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마지막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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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나빠졌다. 지원과 은비가 뒤에서 손을 써서 채원의 검사를 최우선으로 당겨 놓긴 했지만, 그럼에도 검사는 차일피일 미뤄지기만 했다.

채원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채원이 세상에 태어나서 원망한 단 두 사람, 부모님께도 썼다. 소아과 동생들은 물론 정국에게도, 은비와 지원 앞으로도, 지선에게도 하나하나 유서를 써내려간 그 아이의 심정은 어땠을까.

지원의 마음도 그때 지옥을 달리고 있었다.

"자세히는 검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김채원 양 백혈병 확진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전정국 군 케이스와 거의 똑같거든요."

지원의 마음을 너무도 후벼파는 그 말. 아끼던 후배 원영을 무참히 살해한 사람이 자신이 존경하던 교수. 그리고 너무도 아끼던 환자가 백혈병 확진 가능성 높음. 가능성만으로도 지원에겐 너무 절망적이었다.

"지원아, 왜?"

다가온 은비가 지원의 어깨를 감싸며 한껏 다정하게 물었다.

"은비야아, 채원이...백혈병일 가능성이 높대..."

멀리서 이를 듣고 있던 지헌은 때가 왔음을 알았다. 채원이 죽는다면 당분간은 병원이 어수선하겠지. 그럼 그때를 타 범인은 뭔가 하려고 할 거야.

지헌은 곧장 아린의 병실로 향했다.

채원 언니가 죽기 전에 이걸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해.

"아린아, 정아린."

아린은 멍한 눈길로 허공을 응시하다 이내 들어와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아린아, 이거 들어봐. 채원 언니가 나더러 이걸 최대한 많은 사람한테 얘기하고 문제삼아야 한댔어."

그러면서 지헌은 채원이 자신에게 해 준 말을 조금 쉽게 바꿔서 아린에게 들려주었다.

"백지헌, 지금 나더러 그 말을 믿으라는 거야?"
"믿을지 말지는 네 마음이야. 단지 이게 채원 언니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임무라는 것만 알아둬."
"석진 선생님은 나한테 잘 해준 유일한 어른이었어."
"채원 언니는 나한테 잘 해준 첫 번째 사람이었어. 선생님도 부모님도 나한테 그렇게 안 해줬다고. 그 언니가 나한테만 이래준 거 아니잖아. 너한텐 또 얼마나 잘했는데. 근데 난 그 언니 보면 화만 내고 짜증내고. 그래서 마지막 부탁은 꼭 들어주고 싶단 말이야. 그러니까 아린아, 정아린, 너도 네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란 말이야."

지헌이 끝끝내 포기하고 돌아설 때 해는 이미 저물어 가고 있었다. 석진에 대한 맹신과도 같은 믿음이 이 아이를 가두고 있던 것일까. 자기 병실이 오늘따라 더 어둡고 외로워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생각하며 지헌은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지헌이 들려준 상처 이야기에 아린의 마음도 조금은 기울었다. 초등학교 입학하던 순간부터 쭉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는 지헌이. 그 애가 들어주고 싶다던 마지막 부탁.

아린의 마음이 사정없이 요동쳤다.

윤설병원 응급실입니다Tempat cerita menjadi hidup. Temukan sekar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