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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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에 쉽게 도착했다. 마음먹으니 금방이다.

"아 오셨군요! 이렇게 빨리 오실 줄 몰랐네요." 그렇게 말했으나 스님은 기다린 눈치이다. 마치 내가 올 것을 확실시 여긴 것 같았다.

"아, 아직 정오이니 절 좀 구경하시지요." 스님은 잘 꾸며진 절의 정원으로 나를 안내했다.

"이곳에는 독특한 탱화들이 많아요. 좀 무시무시하기도 하고, 지옥도 그림도 좀 있지만, 어쨌든 성불을 기원하기 위해 옛 주지스님들이 그렸답니다." 스님은 멋쩍어보였다.

"지금은 제가 주지로 있는데, 절에 워낙 사람도 적고 제가 그림 재주가 없어서 좀 아쉽네요. 절이 참 깨끗하죠?"

말투가 왠지 나를 떠보는 느낌이 든다. 그도 그럴것이, 사람의 눈에는 깨끗해 보이지만, 내 눈 안쪽의 붉은 눈에는...

여러가지 땅의 상처, 기운의 과도한 넘실거림, 그리고

숨길 수 없는 나와같은 이들의 체취.

...혹시 나같은 이들을 사냥하는 곳인가?

나와 같은 이들을 사냥하다가 생긴 기운과 상처들인가?

언뜻 불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퇴마사들을 직접적으로 본 적이 없다.

스님은 애써 모르는 체 하는 표정이다. 분명한 위화감이 있다.

"스님..저 여쭤볼 게-"

이번엔 문 밖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났다. 사실 이게 영청인지, 혹은 실제 소린지 잘 몰랐지만, 여튼 기운과 함께 먼지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육안으로 본 것은 세 식구였다. 평범하지만, 안쪽 몸이 전혀 평범하지 않을 것 같은 식구.

"아, 새로 들이는 사람인가? 아무래도 꽤 강한 축인 것 같군." 아버지처럼 보이는 남자가 가까이 왔다.

너무 가까이 와서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다. 내 얼굴 앞에 그 얼굴을 들이밀었다. 마치 눈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숨을 쉬는 감각이 없다. 코에도 입에도 바람결이 없다.

"뭡니까?" 나는 아랫사람 대하듯이 다그쳐버렸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젖히더니 이제야 내 얼굴을 보았다는 듯이 움직였다. 이윽고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남자와 그 두 가족의 몸이, 옷과 살이 흩어지는 듯 하며 검은 형상의 거인들로 변한다.

나는 이것이 무엇인지 기억한다.

지옥에서 온 것들이다. 나처럼.

그들은 몸과 팔다리가 지나치게 길고, 눈 코 입과 머리카락이 전부 없었으며, 모두 탄 듯이 석탄처럼 검었다. 몸은 매끄러워서 마치 양서류의 피부같았다. 그리고 단단해 보였다. 가장 작은 여자아이는 2.5미터의 거인이 되었고, 남자와 여자는 3미터는 족히 넘을 듯했다.

그러나 직감적으로 이들은 나의 가장 작은 불꽃보다도 약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남자 거인은 고개를 숙이며 한쪽 무릎을 꿇는다.

"어서오십시오. 줄곧 기다렸습니다."다른 두 거인도 짐짓 무릎을 꿇는다.

스님은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만큼 눈을 옅게 웃었다.

스님은 이들과는 다르게 한쪽 손을 내밀며 악수를 건넨다.

"확인하길 잘했네요. 반갑습니다. 아수라여. 저들은 문지기들이에요.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환각을 걸어 이곳에 오지 못하게 하죠. 애초에 온전한 인간들은 이곳을 찾지 못합니다."

소녀였던 검은 인간은 순식간에 노란 점박이 고양이로 변한다.

"이곳은 아수라들과 요괴와 그밖의 특수한 존재들을 위한 절이에요. 당신이 머무르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 중 하나죠."

"이 절은 잠룡사입니다. 서산의 잠룡사. 용이 잠든 절이죠. 용이 죽고나서 그 위에 여러가지 존재들이 터전을 잡고 사람들을 몰아낸 곳입니다."

스님은 말을 이었다.

"여기는 아수라를 보호하거나 훈련시키는 곳이에요. 이에 관한 전승들도 있죠. 안심해도 되는 곳입니다."

검은 거인 문지기가 갑자기 내 이마에 기다란 손가락들을 댄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의 힘이 내 이마로부터 발끝까지 전율이 흐른다. 척추가 당겨지는 느낌이 든다.

이윽고 척수를 타고 올라오는 작은 폭발하는 감각들과 함께 나의 본 모습, 나의 붉은 눈이 드러난다.

여태껏 남에 의해 이 모습이 드러난 적이 없었는데.

손을 댄 거인은 서서히 사그라든다. 점점 작아지면서. 그는 눈구멍을 포함한 전신의 구멍이 없었지만 마치 눈이 있었다면 웃었을 것 같았다. 그게 내 생각이다.

그리고 재가 되어 날아간다.

나는 당황스럽지만 이것이 그가 했었어야 한 일임을 어렴풋이 느낀다.

마치 당연했던 것처럼.

머리에 작열통이 오른다. 그의 행동이 뭐였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머리가 새빨개지는 감각.

그토록 생생한 감각.

살아있다는 감각.

타오르는 최초의 감정.

나는 눈을 감았다가 전신에 발열하는 힘을 느끼며 뜬다.

눈을 떴을 때, 내 머리카락은 태양처럼 붉었다.

눈을 떴을 때, 내 앞의 모두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한국어판) 생물로 사는 즐거움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