 상대를 접견한 비서가 말했다.
“본부장님 아무래도 만나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경호팀장입니다.”
이 시간에, 경호팀장이 그를 찾을 이유가 있나? 유신우가 설핏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입니까.”
조금 급한 걸음으로 다가온 경호팀장이 인사를 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본부장님, 보고드립니다. 오전 11시경, 자택에서 사모님께서 사라지셨습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현재 사복 경호 중인 경호원의 말에 의하면, 처음에는 친구분을 만나시거나, 산책을 하시는 건가 싶었지만 기차를 타셨다고 합니다. 경부선입니다.”
집무실에 소름 돋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무래도… 사모님께서 가출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신우는 의자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홑몸도 아닌 이가 가출을 했다는 말에 그만 머리가 아찔해지고 말았다.
“와아, 바다다!”
그리고 그 시각, 부산.
기차에서 내린 한솔은 타들어 가는 알파의 속도 모르고 파란 바다를 보며 해맑게 즐거워했다. 그는 배 위를 조심스럽게 톡톡 두드리며 쌍둥이에게 말을 걸었다.
“너희는 바다 처음 보지? 여기가 엄마가 아빠랑… 흠흠… 아무튼, 좋은 시간 보낸 곳이야.”
신우와 처음 성교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한솔이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어우, 곧 겨울인데 왜 이렇게 덥지?
“음, 뭐부터 하지 조개부터 주우러 갈까? 솜아 뭐부터 할까?”
한솔은 쌍둥이와 솜이에게 번갈아 말을 걸며 걸음을 옮겼다. 그때, 그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대왕 조개! 광어! 우럭! 대하구이! 매운탕! 해물 칼국수!」
「신선도 최상입니다.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걸 바로 손질해서 드려요!」
어그로 만점의 번쩍이는 광고판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밥부터 먹을까?”
꼬르륵-.
한솔은 쌍둥이가 배고파하는 소리를 듣고 히죽 웃었다.
“하… 이한솔-.”
그리고 동시에,
지이잉- 부산에 도착한 남자는 핸드폰으로 도착한 문자를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Web발신]
**카드 승인
유*우님
352,000원 일시불
11/09 03:31
해운대 조개구이 전문점
누적12,345,000원」
깜박하고 한솔이 자신의 카드가 아닌 신우의 카드를 들고 온 탓에 생긴 일이었다.
“얘들아…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한솔은 금방이라도 데굴데굴 굴러갈 것 같은 몸을 힘겹게 움직여 파도가 철썩이는 해안가에 털썩, 주저앉았다.
“너희 왜 이렇게 많이 먹니? 응? 아빠가 많이 먹어서 그런 거라고? 음… 그럼 어쩔 수 없지… 너희 아빠가 좀 많이 먹긴 해.”
너무 먹어서 그런지 숨이 안 쉬어질 지경이었다. 한솔은 모래 위에 벌러덩 누워 버리곤 솜이처럼 헥헥 숨을 내쉬었다.
“어! 별이다.”
그리고 가만히 파도 소리를 들으며 벌써부터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바라보는데 까만 하늘 위로 별 하나가 반짝였다. 인공위성인가? 싶다가도 어쩐지 별이 맞는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한솔은 와- 하고 웃으며 배 위를 쓰다듬었다.
“너희도 보이지? 나중에 세상 밖에 나오면 엄마랑 아빠랑 별도 보고 바다도 보러 오자-.”
그러면서 이번으로써 532번째 약속을 한다. 아마 두 아이에게 한 약속을 전부 지키려면 평생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왕!
“응? 솜아 왜 그래.”
얌전히 옆에 앉아 있던 솜이가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짖었다. 한솔은 사람이 온 건가 싶어 솜이를 안아 들려고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어…?”
그리고 어슴푸레 내려앉은 어둠 속에 서 있는 남자를 발견한다. 저벅저벅-. 남자가 천천히 한솔에게 다가왔다.
“신우…?”
한솔은 자기가 지금 헛것을 보는 건가 싶어 끔벅끔벅 눈을 뜨자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알파가 한솔의 얼굴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여기서 뭐 해.”
“어… 나, 태교 여행….”
“조개도 먹고?”
어떻게 알았지?
한솔은 신우가 이제 독심술까지 하는 건가 싶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옷도 제대로 안 챙겨 입고.”
“…….”
“말도 안 하고 나오고.”
신우는 한솔의 이마에 툭- 자신의 이마를 기댔다.
“당분간 외출 금지야. 앞으로 솜이 산책 갈 때도 나한테 허락 맡고 가.”
한솔은 오랜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입술을 작게 벌렸다.
‘나, 감금당하는 거야?’
“앗…!”
신우가 한솔의 몸을 안아 올렸다. 하얀 솜뭉치가 자기도 데려가라며 신우의 발밑을 졸졸 따라온다. 기사가 문을 열어 주자 솜이가 먼저 냉큼 올라타고 그 뒤로 한솔을 안은 신우가 탔다. 탁-. 문이 닫혔다.
그리고 신우의 말대로 되었다.
한솔은 출산하기 전까진 신우의 허락이 없으면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물론, 한솔은 매우 만족해했다. 기왕이면 침대 밖으로도 못 나가게 해 주면 좋겠는데 말이야. 한솔은 막달 내내 신우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집 안에서 뒹굴거리다가 오랜 고생 끝에 두 아이를 낳았다.
생긴 건 한솔을 빼다 닮았는데 성격은 아무래도 신우 판박인 것 같다는 첫째, 유한별.
반대로, 겉모습은 누가 봐도 유신우 2세지만 성격은 어릴 때의 한솔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한 둘째, 유가온.
한솔은 두 아이에게 했던 첫 약속을 지켰다.
무사히 너희에게 이 세상을 보여 주겠다는 약속-.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소중한 쌍둥이가 태어난 날이었다.
***
“그럼 모레 올게요.”
“그래- 이왕이면 더 늦게 오렴.”
두 사람은 유 회장네에 이제 100일 된 쌍둥이를 맡겼다.
쌍둥이가 태어나고 100일간은 정말 전쟁이 따로 없었다. 악명을 듣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한솔 피셜 체력 괴물인 유신우가 2시간마다 한 번씩 깨는 애들 젖병 물리고 기저귀 갈고 케어하느라 나중에는 밥을 먹다가도 졸 지경이었니 말 다 했지. 한솔도 한 번씩 거들긴 했지만, 신우가 밤에는 손도 못 대게 하는 바람에 강제로 꿀잠을 자게 되었다.
뭐든지 두 배인 쌍둥이는 한 명이 울면 따라서 울고 한 명이 웃으면 또 따라서 웃었다. 그래서 힘듦도 두 배였지만 기쁨도 두 배였다. 한솔은 두 아이를 생각하며 작게 웃었다. 오늘은 초보 부모의 휴가 날로, 시부모님께서 아이들을 봐주기로 하셨기 때문에 두 사람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솔아.”
그래서 한솔은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신우가 애들 보느라 많이 힘든 건 알지만… 응? 우리 오래 참았잖아. 한솔은 아닌 척 얌전히 앉아 있다가 신우가 그를 부르자 냉큼 알파를 돌아봤다. 달콤한 캐러멜 빛 눈동자가 과하게 반짝반짝 빛났다.
“이제 혼날까.”
…응?
“혼… 혼나…?”
“응.”
“왜…요…?”
신우가 반듯하게 웃었다. 분명 웃고 있는데, 웃고 있는데… 웃는 게 아냐! 그의 뒤에서 검은 아우라가 펼쳐지는 것 같은 느낌에 한솔은 꿀꺽 침을 삼켰다.
“누가, 말도, 없이.”
“흐익…!”
“집을, 나가. 응?”
알파가 오메가의 엉덩이를 터트릴 것처럼 움켜쥐었다. 한솔은 덫에 걸린 먹이처럼 신우의 품 안에서 바르작거렸다.
“혼나야겠다, 그치?”
눈물이 찔끔 맺힌 얼굴로 한솔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혼내, 주세요…. 파르르- 떨리는 연약한 목소리가 말한다. 귓가에 알파의 낮은 웃음소리가 내려앉았다.
“갈까?”
탁-.
침실 문이 닫혔다. 가장 좋아하는 방석 위에 엎드려 있던 솜이가 힐긋- 보호자들 방을 바라봤다가 다시 달콤한 낮잠에 빠진다. 넓은 창문을 통해 황금빛의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물론, 알파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는 오메가의 입꼬리도 살며시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