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와의 고민 상담 후, 잉크는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마음속에 엉켜있던 밧줄이 모두 풀리는 느낌이었다. 비록 실제로 에러와 사이가 좋아진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감이 더 생겼다.
한편, 제노는 어떨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에 돌기도 했다. 원래는 동생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 것이 아니지만, 계속 대화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야기가 그쪽으로 흘러간 것이다. 제노의 말을 들어보니 에러와의 관계가 아주 나빠진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동생이 한 행동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았다.
잉크는 조심스럽게 제노의 얼굴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는 전보다 나아진 표정을 유지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확실히 둘의 대화가 제노의 마음도 조금이나마 풀어준 듯했다. 잉크는 제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제노는 정말 좋은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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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에러가 있는 곳에 다다르게 되었다. 에러는 생각이 짧은 누군가가 바닥에 버려놓은 초콜릿 포장지를 관찰하고 있었다. 눈은 그쪽을 향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수많은 다른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잉크는 그의 머릿속 생각을 읽지 않아도 초점이 없는 눈빛을 보니 그도 깊은 생각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에러!”
제노가 에러를 향해 소리치자, 에러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에러의 눈빛과 잉크의 눈빛이 맞았다가 에러가 민망한 듯 눈길을 자신의 형 쪽으로 재빨리 돌렸다. 둘의 얼굴에는 옅은 홍조가 띠었다. 제노는 그것을 눈치채고 작은 웃음을 지었다.
“무슨 얘기하고 왔어?”
에러가 길바닥에 놓인 돌멩이를 발로 차며 물었다. 그러자 제노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답해주었다.
"그냥, 뭐 그런 일이 있었어.“
그리고 또다시 웃으며 덧붙었다.
"넌 몰라도 돼.“
제노는 그 말을 끝으로 잉크에게 윙크를 했다. 처음에는 제노의 행동 속에 담긴 의미를 몰랐던 잉크였지만, 곧 의미를 깨달은 후 얼굴이 화끈거렸다. 에러가 그런 자신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잉크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제노는 둘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우리 빨리 애들 찾으러 가자!“
그리고선 에러와 잉크를 뒤로 남겨둔 채 앞장을 섰다.
"잠깐! 같이 안 가?!“
"난 리퍼랑 약속한 게 있어서. 찾으면 연락해줄게, 둘이서 천천히 와!“
잉크가 말해봐도 제노는 멈출 기미가 안 보였다. 에러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형이 웬일이래.“
"ㅁ..모르지.“
"너 왜 말 더듬어.“
"아, 암것도 아냐!"
에러가 수상한 눈빛을 계속 보내도 잉크는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잉크는 그 사실이 너무 답답하고 싫었다. 하지만 쓸대없는 이유로 에러에게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묵묵히 참으며 질문들을 회피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둘은 침묵을 유지하며 길을 걸었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고 싶은 잉크였지만 만약에 그랬다면 분위기가 망쳐질까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잉크는 손에 무언가 감각이 느껴졌다. 살짝 놀라며 아래쪽을 쳐다보니 에러의 까만 손이 자신의 손에 닿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광경에 잉크는 에러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고, 에러는 눈치를 챘는지 잉크를 보며 살짝 웃어주었다.
'뭐, 뭐야... 쟤 방금 나한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났다. 에러가 무엇 때문에 그랬던건지, 제노에게 떠밀려서 억지로 그런 것은 또 아닌지, 아니면 에러도 잉크가 좋아서...
그 마지막 문장에 잉크는 생각이 흔들리며 눈을 회피했다. 상대방이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눈을 돌린 것이다. 그렇게 달아오른 얼굴을 열심히 숨기려고 노력하는 잉크를 본 에러가 피식- 웃으며 갑자기 그의 손을 잡았다.
"..!"
잉크의 영혼은 터질 듯 뛰었다. 얼굴은 더 많은 색깔을 보였고, 목에 두른 스카프로 숨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에러의 손이 자신의 손을 감싸는 이 느낌이.
그렇지만 계속 이렇게 있으면 아무 의미도 없을거라고 생각한 잉크는 최대한 에러를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말을 꺼냈다.
"갑자기 뭐야?"
그리고선 에러를 향해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에러는 얼굴에 홍조를 띄며 쏳아붙였다.
"ㅁ..뭐가..! 자꾸 이러면 놓는다.."
그의 발끈에 잉크는 소리내어 웃었다.
"아, 미안미안. 놓진 말아줘."
에러는 고개를 돌리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분명 혼잣말일 것인데 궁금했던 잉크는 에러에게 추긍했다.
"뭐라고 했어?"
"아무말도 안 했거든?"
"아 그러지 말고, 말해줘!"
"싫어."
에러가 말을 해주지 않자 잉크는 입을 삐쭉거렸다.
"그래라!"
"풉, 삐졌냐?"
이번에는 에러가 웃을 차례였다. 그 모습을 본 잉크는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에러가 웃는 모습을 보니 좋은 것 같기도 했다.
"왜 웃는데?"
그렇지만 잉크는 볼멘소리와 함께 에러를 살짝 밀쳤다. 둘은 아직 대놓고 좋은 티를 낼 친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에러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잉크를 같이 밀었다. 그러나 에러는 잉크보다 힘이 더 세기 때문에 잉크는 한 번에 밀려나갔다.
"야!"
생각보다 쉽게 밀려난 잉크를 보며 에러는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곧 다시 무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뭐가 좋은지 함박웃음를 짓는 잉크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됐고, 빨리 가기나 하자. 형이 기다려."
다들 너무 재미있게 보시길레 감사하다고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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