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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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원영이 실수로 석진의 통화를 들은 날, 이미 아린은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주사 맞을 시간이 되어서 석진의 진료실에 간 아린은 석진이 진료실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의 병실로 향했다. 그런데 병실 문 앞에서 문득 석진이 단 한 번도 진료실을 완벽히 비운 적은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간혹 본인이 자리를 비울 때면 간호사를 남겨 두었다.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아린은 석진의 연구실로 향했고, 석진이 진지하고도 조용한 목소리로 누군가를 타이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종' 같은 말이 종종 들리기에, 일이 석진에게 불리하게 가면 변호해 줄 요량으로 병실에서 휴대폰을 가져와 연구실 문에 대고 녹음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린이 핸드폰을 가져왔을 땐 이미 이야기가 막바지로 접어들었는지, 제대로 녹음된 내용은 '이걸 알고도 네가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였다.

이 녹음본을 지헌에게 이메일로 보내기까지 또 고민이 필요했다. 결국 밤을 꼬박 새우고는 다음날 오전까지 거의 다 생각하는데 쓴 아린은 이내 지헌의 메일을 열어 녹음본을 보냈다. 그리고 지헌에게 문자로 메일을 보라고 보냈다. 아린은 이 모든 일을 하는 데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며 병실 문을 잠갔다.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이런 짓을 한 걸 알면 석진도 자신의 부모님처럼 자신을 무자비하게 때릴까.

한편 지헌은 메일을 확인하고, 은비에게 달려갔다. 은비가 지헌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지헌은 녹음본을 내밀었다. 은비는 아마 그것을 지헌이 좋아하는 가수의 신곡쯤으로 생각했을 거다. 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고 녹음본을 들어본 은비는 정색하며 지헌에게 이거 어디서 났냐고, 네가 이걸 왜 가지고 있냐고 묻더니 이내 지헌을 병실로 잡아끌었다. 지헌은 아린의 마음을 움직이기까지 제가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

은비는 지헌의 말을 경청하며 녹음본을 이곳저곳에 복사했다.

이제는 원영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겠다.

은비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윤설병원 응급실입니다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