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술주정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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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 표정이 안 좋으세요.."

막내인턴 원영이 커피를 두 잔 들고 한 잔을 은비 쪽으로 밀어주며 말을 건넸다.

"어, 요즘 생각할 게 좀 많아서..."
"지원쌤도 모르시는 것 같던데, 왜 그러세요..."
"원영아."
"네?"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높은 사람이라서 거리 두는 게 서로한테 나을 때 넌 어떡할거야?"
"...지민쌤 말하는거죠? 솔직히 말할까요?"

은비가 그러라는 듯 고개를 까딱하자 원영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음...저라면 거리 둘 것 같아요. 우선 지민쌤은 지나치게 특별 케이스니까, 지민쌤이 교수 된 과정에 분명 뭔가 있었을 거란 말이예요. 모르긴 몰라도 윤설 같은 대형병원 교수직을 떡 내줄 정도면 엄청 큰일일 텐데, 그 일에 은비쌤 말리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설사 그런 게 정말 없었다고 해도, 은비쌤은 전교 1등에 앞에는 꽃길이 펴져 있고 지민쌤은 그 나이에 그 자리에 있을 정도면 진짜 앞길 무한대인 건데. 은비쌤은 잘하니까 승진도 빠를 거 아니예요? 그게 다 지민쌤 빽이라고 소문돌면, 둘 인생 다 끝인데."
"그렇지...어째 원영이가 더 잘 아는 것 같네."
"은비쌤도 잘 알 것 같은데요? 그냥 확신을 받고 싶은 거지, 이 정도 생각은 요즘은 중학생도 할 수 있어요."

은비는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가는 길에 지민과 마주쳤지만, 대충 인사만 하고 대화 한 마디 없이 돌아섰다.

"...술 한 잔 할래요?"
"네?"
"금요일이잖아요."
"저는 펠로우, 아니 펠노예라..."
"내가 커버쳐줄게요."

더 이상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부교수가 커버만 쳐준다면, 병원에서 날아다녀도 크게 상관없을 것이다.

"네..그래요. 지원이도..."
"지원씨도 와요."

치밀한 사람. 다 준비해놓은 거였어.

생각보다 밤은 빨리 왔다. 어쩌면 너무 바쁜 일에 치여서 시간이 빠르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은비는 지원이 일을 마무리하고 올 때까지 기다렸다 함께 술을 마시기로 한 호프집으로 향했다.

지민은 알고 보니 자신의 친구들과 여의사들도 여럿 불러놓았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분위기가 좋아서 주변인들이 계속 은비에게 술을 권하는 바람에 은비는 혼자 거의 소주를 네 병은 클리어했다.

"권은비, 너 주량 여덟 병인 거 기억해라."

은비는 나름 술이 세지만, 주량이 칼같아서 여덟 병째 마지막 잔을 다 마신 순간부터 주사가 시작된다. 그것도 자신이 평소에 하고 싶던 말을 다 해버리는 특이한 주사라, 대학 시절 교수님들과의 술자리에서 사이다 구경거리로 통했다. 물론 정신이 멀쩡한 친구 지원은 곤혹을 겪었지만. 그런 자신의 주사를 알면서도, 은비는 여덟 병째 마지막 잔을 들이키고 있었다.

"와, 여러분. 권은비 안에서 이제 미친년 나옵니다. 대피하세요 진짜."

지원의 경고는 다른 이들의 말소리에 묻혀 버렸고 은비의 주사는 시작되었다. 한창 주에 100시간 가까이 일하고, 휴식시간에도 사실상 스탠바이 상태에다가 중노동급의 일거리를 주면서 월급은 왜 그만큼이냐, 연차가 7일이라니 말이 되냐 하며 병원장과 이사장을 찾던 은비가 지민에게로 말을 돌렸다.

"아니이, 쌔앰, 좋아한다구요!"
"진심이예요?"
"권은비는 술 마셔도 거짓말은 안 해요. 취중진담이랄까."

지원의 말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젓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리고 난리가 났다.

"그럼 사귀는 겁니다?"
"그래요!"

지금 상황을 모르는 듯한 은비지만, 어쨌든 좋아하던 사람이니 지원은 그저 은비가 행복하길 바랐다. 비록 그렇기만 하지는 못했지만.

'그런데, 권은비 저거 술 깨면 필름이 완전히 끊기는데. 괜찮을까?'

윤설병원 응급실입니다Onde histórias criam vida. Descubra ago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