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 그들의 이야기

58 3 3
                                    

※분량 매우 깁니다.
대충 상황을 설명하려다 보니 필력은 똥이고 하고싶은 말은 많고 그래서...???
이번화만 깁니다!!
시간 매우 많고 심심하신 분께 권장합니다





"안녕하세요. 전 권은비예요. 음... 한참의 시간이 흘러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려니 이상하네요. 저희 이야기는 병원 내의 비리에서 시작되지만, 사실 그 이상의 엄청난 비밀을 알아내려는 의사들과 환자들의 이야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일은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사실 이 일은 누구보다도 모두가 알아야 할 일이고 또 기억해야 할 일이예요."
.
.
.
.
.
.
.
또각, 또각. 복도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구둣발 소리는 높은 하이힐을 신은 은비였다. 그다지 작은 키도 아니거니와, 어차피 일개 수련의인 그녀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하이힐을 벗어야 했는데도 은비는 꼭 하이힐을 고집했다. 뭐 어차피 대부분의 일상을 숙직실 아니면 응급실에서 보냈지만, 그래도 어쩌다 집에 가는 날이면 꼭 저렇게 하이힐을 신고 오는 것이다.

아마 의대 선배들과 높은 직급 교수들을 향한 무언의 항의였을 것이다. 의대는 항상 거의 군대 수준의 완벽한 계급제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 계급제에 익숙한 사람들이 의사가 되는 것인데 병원이라고 별반 다를 것도 없었다. 복장에 대해 자세히 규정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하이힐을 신은 후배를 보면 꼭 한마디씩 하는 선배들과 교수들을 향한 일종의 반항이자 항의.

멀리서 은비의 절친 지원이 달려왔다.

"권은비, 또 하이힐? 목숨이 몇 개야?"

지원은 은비보다 키가 작은데도 하이힐은 신는 법이 없었다. 조금 비싼 운동화를 신는 날은 간혹 있어도 절대 화려하고 튀는 구두나 명품은 신지 않았다. 지원은 옷 입는 것 외에도 거의 모든 면에서 은비와는 정반대였다. 은비는 약간의 노력으로 놀라운 결과를 얻는 천재과인 데 반해, 지원은 코피 터지게 공부만 붙들고 사는 노력파였다. 은비는 양식을 좋아해 외식할 때는 늘 스테이크 혹은 수제버거인 반면 지원은 정통 한식파였다. 지원은 애교라고는 전혀 없는 완벽한 곰이지만 은비는 애교덩어리 여우였다.
[여기서의 여우는 나쁜 뜻이 아닙니다.]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을 이어주는 건 아마 세월이 만든 전우애일 것이다. 예과 2년, 본과 2년, 지옥 같던 PK실습 2년, 인턴 1년 반, 레지던트 2년 반, 펠노예, 아니 펠로우 3년차. 총 13년을 생지옥에서 같이 고생한 사이인 것이다.

"선배~!"

물론, 거의 7년을 봤는데도 전혀 적응이 안 되는 불여시도 있다. 시연이 바로 그런 케이스이다.
의대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마주치면 보통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아직도 짝사랑하는 지민을 선배라고 부르는 시연은 많은 병원 식구들에게 꼴불견으로 찍혀 있다.

"쟤는 졸업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선배를 찾고 있는거야? 선배는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쓰는 호칭이지."

그때 지원이 은비를 말리지 않았다면 정말 은비와 시연은 아침부터 대판 싸울 뻔했다. 눈치 빠른 지원이 은비의 표정을 읽어내서 참사를 막을 수 있던 것이다. 지난번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은비가 저런 표정으로 무미건조하게 던진 말이 씨가 되어 아침부터 둘이 머리채를 잡고 시베리아 쌍쌍바를 찾으면서 싸운 일이 있었는데, 지원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쟤는 언제쯤 철들까요?"

어느새 지원과 은비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원영이었다. 원영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살래살래 젓고는 이내 차트 몇 개를 훑어보며 어딘가로 향했다.

"은비씨, 지원씨, 좋은 아침이예요."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박지민. 신데렐라가 첫눈에 홀딱 반해 버렸다는 왕자님의 실사판이다. 지민을 보고 알게 되면, 시연이 그렇게까지 목을 매는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순간 지원은 은비와 지민 사이의 묘한 기류를 느꼈다. 유독 달달한 눈빛의 지민과, 웃을 듯 말 듯한 은비의 표정. 지원이 자리를 비켜 주려는 찰나,

"선배~!"

둘 사이의 기류를 완전히 깨버리는 시연의 등장이었다. 소문으로는 시연이 처음 PK실습을 왔을 때 알아서는 안 될 것을 하나 봤는데, 입막음차 지민이 조금 잘해주니까 시연이 홀딱 넘어가서는 저렇게 목을 매는 거란다. 사실일지 아닐지는 몰랐지만, 남의 얘기에 입 섞기를 싫어하는 은비는 물론이고 남 뒷담화에 밝은 지원조차도 이상하게 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정말 자극적인 소문이 될 수도 있는데 병원 내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서른의 나이에 교수가 된 지민에 대해서는 '찌라시'가 없었다.

"쟤는 응급의학과라는 애가 어떻게 ER에 출석도장 한 번을 안 찍어?"

*ER=emergency room, 응급실

"소아과 가 있으니까 그렇지, 누구누구 찾으러."

불만이 가득 섞인 은비의 말에 대조되게 툭 던지는 듯한 지원의 말투가 은비의 신경을 긁었다.

"아무리 박지민쌤이 좋아도, 응급의학과는 24시간 얼마나 바쁘게 돌아가는 곳인데 쟤가 빠지면 어쩌자는 거야."

"그래도 쟤네 오빠 이시준보다는 낫잖아. 쟤가 누굴 좋아하건 우리한테는 피해가 안 오니까. 그냥 꼴 보기 싫을 뿐이지."

이시준. 상종하지 않는 것이 답이라고 정평이 나있는 정형외과 레지던트이다. 아무나 조금만 잘 대해 주면 고백을 했다 차이면 몇 년 선배건간에 쌩 까버린다는 전설의 이시준. 오히려 그런 점이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매우 크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요즘도 고백할 사람을 물색하는 듯했다.

뜻밖에도 이시준 이야기는 은비와 친한 사람들끼리의 술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원영이 빨개진 얼굴로 시준에게 고백받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자리에 있던 지원, 은비, 지선까지 모두가 시준에게 고백을 빋고 찼으며 그 이후 시준에게 쌩 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영은 바로 시준을 찼고, 이후 병원 식구들에게도 조심하라고 알린 것이 굉장히 빨리 퍼진 것이다.

여우와 남시. 가끔은 투닥거리고 마음에 상처를 입어도 평화롭고 조용할 것만 같던 그들의 일상.
그러나 일상의 기적은 영원하지 못했다.

써놓고 보니까 문단을 잘 못 나눠서 되게 읽기 싫게 길어요...ㅜ 그래도 예쁘게 봐주세요!!

윤설병원 응급실입니다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