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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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느때처럼 고양이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들개는 좀 더 먼 곳에 있었으며, 사람들처럼 날 경계하지 않았다.

사실상 나는 모든 동물과 두루두루 친했다. 동물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그들에게 의미있는 언어가 있는지는 몰랐지만, 그들의 행동은 거짓말이 아니어서 좋았다. 나는 고양이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노란 무늬가 있는 고양이는 꽤나 천방지축이라, 가만히 있다가 파리나 벌레를 쫒기도 하고, 가만히 내 눈을 보다가도 갑자기 고개를 돌리거나, 아니면 지금처럼 쫒기듯이 갑자기 뛰쳐가기도 한다.

아니면 따라오라는 표시라거나.

고양이를 따라가다가 발견한 곳은 제법 큰 절이었다.

고양이는 그곳에 벌러덩 앉아서 자신의 발을 핥는다.

절의 나무 문 앞쪽에는 고양이 사료가 담긴 그릇이 있다.

끼익 거리는 소리가 잠시 들리고 곧이어 큰 체구의 스님이 나온다. 한 30대 즈음 된 것 같다. 이상하게도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잠시 고양이 사료와 물을 채우는 것에 집중하다가, 역시나 소리 없이 다가와 어느새 내 앞에 섰다.

마치 체중이 없는 느낌이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네요!"
가까이서 보니 190cm도 넘길만큼 꽤나 거구의 스님이다.

저렇게 덩치가 크고 닦인 자갈도 아닌데 발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내 감각에서조차.

그렇다 해도, 설령 귀신이라 해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 나는 이전의 생에서 귀신들을 우습게 다루던 것을 기억한다. 다만 내가 그가 무슨 말을 할 지 몰라서 약간 긴장되었다.

그래서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인적이 드문 곳인데, 등산을 좋아하시나봐요."

나는 가만히 그의 얼굴을 보기만 했다.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영락없는 사람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본 사람이라 반갑긴 하지.

"해가 거의 졌는데, 무섭지 않으세요? 산 입구 까지 바래다 드릴까요?"

나는 고개를 젓는다. 진짜 스님이든, 아니면 사이비든 간에 어차피 나를 힘으로 이길 수 있지 못할 테니까.

"하하. 수줍음이 많으신가보다. 여기는 큰 동물이나 조심해야 할건 없지만, 뱀은 종종 보이거든요."

조금 의아했다. 무슨 말을 하길 원하는거지? 나는 같이 갈 마음도, 필요도 없었다.

계속 말하는 걸 보니 기분이 별로여서 나는 내가 밤 눈이 밝아서 괜찮다고 했다.

누가 들어도 이상한 말이었지.

그런데 스님은 눈치를 챈 건지 모르겠다.

"아 그러시구나. 마침 며칠 전에 사 둔 플래시가 있는데, 꽤 밝거든요. 내려갈때 쓰세요. 가지셔도 되구요. 비싼건 아니라서요."

나는 꽤 큰 검은 플래시 라이트를 건네받았다.

"내일 낮에 돌려드릴게요." 나는 일부러 차갑게 말했다. 아직도 사람과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스님이 크게 안녕히가세요! 라고 외치는 소리가 등 뒤에 들렸다.

집에 도착하자 자정이 넘은 것 같았다. 근처에는 불빛이 없다. 그래서 별이 잘 보여 더더욱 좋아했다.

집에는 냉장고와 약간의 책, 책상, 단순한 부엌용품 정도가 있고, 전자기기는 오래된 컴퓨터와 고물 폰 뿐이었다. 나는 책상 위에 꺼진 플래시 라이트를 올려놓고 잠을 청했다.

꿈에 나는 그 절 안에 있었다. 그 절은 나를 어떤 사람들보다 편하게 반겨준다. 내가 알고 있는 그림들, 탱화, 종교화, 지옥도, 나를 향해 짖는 흰 개, 검은 지붕, 그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과 휘나끼는 나뭇소리, 그리고 뒤에는 불상이 있다.

불상 안에는 부처가 있을까? 그러면 불상은 부처의 집일까? 불상 안에 갖혀 살면 외롭지 않을까? 나는 반겨지는 느낌을 꿈에서야, 몇년이 지나고 나서야 느낀다.

꿈에서 나는 인간의 허물을 벗는다. 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을, 절대 느끼지 못할 자유.

나는 많은 눈을 가진 불타는 거대한 뱀이었다. 나는 울고 있었다. 산 아래의 사람들을 보며 울고있었다.

사람은 나같이 뜨거운 것을 만지지 못할 것이다.
내가 사람을 만지면 그네들 연약한 살갗이 타버려 재가 될 것 같아서, 나는 꿈 속 절 안에 불상 옆에 자리를 잡는다.

비명 소리를 생각한다. 울부짖는 소리를 떠올린다. 마음이 편해진다.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감정이었다.

누군가 뒤에서 나한테 딱 소리를 내며 죽비를 세게 휘두른다.

번쩍 놀라 잠에서 깨었다.

(한국어판) 생물로 사는 즐거움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