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환희

16 0 0
                                    

*사람의 시점

광경은 아사리판이었다

제단은 모두 어지럽혀져 놋그릇과 음식이 쏟아지고 돼지머리는 도끼에 완전히 갈린듯이 반으로 쪼개져 한쪽은 불에 녹은듯이 형상이 검은 덩어리채다. 사과와 배는 음식물 덩어리의 냄새가 나고 생선썩은 듯한 냄새가 난다. 소각장에 있는 매캐한 냄새에 불이 꺼졌는데도 창문을 계속 열어야 했으며 공기는 온통 회색이다. 상 중앙에는 번개가 내리친 모양새로, 둥글게 검은 원 모양의 잿더미가 퍼져있다. 식기도 그 모양따라 너저분한게, 누가 음식물더미를 아래로 쏟아부은 것 같다. 다만, 상이 부러지지 않은게 의외였다.

"신이 노하신 거야! 이제는 어쩌려고! 자네들도 별 수 있나 우리들도 이제 더 할 수가 없겠어."
그러자 아내와 남편이 엉엉 울며 절하고 손주먹을 쥔 채 땅을 두들기는 것이다.

불기은 반짝이는 금화가루처럼 번질거리다가 비행기에게 신호를 주는 첨탁처럼 명멸한다. 다리가 짓눌린 부부의 아이는 상반신과 두 팔의 힘으로 기어가다가 이제는 아무런 힘도 없는 종이들을 보고 제 노트자락을 찢어서 어떠한 의도하는 행동처럼, 그러나 정작 자신이 무얼 하는지 알 수 없는 넋나간 눈빛으로 종이자락을 아직 불씨가 옅게 남은 초 위에 놓는다.

"뭐 하는 거냐! 당장 멈추고 돌아와! 이놈!"

무당은 소리치지만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까 노하면서도 걱정어린 얼굴이다. 그의 신명있는 눈가는 이제 신끼가 아닌 눈물이 찰 것 같다.

그러자 초에서 흰 연기가 일렁이더니 검어지다가 불꽃이 다시 인다. 여기저기서 놀란 외침 그러나 경탄이 약간 어린 음성이 터져나온다.

환희는 나타난다. 다만 사람의 육신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불꽃과 빛의 모양새로, 그저 사람 땅의 불과 가장 유사하고 최대한 겁먹지 않을 모습으로. 사실 환희는 무얼 말해야 할지 모를 심산으로, 그저 제 마음을 정리하거나 혹은 이 사태가 궁금해서 와 본 것이다.

무당은 곧바로 무언가를 알아챈 눈치로 크게 소리친다. 통곡인지 아니면 그저 큰 목소린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아이고 원신님! 이보게! 오행 중 불님이 직접 오신거야! 네 아들 불쌍해서, 병마 없애는 불님이 오셨다! 이제 되었어!" 무당은 멍해 보이는 부부들을 빨리 숙이라 재촉하고 가만히 있는다.
그러곤 아이의 손과 허리를 잡아채어 불의 화신으로 그냥 서 있을 환희의 눈앞에 무릎꿇린다. 아이는 아픈 표정보다는 이 모든게 무엇인가, 하고 홀린 사람의 넋 같은 얼굴로 입만 벌리고 불길이 춤추는 모양새만 계속 본다.

무당은 재빨리 대신 설명한다.

" 이 아는 옛적에 신병을 앓다가 시기를 놓치고, 어미가 신병을 앓다가 내려온 것인데 결국 눌림도 망하고 병환이 악화되다가 그만 다리를 못 쓰게 되었습니다. 병원을 가도 병세는 찾지 못하지만 꼭 마비되거나 부러진 듯한 모양새로, 과학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 저도 여러 굿을 해 보았고..." 무당은 잠시 아! 하고 말을 거두더니 "저는 어미와는 중학교 동창으로, 굿에는 크게 돈 들이지 않았으나 그저 친구 자식이 걱정되어 그만..."

"그저 자비를 베풀어서 아이 다리만 낫게 해주시면 열심히 제사도 드리고, 저희가 할 수 있을 만큼 노력하겠으니, 아이가 다시 걸었으면 합니다." 무당은 읊조렸다.

"불님이 오셔서 다행이오." 그는 손짓하더니 아내가 들으라는 투로 말을 잇는다.

" 이는 호랑이의 숨결처럼 병마를 쫒는 분이라, 자네 아들의 병환을 시꺼멓게 태울걸세. 아이만 제대로 걷는다면 나도 이분을 모시리라."

부인은 아이를 살려달라는 눈치다. 아마 환희가 사람 모습이었어도 이렇게 가랑이 붙잡듯 부탁할까.

환희는 잠시 손가락을 나타내듯이 아이의 다리를 쓸다가 입을 연다. 그저 빛나는 불에서 나오는 목소리같은, 자근자근하고 엄한 소리다.

"다리 안에는 새가 얽혀있는 모양새다. 이 중에 새를 즐겨 죽인 자가 있는가?" 환희의 목소리는 뇌에 울리는 진동처럼 들렸어도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충격파같았다. 귀가 서늘하게 울리면서도 머리가 따뜻해진다.

"저희 부친께서 새잡이를 하셨습니다."
남편이 고한다.

"내가 본 것은 아이의 조모인데, 거짓말을 하려는가?"

"아이 할머니가 새를 자주 고아드렸습니다."

환희는 사람모습이었으면 음성을 가다듬을듯한 태도로 아이 다리에 쇠줄처럼 얽힌 새의 영을 서서히 풀어준다. 아이는 끓는듯한 신음을 내다가 숨이 고와진다.

새의 영은 그 방의 모두가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나무와 풀의 냄새, 그리고 한때 지혜로웠던 영격을 지닌 짐승의 역취이다.

환희는 새의 영을 깨끗하게 한다. 그를 얽히게 한 사나움을 씻겨내는 행위였다.

환희는 새를 멀리 날린다.

'높게 날아라, 멀리 날아가라

너는 자유롭다. 이제는 잡히지 말고, 죽지도 않으리라.

멀리 날아가서 네 가고 싶은 데로 가라.

그리고 언젠가는 원하는 모습으로 땅에 오라.

이 땅이 돌아가듯 너도 돌아오라.'

환희는 의식을 멈춘다.

아이는 무서웠던듯 눈물이 말라 엉겨붙고 얼굴이 반덩이는 더 부어있다.

아이는 이제는 괜찮다고 천천히 다리를 주무르다가 서서히 펴고, 활짝 온전하게 편다.

그리고 이제는 아프지 않다고, 괜찮다고 중얼거리며 가족은 이제 다 끝난거라고, 아내의 친구인 무당은 어이구 우리 고생 많았다고 다행이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보며 환희는 땅으로 날아돌아온다.

(한국어판) 생물로 사는 즐거움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