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멀어져만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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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와 지원이 완전히 정신을 차린 것은 거의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둘이 충격에서 완전히 헤어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는 회복이 되었다고 정신과 전문의들은 말했다. 의사라 그런지 회복이 아주 빠르다고.

병원에 나온 은비와 지원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잠시 교통사고가 났던 것처럼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병원 식구들은 대부분 속아 넘어갔고, 원영이 일은 점점 그냥 강도로 일단락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조용히 잊혀질 일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은비씨, 괜찮아요?"
"......."

내가 누구 때문에 안 괜찮은데. 생각하며 은비는 지민을 가볍게 무시했다. 학창시절에도 자신이 예뻐서 교수들이 점수를 퍼주는 거라는 뒷담화를 수없이 무시해 본 은비였기에 그를 무시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은비의 마음이었다. 아끼던 후배를 죽이는 데 남자친구가 일조했다.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은비의 마음은, 많이 어려웠다.

"은비쌤, 부교수실."

멍한 상태에 젖어있는 은비의 어깨를 뒤에서 툭툭 치며 등장한 태형이었다.

"아아, 네."

은비는 지금 상황이 정말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쨌든 지민은 남자친구이기 전에 자신의 직속상사였으므로 그냥 부교수실로 향했다.

"들어가겠습니다."

원래는 애교도 많고, 하고 싶은 말은 절대 못 참는 은비가 이렇게까지 깍듯하다는 건 정말 화가 많이 났거나, 말 섞기 싫으니 꺼져달라는 뜻이었다.

"은비씨 나한테 왜그래요? 요즘 계속 무시하고 피하고. 나한테 이러면 원영씨가 돌아온답니까? 그만 좀 해요 제발. 내가 은비씨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면서 그러는 거예요?"

평소라면 한 마디 한 마디 대꾸했을 은비가 텅 빈 눈빛으로 지민을 응시하다, 이내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지민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원영이한테, 왜 그랬어요?"

전에 없이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주는 억양이었다. 오열하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을까.

"무슨 소리예요?"
"원영이한테 왜 그랬냐고요. 아니, 그 칼에서 왜 선생님 지문이 나오냐고요."
"오햅니다."
"뭐가요? 그럼 설명해봐요. 들어줄테니까."

해보라는 듯 은비는 고개를 까딱했지만, 은비가 저렇게까지 나올 때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도 듣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닙니다."
"맞다는 거예요?"
"숨기기만 했습니다."
"걔 그런 짓 당한 거 알면서?"
"...."
"개자식. 니가 사람이야?"

말을 마치며 쌩하니 나가 버리는 은비의 뒷모습을 지민은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가 멍하니 보고만 있어야 했던 건 사실 뒤돌아 나가는 은비의 모습뿐만이 아니었다.

아끼는 제자 원영의 죽음도.

그리고 점점 자신에게서 멀어져 가는 은비도.

그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아야 했다.

윤설병원 응급실입니다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