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없으면 3 - 집 현관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잉크는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쓰러졌다. 그리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잉크는 한 손을 이마에 얹은채로 미간을 찌푸렸다. 나이트메어는 꼭 그래야만 했을까. 나이트메어가 원래 그런 애라는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선을 넘을 줄은 몰랐다. 잉크의 머리속은 충격에 빠졌고, 눈동자는 어쩔 줄 모르며 방황하고 있었다.
잉크는 아무 생각 없이 리모컨을 들고 텔레비전을 틀었다. 랜덤으로 정해진 채널에는 잉크의 관심을 끌지 않은 것이 나왔고, 잉크는 또다시 한숨을 쉬고 소파에 머리를 기댔다.
그렇게 잉크는 특별한 이유 없이 계속 텔레비전을 보았다. 시간은 빨리 흘렀고, 곧 있으면 부모님이 오는 시간이 되었다. 잉크는 리모컨을 들고 텔레비전을 껐다. 잉크의 엄마는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잉크는 할 수 없이 보던 걸 끄고 다시 소파에 드러누웠다.
'하.... 진짜 나이트메어... 꼭 그래야만 했냐...'
잉크는 평소에 감정 조절을 잘 하는 편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감당 못 했다. 잉크는 깊은 우울함에 빠졌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만큼 기분이 안 좋았다. 부모님이 문을 열고 들어와도 잉크는 모르는 척을 했다. 엄마가 눈치를 주자 겨우 인사했다. 그래도 인사를 한 후에는 신경을 껐다. 그리고선 소파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푹 숙인채 자신의 방으로 들어선 잉크는 방문을 세게 닫았다. 그리고선 침대에 몸을 던지듯이 누웠다. 나와서 저녁을 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잉크는 그 외침을 무시하고 계속 누워만 있었다.
"잉크! 안 내려와?!"
엄마의 소리침이 더욱 커지자, 잉크는 마지못해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섰다.
"잉크, 오늘 무슨 일 있었어?"
걱정에 젖은 엄마의 목소리가 거실에 울려퍼졌다. 잉크는 고개를 숙인채 계속 저녁만 먹었다. 잉크가 대답을 안 하자, 잉크의 엄마는 더욱 걱정이 되었다.
"왜 말을 안 하니."
엄마가 재촉했다. 그러자, 잉크는 상을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신경 꺼. 나 잘거야!"
잉크는 충격을 받은 엄마의 표정을 무시하고 방으로 뛰어갔다. 층간소음이라며 뛰지 말라는 엄마의 외침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잉크는 방문 앞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어떤 정체 모를 액체가 들어있는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액체는 물감처럼 불투명한 노랑색이었다. 잉크는 마개를 떼고 그 액체를 마셨다. 정확히 무슨 맛이었는지는 설명하기 좀 뭐했지만, 그 액체를 마신 잉크는 묘하게 감정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 잉크가 느끼는 감정은 분명 행복이었지만, 뭔가 억지스러웠고 부자연스러웠다.
잉크는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는 자연스럽지 않은 웃음을 계속 토해냈다. 잉크는 정말 괴로웠다. 웃기 싫은데 웃게 되고, 한번 천천히 생각해보고 싶은데도 생각이 이뤄지지 않았다. 잉크의 존재하지 않는 영혼은 괴로움에 비틀고 있었고, 잉크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잉크의 엄마가 걱정하면서 그의 방 문 앞에 가보기도 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잉크의 엄마는 큰 두려움에 빠졌다. 자신의 아들이 미쳐가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에 본인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
엄마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고, 잉크는 온몸에 힘이 빠진채 바닥에 쓰러졌다. 두 눈은 피로에 쌓여있었고, 기운이 나간 몸은 차가웠다.
그렇게 밤이 찾아왔고, 잉크는 눈을 힘겹게 뜨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는 손을 문 손잡이에 대며 문을 열었다. 잉크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의 조심스런 발걸음이 소리도 내지 않고 부엌으로 향했다.
잉크의 떨리는 손은 칼을 꺼냈고, 반짝이는 칼날은 그의 손목을 향했다. 잉크는 손잡이를 잡고 칼날을 자신의 손목에 그었다. 차가운 날이 뼈에 닿자, 잉크는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따가운 감각이 뼈에 느꺼졌고,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찔끔 났다. 그래도 잉크는 그 감각들은 무시하고 계속 그었다.
잉크가 드디어 그만두자, 새하얳던 손목은 짙은 붉은색으로 염색되어 있었다. 잉크는 칼과 손목을 차가운 수돗물로 씻었다. 손목은 죽을듯이 아프고 손목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피는 역겨운 냄새를 풍겼다.
모든 일을 마친 잉크는 칼을 집어넣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침대에 누워서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순간 후회가 조금 들었지만, 곧 사라지고 없어졌다. 잉크는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었다.
~***~
다음 날 아침, 잉크는 엄마한테 아무 말도 안 하고 학교로 향했다. 엄마가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알면 안 되기 때문이다. 깊은 한숨을 내쉰 잉크는 학교 교문에 들어섰다.
"잉크!"
"잉크, 너 괜찮아?"
땅만 바라보던 잉크가 고개를 들자, 눈 앞에 블루, 드림, 리퍼, 제노, 그리고 프리스크가 있었다.
"응...!"
잉크는 힘겹게 대답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그의 행동을 본 제노는 조금 두려운 표정으로 리퍼에게 안겼다. 리퍼는 제노에게 안정적인 웃음을 지어주며 그를 안았다. 그림은 그들에게 눈길을 한번 준 다음에 잉크에게 물었다.
"어제 집에서 무슨 일 있었어?"
잉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프리스크가 잉크의 어깨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잉크야, 힘들면 우리한테 말 해. 숨기지 말고."
"아, 알아. 나 지금 아, 안 힘들어..."
잉크에 말에 친구들은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그의 지친 처지를 보고 입을 다물았다.
그렇게 잉크의 친구들은 걱정을 뒤로하고 함께 학교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