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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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길로 병원을 나온 은비와 지원은 대학생 시절 가끔 시간이 나면 가곤 했던 전주와 춘천을 가기로 했다.

"지원아, 우리, 가서 다 잊고 오자."
"그래, 은비야아......"

짐을 싸는 게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얼마 걸리지 않아 은비와 지원은 그날 바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전주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만, 은비와 지원의 들뜬 마음이 시간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기차에서 이런저런 간식도 사 먹고, 서로 쿵짝을 맞춰 가며 시연의 흉도 보고, 가서 뭘 할지도 부지런히 생각했다.

전주에 도착해서 둘이 처음 느낀 것은 봄바람이었다. 5월, 따뜻한 전주의 봄바람. 둘을 감싸는 달콤한 따뜻함 덕에 잠시나마 주변 문제들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자기 몸만 한 짐을 놓을 곳이 간절히 필요했기 때문에, 대학생 시절 갔던 민박집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도 그곳에서 지낼 생각이었다.

"은비야, 우리 오늘은 그냥 이렇게 얘기하면 안 돼?"
"왜 안 돼, 오늘 밤 새서 얘기하자."

은비와 지원은 버터구이 오징어와 소주를 공수해 와서는 TV를 켜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니, 은비야, 이게 말이 되냐고. 여친인 내가 바로 옆에 있는데, 그 여시년한테 잘만 웃고!"
"헐, 씨발 그거 완전 대단한 쓰레기 새끼네? 지원아 너 그 사람 만나지 마. 니가 너무 아깝다."
"그러려고.....그나저나 내일은 뭐할까?"
"맛집투어? 아니면....핫플투어?"
"둘 다 가자."
"나이스."

둘째 날, 은비와 지원은 인터넷을 찾아 검색창을 맨 밑까지 내리며 나오는 전주 맛집, 핫플은 전부 다 가봤을 것이다. 은비는 와플, 지원은 팥빙수를 베스트로 꼽았다. 그러면서 역시 먹는 재미가 최고라며 웃었다. 밤이 오자, 둘은 케이블카를 탔다. 야경을 보자, 조금은 상처가 치유되는 듯했지만, 하늘에 가까워 오자 지선이 너무도 보고 싶었다. 지선이가 여기서 이걸 봤더라면, 생긋 예쁘게 웃으면서 너무 예쁘다고 발까지 굴렀을 텐데. 그런 생각에 둘은 조용해졌다. 민박집에 도착할 때까지 둘은 말 한 마디 없이 저기압이다가, 민박집에 도착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이번엔 맥주를 사다가 이야기꽃을 피웠다. 밤 새는 게 직업인 둘이라, 밤새워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셋째 날, 둘은 춘천으로 이동했다. 춘천에는 이것저것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바쁘게 움직였다. 소양강에서 사진도 찍고, 옛날 교복을 빌려주는 카페에도 가보았다. 복고 감성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은비와 지원은 그 교복을 입던 세대가 아니라 그렇게 향수가 일어나진 않았다. 사진을 몇백 장은 찍었는데, 막상 다시 확인해 보니 역광이거나 흔들려서 건질 만한 것은 몇 장 안 되었다. 춘천에 왔으니 닭갈비도 먹었다. 은비는 너무 맵다며 치즈를 꼭 찍어먹었지만, 지원은 치즈에는 손도 안 대고도 일곱 개째 넘기면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일주일은 있고 싶었지만, 큰맘먹고 쓴 휴가가 5일이라서 넷째 날엔 돌아가야 했다. 마음 정리하고, 짐도 풀 시간이 하루쯤은 필요했다. 은비와 지원은 민박집 이곳저곳에 거의 흩뿌려진 짐을 또 밤을 새서 정리했다.

"지원아, 우리 내일은 휴게소에서 소떡소떡이랑 닭강정, 떡볶이, 음...그리고....회오리감자! 다 먹자."
"권은비, 솔직히 너 여기 먹으러 왔지?"

웃으며 대화하는 일상. 그냥 평범한 일상. 원영의 죽음 이후 단 하루도 이런 날이 없었다. 매일같이 둘의 마음은 지옥이었고, 잊을만 하면 새로운 일이 생겼다. 이번엔 너무도 견디기 힘들었기에 이렇게 덜컥 연차 7일 중 5일을 질러 여행을 온 것이다.

여행을 끝마치며, 지원과 은비는 조금이라도 힘내서 살아볼 힘을 얻었다. 지선과 지헌이 케이블카에서 용기를 준 것일까. 춘천에서의 마지막 날, 한옥집 대청에 누워 서울에서는 볼 수 없던 별무리를 보던 둘은 문득, 지선과 지헌의 별은 무엇일까, 하고 바쁘게 하늘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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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d: Oct 03, 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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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설병원 응급실입니다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