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살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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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첫 살생은 아수라의 깊은 내면을 깨운다 했지...

나는 2주 전에 나에게 다가왔던 주정뱅이를 떠올린다. 아마 그때 나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그의 기운이 불나방처럼 나에게 뛰어오른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좀 뒤에 죽었다고 했고.'

그럼 이게 내 내면이란건가? 사람 마음을 죽이는 것? 아니면 궁금해 하는게 내면인건가? 애초에 왜 뛰어든 거였지?

'분명 나에게 무슨 말을 했었는데...'

눈이 밝다고 했었나?

그 순간 내 눈은 붉어졌던건가? 사람들은 내 원래 눈을 보면 안되는 건가?

'그렇다면 왜 뛰어든 거야. 나 참, 이게 내 내면이라니. 원래대로라면 죄책감이 들어야 했던 것 같은데...'

요즘 좀 이상한 행동을 했던 것 같긴 하다. 아니면 원래의 성향을 깨운거던가.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있다. 핸드폰은 꺼져있지만 딱히 이상해보이긴 싫으니까 대충 음악듣는 척 하면서, 눈을 내리깔고 들리지 않는 이어폰의 음악을 듣는 흉내내기다.

'그러고보면 재미있어한다는거지.. 흉내내기라거나 아니면 구경하기 같은, 어쩌면 내 내면은 호기심인게 아닐까?'

날이 약간 서늘하다.

자연은 건드리지 않는게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괴상한 존재임을 티내는건 별로 좋은 선택 같지 않다. 미쳤다고 생각하는건 그 중 상당히 우호적인 반응일지도 모르고, 나는 어떤 부류들의 사람들이 섞여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깨어난 지 별로 되지 않았으니 사람을 고르는 법도, 솎아내는 능력도 마땅치 않다.

이내 입을 삐쭉대며 음악듣는 척을 한다.

앞에는 고양이가 걷고 있고, 사람들도 히히적대며 걷는다.

웃는걸 보는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난 우호적인 스타일일지도 몰라. 어쩌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지도 모르는거지...'

공원은 상당히 안전하다. 자연물도 많고, 쉬러 온 사람도 대다수니까 나도 안정감이 든다.

그나저나 여기에 나같은 존재는 없는건가?

주변 공원을 돌면서 기운들을 확인해보기로 한다.

영감, 이런건 꽤 어렸을 때도 알고있으니까 굳이 시뻘건 눈까지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나는 흐름길을 따라간다. 이런 곳에도 뭔가가 있을까? 사람들에게 이질적이고 나와는 비슷한 것을 나는 어느샌가 갈구하고 있었다.

곧이어 바람소리가 들린다. 희미한 냄새도 난다. 올빼미 소리가 들리듯이, 서늘한 바람소리에 작은 쇳소리같은게 섞인다.

나는 나무냄새가 나는 듯 한 바람길을 따라간다. 여러가지 냄새. 나무, 쇠, 올빼미, 아! 숲이겠군.

미지로 연결된 숲이다. 나는 이러한 것들을 산에서 많이 보았으며, 잠룡사는 특히 이 내음과 소리가 강했다. 이런 신적인 외침이 번개만큼, 우뢰만큼, 군대의 함성만큼 강한 곳이니까.

나는 종종종 신의 바람을 따라 건넌다. 무슨 신이길래 이렇게 좋은 향이 나는지.

짐승이려나, 제비이려나, 불을 좋아하면 좋겠다고 내심 여긴다.

나는 신당을 발견한다. (사실 일반 무당집의 모습이다.)

무당집에 들어가려면 좀 귀찮을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자 밑의 벤치에 한 여자애가 앉아있다.

그 옆에는 왠 할머니가 앉아있으며,

그들은 불가에서 짐승을 구워먹고 있었다.

그들은 아이 신과  할머니 신이다.

내가 찾는 신은 아니었다.

그들은 짐승 신을 구워먹는, 그 사체를 주워먹는, 사람에게는 조상이나 인연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나로서는, 내가 좋아하는 산의 후손을 살해한...

나를 닮은 불 안에서, 내가 거닐던 자연을 살해하는...

그들이 사체를 구워먹던 불이 어떤 일을 벌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거친 여자의 비명과 아무래도 무당의 것인것 같은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소리, 그리고 나의 내면이 거친 불꽃이 되어 나를 갉아먹는 소리, 내 살이 타는 것 같은 이상한 감각, 내 인격이 스스로의 힘에게 모독되는 충돌되는 힘들, 이상한 연민들, 알 수 없는 역함들, 그러한 역겨움이 모든 내면으로 견딜 수 없는 파도처럼 나를 집어삼킨다.

나는 나를 겉잡을 수가 없었다.

내 내면의 깊은 힘은 내 내면을 잡아먹은것 같은, 아수라가 아닌 차라리 자신을 잡아먹은 아귀의 것이 아닌가.

눈을 뜨기가 싫다.
일어나기 싫다.
이런 현상을 보기가 싫고, 나는 끊없이 변화하는 내 마음이 싫다.

내 살과 피를 느낄 수 없을 때까지 나는 이상한 감각 속에서 이상한 정신과 어지러운 현기증 속에서 날아간다.

뭔가가 죽는걸까? 내 첫 살생은 사람이 아닌 두 신이었다.

내가 죽이는 것은 생이 아닌 아마도

아마도 이 불은 파괴하는 열기이며

사람들의 체온을 앗아가는 불일 것이다.

내가 분노하기는 너무 쉬웠으며 영혼들은 너무 쉽게 바스라졌다. 어쩌면 나는 여기 있어서는 안되는 것 아닐까?

사람들의 온열감이 나한테는 따뜻하지만, 나의 분노는 거세니까 나는 차라리 외부에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할 때 쯤 눈을 떠 일어났다.

몸을 재구성하고 내가 선 자리를 보았다.

내 두 손, 모래가 조금 드러난 땅, 무당 집, 벤치는 텅 비었다. 어떠한 그을림도 보이지 않는다.

환상이었나? 그냥 미쳤던 걸까?

생각하기엔 여러가지였지만 종이 타는 냄새가 난다. 소방차가 위용을 떨며 달려온다.

"신고 받고 왔는데요-" 귓가에 멀리있는 소리를 잡아낸다.

족자들이 다 탔다고, 오늘 굿을 하고 있었는데, 돼지며 과일이며 다 탔다는 소리다.

굿하던 사람들과 가족들은 자기들 이제 큰일났다고 신벌이라고 역정을 낸다.

조금 더 들어보자, 이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나이가 조금 많은 여자의 목소리가 떨린다.

이윽고 흐느낌이나 애원같은, 부적절하게 들리는 소리들,

그리고 무당은 큼큼거리다가 제사를 다시 하는게 어떻겠냐, 이리저리 에두르다가 아마 무언가 부족해서 노하셨을거다, 톤이 높아져 격양된 목소리로 늙은 여자를 달랜다.

한번 더 하면 괜찮을거다, 이거 날리면 네 아들도 곧 멀쩡해진다, 돼지야 다시 잡으면 되는데 그걸 못하려구,

아니면 이번엔 소라도 잡으면 조상님이 다시 오셔서 아들 병 나을거다, 괜히 시간 끌다가 노하신 것 아니냐, 이제라도 붙들면 뭐라도..

나는 이들의 말을 한 체감 상 7백미터 떨어진 거리쯤에서 듣는데, 생각보다 말이 안되었던 것 같다.

조상신은 방금전에 사라진 듯 한데, 다시 부른다면 누가 오길래?

애초에 그들은 누구의 신이더라, 그리고 나는 어지간하면,

어지간하면 그러한 위선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육체를 다시 소거한다.

'책임은 내가 져야겠지.'

'그들의 신을 죽인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 거야. 그게 맞는 것 같아.'

나는 불꽃의 모습으로, 하지만 인간에게 위해가 되지 않을 법한 도깨비불과 같은 가시적인 영적물질의 형태로, 즉 빛과 유사한 진동으로 재구성하여 바람을 타고 그들의 집으로 간다.


(한국어판) 생물로 사는 즐거움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