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죽음,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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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는 그 날 유독 매우 바빴다. 5분에 한 명꼴로 초응급 환자가 들어왔다고 봐도 무색하다. 그 정도 초응급 환자는 과 책임자가 직접 집도해야 하기 때문에, 석진이 잠수이고 부교수 조교수가 모두 공석인 현재 은비가 그 모든 연속근무를 감내해야 했다.

마침내 밀려 들어오던 초응급 환자의 연속이 잠시 멈췄다. 그래도 언제 올지 모르는 전화에 은비는 아예 안내데스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쉬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으레 응급상황이겠거니, 하고 은비는 아예 제가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발신인이 내선전화*였다.

*내선전화-한 건물이나 단체 내에서 사용하는 전화. 병원에서는 병실별로, 혹은 과별로 내선전화가 이어져 있다.

"응급의학과 권은비입니다."
"은비야....."
"누구야?"

전화기 너머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몰랐지만, 은비와 친한 사람인 건 확실했고 지원이 아닌 것 역시 확실했다.

"나 지선인데....음....아니야. 내려갈게, 네가 보고 판단해."

그러고서는 전화가 끊겼다. 은비는 초조함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리고서는, 잠시 후 지선이 나타났다. 그리고 지선이 부축하고 있는 아이는 믿기 힘들었다. 아니야, 아니라고 해줘.

"얘 왜 이래?"

한참 후에야 입을 떼고 수속을 시작한 은비는 지선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마침내 수속이 끝나고, 그 아이는 치료실로 보내졌다.

"몰라, 3시 30분까진 멀쩡했는데 애가 웬일로 조용하기에 3시 50분쯤 들어가 봤는데 이 꼴이야. 20분 새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은비는 아예 손을 떨고 있었다. 더는 못 견디겠다는 듯 시선을 떨궜다. 수술대에 올라 있는 아이는 놀랍게도 지헌이었다. 얼굴은 열꽃이 핀 건지 붉고, 군데군데 반점이 홍역을 연상케 했다. 거기다 누가 봐도 엄청나게 아픈 티를 내고 있었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은비는 우선 지헌을 병상으로 옮기고 항생제와 몇몇 약을 투여했다.

"20분 새에 이렇다고?"
"그런데 병실에 들어간 사람은 없었어. 내가 그 20분짜리 CCTV 다 돌려봤거든."
"근데 얜 왜 이래?"

초조하고, 불안하고,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 은비와 지선은 둘 다 이 애가 어릴 적부터 친구들에게, 선생님에게, 부모님에게 괴롭힘을 당해 왔다는 것을 잘 알았다. 세상에 혼자인 느낌이었을 거다, 그 어린 아이는. 병원에 오기 전 14년간 그 괴롭힘을 감내하며 살았을 지헌.

소아과에 별별 구실을 다 들어 장기 입원 환자로 입원시키고 난 1년 6개월은, 지헌에게 행복했을까.

거의 대성통곡을 하는 지선 옆에서, 은비의 볼을 타고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괴롭힘당하고, 배척받고 살던 지헌이. 그 기분을 너무나도 잘 알던 은비였다. 지헌이의 1년 6개월은 부디 행복했기를. 지헌이가 제발, 여기서 일어나 주기를, 은비는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은비가 간절히 한 기도가 하늘에는 닿지 못했는지, 얕게나마 요동치던 초록 줄은 듣기 싫은 소음을 내며 일직선을 그렸다.

조용히 눈물만 흘리던 은비는 지선과 함께 목놓아 울었다.

어리고 여리던 열다섯 지헌이.

그 아이가 너무도 안쓰러워 은비는 울었다.

그러다, 언뜻 지선의 표정을 보았다. 지선은,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아이를 지키지 못햇다는 자책감과, 결단 같은 것이 보이는 표정. 은비는 순간 집히는 것이 있었지만, 아니길 바랐다.

윤설병원 응급실입니다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